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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팬픽] 변신의 여왕은 낭만을 꿈꾸는가 3부 6화-3부完
게시물ID : pony_632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라케
추천 : 4
조회수 : 35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3/10 01:06:10

변신의 여왕은 낭만을 꿈꾸는가 




1부

1화 2화 3화 4화 5화


2부

1화 2화 3화 4화


3부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멀리서 무언가 번쩍하는 기분이 들더니 어느새 체인질링의 진지 부근에 화마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꽤나 손쉬운 성공이 아닌가, 하고 스마트 쿠키는 기뻐했다. 어찌되었든 진지에 불이 났으니 체인질링 병사들은 당황할 테고, 그 당황이 후퇴로 이어지든 체인질링 군 명령체계의 괴멸로 이어지든 간에 어떤 이득을 보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야전(夜戰)의 전황은 더없이 밝아보였다. 곧 있으면 그립고도 그리운 캔틀롯의 궁성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신의 정신을 장악해감을 느끼며 스마트 쿠키는 행복함을 느꼈다.

 

행복은 타인과 나눌 때 비로소 배가 된다는 선인들의 지혜를 따르고자 스마트 쿠키는 팬시가 있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 팬시는 웃고 있었다. 여지없이, 웃음은 기쁨을 뜻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마트 쿠키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팬시?”

 

, 스마트 쿠키. 보십시오. 우리가 이길 것입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진부한 말일지 몰라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승리뿐입니다.”

 

스마트 쿠키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말을 입에 담았다. 팬시는 크게 웃었다.

 

스마트 쿠키, 푸딩헤드가 쓸 법한 어법을 쓰시는 군요.”

 

“...?”

 

그녀는 자주 그렇게 말했지요. 물론 그녀가 웃는 법은 없었습니다만, 그녀가 쓰는 말들에는 언제나 뼈가 담겨 있었습니다. , 언제나 그러했지요...”

 

그렇게 말하더니 팬시는 어떤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향한 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나열의 말 뿐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팬시는 어느 샌가부터 그런 버릇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 쿠키는 팬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녀의 마지막 문장도 듣지 못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승리뿐, 나머지는 없습니다.”

 

 

 

 

헨신은 자기가 도끼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조각나야 했을 포니의 머리가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헨신은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싶었다.

 

목 부근이 지독하게 따끔거렸다. 무엇인가 공기 같은 것이 세는 소리가 들려왔다. 쇳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고 생각했을 무렵, 헨신은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물체가 아니게 되었다.

 

허억, , . 로제니아, 섭사직...! 뭘 가만히 앉아있는 거냐! 죽고 싶어서 지랄병이 도진 거야?!”

 

남성 포니는 웅크려 울고 있는 로제니아에게 윽박질렀다.

 

일어나, 병신같은 년아! 빨리 일어서, 여긴 전장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움직여!”

 

로제니아 섭사직은 여전히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웅크려 울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금 그녀에게 윽박지를 무렵, 남성 포니, 그러니까 테판 사직은 방금 전 자신이 죽인 체인질링을 바라보았다. 목에 칼이 박혀 머리통이 날아간 그 체인질링의 사체는 실로 끔찍했지만, 그것 때문에 테판은 사체에 눈길을 준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놈은 변신을 푼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로제니아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테판이 체인질링을 발견하고 그에게 달려들었을 무렵에 이미 로제니아는 머리가 터져나갔어야 했었다. 그래서 테판은 솔직히 반쯤은 그녀를 포기하고 있었다. 허나 체인질링이 도끼를 내려찍기 직전, 체인질링은 분명 변신을 풀었고, 목이 뚫렸다.

 

체인질링 본인이 직접 변신을 풀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렇다면 무언가 다른 요소의 작용임에 분명했다. 혹시 본인이 로제니아의 이름을 너무 크게 불러 놀라 변신을 푼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체인질링은 놀라서 변신을 푼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것들이 놀라는 생물이기는 한 것인가 테판은 의문이 들었다.

