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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세 모녀
게시물ID : sisa_4921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캔들12
추천 : 0
조회수 : 4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11 11:35:49


참 가슴아픈일이지요..세모녀 사건.. 세모녀는 추운 골방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지만..
오원춘같은 사람은 지금도 교도소에서 밥잘먹고 살고..
참 울분이 터집니다..

상당히 겪한 감정이 느껴지긴하지만..그래도.. 심정적으로 동감이 가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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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세 모녀

 

1. 세 모녀의 자살 뉴스를 보면서

최근 세 모녀의 자살 뉴스를 접하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자살한 세 모녀에 대한 인생역정이나 자살까지 가게 만든 삶의 과정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교도소에 수감 중인 범죄자들이 생각났다. 세 모녀는 남편이 병으로 사망 후 가장이었던 어머니도 몸을 다치면서 일자리를 잃었고, 30대의 두 딸은 신용불량자 상태에서 큰 딸은 투병생활까지 했었다는 내용을 뉴스에서 확인했다. 방에는 번개탄 하나가 재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필자는 굶어죽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범죄자들이 생각났다. 세 모녀 자살은 국가적 책임과 국민적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세 모녀는 범죄자보다 못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정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지 지금도 혼란스럽다. 3년 전에 시나리오 여자 작가가 굶어죽었다는 기사와 이번 세 모녀에 대한 뉴스는 지금이 과연 2010년대가 맞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의식주 문제의 자살이라는 것은 1960-1970년대에서나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데 선진국을 목표로 두면서 발전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행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생명연장차원의 복지를 책임져야할 국가에서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중요한 국정목표도 많겠지만, 적어도 이런 자살자는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 국가적 책무이기도 하다.

 

세 모녀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양심을 지킨 사람들이었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챙겨주고 죽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그렇게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서 정말 깔끔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더 안타깝게 생각했다. 반면 범죄자들은 냉정하게 비교하면 세 모녀보다 지금 더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물론 과실범이나 가벼운 범죄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가 있기 때문에 범죄자라고 무조건 멸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든 범죄자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

 

필자가 말하는 범죄자는 여자 20명을 죽인 연쇄살인마 유영철이나 시신을 무려 360토막으로 만들었던 오원춘이 같은 인간 말종을 의미한다.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데, 최근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둘 다 무기징역을 받은 셈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 말종들은 세 모녀보다 적어도 의식주 측면에서 현재의 삶은 더 안정적이다. 일단 굵어죽을 일도 없고, 추운 방에서 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매일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도 할 것이고, 뜨거운 물로 샤워나 목욕도 한다.

 

또한, 외국인 전용교도소에 수감 중인 오원춘은 도서관도 이용할 수가 있다. 참 화가나는 정도가 아니라 정부가 원망스럽다. 우선 양심적인 세 모녀는 돈 때문에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지만, 인간 말종은 적어도 의식주에서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 그렇다. 그 다음은 내가 낸 세금이 저런 불쌍한 모녀에게는 가지 않아서 결국 죽게 만들고, 인간 말종의 생명연장에 쓰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2. 범죄자와 세 모녀의 삶 비교 

세 모녀는 적어도 양심적인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모습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필자는 직원들에게도 처음, 중간, 끝 모두 좋을 수 없다면 적어도 끝은 좋게 하라고 항상 말하곤 했다. 인간관계나 일이나 모두 그렇다. 사람들은 마지막 모습에서 그 사람의 참 모습을 알게 된다. 그런 측면을 고려할 때 세 모녀는 참으로 깔끔했다. 자살까지 하는 상황에서 월세까지 안 챙겨도 누가 손가락질을 하지도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편지에 죄송하다는 표현을 두 번이나 사용했다는 것은 자살 후 집주인에 대한 배려심까지 담겨있다. 경제적으로 최악만 아니라면 정말 오래 살아야 될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다는 점에 대해서 슬픈 마음이다. 역시 신은 없다는 생각도 굳히게 만들었다.

