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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소설][중편] 인간 껍데기
게시물ID : readers_121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ue
추천 : 0
조회수 : 30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08 23:18:39

인간 껍데기 (=인두겁)

 

관람 시 주의 사항.

1.     영화 겨울왕국 (=프로즌)의 일부 스토리를 차용했습니다. (=간단하게, 아렌델 이라는 왕국에 두 공주가 살았고, 큰 공주는 마법을 숨기는 사람이었고, 작은 공주는 사랑에 목 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대관식이 끝난 후에, 큰 공부는 마법을 들켜서 도망치지만, 작은 공주의 자매애로 사건은 마무리 되고, 그 사이에 작은 공주가 사랑했던 한스라는 사람은 역모를 꾸미다가 적발당하여 본국으로 송환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한스라는 주인공이 본국으로 송환 당하여, 그 죄목으로 처형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대관식 : 군주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면, 대외적으로 왕권을 공식적으로 승계 받음을 알리는 행사.

큰 공주의 이름은 엘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 영화의 배경은 17 ~ 18세기 노르웨이이고, 그 당시는 봉건주의 및 르네상스 시대의 변천 과정, 즉 과도기였기에. 마법의 존재와 연금술 따위가 보편적으로 퍼졌던 시대 입니다. 그리고 마법은 금기시되었고, 교황청 및 종교단체에서 마녀사냥을 집도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공주의 이름은 안나입니다.

2.     소설 인간 껍데기 (=오트슨 작가)의 콘셉, (=악마의 존재, 주인공이 도구로써 사용됨, ‘마음의 존재, ‘주문 내용’) 일부 차용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글은 두 작품에 영감을 받아서, 각 작품에서 아쉬운 점을 보강 및 보충한 습작에 불과합니다.

3.     소재에 관심 깊게 보기 바랍니다. (= , 부서진 칼, 인간껍데기, ‘마음’) 소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중에 따로 알려주길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 어떤 소재를 사용해야 주제를 명확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표현할 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완성한 지금에는 그 고뇌가 잘 파악 될 지 다시금 고민입니다.

4.     악마의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유추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악마가 나올 때, 악마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어떤 점에 다르고, 왜 다른지 파악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다른지, 없다면 왜 불가능한지 설명 해주세요.

5.     성악설에 기본 바탕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순자와는 달리, 순수하고도 이기적인 인간의 속세적인 마음은 교정이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글을 작성하였고, 한 작품에서 선역으로 나오던, 두 인물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읽는 와중에 어색한면이 없는지 잘 파악해 주세요.

6.     누군가 자신에게 거부할 수 없는 이익을 주고, 다른 이 (=자신은 모르는 사람)의 희생을 종용한다면 받아 들여야 할까요? 이런 생각에서 시발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을 잘 갈무리하여 이렇게 작품으로 도출하였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주제가 무엇일지, 그리고 그 주제가 처음의 시발점과 동일한 지 파악해 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면 이유를 작성해주세요.

7.     초반 부에는 장면 묘사, 감정 표현이 세밀하게 표현되지만, 후반 부로 갈수록 표현이 절제됩니다. 그렇게 의도한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개연성이 부족한 면이 있거나,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가차 없이 말해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의도한 바가 이 작품에 궁극적으로 무슨 역할을 하는지 말해주세요.

8.     작품 중, 엘사 (=큰 공주)의 마음을 보는 과정 중,

삶 조차 거짓이 되어버린 그를 위해.

 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 인지 파악해주세요.

9.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끝까지 봐주시고,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 답해주세요. 그 동안 독서를 한 능력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고, 그렇기에 본인 스스로 가장 궁금합니다.  ‘내가 과연 독서를 한 것이 헛된 일이 아닌지에 대해서.’

 

 

 

 

 

남부 제도의 제 13왕자 한스는 마침내 최후의 결정만을 앞두고 있다.

 고독하고 외로움이 휘몰아치는 좁은 공간에서, 달 빛이 한 없이 찬란하게 비추어 지는 이 곳에서, 고독한 공간에 대비되는 밝은 빛이 감도는 이 공간에서, 그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감옥 안에서는, 아렌델의 왕위를 찬탈하려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범죄자가 수감되어 있고, 동시에 진정으로 아렌델의 두 공주를 위했기에 희생한 남자가 갇혀있다. 예상 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고되고, 고통스러웠으나, 그 만큼 가치를 들인 보람이 있었다. 한스는 이런 결말이야 말로 평생을 소외받고, 쓸쓸하게 살아온 자신의 유작으로써 손색이 없는 걸작일 것이라 자평했다.

하지만, 일말의 성취감 따위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비되는 회한과 서글픔만이 온 몸을, 온 마음을 휘몰아 치고 있다. 그런 비탄의 감정만이 생애 최대이자, 최후의 작업을 마친 그의 가슴 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한스는 자신을 내려다 보았다.

 단정하고, 격식이 있던 남부 제도의 제복은 쉼 없는 고문과 고통의 나락에서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고 훼손되어 있었다. 몸은 고통스러우나 마음만은 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감옥 안에서 쓸쓸하게 처형만을 기다리면서, 고문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울부 짓는 자신을 바라보면, 아렌델에서 자신을 역겹다는 듯이 생각할 그녀가 생각나서 무어라 표현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한스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제복을 벗어 바닥에 집어 던지고 말았다. 한스는 어깨를 흔들거리더니, 이내 곧 온 몸을 흐느끼며 애수로운 눈을 떠 쇠창살 너머의 달을 바라보았다.

찬란한 달항상 나를 비추어주며, 나에게 희망을 쥐어주던 저 밝은 빛은 언제나 그렇듯이.

한스는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달과 구석에 쳐 박힌 제복은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인다. 아마 곧 자신도 저런 형색으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한스는 측은과 혐오로 뒤섞인 눈으로 구석에 박혀있는 제복을 얼마간 쳐다보았다.

 

‘…‘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한스는 맨발인 채로 자리에서 앉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전의 자세는 앉은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니였다.- 별안간, 온 공간을 뒤흔드는 고성과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에 의아한 그의 눈길에, 익숙한 인물이 등장하자 한스는 가슴이 먹먹해 짐을 느낀다.

 한 밤의 달 빛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공간 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여기 계셨습니까.한스 왕자님.”

 너무나 밝은 달 빛에, 너무나 어두운 감옥의 풍경에, 먹먹한 가슴에, 한 동안 방문자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것은 과연 진실일까?

 다만, 눈 앞의 그를 마주 볼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왕자님의 결정이기에, 제가 함부로 무어라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만, 왕자님의 신변이 걱정되었기에 찾아왔습니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데 괜찮습니까? 설마 도착 당일부터 계속 고문을 받으신 것은 아니신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계획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내가 한 평생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사람- 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적막한 공간을 뒤 흔들었다. 그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새겨졌을 지, 아마 알 것 같다. 근 십 년을 같이 한 인생의 동반자나 다음 없었기에. 하지만, 한스는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도저히 그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눈에서 떨어진, 희생의 결정, 숭고한 결정의 결과가 중력에 정처 없이 추락한다. 그것은 이내 한스의 터진 피부와, 고통스럽게 갈라진 상처에 스며들었고, 한스는고통스러워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한스는 여전히 방문자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고통스럽게 말한다.

야심한 밤에, 이런 공간에 찾아와도 괜찮은 겁니까? 주위의 시선도 의식이 될 것 이고, 내일 있을 그것으로 무척이나 바쁘지 않습니까?”

 이럴 속셈은 아니었는데, 너무나 착잡했던 나머지 비꼬는 어조로 말해버렸다. 슬쩍, 그는 차마 방문자를 직시할 수 없었지만, 방문자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방문자는 무척이나 슬픈 얼굴로 한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왕자시여,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한 평생을 소외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고통 받았던 과거로 인해 행복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이렇게 손아귀에서 놓치실 것입니까? 이제는, 왕자님도 행복하셔야 합니다. 이런 곳에서 과거를 반복하시면 안됩니다.”

“…“

여기서 죽는다고, 아렌델의 그녀가 알아 줄 것 같습니까? 국민들의 왕자님의 숭고한 희생을 기릴것이라 예상하십니까? 전혀 아닙니다그저, ‘개 죽음에 불과하단 말입니다왕자님.”

그만 해줘요, 제발. “

 방문자는 더더욱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한스는 이내 자신이 내뱉은 말이, 방문자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슴도 쥐어 짜듯이 고통스럽게 만든 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다. 실은 그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고통스럽고, 누구보다, 후회스러운 사람도 바로 그다.

 이 방문자 또한 자신만큼이나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한 평생을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 주는 것 같네요.”

 방문자는 고개를 느리게, 그러나 담담하게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곤, 한 동안의 고요함이 감돌았다.

이게 다 저의 불찰로 야기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조금만 더 일찍 왕자님을 만났다면, 제가 가진 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왕자님을 지킬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말에 가슴은 더욱 더 먹먹해 진다.

그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어요, 저의 어머니도, 왕께서도, 저의12 명의 형들도, 그리고 당신도 잘못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잘못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잘못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이러는 편이 그녀에게는 더.

내일,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이 지나간다면, 제 유해를 바다 너머로 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죽어서는 드 넓은 바다로 날리듯이 사라지고 싶습니다.”

왕자님의 뜻대로…”

 방문자는 힘겹게 웃어 보인 뒤에, 적막한 공간을 깨어버리고 문으로 멀어졌다. 한스는 그의 뒷 모습을 응시했다.

‘……‘

 이 공간에서, 살아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규칙한 나의 숨소리, 그리고 점차 멀어지는 더 발소리 뿐이다.