 

혹은 자신도 모르는 어떤 신비한 힘이 본인에게 깃들어 있다거나, 혹은 로제니아 섭사직에게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거나, 아니면 어느 특수한 풀을 밟으면 변신이 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체인질링의 변신은 시간이 제한되어있을 가능성도 있다. 적어도 그 변신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힘이 바닥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능성은 꼬리를 물고 나타났고 그 중 무엇이 맞는 가설인지는 테판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재빨리 테판은 생각들을 털어내 버리고 로제니아를 들쳐 업었다. 눈물로 몸무게가 다 빠진 것인지, 아니면 힘이 다 빠져서 몸무게도 다 빠진 것인지, 로제니아의 몸은 가벼웠고, 테판은 웃었다.

 

로제니아, 너 엄청 무겁네.”

 

로제니아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테판은 다른 쪽의 대답을 얼마 안 있어 들을 수 있었다.

 

 

 

 

, 그런 병신... 같은...”

 

사실입니다.”

 

테판은 굳은 얼굴로 끄덕이는 유니콘 군단의 병사에게 발굽을 날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지들이 뿌린 제초제 때문에 변신이 풀린다고? 그런 개소리를 믿을,”

 

믿으십시오, 사실입니다. 체인질링들은 단 한 번도 자신들에게 제초제를 뿌린다는 것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체인질링들의 제초제는 애초에 국경 주위의 그리핀 둥지를 파괴할 용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체인질링의 몸에 뿌렸을 경우 일어날 부작용에 대해선 생각할 이유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체인질링들도 당황하고 있습니다.”

 

, , 정보전일 가능성은...?”

 

극히 적습니다. 물론 체인질링 군이 확실히 밀리는 정황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제살을 까먹는 전략을 쓸 정도로 퇴폐해 있진 않습니다. 9할의 신뢰도입니다.”

 

유니콘 병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천천히 진실만을 읊어갔고, 점점 테판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이 빌어먹을 유니콘들은 언제나 이 따위 말투였었다. 기분 나쁜 놈들, 어스포니인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혐오감이라고 자위하며 그는 말을 씹듯이 내뱉었다.

 

알겠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표정으로 유니콘 병사는 뒤를 돌았다. 마음 같아선 그 등진 모습에 욕을 한바가지는 쏟아주고 싶었지만, 그리고 분명 그는 그럴 수 있었지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그 행동을 그만 두어야 했다.

 

, 여긴...”

 

깼냐? 이 오라질 녀석아.”

 

테판 사직?”

 

그래, 네 직속 상관 테판 사직이다. 이제야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거냐?”

 

저랑 혼례를 치루고 싶으십니까?”

 

테판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런 것에 당황하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로제니아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생각들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지 짐작할 순 없지만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 말을 내뱉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내 집이 아니야, 여긴 우리군의 진지다.”

 

그때서야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 하는 탄성을 질렀다. 아무렴 아-, 여야지 아니었으면 테판은 그녀의 머리통을 갈길 수도 있을 것이었다. 적어도 그런 확신이 그의 머릿속엔 있었다.

 

그럼 여기서 우리의 혼례를 치루는 것인가요?”

 

혼례 치루고 싶냐?”

 

아니요.”

 

그러면 좀 조용히 해. 뭔 여자가 입만 열면 혼례, 혼례. 귀에 딱지 앉겠다.”

 

끔찍했어요.”

 

하마터면 테판은 혼례가?’라고 되 물을 뻔했다.

 

뭐가?”

 

너무, 너무 많은 포니들이 죽었어요.”

 

,”

 

테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씨부렁거렸다. 분명 로제니아는 이런 일이 익숙해지지 않는 병사였다. 아니, 누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흔한 편이겠지. 다만 로제니아는, ‘신경 쓰지 않는 척을 못하는 병사였을 뿐이었다. 만일 다른 포니가, 그것도 자신이 이끌던 포니가 때죽음을 당했다면 누구도 그 사건을 익숙하게 여기지 못할 것이었다.