 

반면 유영철과 오원춘은 어떤 인간 말종인가.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에 해당하는 유영철은 유흥업소 여자를 모텔로 유인해서 성관계 후 죽이고 피해자들의 간을 먹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몸에 좋을 것 같아서 먹었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오원춘은 길 가는 여자를 납치 후 성폭행과 살인 후 시신을 360토막으로 만들었는데, 장기와 인육 판매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건 영혼에 마귀가 들어있지 않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우발적 살인자들은 오히려 순수한 사람들이다. 세력다툼의 과정에서 살인행위를 한 조폭들이 두 놈들보다는 선량하게 느껴진다. 이건 차원이 다른 엽기적 마귀들이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될 유전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할까.

 

세 모녀는 추운 겨울에 난방도 제대로 못 했을 것이다. 연탄이 아닌 번개탄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기아 상태였을 것이다. 작동되지도 않는 낡은 전자제품 몇 개만 남아있는 좁은 방에는 취사의 흔적도 없었다. 만일 국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지원을 했다면, 적어도 세 모녀는 자살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전형적인 가족 형태였다는 점에서 향후 복지정책과 복지대상에 대한 국가적 재검토도 필요하다. 이런 사태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절대적 복지대상자에 대한 국가적 지원 미흡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면서 불필요한 낭비로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복지대상자를 확대시키지 못 하게 만든 진보주의자들 때문이다. 국가적으로 정책을 만드는 고위공직자와 현장에서 집행을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들 모두가 공범이다. 또한, 재벌의 아이나 빈민의 아이나 평등사상 때문에 똑같이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도 문제가 있다. 국고가 엉뚱하게 낭비되게 만든 사람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 중에서 이런 일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고 고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저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공천 또는 줄서기에 밤이 새도록 대가리만 굴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영철이나 오원춘의 삶을 생각해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유영철은 얼마 전에 책도 발간했다. 물론 본인이 직접 발간한 것은 아니고 유영철과 편지를 주고 받았던 여기자가 대신 그런 것이다. 유영철이 보낸 편지 내용과 지었다는 시도 실려있는 책이다. 범죄관련 전문가들에게 유영철은 연구의 대상이다. 앞으로 범죄수사나 교도행정에 참고할 만한 뭔가를 발견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은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런 마귀가 무슨 영웅도 아닌데, 책까지 내면서까지 세상에 존재를 알릴 필요가 있는지 그건 좀 불만스럽다. 그 여기자가 정확하게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정신적으로 검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 책을 보면 시도 있는데, 내용을 보면 여자들을 죽일 때마다 느꼈던 희열과 쾌락이 은유적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다. 진짜 어이가 없는 것은 그냥 연구자료로 남긴다면 모를까 이걸 굳이 책으로 출판할 필요까지 있을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책을 집필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말종에게 그런 영화를 누리게 할 만한 일인가. 그 여기자도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조선족이지만, 국적이 중국인 오원춘은 더 가관이다. 한국에는 친절하게도 외국인 전용교도소라는 것이 있다. 오죽하면 해외언론에서 후진국의 호텔보다 더 좋다고 비아냥거렸을까. 아마도 동남아의 웬만한 중간층 수준의 사람들보다 생활환경은 더 좋을 것이다. 더 확실한 것은 자살한 세 모녀의 생활환경보다는 분명히 더 좋다. 이게 말이 되는가. 세 모녀는 절망, 우울증, 병으로 인한 고통, 추위, 배고픔, 죽기 전의 공포감,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의 허망함 등을 경험했을 것이다. 인간으로는 최악의 상황에서 생명의 끈이 떨어질 때까지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원춘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토막을 내서 죽임을 당해도 시원치 않을 놈인데, 한국의 범죄자들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참 한심스러운 상황이다. 국민의 세금이 세 모녀에게 가지 않고, 살인마들의 복지에 쓰이고 있다.

 

세 모녀가 먹을 게 없을 때 오원춘은 하루 세끼의 식사를, 그것도 외국인이라서 한국 범죄자보다 더 좋은 식단을 제공받는다. 세 모녀가 추위에 떨면서 육체적 고통을 받을 때 오원춘은 편안하게 침대에서 자면서 노숙자들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세 모녀가 죽음을 결심하면서 자살의 공포를 체험할 때 오원춘은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겠다고 한국 정부에서 제공한 외국인 전용교도소의 도서관까지 이용했다. 참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이건 뭔가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음 칼럼은 교도소에 대한 필자의 평소 견해를 밝힌다. 한참 전에 생각했던 내용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칼럼을 작성할 예정이다.

 

 

주식회사 평택촌놈 정오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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