 나무의 마찰음이 들리고, 굳게 닫히는 소음이 들리자, 문득 방문자는 자신을 쳐다보았다. 한스와 방문자는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가 입을 뻐끔거리는게 보였다.

죽어서는, 행복하거라, 한스야. ‘

방문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한스 자신의 헛된 희망 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불명확한 한 줄기의 희망마저도, 한스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오게 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는 세차게 팔을 휘둘렀다. 수 많은 고문으로 짓 이겨진, 피부가 더욱 더 쓰라지고, 골절을 입은 듯한 팔은 그에 개의치 않고 벽을 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감옥 안에서 쇠창살 너머를 응시 한 채, 멍하니 달을 올려다 보았다.

“…… 거짓말이야, 하랄트.”

 그는 달을 향해 느리고도, 힘 없이 중얼거렸다.

죽어서, 바다로 가보고 싶은 것은, 그녀가 보고 싶기 때문이야.”

한스는 그 이후로 더 이상 달을 올려다 보지 않았다. 달을 보는 대신, 바지 품에 은닉했던 도구를 꺼냈다. 날이 시퍼렇게 선, 조각난 칼이 그의 눈에 가득찼다.

한스의 눈매도 차츰 매서워졌다.

끝 없는 고통이 지난 후에, 반드시 결실이 맺힐 거라 생각 했거늘결국에는 헛되이 사라져버리는구나. “

 

 

한스는 남부 제도의 왕실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이자, 환영 받지 못한 아들이었다.

 왕실에서의 경쟁과 술책은 상상을 뛰어 넘었고, 12 명이나 되는 형제의 높은 문턱 앞에서 그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편에는 아무도 없었다. 넓디 넓은 궁정에서 그가 의지할 곳은 없었다. 한 뼘의 공간에서조차 그는 안심할 수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스는 그렇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그가 이해하기에는 권모술수로 그윽한 이 공간은 너무나 난해했고, 복잡하기만 했다. 하지만, 경쟁은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태어나자 마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사고로 숨졌다는 소식만을 들었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친 어머니 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곧 자신이 정을 갖는 모든 것은 처참히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누가 그러는 것인지, 처음에는 내막조차 몰랐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시계태엽처럼 맞추어져 갔다. 왕은, 군주라는 직책에 걸 맞는 냉정하고 잔인하되, 한 없이 정확한왕자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열망에 부흥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 능력을 보이고자 하였고, 자신은 그 결과에 시달리는 헌신짝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자 했다. 같은 공간에서, 수 년을 같이 산 형제들이 자신을 이렇게 모질게 내칠 것이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분명히 같은 공간이지만, 동시에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이었던, 형제들의 방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램프만이 그 존재를 입증하는, 적막한 복도에서 한스는 손을 내밀었다. ‘형제들에게, ‘아버지에게.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몇 년이고 두드렸다. 하지만 방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그 들만의 궁전, ‘그 들만의 연회, 분명히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았다.

….”

 흔들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그렇게 한스는 부정하고자 했던, 현실에 직시하게 되었다.

‘…’

 그리고, 그 순간까지도 어두운 복도, 적막한 복도, 달 빛만이 비추는 복도에는 그 누구의 행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왕실의 그 누구도 자신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왕위 경쟁에서 가장 가능성이 낮으며, 보호자 조차 없는 왕자는 허울뿐이었다. 그렇기에, 한스는 이를 악 물었다.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

 그는 그리고, 하얀장갑을 끼게 되었다.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이 혈투에서 살아남고자, 한스는 자신에게 한 없이 냉정해질 수 밖에 없었다. 형제의 무관심에, 형식뿐인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주변의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고통스러워 하기에는, 자신의 신변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왕위 경쟁에서 가장 늦게 참여하였기에, 그의 세력은 티끌에 불과하였고, 그는 곧 다른 왕실과의 결혼을 통해야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유일한 세력이자,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인 하랄트를만난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기회가 자신을 힘껏 안겨주었다.

남부 제도와 얼마간의 거리가 있는 비밀에 싸인 왕국의 공주가, 몇 달 뒤에 대관식을 한다는 것. 이었다.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라고 확신한 그는 곧, 왕에게 먼 나라의 대관식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왕은 평소와 다르게 웃으면서 승락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예술적 감각과 동시에 예리함 까지 갖춘 칼을 손수 선사했다.

 그리고, 한스는 아무런 동행도 없이 혼자 남부 제도를 떠났다.

 

---

 

 계획은 순조로웠다. 안나라는 공주는 자신에게 무한한 호감을 들어냈고, 한스는 그녀의 감정과 마음을 꿰뚫어 본 채로 그녀의 마음을 자극했다. 문득,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부모를 잃고, 유일한 혈육인 언니에게 조차 버림을 받은 슬픈 공주라는 생각이 들어 한 없이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계획에 불과하다고 그는 마음을 다 잡았다. 한낱 감정에 휩쓸려버리다간, 자신은 곧 피의 암투에서 제거될 말에 불과한 것이다.

아렌델의 왕권을 보자면, 곧 있으면 대관식을 할 엘사라는 인물이 자신에게 더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마치 괴물인 것처럼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갖은 수단을 써서 그녀와 만날려고 하였지만, 아렌델의 고위 관리들은 곤란하다는 입장만 표명할 뿐이었다.

 처음에, 한스는안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하게 궁전에서 너무 오래 혼자있었기에, 애정을 갈구하는 것인가하며 고민했을 뿐이다. 갈색의 찰랑이는 머리와 어깨와 팔을 드러낸 아름다운 공주를 바라보면,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끼기도 했고, 대관식 당일 교회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그 순간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그러나, 한스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나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고 치부했다. 그래야만,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관식이 진행되고, 연회장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이었다. 나는 그녀를 슬며시 어깨로 밀어보았고, 그녀도 싫진 않은 듯 나를 밀었다. 그리곤, 나는 그녀의 유독 특별한 흰 머리에 대해서 물었고, 그녀는 추억을 이야기 하듯이 나에게 속삭여주었다. 그녀가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동시에 슬퍼 보였다. 그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 본다는 것을 나는 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재밌다는 듯이 웃어주었고, 곧 나에게 꽃을 쥐어 주었다.

백목련.

이런 지방에, 이 꽃이 아직까지 있을 줄이야, 하지만 그 생각과 별개로. 한 없이 하얗기에, 한 없이 순수하기에,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한스는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그녀의 얼굴에 섧게 그리운 그림자를 그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스는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껏,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도 한스는 몰랐다. 하지만,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니, 안나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대로 다른 일이 없었다면 한스는 계획을 접어두고, 순수하게 사랑의 감정에 몸을 맡길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처음은 좋지 않았지만, 행복한 사랑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안나가 대관식 후의 축제에서 엘사를 자극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렌델 왕국은 몇 년 전에 공식적인 왕과 왕비가 사고로 사망하고, 그 이후에 집정관이 대리 통치를 하면서 곧 있을 대관식을 준비하는 나라이고, 왕실은 주변과의 소통을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렌델의 여왕은 틀림없는 마법을 사용하였고, 그로 인해 연회장에 있는 고위 관리와 다른 왕족들은 상해를 입을 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멈추지 않고 여왕은 평민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면서 좌중의 혼돈을 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위즐튼의 공작에게는 직접 마법을 발산함으로써 그에게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까지 하였다.

…’ 무어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안나는 곧 이번 일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면서, 직접 엘사를 찾으러 가겠다고 하였다. 순간, 걱정이 앞서면서 그녀를 만류하였지만, 그녀는 그저 자신의 언니를 믿는다는 말만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권한을 이임한다는 말을 했다.

  10 년을 언니와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그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언니를 강하게 믿는다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잡으려고 하였으나, 심장은 마구 고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안나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어쩜 이렇게 사람을 잘 믿는 것일까, 자신은 한 평생을 이용만 당했기에, 남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에 비해 안나는 너무 사람을 믿었다. 그 점이 자신의 양심을 무겁게 짓 눌렀다. ‘내가 여기에 온 목적안나에 대한 애정이 휘몰아치듯이 가슴을 자극한다. 이끝내, 한스는 표정을 갈무리하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

 

모든 것이 다 헛일이 될 수 있다.

 사건 발생 직후, 한스는엘사로 인해 얻어 붙은 협곡과 급변한 기상에 대응하여, 연회장에 있던 고위 관리들과 왕족들에게 자신이 임시로 권한을 맡았음을 밝히고, 좌중의 침착을 종용했다. 그리고 엘사를 만날 것을 요구했던 관리에게 가서 왕실의 모포와 면직물을 평민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했다.

 이 모든 것은, 한스의 변동된 계획의 일부이자 동시에 안나에 대한 책임감의 소산물이었다.

 

 

 

 몇 시간 정도가 흘렀다. 한스는 지금 어색한 왕궁의 서재에 있다. 그의 계획을 망친 엘사라는 존재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그리고 안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안나가 의지하는 언니라는 사람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순간 한스는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자신의 사랑을 앗아가는 사람을 더 알고 싶어 하다니, 엘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엘사가 사용한 마법의 출처를 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엘사에게 악의는 없었다. 여왕도 분명 하루 만에 친동생이 낯선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발언을 하자 혼동스러웠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스는 이런 사태를 발생시키고 사라져 버린 여왕을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재에 도열되어 있는 책들을 훑어보면서, 여왕의 비밀에 관한 일말의 단서라도 찾는 행위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스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

안나의 모습을 떠올리자, 안나의 깊은 눈동자에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것이다. 분명, 자신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할 때에도 안나는 순수하며 맑은 얼굴과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그리고 티 없이 맑은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항상 그 이야기의 이면에는 그리움과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도사렸다. 아마 유일한 혈육인 여왕에 대한 감정이겠지. 어찌보면 여왕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도 여기에서 같이 살자.’ 라고 한 말은 평면적이고 지루한 일상에서 라는 존재가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사건을 기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을 매정하게 내친 언니에게 감정을 거두지 못한건가?