 

만일 그게 익숙해진다면 그거야 말로 미친놈이겠지. 테판은 똥씹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

 

말없이 로제니아는 테판을 올려다 보았고, 테판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자신의 눈을 뚫어지게 보는 로제니아의 시선을 테판은 애써 피했다. 그는 도저히 그녀의 눈을 주시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말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멍청한 짓이였다. 망할. 정말 망할, 이라고 할 만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입은 도저히 멈춰지지를 않는다.

 

네가 받은 충격을, 그러니까.. , 이해한다. , 이해해. 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충격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정상적으로 받아들이는 놈들이 미친놈들이라고, 믿어. 하지만 여긴 전장이고, 이런 것에 하나하나 충격을 받았다간 버티기가 힘들어. 이건 사실이다. 끔찍할 정도로 힘들다고.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젠장, 이 얘길 왜 꺼냈지. 망할, 멍청한, 우라질, 염병, 가면 갈수록 말이 꼬이고 생각이 옅어져갔다. 이 자리에서 콱 디져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테판의 머리를 잔뜩 메울 무렵, 로제니아의 입이 열렸다.

 

테판 사직님.”

 

, ?”

 

고마워요.”

 

그녀는 밝게 웃었고, ‘역시 내 입이야. 믿을 만하지.’라고 테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맙긴 개뿔,”

 

아 망할, 역시 내 입은 쓰레기라고. 제길.

 

 

 

 

테판이 자기비하의 무덤을 파고 들어갈 무렵, 휴브리스 또한 거대한 자기비하의 타지마할을 쌓고 있었다. 휴브리스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괴악한 모습에 시각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기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이게, 도대체,”

 

머리로는 얼마든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초제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체인질링의 몸 위에 제초제를 뿌릴 이유도 없었거니와 그러지 않았으니 지금에 와 어떤 부작용이 일어난다 할 지라도 그것을 특별히 놀랄 일로 삼을 필요는 없단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물론 앎과 이해는 그 근본이 다르다.

 

휴브리스는 머리를 싸맸다. 도저히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많은 병사들이 자신의 웃기지도 않은 판단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었다. 무참하게 체인질링들의 변신들이 풀리기 시작했고 미노타우루스의 무장을 하고 있던 체인질링들은 맥없이 무기를 놓치고, 갑옷의 무게에 짓눌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도미노 마냥, 체인질링의 병사들은 그렇게 쓰러져갔다. 제초제를 운 좋게 뒤집어쓰지 않은 병사들이 전장을 누비고 있었으나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이미 깊숙이 후퇴해있던 이퀘스트리아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곧 체인질링들은 제 1차 시엔본 평원 전투의 끔찍했던 전투를 재현해야만 할 것이다.

 

제초제는 이미 전투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단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보였고, 모든 체인질링부대를 그리핀으로 변신시킨다고 해도 지상 병력이 지원해주지 않는 이상 유니콘 부대의 좋은 사격 연습의 목표가 될 뿐임은 자명했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실험을 반복해도 절망적인 상황의 예측밖에는 나오는 것이 없었다. 최악이다, 정말, 최악이다.

 

어찌되었든, 무엇이 어찌되든 더 이상의 무익한 죽음은 막아야만 했다. 그 생각이 휴브리스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퇴각을 알려.”

 

북채를 잡고 있던 체인질링은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당황하고 있었고, 바로 곁에서 듣고 있던 사티로스는 당장이라도 휴브리스의 갈기털을 다 뽑아버릴 기세로 일어났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형님? 지금 다같이 죽자고 작정했어? 아무리 병신 같은 형이라지만 이건 개소리야, 여기서 퇴각을 했다간...”

 

조용히 해, 지금 체인질링의 제 1 지휘관은,”

 

아바마마야, 형님. 정말로 미쳤구나? 방금 전의 그 말은, 정말로, 정말로 위험했어.”

 

사티로스는 진실로 놀란 듯 커진 동공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듣고 있는 자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연락병이란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다.

