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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게시물ID : panic_76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타필리아
추천 : 12
조회수 : 2685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01/09 01:44:15
서울에 살다가 아빠의 사업이 망하는 통에 나는 시골의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지게 됐다.
 
외할아버지는 무뚝뚝했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입이 하나 더 늘어버린 탓에 친척들에게 있어서 나는 애물단지였다.
 
친척들의 눈치를 받는 것이 괴로웠던 나는 집에 얌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외할아버지 댁  뒷뜰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다.
 
낮가림이 심해 친구를 만들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항상 그 창고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살짝 어두컴컴한 창고는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었고
 
낡은 건물 특유의 나무와 흙, 그리고 곰팡이의 냄새가 나는 그곳은 오히려 나에게 아늑한 공간이었다.
 
창고안에서 재미있는 물건을 찾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그 창고에는 벽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 물건은 두꺼운 이불과 노끈으로 꽁꽁 싸여있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궁금했던 나는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이불을 벗기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정성들여서 싸놓았기 때문에 풀어내기 위해서 꽤나 공을 들여야했다.
 
10살짜리의 손아귀 힘으로는 단단하게 묶인 매듭을 푸는 것이 힘들었고
 
손이 부르터서 껍질이 벗겨질 때가 돼서야 겨우 매듭 하나를 풀 수 있었다.
 
 
 
문득 날카로운 물건으로 잘라내면 편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나는 창고 이곳저곳을 뒤져봤지만
 
이상하게도 날붙이는 커녕 바늘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부엌까지 가서 가위를 가져왔다.
 
단단했던 매듭은 몇번의 가위질로 쉽게 끊어졌고 난 겨우겨우 이불을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 물건의 정체는 커다란 거울이었다.
 
언제 만들어졌을지 모를, 먼지와 때로 얼룩덜룩한 거울의 아래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한자가 써있었다.
 
 
 
거울은 하도 더러워서 상을 제대로 비춰내지 못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거울의 먼지를 훑어냈고, 거울안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거울 속의 내가 방긋 웃는 것이었다.
 
"안녕?"
 
나는 왠지 거울속의 내가 말을 거는 상황이 무섭기 보다는 재밌다고 생각했다.
 
나도 거울속의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같이 놀지 않을래?"
 
그래, 마침 혼자서 시간을 죽이는게 질려가던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뭘 하고 놀지? 너는 거울 안에 있잖아?"
 
"가위바위보는 어때?"
 
"그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울속의 나와의 가위바위보는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
 
내가 가위를 내면 거울속의 나도 가위를 내고
 
내가 바위를 내면 거울속의 나도 바위를 내는 것이었다.
 
거울에 대고 하는 가위바위보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비기기만 하는 가위바위보에 나는 금방 질려버렸다.
 
슬슬 어두워졌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 갈래. 배도 고프고."
 
"그래? 잘가. 또 와야 한다?"
 
"응."
 
"약속?"
 
"약속."
 
거울 속의 나는 아쉬운듯 다시 오라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했다.
 
그리고 그 뒤로 매일 거울속의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 일상이 됐다.
 
거울속의 나는 항상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는데,
 
비기기만 했으니 재미는 없었지만 거울속에 있으니 할 수 있는 놀이가 그것밖에 없긴 했다.
 
그리고 내 또래의 누군가와 무엇을 한다는 것이-그것이 거울속의 나라고 할지라도-나에게는 퍽 즐거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가족이 한 상에서 밥을 먹는 저녁시간 때 
 
무뚝뚝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문득 물어보셨다.
 
"닌 하루종일 안보이던데 뭐 하고 노냐."
 
"창고에서..."
 
"창고에서?"
 
"...그냥"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에 우물쭈물 말을 흐렸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식탁을 쾅하고 내리치는 것이었다.
 
"이놈새끼! 창고는 절대 들어가지 말아라! 알겠냐!"
 
감정표현을 거의 안하시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가족 모두가 당황했다.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알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할아버지도 무서웠지만 내 유일한 친구와 다름없는 거울속의 나와 못 만나는 것도 슬펐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가서 다시는 못올 것 같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나오기로 했다.
 
창고로 들어가자 거울속의 내가 반갑게 맞이해줬다.
 
"기다렸잖아. 자. 가위바위보하자."
 
"저기 나 이제 여기 더 못 올 것 같아. 할아버지가 창고에 오지 말래."
 
"그래? 아쉽네. 자. 가위바위보하자."
 
거울속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같이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나는 울컥해서 따졌다.
 
"다시 못온다니까?"
 
"알았으니까. 가위바위보를 하자."
 
나는 마지막으로 하는 가위바위보라고 생각했다.
 
"가위"
 
"바위"
 
"보"
 
나는 보를 냈고, 거울속의 나는 가위를 냈다.
 
내가 진것이다.
 
거울속의 나와 한 가위바위보중에 처음으로 승패가 갈렸다.
 
얼떨떨한 와중에 거울속에 내가 방긋 웃었다.
 
"이제 네가 술래"
 
거울속의 내 손목을 잡고 확 잡아 끌었고, 나는 거울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거울속은 어두침침하고, 습하고, 기분나쁜 냄새가 났다.
 
빛이라곤 거울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 밖에 없었고 그 주변말고는 온통 어두웠다.
 
그리고 뒤쪽의 어둠에서 무언가가 뒤에서 지켜보는 듯한. 오싹한 감각이 들었다.
 
무서워진 나는 거울을 두드렸다.
 
"꺼내줘!"
 
"다시 네가 이기면 꺼내줄게. 자 계속하자."
 
거울밖으로 나가버린 거울속의 나는, 아니 이제 거울밖의 내가 나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가위바위보는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 비겼다.
  
빨리 나가고 싶어져서 초조해진 나는 이기려고 별의 별 수를 다 썼지만 이길 수 없었다.
 
내가 가위를 내면 거울밖의 나도 가위를 내고
 
내가 바위를 내면 거울밖의 나도 바위를 내는 것이었다.
 
거울에 대고 하는 가위바위보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창고문이 열렸다.
 
"이놈의 씨벌새끼! 내가 창고에서 놀지 말라고 안했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머리 끝까지 화가나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와 할아버지의 눈이 마주쳤다.
 
"이 씨벌놈의 요물새끼! 내 손자를 건들여!"
 
할아버지가 성큼성큼 다가와 주먹으로 거울을 쳐버렸다.
 
그리고 거울이 깨졌고
 
주변이 순식간에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안 보이게 됐고, 지금까지 날 바라보던 뒤쪽의 무언가가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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