 홀로 어두운, 적막한 서재에 있는 한스는 오랫동안 천장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가 완전히 메말라 버렸을 때, 그는 두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안나를 위해서 이 사건을 최대한 원활하게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나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는 것이다.

 

‘…‘

 

 어느덧 날이 새로 밝고 있었다.

한스는 거의 다 녹은 양초를, 하얀 장갑을 벗어 껐다. 항상 그는 이 하얀 장갑을 고수했다. 이 하얀 장갑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진실된 감정을 속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냉철해 질 수 있었으며, 결론적으로 아직까지 살아있다. 아마, 이 장갑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의를 깨닫지 못했다면 난 지금쯤 왕궁 뒤 편에 있는 구덩이에 이미 먼저 사라져버린 형제처럼 죽었겠지.

어찌보면, 이런 냉혹한 태도를 한스 또한 아버지인 왕에게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마음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고뇌를 해야지 그 직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가 아는 가장 뛰어난 군주지만 동시에 가장 잔혹한 군주이다. 어머니가 사라진 이후 한스는 아버지의 욕망에 의해 분노와 고뇌로 점철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스는 더 이상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으로 인해 자신이 성장한 것을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이제는 쉽사리 상처받지 않는 인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제는, 단지 사랑하는 그녀만 옆에 있었으면 했다.

‘…‘

결국은, 찾았군. “

 서재에서 발견한, 지도를 들고 한스는 급히 왕궁을 빠져나갔다.

안나와 엘사가 서로 반목하게 된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자, 한스는 급히 그의 말을 타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하루 밤 사이에 내린 눈의 양은 무시 못할 수준이었고, 주변의 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한스는 내달렸다.

 

 습하다. 그리고 어둡고 이상한 곳이다.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도를 찾지 못할 정도로 괴이한 곳이었다.

 순간적으로, 이 곳이 지도가 가리키는 행선지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지만, 곧 의심은 사라졌다. 트롤이 나타난 것이다. 트롤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진실을 말했다. 내 속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일까 그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금 풍경과 일체화가 되었다.

 이제 명확해졌다.

아렌델 왕국의 선왕은, 장녀가 마법의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비밀이 오늘 발산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왕족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안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의 힘이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리라.

이 말을 내뱉은 후에 사라진 그를 보면서 한스는미심쩍었다. 마지막, 문장은 이해가 안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다시 아렌델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안나가 자신을 믿고 맡겼기에,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여왕의 힘으로 눈보라는 강해지고 있었기에.

 

 

 이 모든 사건의 흐름이 유기적으로 자신을 얽매어 온다는 것을 새삼 느낀 한스는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나온 탄식에 놀랐다.

안나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안나의 말이 돌아온 것을 보고, 직접 몸을 이끌고 나가서 확인 한 것은 얼음성과 당황스러워 하는 여왕뿐이었다. 지금, 여왕은 혼동스러워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왕국을 버리고 은닉하다니. 그리고 마법으로 사람을 살해할려고 하기까지야. 분명한 것은, 안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여왕은 위험한 상태라는 것이다. 단순한 방에 방치한다면, 다시 도망칠 것이 뻔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감옥에 놔두었었지만, 그녀의 혼란스러운 눈빛과 자조적인 말투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안나를 데려와라. 당장

 그 순간에도 동생을 생각하는 여왕을 보면 참으로 착잡할 수 밖에 없었다.

권력이란 이렇게 복잡한 것입니까? 그래서 한 없이 냉정하게만 행동하신 겁니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혼란스러워 하는 국민들, 자신들이 눈 덛힌 왕국에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외국의 사신들과 왕족들을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까.

 텅 빈 방안에, 혼자 앉아있는 그를 방해하듯이, 문을 연 사람들이 한스의 근처로 다가왔다.

 , 그들은 한스에게 수 많은 말들을 쏟아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스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도 충분히 머리는 지끈거렸다.

“…점점 더 얼어붙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다 얼어 죽어 버릴겁니다. “

그의 말이 맞다하지만, 그렇게 판단하자면, 지금 가장 위험한 건 안나겠지.’

한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득 일어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안나 공주를 찾으러 가겠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녀의 신변이다.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의 계획에 반대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그리곤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그리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안나

 

---

 

 별안간, 폭풍이 지나치는 듯이 주변을 심각하게 내리 꽂던 눈보라가 결국, 잠잠해졌다.

 그리고, 한스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건을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더 큰 사건이 지금 발생했다.

안나는 친 언니인 엘사에게 마법으로 공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여파로 밝았던 갈색의 빛깔이 하얀색과 갈색의 향연으로 바뀌어 버렸다. 오묘하고도 꺼림직한 느낌의 색상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그리곤,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심장이 얼어붙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실된 사랑의 행동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순간 수 많은 감정이 휘몰아 쳤다. ‘진실된 사랑그 말이 자신에게 어울리는 말인가? 나는 순전히 계획에 따라서 이 곳에 왔고, 그 과정에서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감정이 나와 비슷한 생을 산 그녀에게 느끼는 연민인지, ‘사랑인지 아직까지도 불명확하다. 나는 지금껏, 그저, 생존을 위해 냉철하게 살아온 동물에 불과했다.

안나는 힘겨운 듯이 나를 향해 웃었다. 저 웃음을 보는 순간 마음이 더 강하게 움츠러든다. 내가 하는 행동이 과연 올바론 결과에 귀결될 수 있을 것일까?

하얀 장갑을 낀 상태로 그녀의 턱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까이 하는 순간, 내 마음이 더욱 더 고동침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까지 그녀의 눈망울에는 내가 아닌 다른 것이 어른거렸다.

아뇨, 안나. 저 바깥 어딘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결국,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진실한 사랑인지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진실한 사랑이 아닐 경우에 닥쳐올 여파를 감당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슬퍼할 지, 소외감에 고통스러워 할 지. 차라리, 그것보다는 나를 미워하도록 하는 것이 나았다. 나보다는 13년을 떨어져 있어도 혈육인 언니가 더 진실한 사랑이리라. 그리고 내가 지켜본 순간에는, 그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아꼈다.

 그 동안, 나는 스스로 영겁의 시간을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 한 평생을 행복해 지기 위해서 분연히 노력했지만, 난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 스스로가 더 이상 행복해 질 수 없으리라고, 나를 아껴주었던 인물들과는 이미 이별을 해 버렸다. 친 어머니, 다른 형제들과 달리 나를 아껴주던 형. 나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나를 지켜주었던 얼마 안되지만 값졌던 사람들. 내가 이 혈투에서 승리하여 왕좌에 앉든, 다른 나라의 공주와 결혼을 하든, 공허한 나의 가슴을 채워줄 것은 없으리라. 차라리, 나와 비슷한 생을 살았던 그대. 안나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 보다는 엘사라는 승부수를 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나를 향해 세웠던 비난의 날을 돌려서, 안나에게 퍼붓고, 방문을 잠궜던 그 순간은 차마 잊을 수가 없다. 그녀의 눈 빛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무슨 표정을 지을지 이미 눈에 선하였기 때문이다. 나를 미워하시오 안나

 그 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수행해야 할 과제가 더 남아있엇다.

 

안나와엘사가 진정한 관계 회복을 하기 위해, 안나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이기 위해 기폭제 역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는, 마지막 역할을 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한 없이 냉담하기만 하였던 왕이 이번 여행을 가기 전에 손수 내린 이 검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 하리라.

 칼 날에 새겨진 붉지만 한 없이 어두운, 읽을 수 없는 괴이한 문자를 보면서, 왕실의 아름다운 무늬가 기하학적으로 새겨진 왕의 칼을 보면서, 한스는 길을 나섰다.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와 같은 눈보라와 한 없이 깨끗하기에 섬뜩한 느낌마저 자아내는 눈의 풍경을 헤쳐나가면서.

 ---

안나가 어서 이 장면을 보기를 기원하면서, 칼을 뽑는 소리를 크게 내면서, 천천히 그리고 안타깝게 칼을 내리친다. 팔의 힘이 강하게 들어가면서, 근육이 수축한다. 그리고 팽창한다. 칼은 멈추어진 눈보라 속에서 유난히 붉은 빛을 더욱더 강하게 띈다. 그리곤 안나가달려온다

 발 걸음 소리가 작게 들리는 것을 보아, 벌써 다리까지 얼어 붙은 것일까? 그녀와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칼을 휘두르는 속도를 조절하고자 했다. 제발, 그녀가 나의 의도대로 행동해주길. 내가 아는 그녀는 몇 일 밖에 되지 않았으나, 한 없이 솔직하고 여리면서 당당한 성격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보지 못한다는 슬픔과 나로 인해 행복해 질 그녀를 생각하자 가슴이 묘하다.

 그녀가, 나의 앞으로 왔다. 그리곤 급박한 표정으로 나를 막는다.

좋아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구나. 내 몫 까지 행복했으면

 

 

 

 어지러운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 한 쪽 눈으로 살며시 뜬 광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여왕은 자신으로 인해 눈으로 묻혀버린 아렌델의 눈을 녹여버렸고, 안나와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안나는 자신으로 인해 얻은 상처가 없어 보였다.

 다행이다.

 다시는 녹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날카롭고 단단한 얼음 조각들이 하늘로 휘날리며 그 잔흔을 제거하고 있었다. 밝은 햇살안에서, 그들은 아름다웠고, 찬란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서 있을 자리는 없다. 내 고향인 남부 제도에서도 더 이상의 내 자리는 없을 것이다.