 

하여튼, 형님의 작전이 실패했으니 퇴각이라고? 그거야 말로 더 큰 실패란 사실을 모르겠어? 솔직히 제초제를 쓰자는 형님의 안을 무시하긴 했지만 기발한 생각이라고는 생각했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자포자기식이라구. 이런 젠장할, 생각을 좀 하란 말이야!”

 

“...... 네 말이 맞다, 사티로스.”

 

그래, 이젠 알겠어?”

 

내가 정식으로 맡고 있는 부대는 제 1 군단뿐이었지. 그러니까, 1 군단만큼은, 퇴각 시켜야겠어.”

 

휴브리스는 자신이 잠시 동안 하늘을 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아니었다. 휴브리스의 착각의 원인은 멱살을 잡아 올린 사티로스의 탓이었다. 사티로스는 괴성을 질렀다.

 

, 이 병신새끼야! 1군단은 가장 많은 병사들이 예편되어있다고, 그걸 알면서도 이 지랄을 떠는 거야?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 이 지랄을 떠는 거냐고!!”

 

비명에 가까운 그의 말을 들으면서 휴브리스는 입을 열었다. 멱살이 잡힌 탓에 눌린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쓸 만한 것은 아니었다.

 

더 많은 우리의 국민을 구하게 되겠지. 뭐하고 있나, 연락병. 1 군단에게 퇴각을 알려.”

 

치지 마. 그러면 너도 이 새끼랑 같이 대가리만으로 땅바닥을 굴러다니게 해주지.”

 

명백한 군법위반이다, 사티로스.”

 

닥쳐, 금치산자의 명령은 군법에서도 취급하지 않아.”

 

지금은 퇴각을 할 때다.”

 

지금은 최대한 버티면서 다른 방법을 짜내야 한다고, 이 또라이 새끼야! 제발 정신 좀 차려...!! 다른 방법을 짜내면 된다고!”

 

지금은 그것이 퇴각이다.”

 

도망치지 마! 망할,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휴브리스 형님은 충분히 병신이었지만 이 정도로 병신이진 않았어. , 네 빌어먹을 선택을 병사들에게 떠넘기지 말란 말이다, 개새끼야!”

 

휴브리스는 의문이 머리를 채우는 것을 느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모르는 척하지마. 형님은 지금 형님이 해야 될 선택을 병사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마하려 하고 있어. 좆도 아닌 도덕률을 그 앞에 세우지 말란 말이야, 형님은, 지금, 지금! 이 상황에서 최대한 우리가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형님이 고민해야 할 걸 그 같잖은 도덕에 떠넘기지 말란 말이야!”

 

“......”

 

휴브리스는 아무 말도 내놓을 수 없었다. 혈을 찔렸다. 자신은 자신의 군대를 철수시킴과 동시에 죄책감과 선택의 의무를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막연히 들기 시작했다. 허나 사티로스의 입은 계속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바마마께는 나도 잘 설명해 주겠어, 형님. 아무도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형님은 노력했어. 아바마마도 이해해 주실 거야. 나도 설득하겠어. 다른 방법을 모색해 주겠어. 그러니까, 제발 죄다 포기해버리지 말란 말이야!”

 

사티로스의 입에서 루데셉툰의 이야기가 나온 순간, 휴브리스는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왕좌 위의 조각상은 과연 정말 살아있는 생물일까? 그 철혈 무쌍한 괴물에게, 자신과, 자신의 병사들과, 자신의 괴물들과, 자신의 감정들과, 그리고, 사티로스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불보듯 뻔한 예상이었다.

 

휴브리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난 아마 죽을 거야, 사티로스.”

 

뭐라고?”

 

연락병, 1군단에게 퇴각을 알려라.”

 

말이 끝마치기가 무섭게 연락병은 퇴각을 알리는 북을 울렸고, 사티로스는 맥없이 휴브리스의 멱살을 놓았다.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휴브리스의 무릎이 꺾였고 다른 누군가의 무릎 또한 꺾여 작은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형님은, 병신이야.”

 

미안하다. 사티로스.”