 영원히.

 

 

‘…‘

 차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었다. 가슴 속에서 삭혀두고 있던 감정이 너무나 뜨거웠기에, 그 상태로 그냥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잔인한 세상은 나를 다시 고통 속으로 몰아 넣는다.

 두 눈은 상해의 흔적으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두 뺨 또한 거친 사내들의 손아귀에 의해 아릴 정도로 쓰라리다. 온 몸이 전체적으로, 소리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도 소리치고 있다. 어서 이 고통에서 해방되었으면 싶지만, 아직까지도 날은 밝아오지 않았다.

 아니, 날이 밝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나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손수 나에게 내린 이 ’, 이제는 검의 형상이 아닌, 부서진 칼날에 불과한 일부에 불과하지만, 아직까지 그 예기와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한 없이 붉고, 한 없이 매혹적인 저 불명의 언어가 새겨진 칼날은 그대로였다.

 칼날을 쓰다듬으면서, 아버지를 잠시나마 떠올렸다.

 항상,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던 그 사람, 얼굴 조차 보기가 매우 힘들었던 그 사람, 하지만 자신이 당당하게 요구를 하자, 웃기까지 하면서 손수 검을 선사해주던 그 사람.

빌어먹을자식은 아무리 부정해도 자식이라는 건가. 십 수년 간의 고통과 고독의 감정이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줄이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것은 그녀였다. 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 것인가. 적어도 순간이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었을까. 자신이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만큼, 그녀도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었을까. 차라리, 그 때 자신의 감정을 믿고, ‘진실한 사랑의 행동을 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 눈을 지긋이 감고, 흔들거리는 손을 다 잡았다. 과거에도 항상 후회를 하고자 하면, 손은 미친 듯이 떨리곤 했다. 그래서 하얀 장갑을 고수하였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창문을 통해서, 순간의 달 빛이 흐느끼듯이 온 공간을 감돈다. 그리고, 달 빛은 밝은 색이 아니라, 노란 색이 아니라, 진홍 색이었고. 한 없이 어둡되, 진한 빛깔이었다. 그리고 그 빛은 무어라 정의 할 수 없었다. 그저, 한 없이 붉을 뿐이었다.

 그리고, 달 빛은 한스가 눈치채기 못한 사이에, 한 공간으로 집중되어 빛을 산란시켰다.

 부서진 칼을 들어 올린다. 평소에는 결코 무겁지 않을 무게였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무엇보다 무겁다. 두 손으로 천천히그리고 떨림을 주체하고자, 최대한의 노력을 가하면서 거꾸로 잡아 들었다.

 날카롭게 깨진 칼 날이 자신을 향하게 한 후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자.

 ‘…‘

 그 순간이었다.

 집중되어 산란된 붉은 공간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분명히 어두운 감이 짙었다. 어둠 속에서, 그 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인영만을 드리운 채, 그 존재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머저리 같은 놈, 네가 그 동안 한 행동의 결과가 고작 이거냐? 자살?”

 그 존재는 코 웃음까지 쳤다.

죽는 그 순간에 까지, ‘자신은 고귀한 희생을 한다고 생각하겠지. 안 그러냐?”

한스는 그 말에, 거친 반응을 보이면서, 길고도 깊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한 평생을 하등 생물처럼 무시하더니, 곧 있으면 있을 처형식을 앞두고 무슨 일 인거지? “

 날이 바짝 선, 날카로운 말투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로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왕위 계승에서, 위협적이던 동생이 내일 사라지니, 너무나도 기뻐서 찾아온 건가? “

 동생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존재, 정확히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 한스가 생각한 존재는 그 말이 끝나자, 다시금 널리 산란되는 달 빛으로 인해, 어스름 잔상이 비치는 영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도구로써 한 평생을 살다가, 가는 구나. “

 순간, 짧디 짧은 말이지만, 가슴을 휘젓는 말에 한스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

 손 아귀에 잡히는 힘이 풀어짐을 느꼈다. 하지만, 도저히 다시 힘을 줄 수 없었다.

‘…’

 부서진 칼은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붉은 문자는 자신을 향해 진홍색의, 검고도 붉은, 오묘하면서 소름끼치는 자태를 여전히 풍겼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평생을, 자신을 내치던 형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한스, 스스로 외면하고자 했던 깊은 바닥의 마음까지. 그의 말은 정말 사실적으로, 한스의 내면을 찢어 놓았다. 그리고 낱낱이 폭로했다. 한스는 감옥의 바닥에 헛구역질을 해보아도 속은 전혀 편안해지지 않았다.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게워내고자 할수록, 무엇인가 시커먼 것이 텅 빈 속을 채워갈 뿐이다.

 “ .. 도데체 네가 뭔데, 네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이러는 거지? “

 그는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덧붙였다.

그건, 네가 가장 잘 알지 않나, 한스?”

그리곤, 그는 더 이상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스는 겁에 질린 눈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한스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점차, 외침은 절규가 되고, 절규는 절망이 되고, 절망은 그를 하염없이 고통스럽게만 만들었다.

 그는 곧,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의 발 걸음은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문을 향해서였고, 발소리는 이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한스는 그 자리에 혼절 하듯이, 주저 앉아 버렸다.

도구도구…’

 

‘…’

나는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희생한 거야. 고귀한 희생이자, 숭고한 결정이라고

 그로부터, 길고도 긴 시간, 동시에 짧고도 강렬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망연자실해 주저앉아 있던 그가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진실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살아갈 의지도 남아 있지를 않았다. 다른 존재가, 그 무어라 말을 한들, 자신은 희생을 한 것이다. 자신은 후회한 적이 없다. 라고 그는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것은 미친 짓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흔들리는 손을 주체 못하면서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움직이면서, 한스는 분주히 손을 움직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여도, 부서진 칼로 자살을 시도했던 그였다. 하지만, 칼 날에 새겨진 어두운 진홍 빛이 은근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바라보아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붉은 빛이었다. 사람의 피보다 더 진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여태껏 무슨 문자인지도 모를, 칼 날에 새겨진 진홍 빛 문자가 읽혀졌다는 것이다. 한스는 싱겁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악마를 소환 하는 법 …… ?’

 이 모든 순간에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였지만, 달은 언제나처럼 그를 향해 찬란한 빛을 빌려주었다.

 

 

 우선, 자신의 혈액으로 바닥에 원을 만들고, 그 한 가운데에 자신의 손을 얹고서 부서진 칼로 내리 찍는다. 모든 것이 칼에 적혀진 문자 그대로였다.

 자신의 팔에 꽂혀있는 칼은 괴이하고도, 자연스러웠다. 진홍 빛 문자는 점차 그 광채를 밝혀왔다. 그것이 달 빛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제, 정해진 주문만 외우면 된다. 그렇게만 하면, 악마가 소환 되는 것이다.

 물론, 한스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신의 존재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다음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정신 나간 짓을 해본다고 하여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악마가 소환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 지옥에 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악마가 소환된다면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그 영혼을 지옥으로 거두어 간다. ‘

 칼 날에 적힌 문자에서 보였던 사실이다.

 만일, 악마가 실존한다면, 그래서 이 의식을 통해 악마가 내 요구에 부응한다면, 한스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아마도 악마는 인간의 통념을 초월할 정도의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힘을 이용해 한스의 간절한 염원을 이루어 주는 것도 가능하리라.

안나를 다시 나에게.”

안나를 다시 행복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나에게.”

안나를 아무런 걱정 없이,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진짜 악마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리라.

 

‘…‘

 

말도 안되.’

한스는 순간 다시, 자조적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얼마나 어긋난 생각인가? 악마에게 영혼을 교환하고, 그 대가로 염원을 이루겠다니. 애초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모두 영혼을 팔아 치워 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후세에 지옥으로 끌려가는 대신, 현세에서 복락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고독하며, 신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다.

이 세상에 악마가 존재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신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한스는 그 모든 것을 이 순간, 증명해보기로 하였다.

 그는 다른 손으로 손잡이를 지긋이 눌렀다. 피부를 통해 새어 나오는 새빨간 피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점차 칼 날이 진홍 빛으로 차오른다는 것을 인식조차 못한 채, 달 빛이 찬란하고 밝은 빛이 아니라, 괴이할 정도로 붉은 빛을 비추고 있다는 것 조차 모른 채.

그리고, 칼날에 적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인간의 껍데기를 벗어 던지노라.”

첫 소절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손잡이를 더 강하게 눌렀다.

그리하여, 인간이 아닌, 껍데기 안의 존재를 섬기겠노라.”

둘째 소절을 끝내는 것과 함께, 그에게서 나오는 피는 칼을 뒤덮었다. 동시에, 칼은 한 없이 어두운, 붉은 빛을 자아냈다. 하지만, 전혀 문제는 없었다.

이로 인해, 나는 껍데기를 꿰뚫는 혜안을 얻게 될 것이며.”

셋째 소절이 끝남과 동시에, 피는 팽창하듯이, 솟아올랐다.

진실조차 거짓으로 변모시키는 권능의 힘을 가지게 되리라.”

마지막 소절이 끝났다. 눈 앞에 보이는 피의 향연은 그를 아찔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 였다.

..!’

외마디 비명과 동시에, 한스는주춤 거리고 말았다.