 

달은 저물기 시작했고,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끝끝내 휴브리스는 사티로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북을 쳤고, 이미 해는 떠오르고 있었다.

 

너무도 늦어버린 것이다.

 

 

 

 

 

여담(餘談)

 

 

체인질링 군에게 있어서 제 2차 시엔본 평원 전투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최후를 남기고야 말았다. 진지의 화제로 인한 혼란과 피해는 이루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제 1 군단의 후퇴로 인해 주 전력을 잃어버린 체인질링 군은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비록 이 다음, 루데셉툰이 제 1군단을 다시 출진시킴으로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나 이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지는 못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제기되었다. 우선 당시의 왕 루데셉툰과 휴브리스 간의 불화가 이 이유로 제기되었다. 여러 사록에서 확인되듯 루데셉툰과 휴브리스는 그 모든 사안에 있어서 불화를 이루었으며 특히 로덴부레트가 기록한 사서에선 루데셉툰 본인이

 

아무리 차자(次子, 여기선 사티로스를 의미한다.)가 망나니짓을 했기로서니 내 어찌 사티로스를 보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고로 군왕의 덕목은 위()이며 의()가 아니거늘, 장자(長子, 여기선 휴브리스를 의미한다.)는 어이하여 나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가. 슬픈 일이로다.’

 

라고 발언하며 휴브리스에 대한 뜻을 내비쳤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루데셉툰과 휴브리스의 불화는 명확하다. 하지만 이는 휴브리스가 체인질링의 패착이 될 것이 당연시 되는 무익한 행위를 저지른 이유에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이다음으로 제기된 설은 다음과 같은데, 이 전투의 다음에 일어났던 끔찍한 패륜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바얀 티무르, [체인질링 멸망사] 301p에서 발췌

 

 

더없는 침묵이 흘렀다. 다만 그것뿐이었다. 곰팡내와 탄내가 뒤섞여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한 공기가, 정적과 함께 막사 안을 맴돌았다. 당연히 분노를 토해낼 줄 알았던 루데셉툰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중앙에 꿇어앉아 있는 휴브리스 또한 말이 없었기에 주위의 장군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파리를 쫓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만 있었다.

 

갑자기 휴브리스가 건조한 웃음을 터뜨렸다. 루데셉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찌 웃느냐, 휴브리스 군단장.”

 

폐하. 절 부르신 분은 폐하십니다. 어찌 아무런 말씀도 없이 가만히만 계십니까?”

 

내 어이하여 너를 부른지 모른단 말이더냐?”

 

불초한 소자는 폐하의 깊으신 뜻을 당췌 이해할 수가 없군요.”

 

네놈이 저지른 짓을 정녕 모르겠단 말이더냐?”

 

미욱한 소자를 깨우쳐 주십시오.”

 

, 이놈!!!”

 

루데셉툰은 발굽으로 땅바닥을 후려갈겼고 막사 안의 장작에서 불티가 튀어 연기를 타고 공중을 날았다. 휴브리스의 눈길은 불티가 추는 춤을 쫓았다.

 

휴브리스, 휴브리스! 이 멍청한 놈아, 아무리 생각해도 네 죄를 모르겠단 말이더냐? 네놈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네놈의 군대를 후퇴시켰다! 그 때문에 우리의 피해는 더욱 극심해 졌으며 병사들의 군기는 땅바닥을 기고 있다. 지금 병사들은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 할뿐, 어느 누구도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단 말이다, 네놈 동생의 분전만 아니었더라도 우리는 전멸했었다, 이래도 네 죄를 모른다고 할테냐?”

 

휴브리스는 부왕의 힐난에도 그저 노래 없이 춤을 추는 불티의 모습만 쫓을 뿐이었다. 루데셉툰은 그런 그의 행동에 부아가 치밀었다.

 

어떤 말이든 해보란 말이다, 이놈아!”

 

아바마마, 저는,”

 

뭐냐, 그래, 뭐야?”