부서진 칼 안에서, 마치 샘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시뻘건 피가 차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완벽한 진홍 색으로 점철된 칼은 스스로가 상처를 입어 피를 쏟아 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이윽고, 피는 바닥을 흠뻑 적셨고, 마침내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잠식하고 말았다. 한스는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방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홍 빛의 달 빛이 자신을 내리 쬠과 동시에 칼 위로 솟아 올랐던 피의 향연은 주변으로 터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달 빛은 한 없이 강해졌다. 한스는 비명과 함께 눈을 감았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고통도,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내, 눈을 다시 뜨게 되었을 때, 눈 앞에는 더 이상 소름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진홍 빛 칼이 존재하지 않았다. 전 처럼, 조각난 칼이 덩그러니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을 뿐이다.그렇다고, 악마가 존재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 그 대신에 자신의 눈 앞에 자태를 나아내는 것은 그가 상상도 못할 물건이었다.

한 권의 책이었다.

방금 전의 진홍색의 향연과는 달리, 연분홍 빛깔의 가죽 표지를 가진, 낡고 두꺼운 책이었다.

한스는 떨리는 눈으로 책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책의 표지는 넓은 반면에, 투박한 글씨로 2 음절의 단어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이 책의 제목이겠지.

마 음

 

 

한스는 떨리는 손으로 마음이라는 제목의 책에 손을 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분홍 빛깔의 표지에 손가락이 닿은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뺄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살면서, 그 어떤 가죽도 이처럼 부드럽고, 따스하지 않았다. 이 감촉과 느낌은 도저히 가죽이라는 소재 자체가 갖는 한계를 뛰어 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는 사람의 피부와 같은 느낌이었다.

“…“

 그는 무엇이라 형언 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며, 다시 한 번 책에 손을 가까이 했다. 책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불현듯 한쪽 팔의 상처가 자극되어 짧은 신음을 질러 보기도 하였으나, 순간의 호기심앞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촉촉하고, 따스한 감촉이다. 아렌델에서 꼭 잡아 쥐었던 안나의손 만큼이나 가슴을 편안하게 해주는 감촉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 없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지배적으로 든다.

 그는 확실하게, 악마를 소환하였다. 그렇다면, 그 행동에 대한 결과는 그가 생각한 범위 안이었던 두 가지 중에서, 하나에 귀결되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자신은 미쳐버리는 것이거나 혹은 실제로 악마가 그의 부름에 응답하거나. 그러나, 눈 앞의 결과는 상상을 뒤 엎어 버렸다. 왜 이런 존재가 나에게 나타난 것일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전혀 다른 가능성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문제는 바뀌지 않는다. 그의 부름에 무엇인가가 응답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그의 뇌리를 스치는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 존재야 말로, 이 책이야 말로.

악마인가? “

이 가능성은 본질적으로 거짓일 확률이 적었다.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악마는 제각기 모습과 형색이 달랐다. 대체로 인간과 동일한 체형과 몸체를 유지하긴 하나, 그 시대나, 그 문화가 공유하는 불길한 이미지와 연관되는 경향을 보였다. ‘죽음과 연관 되었을 수도 있었고, ‘해골과 연관 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리고 한스가생각하는 악마는, 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차피, 신이나 악마나 인간을 방관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동일하였으니. 그렇다면, 눈 앞의 책 또한 형식적인 면으로 볼 때에, 책으로 보일 뿐, 본질적인 면으로 보자면, 신통력과 마력을 지니는 존재일 수도 있다.

 추측만 하기에는, 시간은 나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확인할 방법은 한 가지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는 표지를 끝으로, 책장을 열었다. 하지만, 책은 일 뿐이었다.

다만, 첫 장의 여백을 어지럽히는 활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름을 적어라.

그리고 그 밑에는,

[                           ]

이라는 문양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섣부르게 판단하기에는 그르다. 그는 곧, 손을 다시 뻗어, 책장을 넘겼다.

‘…‘

그러나, 첫 장을 제외하고는 백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다시 가능성은 하나로 귀결된다.

악마라는 존재가 나를 이렇게 흥분되게 만들 줄이야.”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에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칼로 팔을 주-욱 그음으로써, 피방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이용해서 이름을 썼다.

그는 실소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그만이 있는 곳에서.

붉은 색으로 쓰여진, 자신의 이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새삼 감동하며, 공백을 채운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순간 다시 먹먹해진다. 내가 인간이 아닌 괴물로 바뀌는 순간에, 안나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를 응시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던 안나의 목소리는 그의 심정을 더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시선을 몇 시간 만에, 창 밖으로 돌렸다. 그리고, 한스는이를 악 물었다. 이제 곧, 그녀를 만날 것이다. 아니, 그녀를 나의 소유로 할 것이다.

 악마의 실험인지도 모를 것에 광기에 가까운 듯한 집착을 보인 그는 다시 시선을 책에 고정 시켰다. 그리고, 그는 페이지를 넘겼다.

“……“

 이제는, 놀랄 것도 없다고 새삼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싸늘한 감촉이 뒤에서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찰나의 시간 동안에, 여백은 활자로 가득히 채워졌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도, 활자는 뻬곡히 가득 차 있었다.

얼마간, 그는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욕구와 번뇌를 떨치고자 앉아만 있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 마셨다. …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죽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나는 한 평생을 인정 받기 위해서노력을 다 했다. 그리고 그 대상은 형제아버지그리고 어머니를 다 포함 할 뿐만 아니라, 지겹도록 나를 쫒아 다니는 빌어먹을 운명도 포함된다. 하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완벽한 계획을 세웠지만, 도중에 안나를 사랑하는 감정과 계획을 수행해야 된다는 감정에 휩싸였다.

 , 진정한 사랑? 나와 닮은 사람이었기에 연민을 느꼈다? 다 집어치우자.

 , 살아남기 위해서 냉혹해 질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은 현재도 지속 중이다. 원래의 계획은 멍청한 어느 공주와 결혼을 한 후에, 권력을 장악하고, 자신의 비밀을 알지도 모르는 모든 인물을 다 제거하는 것이었다. 여왕을 목적으로 했다면, 후의 처리가 더 쉬웠을 지도 모르겠으나, 난 아직까지도 미숙했다. 차선책으로, 안나를 목표로 하였지만, 빌어먹을 감정에 휩싸여서 모든 것을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 때, 안나가 받을 고통이 두럽다. ‘ 아무리 이런저런 핑계를 대보아도, 사실은 내가 진정으로 냉혹하게 피를 보는 것이 무서워서였다. , 정말 난 빌어먹을 패배자 새끼에 불과한 건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살 하기에 두려워서 이 에 연연하고 있다. 나는 죽는 것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다. 계속 핑계를 갖다 붙이면서 죽음을 연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죽어야 하겠지? 이렇게까지 죽자, 죽자 하고 개지랄을 다 해놓고 죽지 않는 것은 또 꼴사납다. 그리고 언젠가 사지를 찢어 죽이고 싶었던 형에게 나의 치부를 보인 것만 같아, 엄청나게 치욕스럽다.

 내가 근처에 있으면, 안나는 불행해 질 것이다. 나의 주변인이 그랬듯이, 안나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걔가 나로 인해 고통 받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 여왕에게 나의 자리를 양보했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공간에서 안나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또한 보기 싫다. 그녀는 나로 인해, 행복해 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녀 옆에 있어야만 한다.

 역시 안나가 나에게 진정한 사랑의 행동을 요구했을 때, 망설임 없이 저지르고 보았어야 했나? 아냐, 나는 안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어. 솔직히 말해서, 나의 진심을 보여주지 않고 가식을 보여줬기에 그녀가 날 사랑한 것이다. 내 진실을 알게 된다면, 다른 이들처럼 떠날게 분명하다. 실은, 무서웠다. 그녀가 나로 인해 파멸하고,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리고 그와 비롯한 모든 것이.

 , 난 왜 이리 재능이 없는 것인가? 지금껏 살아남은 것도 십 수년 먹은 눈칫밥과 노력으로 살아남은 것이지, 나에겐 일말의 재능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능력의 반만이라도 물려받았다면, 내 일생은 완전히 달라졌겠지. 아렌델에서 한 행동도 그렇다. ‘희생이니 뭐니, ‘순교자니 뭐니, 요란스럽게 나 스스로를 속인 것에 불과하다. 그게 과연 거룩한 희생이라고 볼 수 있는 건가? 내가, 고통스럽게 희생을 하는데, 내가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행복을 위해 사라져 주는데,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왕족 살해 혐의로 목이나 달아나지.

사실 이것도 어찌 보면 비참한 죽음을 두려워 하는 내 무의식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죽어야 한다. 이렇게 억척스럽게 살아보았자 나에게 남는 것은 없다. 무능력한 13번째 왕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세상은 더럽게 역거운 일들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이딴 일들과는 영영 작별이다.

 나는 죽어야 한다. 아무리 무서워도 칼로 나 스스로를 찔러야 한다. 핑계를 대며 계속 도망치면 안 된다. 그러다가 날이라도 샌다면, 모두가 보는 광장에서 아주 자랑스럽게 목이 잘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전 까지 미친듯한 공포에 휩싸여 있겠지.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나는 내일의 태양을 보면 안된다.

그런데 도데체 이 책은 무엇인가!

 왜 내 속마음이 그대로 적나라 하게 표현되어 있는 거지? 방금 전만 해도 백지였는데 말이다. 정말로 이것이 악마인가? 죽음을 잠시라도 연기하고자 했던 악마 소환 의식이 정말로 통한 건가? 솔직히 너무나도 이 상황이 무섭다. 섬뜩하고 광기에 휩싸인 듯한, 이 미칠듯한 진흥 색 피가 자꾸만 눈 앞을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악마가 나를 영겁의 시간 동안 고통 받게 하는 것은 아닌지 무섭다. 정말로 내 영혼을 지옥에 끌고 가는 것인가? 무섭다. 너무나도 무섭다. 그 동안 달관한 척을 했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떨리고 무섭다.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차마 읽을 수가 없었다.

한스는 기나긴 비명과 함께 책을 바닥에 집어 던져 버리듯이 내동댕이쳤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 악마는 나에게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게 혼란을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책 안에 기록되어진 모든 내용은, 부정할 수 없는 한스의 속마음, 그것도 한스 자신조차 외면하고자 철저하게 노력했던, 밑바닥의 마음이었다. ‘마음이라는 책은 정말로 그의 마음을 낱낱이 표현했다. 그리고 폭로했다. 바로 자신에게. 그는 감옥에서 다시금 헛구역질을 했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한 역겨움에,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하지만, 아무리, 아무리 해보아도 속은 편해지지 않았다.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자 노력할수록, 더 본질적이고 메스꺼운 것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이 얼마나 추악한 기록인가.

 이 책만 아니었더라면, 한스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을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자살을 연인을 위한 진정한 사랑이라고, 젊은이의 순정적이고 아름다운 최후라고 자찬하며 숨을 거뒀으리라. 하지만, ‘마음은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이 책은 그가 철저하게 숨기고자 했던 진실을, 모든 추악한 진실을 읽게 만들었다. 이제 다시 자살을 선택한다고 하여도, 그의 죽음은 숭고해질 수 없었다. 남은 것은 더럽고 추악한 죽음 뿐이다. 고로, 그는 자살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마저도 자살을 두려워 하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거짓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찬란한 거짓은 마음에 추악한 진실로 기록되고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순한 어린 양처럼 바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책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외쳤다.

, .. 대체 뭐지? “

책은 침묵한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본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외친다.

어떻게 해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거지? “

책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그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제발제발내 진실을 보지 마!”

책은 여전히, 자신을 지켜본다.

하하

미친듯한 실소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급박하게 삼켜진 공기로 팽창한 폐가 또, 급박하게 내뱉은 공기로 수축한다. 그의 눈은 풀렸고, 그의 안면 근육은 팽창한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도 팽창한다.

 자살을 더 시도할 기력도, 가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기 전까지, 자신의 역겨운 진실과 내면에 두려워 하면서,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것은 이제 저항 할 수 없는 진실이 되어 자신을 짓 누른다. 머리에서부터, 온 몸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설령 자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대로, 그냥 죽기에는 너무 아쉽다. 적어도적어도날 이렇게 어지럽게 만든,

“…… 책 하나 정도 소멸시키는 건 가능할 것이다. “

이제는 정말, 힘이 없다. 미친 듯이 고통을 호소하는 모든 마디의 근육과 뼈들은 나에게 휴식을 요구하지만, 아쉽지만 아직은 그럴 시간이 아니었다.

온 몸을 기어서, 칼을 향해 손아귀를 뻗는다. 왼 팔은 칼로 인해 망신창이가 되었기에, 오른쪽을 이용해 뻗었다. 그리곤 잡았다.

“……”

온 힘을 다해서,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서, 찔렀다.

하지만, 아름다운 책, 사랑스러운 책, 가증스러운 책, 역거운 이 책은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기에 다시금 내리 찍었다. 하지만, 그대로다.

다시금, 칼을 바닥에 내 팽겨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바람에 의한 것인지, 책이 다시금 펄쳐진다. 그 첫 페이지를 확인한 그는, 낮은 신음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을 적어라.

그리고 그 밑에는,

[                           ]

분명히, 자신의 피로 적은 이름이 사라진 것이다. 다음 페이지도, 그 다음 페이지도, 마치 자신을 조롱 하듯이 여백이었다.

역시, 악마라는 존재는 인간의 생각을 뛰어 넘는다.

적었던 이름이 한스였기에, 그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다른 이의 이름을 적으면 다른 이의 마음도 읽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공포나, 당혹감마저도 호기심 앞에서는 그 영향력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다시금 피를 쥐어짰다. 그리고, 그 이름을 적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                        ]

그는 너무나도 궁금했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속 마음을.

 

 

 

 

저는 요즘 너무나 행복해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는 왕실의 궁전에서 갇혀만 살았어요. 그리고,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저희 혈육인 엘사는 저와 갑자기 거리륻 두기 시작했고요. 저의 세상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엘사와카이, 겔다 뿐이었어요! 하지만, 그 전까지는, 이 넓은 공간에서, 저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나날이 행복했어요.

엘사가 어느 순간부터, 저와의 만남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저의 세상은 갑자기 반으로 줄어든 기분이었어요. 아버지는 업무 때문에, 대신들과 회의실에서 거의 사시다 하시고, 어머니도 어머니 나름대로의 업무가 많으신 것 같았어요. 그리고 궁전에 있던 사람들도 갑자기 줄어버렸고요. 저는 혼자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는 정말 세상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단란했던 가정은 이미 기억의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고, 매일 같이 노크를 하는 엘사의 방은, 과연 엘사가 이 방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오래 되어 버렸어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저에게 친절해요. 제가 활발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답니다. 제가 애정을 갈구 한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그 활발한 점을 장점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카이와겔다가 없었다면, 어떻게 지냈을 지 상상도 하기가 싫어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항상 그리웠던 것은 따뜻했던 언니인 엘사의 품이었어요.

 그리고, 전 지금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대관식으로 인해, 어색하지만 엘사를 볼 수 있었고, 우리에게 닥쳤던 고난을 이겨냄으로 인해 엘사와의 사이가 더 돈독해졌거든요.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행복한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어요. 이 얼마나 행복한 지! 정말 세상은 아름다운 것 같아요.

 아아, 저는 엘사를 좋아해요.

 하지만, 오해는 말아주었으면 해요. 하나 뿐인 혈육으로써, 나의 친 언니로써, 카리스마 넘치고 청아하며, 지적인 그녀가 전 너무나 좋아요.

 하지만, 남부 제도의 왕자 한스를 생각하면 가슴이 절로 먹먹해져요. 그가 처음 나타났을 때, 전 바로 사랑에 빠져 버렸어요. 눈 앞에 나타난, 백마 탄 왕자님. 정말 상상만 해도 아찔하죠, 그리고 그 때의 저는 난생 처음으로 성문이 열렸기에, 너무나 설렜었거든요. 그와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 하나하나 떠올라요. 제가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는 아마 그 누구도 모를거에요. 그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어요. 저에게 있어서 그는, 정말 백마 탄 왕자님이었거든요.

 아아, 한스는 정말로 멋져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미덥지 않아요. 그의 미소를 보면 입가가 절로 올라가지만, 그의 눈빛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그의 행동을 보면, 의도적으로 호감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행동도 보였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저와 엘사 언니를 죽이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번 그를 시험 해보았었어요. 바로 그에게 책임을 맡기고, 언니를 찾으러 간거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제가 없는 사이에 아렌델을 잘 이끌어주었어요. 그 점은 정말 마음에 들지만, 한스는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역력해 보였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왔던 야망이 저를 향해 용솟음 칠 때에는헤헤헤. 하지만,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엘사 언니는, 대관식 이전에 겔다를 통해 저에게 한 통의 편지를 쥐어 주었어요. 그 동안 왕래가 거의 없었기에 미친 듯이 기뻤죠! 하지만, 왠걸, 편지에는 앞으로 남부 제도에서 한 왕자가 올 것이다. 그와 관계를 형성하렴.’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언니의 말이니까, 일단 들었죠. 하지만 중간에 의문이 든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잘 해결 되었잖아요?

 오 정말 저는 운이 좋은 여자에요.

 그리고 전 아직도 한스를 사랑해요.

 그가 없었다면, 언니와 이렇게 다시 가까워 지는 날도, 성문을 활짝 여는 날도, 크리스토프와 친해지는 계기도, 아무것도 없었을 거에요. 그는 저를 고립된 왕국에서 저를 구출해준 왕자이자, 동시에 악당이었어요. 모든 일이 끝났을 때에는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언니가 자세한 내막을 알려주자 모든게 명확했어요. , 한스 당신의 희생은 절대 잊지 못할거에요.

 저는 2명을 사랑해요.

 한 명은, 저희 혈육이자, 아렌델 왕국의 여왕인 엘사이고, 다른 한 명은 남부 제도의 왕자 한스이죠. 두 사람 모두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요. 하지만, 지금 제가 바라보는 상대는 엘사죠.

 저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에요.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다니. 하지만, 동시에 슬픈 사람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의 최후를 볼 수 밖에 없다니. 혹시, 제가 한스에게 준 꽃을 기억할까요? ‘백목련인데, 그리고 그 꽃말은 이루지 못할 사랑이에요. 혹시나, 알까봐 가슴이 조마조마 하기도 했지만, 그는 전혀 모르더라구요.

 어찌보면, 한스는 지금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어요. 분명히 스스로 자신은 안나를 위해 희생한거야.’ 이런 생각이나 하면서, 감옥에 쳐 박혀 있겠지요. 하지만, 이 모든 게 잘 짜여진 톱니바퀴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분노할까요? 아니죠, 분노를 해보아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얼마나 슬퍼할까요? 아아.. 한스는 저에게 정말 진실된 사랑이었어요. 그리고 한스는 그 사랑의 대가로 이렇게 도구로써 사라지네요. 참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손에서 책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한스는 넋 나간 얼굴로 책을 바라보았다. 다시 주우려고 해도 그럴 힘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책을 줍는 행위를 하는 것보다,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한숨 같은 웃음소리는 언제까지고 이어졌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웃음소리와 함께 울음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적막한 감옥을 휘감는, 자신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바닥으로 한 없이 추락하는 자신의 눈물을 보며, 그렇게 한스는 서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 추악한 진실 앞에 맞선 자신이 한 없이 처량해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 적나라 하게 까발려 질 것도 없기에, 더 없이 처량해보였다.