 

저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를 죄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좌하고 있던 모든 장군들이 경악했다. 지금의 그는 당장이라도 부왕의 앞에 모든 잘못을 시인하고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아바마마.’라고 해야 옳았다. 비록 철혈이라 불리는 루데셉툰도 사티로스가 그렇게 나오면 마지못해 용서해주었고, 그 이후로는 죄를 묻지 않았다.

 

허나 휴브리스는 그러하지 않았다. 엔반 군단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휴브리스 군단장! 그대의 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거늘, 당장 사죄하시오!”

 

모든 장군들이 그것이 휴브리스를 힐난하기 위한 발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도리어 돕기 위함이었다. 휴브리스와 루데셉툰 사이의 대담에 끼어들 정도로 그는 절박했다.

 

어째서 죽으려 드십니까, 왕자님!’

 

아니요, 엔반 군단장. 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잘못하신 것은, 폐하 쪽이지요.”

 

끔찍한 정적이 다시 한 번 장내를 휘감았다.

 

네가, 방금, 뭐라 지껄였느냐?”

 

잘못을 저지른 쪽은 폐하란 말씀입니다. 폐하.”

 

형님!!”

 

닥쳐라, 사티로스! 폐하께서는 제 1 군단장인 저의 후퇴 명령을 기각함과 동시에 다시 제 1 군단을 전장으로 출진시키셨습니다. 이는 명백한 군법 위반이며 동시에 제 1 군단장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폐하, 폐하는 군법을 어기셨습니다. 비록 총사령관은 폐하이십니다만, 1 군단의 모든 병력은 저의 휘하이며 누구의 명령도 들을 수도 없으며 들어서도 안됩니다. 단지 저에게 명령을 할 수 있으시죠. 허나 폐하께선 본인의 권력으로 저의 군단을 좌지우지하시며 병사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셨습니다. 이로 저희 병력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폐하께선 이적행위를 하신 것입니다.”

 

루데셉툰의 입술이 분노로 떨렸다.

 

, 네놈이 짐을 능멸하려는 것이더냐?”

 

아닙니다, 폐하. 단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를 들어주십시오. 폐하께오선 이적행위를 저지르셨으며, 이는 전시에 있어서는 반역죄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됩니다. 또한 폐하께오선 최소한의 피해만을 입고자 하는 저의 의견을 무시하시며 결국 제 1군단을 전장에 내몰아 국민에게 있어 최악의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이는 국가에 대한 반역입니다. 하여 전 이 죄들을 물어 지금부터 체인질링 왕 루데셉툰을, 반역자로 판결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

 

사티로스의 말은 맺어지지 못했다. 소리도 소리였거니와, 갑자기 얼굴에 퍼부어진 피가 말이 이어지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잘린 단면에서 베어 나오는 피들이 주위를 붉은색으로 물들일 뿐이었다.

 

피를 밟고 일어선 자의 입에서 강철처럼 차갑고, 벼린 칼처럼 날카로운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휴브리스 왕자를 폐위하고 폐군으로 봉작한다.”

 

, ……!!”

 

다물어, 펠롭스. 폐군은 입에 올리지 않는 법이다.”

 

펠롭스는 바로 입을 닫았다. 단지 말없이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루데셉툰은 마른 눈빛으로 사티로스를 돌아봤다.

 

사티로스.”

 

, 폐하.”

 

이리 오거라.”

 

.”

 

사티로스는 루데셉툰에게 다가갔고, 루데셉툰은 사티로스의 무릎을 꿇게 해 그의 어깨 위에 피로 물든 칼을 얹었다.

 

지금부터 사티로스를 제 1 군단장으로 임명한다.”

 

, 전심전력을 다해 명예와 신의를 지켜 조국과 폐하를 위해 움직일 것을 하늘에게 맹세하나이다.”

 

그걸로 되었다. 모두 사티로스 군단장의 취임식에 참여해 준 것, 고맙다. 이로써 식은 끝났으니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라.”

 

모두는 말없이 자리를 일어서 막사를 나갔다.

 

마지막으로 펠롭스가 막사를 나서는 순간, 막사 안에서 비명인지 웃음인지 모를 괴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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