 멍하니 어둠 속에서 서있었다.

헤헤헤

 그의 웃음소리가 문득 유쾌해졋다.

 이 얼마나 우스운 기록인가? 이 얼마나 잔인한 기록인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여자의 마음이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단 말인가? 자신은 여태껏 무엇을 위해 희생한 것인 것인가? 안나? 괴몰? 여자? 창녀? 악마? 아니, 그 무엇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이기도 하였다. 한 남자의 순정 따위는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언니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새 옷이나, 새 화장품, 새 장신구 따위의 존재와 전혀 다른 점이 없었다.

헤헤헤헤

 이것이 안나의 꾸밈없는 마음이다.

 역시 읽지 않을 걸 그랬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자살을 행하건 행하지 않건, 안나의 마음만은 죽기 전까지 신뢰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 결과, 그녀를 원망할 일말의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 ‘자살?’ 이제 그런 것은 꿈도 꾸기 싫다. 만일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그야말로 안나에게 놀아나는 꼴이 된다. 그는 영영 안나의 장난감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단 말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상 살고 싶지도 않았다. 목숨을 바쳐서 상대의 행복을 위했거늘, 그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알아버린 지금, 한스는 더는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죽을 수도 살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웃으면서, 우는 것 뿐.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허탈감에 미친 듯이 웃었지만, 이제는 회한에 휩싸여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스는 모든 것을 체념했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되는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엘사왜 아버지는 미친 듯이 왕위 경쟁을 유도하였는지, 왜 엘사는 자신이 올 것임을 알고 있었는 지 궁금했다.

호기심그 작은 감정이, 나를 이렇게 몰아 세웠다.

헤헤……”

 웃음이 멎었다. 언제부터인가 눈물도 바짝 메말랐다.

 다시금, 그는 조각난 칼과 책을 모았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칼로 책을 내리 찍었고, 기계적으로 칼로 자신의 왼 팔을 찢어, 갈랐다. 그리고 그 피를 세 번째로, 사용했다.

 언제부터 일까? 자신의 삶이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이름을 적고 나서, 다음 장을 넘기자, 촘촘하게 박혀있는 활자들이 나타났다. 그는 빠른 속도로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자신의 아버지가 무슨 마음으로 자신을 경악케 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남부에서 큰 소요가 발생했다. 국무 회의에서 대신들은 그다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논평 하였지만, 빌어먹을 새끼들절대로,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올 해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연쇄적으로 농업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동시에, 무역업계에서도 큰 타격을 받았기에 평민들의 비난 정도가 극심해 지고 있다. 남부의 핵심 산업은 농업과 무역업이니까, 그 놈들이 들고 일어설 만 하다.도데체 외교 관계를 어떻게 하기에, 국가간의 교류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끊어질 수가 있지? 다 죽여버리고 싶다.

진압해라, 다시는 저항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나는 이 말을 남기고, 회의실에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대신들이라는 새끼들은 별 다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서로의 잘못을 물어 뜯고 있다. 미친 듯이, 사정 없이 물어 뜯는다. 그 상대가 자신의 스승이건, 혈육이건, 친구건. 정치라는 것이 본래 이런 것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혐오감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정치 뿐만 아니라, 가정사도 심각하다. 이 왕국은 중앙 집권 체제가 아직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봉건제와 절대왕정의 과도기적 상태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나의 지지 세력이 적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지방 영주들의 권력도 만만치 않은 상태이다. 그리고, 지방 영주들의 화합을 유도하고자, 그들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였더니, 어느덧 아들만 12명이 되었다. 분명히, 내가 죽자마자 이 왕국은 갈기갈기 찢어 사라질 것이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어떻게 일구어낸 왕국인데.

십수 년쯤 전의 일이다. 으슥한, 밤 기운이 강해지는 자정 무렵, 나는 잠을 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의 침실에 기척도 없이 진홍 빛의 드레스를 입은, 흑발의 소녀가 나타났다. 소녀는 그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소녀의 다리에는 흥건한 핏 덩어리와 피가 그윽했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는 자신에게, 소녀가 말을 건넸다.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하, 저는 전하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온 것이니까요.

급히, 혼동스러운 얼굴을 숨기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 소녀는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저는 악마입니다. 소원을 미끼로 사람의 영혼을 교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지금 전하께 거래를 하고자 싶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웃어 보였다. 하지만, 완벽한 표정이 웃음을 지음으로써 괴이한 느낌은나로 하여금 공포심만 유발하였다. 소녀의 말은 이어졌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하나의 진실을 거짓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희생 없이는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제게는 진실 된 생명이 필요합니다. 전하는 곧 있으시면, 사망합니다. 그리고 전하의 왕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신들과 영주들의 다툼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진정한, 후계자가 탄생 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전하의 입맛에 딱 맞는, 그리고 전하의 수명도 연장 시켜 드리겠습니다. , 후계자가 탄생 되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생명을 제가 가져가고자 합니다. “

한참의 고민 끝에, 자신은 소녀의 이야기를 믿기로 하였다. 어찌되었건, 자신은 전혀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었다.

 그러자 소녀는 밝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의 언어가 아닌 말을 읊기 시작했다. 얼마간의 고요하고도 뇌리 속에 사정 없이 박히는 주문의 영창이 끝난 뒤, 소녀는 말했다.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진실은 거짓이 되었습니다. “

소녀는 사라지면서 귀에 속삭이듯이, 무슨 말을 하곤 사라졌다.

비밀에 묻힌 왕국이 모습을 드러내고자 할 때, 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자가 성군이 될 것이다.‘

 그리곤, 소녀가 사라진 곳에서는 한 자루의 칼이 문득, 생겨났다. 흑단 같은 칼 날과, 동시에 예술적인 기교가 매우 아름다우며, 칼 날에 새겨진 진홍 빛의 문자들,

‘…‘

 저번에 새로 맞이 했던 왕비에게서 아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한 없이 순수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신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황태자 책봉을 시작하겠다. 나는 그 어떤 것 보다 능력을 중요시 한다. 그 무엇을 하던지 상관하지 않겠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아들을 낳은 왕비는 처리해라. 고된 고난 끝에 성군이 등장할 것이다. “

그리고, 거기 있는 너

내 목소리에 기겁하는 한 대신이 있었다.

13번째 왕자가, 9살이 되는 순간부터 그의 세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최대한 고통스러우면서, 성장하도록 옆에서 행동해라. “

어쩔 줄 모르는 표정에 즐거운 듯이 나는 웃었다. 얼마 만에 웃은 것인지 기억 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나저나, 네 이름은 뭐냐? “

하랄트하랄트 입니다. 전하

 

 

 아들들은 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시각적으로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3명이었던 아들은 점차 수가 줄었다. 처음의 화기애애한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는 것이 아닌지, 아들들은 항상 경계 하였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것이 보였다.

 정말 행복하다. 이대로라면, 진정한 후계자는 곧 나올 것이고, 자신의 왕국은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매일 신께 기도한다..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자를 위해.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제물로 희생되는 것들의 불쌍함에 감탄하며.

 

 

한스는 독서를 끝 마쳤다.

하지만, 아직, 그는 한 번의 과정을 더 거쳐야 했다.

이제는 던져 버리지 않은, 칼과 책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기계적으로 칼로 내리 찍었다. 기계적으로 칼로 그었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이름을 썼다.

그리고, 나타나는 활자를 향해 그는 시선을 옮긴다.

 

 

 마음이 너무나 복잡하다.

 이런 일이 왜 나에게 발생하는지, 왜 이런 일이 발생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나는 애초부터 마법이라는 저주에 대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평범한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 어린 시절에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여린 존재였다. 주변에 사람이 다가오기만 해도, 나의 비밀을 알아 차리지는 않을까? 나로 인하여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에 나 스스로를 항상 갈무리하고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이 고통은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옮겨갔다. 내색은 안 하시지만, 부모님께서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지, 그리고 약을 구하러 가시는 길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 된 것을 알게 된 순간, 난 이 능력이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나로 인하여, 나 때문에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식에 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나 역겨웠다. 그리고, 나로 인해 죽을 뻔한 안나 에게도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 순수하고 여린 내 여동생은, 내가 스스로 만든 거리에도 불구하고 항상 내 방문을 두들겨주었다. 항상, 언제나,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러던 중에, 그 존재가 나를 방문했다.

 불타 오를 듯이 밝은 진홍 빛 드레스에, 흑단처럼 고운, 동시에 심연처럼 깊은 흑발을 가진, 미모의 소녀였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웠다.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시선을 아래로 내린 순간,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다리와 발은 얼음으로 완전히 얼어있는 것이다.

 나 때문에 그런 것일까?

 또 다시, 엄청난 죄책감과 자기 혐오감에 휩싸일 즈음에 소녀는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타고난 저주로, 한 평생을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유폐 중이신 공주님이여, 저는 악마입니다. 그리고 소원을 미끼로 사람의 영혼을 교환해 가는 존재이지요. 그리고 지금은, 공주님을 도와드리고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

‘… ‘

 무어라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던 나의 텅 빈 눈동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곧 말을 이었다.

공주님, 장담컨대 지금의 상태로 문제가 지속된다면, 공주님과 아렌델 모두 다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 입니다. 공주님은 고독과 자기 혐오로 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겠지요.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그 저주 받은 능력을 통제 가능하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내 저주를 풀 수 있다고…? 그 말 한마디가 가슴 속에서 쉼 없이 반복되었다. ‘안나를 안을 수 있어.’ ,‘더 이상 저주 받은 능력에 스스로 괴로워하며, 살아갈 필요가 없어.’ 하지만, 소원의 전제 조건이 있었기에 쉽사리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거래 조건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주님과, 그 가족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누군가가 당신들을 위해 희생할 것입니다.“

 그 말에 안심이 된 나는 고민 끝에, 그 이야기를 믿기로 하였다. 나의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제대로 말 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희생되는 이에 대한 걱정은 일말도 들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소녀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소녀는 밝은 얼굴로,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의 말이라고 볼 수 없는 말을 읊조리고, 얼마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나자, 소녀는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모든 것은 인간의 마음대로. 진실은 거짓이 되었습니다. “

 뒤이어, 소녀는 자신에게 지금 바로 그 저주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대관식 날에 진정으로 그 능력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대관식 날에 남부 제도의 한스 왕자로 인해 모든 일은 마무리 될 것이라는 말과, 절대로 한스 왕자는 나와 내 여동생을 건드릴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솔직히, 그 날에 있었던 일이 과연 비로소 믿어야 될 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다른 사람이 누리는 저 행복을, 나도 너무나도 느끼고 싶었기에, 양심의 가책 따윈 잠시 떨쳐 버릴 수 있었다.

한스 왕자,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고마운일이다.

 

 

 이 모든 일이 별안간, 폭풍처럼 몰아치고 나자, 나는 그 때에 있었던 거래가 기억났다. 이 모든 것이 현실이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이 행복을 그 동안 너무나 염원하였기에, 이 순간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느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해야지만, 지금쯤 감옥에 쳐 박혀 있을 그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도, 지금의 나처럼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있길 소망할 수 밖에.

 나는 매일 신께 기도한다.

삶 조차 거짓이 되어버린 그를 위해. 그리고, 나로 인해 희생된 이들에 대한 탄식과 동시에 그로 인해 내가 행복해졌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며.

 

한스는 독서를 끝 마쳤다.

 모든 것의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두 손에 잡혀있는, 여전히 연분홍 빛의 가죽인 책을 보면서그는 책을 집어 던졌다. 지난번처럼읽기가 고통스러워 졌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침침해진 눈을 쉬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책을 던져 버리자, 다시금, 달 빛은 산란을 하면서, 그 밝고도 동시에 어두운, 붉고도 동시에 칠흑 같은,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형태를 나타내며, 한 공간에 빛을 나려주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아까 전의 형이 나오던 공간이었고, 지금도 한 존재가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이윽고, 그림자는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에게 다가왔다. 나타난 악마는 이야기 속의 들었던 그대로,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과는 다르게, 다리는 근육과 피부 덩어리로 얼룩져 있었다. 마치, 가죽을 벗긴 것처럼. 눈 앞에 나타난 악마, 소녀는 부드럽게, 사랑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오랜 연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다정스럽고, 친근한 눈길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던지, 그도 따라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둘은 한 동안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만 봤다.

 

 먼저 적막을 깬 것은 한스였다.

마침내, 내가 거듭되는 진실 앞에, 미쳐 버린건가? “

 소녀는 고개를 돌리면서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정상입니다. 제가 아는 그 어떤 인간 보다 정상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전부터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름에 응답하기도 하였고요. “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구석에 쳐 박혀있는 마음을 보면서 말하였다.

이건, 네 것이지? 이제, 가져가 줄 수 있겠나? 더 이상의 진실은 알고 싶지 않아. “

그의 담담하고도, 간절한 말에, 소녀는 다시금 방긋 웃었다.

염려하지 마세요. 그것은 애초에 당신에게 귀속된 것 입니다. 제가 그것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이 것은 당신의 소유였습니다. “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혼동스러운 것도 잠시, 이내 모든 것이 다시금, 아귀가 맞아 떨어졌다. 그는 연 분홍 빛의 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애초부터, 나를 목표로 하고 이 일을 벌인 건가? 내가 무엇이라고? , 그리고 아마 이 독특한 가죽은 인간의 가죽인가? “

소녀의 미소는 한 층 더 깊어진다.

저는 미래의 당신에게서, 잠시 그 책을 빌렸을 뿐입니다. 이것은 틀림 없는 당신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한스여, 그대가 그 책에 대한 소유권을 양도하겠다면,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호기심이 들지 않습니까? 아무리 추악한 진실이라고 해도, 진실의 근원에 있는 거짓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

 소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한스는 그에 답하듯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 “

 그의 머릿속은, 지금 너무나 복잡하다. 그의 출생에서부터 그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과는 너무나 다른 것들이 지금 머리 속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껏 읽어왔던 마음들이 떠올랐다. 분노에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수치스러울 때도 있었다. 허탈해진 적도 있었다. 허나, 지금, 그의 마음 속에 떠오른 감정은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뭐라 형언하지 어려운 감정이었다.

가장 잘 아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

 소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계적인 행동을 반복했고, 첫 페이지의 여백에 낯설고도, 친숙한 이름을 적었다.

[    한스   ]

 

그리고, 곧바로 페이지를 넘겼다.

 거기에는 다만, 넉 줄의 글귀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사람의 껍데기를 벗어던지노라.

그리하여 껍데기가 아닌, 껍데기 안에 있는 것을 섬기겠노라.

이로써 나는 인두겁 안을 꿰뚫는 혜안을 얻게 될 것이며.

진실조차 거짓으로 만드는 권능의 손을 가지게 되리라.”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제야 한스는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자각했다.

 그는 소녀에게 물었다.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그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너의 일이지? “

 소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내 소원을 들어줘. “

 소녀는 말해 보라고 하였다.

내 영혼을 지옥으로 데려가 줘. “

 소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널 부러져 있던 조각난 칼을 그에게 건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소녀의 손에 닿은 칼은 다시금, 한 없이 붉고도, 검은, 진홍 빛으로 물들었다.

한스는 책을 바닥에 내려 놓은 뒤, 소녀로부터 칼을 건네 받았다. 그리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고통은 없었다. 비탄이나 회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스는 인간의 껍데기를 벗었다.

 

 

한스는, 경비병의 손아귀에 이끌려 머리에 천을 뒤집어 쓴 채로 처형을 위해 걸어 나갔다. 보이지 않아도, 관중들의 환호 소리와, 동시에 야유소리가 좌중을 뜨겁게 달군다. 그리곤, 한스는 단두대의 바로 앞에 도착했다.

 거칠게 나에게로부터 천을 벗겨낸 경비병은, 잠시 나에게 광경을 바라 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그리곤 한스는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수 천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의 최후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풍경을, 그리고 높은 왕자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근처에 앉아 있는 안나와엘사의 모습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것인지, 경비병은 단구대의 틀에 자신의 머리를 끼워 맞추었다. 두 손, 두 발이 포박당한 채 고개만 앞으로 내밀어, 수 천의 관중들을 바라보는 자신이지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 칼 날 소리가 들린다. 날카로운 절삭 음과 무엇인가 잘리는 소리가 들린다.

‘…‘

 하지만, 한스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머리를 찾아 직접 움직이고, 머리를 맞추어 끼웠다.

 주변의 사람들은 몹시 놀란 듯이, 자신을 바라본다.

 서서히, 공중으로 몸이 뜬다.

 그리고, 자신의 껍데기를 한 번 더 벗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껍데기도 한 번 벗겨졌다.

 악마 한스는 마침내 최초의 작업을 끝냈다.

‘…‘

 그 모습을 매우 흥미롭게 바라보던, 소녀는 곧 한 줌의 흙으로 사라졌다.




 < >























에필로그

 

[ 악 마 ]

정확히는 신이라고 해야 맞을까,

그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 하나의 책. 그것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고, 그 어느 누군가 에게도, 존재했다.

 

 

강렬한 자극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영혼의 수급에 실증이 나 버린 나머지, 약간의 장난을 치기로 하였다. 인간들은 다 하나같이 욕구에 충실하고, 욕구로 스스로를 망쳤다.

그리고, 오늘은 엄청난 수급을 거두었다. 오랬 동안 공을 들였기에, 오랜 시간 동안 한 인간을 눈 여겨보았기에, 성공한 것이다.

난 더 이상 수급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수급을 통해, 늘어나는 세간의 균형을 유지하였지만, 이제는 나를 대신할 존재가 등장했다.

 

자신의 왕국을 유지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족들을 희생양으로 내 몰아버린 왕.

자신의 저주받은 능력으로 주위의 사람이 다치자, 그로 인해 자신이 고통 받고, 가족이 고통 받는 것이 두려워, 처음 보는 이의 희생을 가차없이 선택한 얼음 여왕.

고독하게 성장하고, 애정에 결핍된 한 공주. 그렇기에 사랑을 갈구하고, 친 언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다른 이의 희생을 선택한 공주.

 

그 누구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은 한 없이 순진하기에, 타락할 수 있었고, 섣부른 생각으로 막대한 피해를 야기시키는 존재였다.

아무리, 도덕적인 관념에 얽매이고,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제한하고, 가두고, 본성을 조절 할려고 해도. 막상, 자신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자, 가차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그런 것.

이제는, 그런 것들에게 거래를 하는 것도, ‘거래로 교묘히 위장된 사기를 치는 것도, 실증이 났다. 그래서, 선택했다. 그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한 존재, 고독한 존재, 외로웠던 존재. 그 존재도 다를 바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파멸 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는다. 이 얼마나 예술적인 표현인가!

난 그렇기에, 항상 그 존재를 지켜보았다. 고통을 받을 때나, 감동을 받을 때나, 고뇌를 할 때나. 나는 세간에서 모습을 들어내지 않기 위해서 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했고, 그로 인해 내 계획을 완벽하게 진행시켰다.

누군가 나에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너는 악마인가, 아니면 신인가, 그것도 아니면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말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나를 인식하는 의 인식으로 존재하고, 너의 반응으로 나의 존재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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