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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 진범은 누구인가
게시물ID : humordata_5332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VIRUS
추천 : 17
조회수 : 165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09/08/12 13:43:04

[이태원 햄버거가게 홍대생 살인사건] 두 10대 한국계 미국인, 진범은 누구인가

‘살인자는 있는데 범인은 없다’

한 억울한 젊은 영혼이 한을 풀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 아무 이유없이 아홉번 칼에 찔려 무참히 살해된 홍대생 조중필씨 사건. 용의자는 단 두명. 2년이 흐른 지금까지 진범은 가려지지 않고 가족들의 아픔은 커져만 가는데…. 과연 진범은 누구일까.


97 년 9월20일 서울지법 319호 법정. 그해 4월3일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발생한 홍익대 조중필(趙重珌·당시 23세)씨 살인사건 1심 마지막 공판. 심리를 마친 형사합의22부 재판장 이호원(李鎬元) 부장판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피고인석에 앉은 두 명의 10대 피고인들의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제 심리가 다 끝났습니다. 판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피고인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정말 솔직하게 대답해주었으면 합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범인인 것은 맞습니까?』

이부장판사의 애절한 호소에 방청객들의 눈길이 피고인석으로 쏠렸다. 법정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두 피고인은 중필씨가 살해되는 순간 현장에 함께 있었다. 미국 국적의 한국인 에드워드 건 리(당시 18세)는 검찰에 의해 살인죄로 기소됐고, 혼혈 미국인 아더 패터슨(당시 18세)은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람 모두 『그렇다』고 대답했다.

『리에게 먼저 묻겠습니다. 중필씨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옆에 앉아 있는 아더 패터슨입니다』

『패터슨에게 묻겠습니다. 중필씨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제 옆에 앉아 있는 리입니다』

방청석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독자들은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인 대학생이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목과 가슴 등을 무려 아홉 군데나 찔려 현장에서 살해된 사건. 살인 현장에 있던 용의자는 단 두 사람. 그러나 두 사람은 수사기관에서 법정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이 살인자요 자신은 증인이라고 주장했다. 적어도 현재까지 살인범의 「작전」은 성공적.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 흘렀지만 한국 수사기관과 법원은 아직 진범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현재 두 사람은 「자유인」이다.

한국 검찰이 범인으로 지목했던 리는 그 해 10월2일 서울지법과 98년 1월26일 서울고법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98년 4월24일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리가 단독범행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리에게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려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9월30일 리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수감중이던 리는 이때 풀려났고 올 3월 국내 한 대학에 입학했다. 한편 패터슨은 98년 1월26일 서울고법에서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징역 장기 1년 6월 단기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그해 8월15일 8?5특사로 풀려났다. 그도 대학에 가기 위해 미국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리에 대해서는 검찰이 다시 대법원에 상고해 재판이 진행중이고, 검찰은 중필씨 가족이 패터슨을 살인혐의로 고소하자 『재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해 놓은 상태. 사건은 아직 진행중이다. 그러나 법원이나 검찰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가능성은 미지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죽은 중필씨는 말이 없고 범인은 자유의 몸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가장 분노하는 사람들은 물론 중필씨 가족이다. 중필씨가 다니던 홍대생들과 그의 친구들 역시 억울하게 죽어간 친구를 잊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억울함을 풀어 주세요』

지난 2월26일 경기 양평의 파라다이스 콘도. 한 아주머니와 30대 남자가 입학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홍익대생들의 오리엔테이션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중필씨 어머니인 이복수씨(57)와 그의 매형 서관호씨(36)였다.

『학생들이 즐겁게 입학을 축하하는 자리인데, 우리가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참 미안해요. 하지만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중필이가 살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요. 사건이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져가지만 학생들은 중필이를 아직 마음에서 지우지 않고 있어요』

중필씨가 억울하게 죽어간 뒤 어머니 이씨는 홍익대 학생들 모두의 어머니가 됐다. 그는 리가 무죄가 되던 날부터 하루도 편히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신촌 등 서울의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진상규명을 호소하는 학생과 일반인들의 서명을 받은 것이 벌써 1만여명. 매형 서씨는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다니던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검찰청과 법정, 변호사 사무실을 뛰어다녔다. 이날도 이들은 새로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서명을 받았다.

홍익대 학생회는 이들에게 두 시간을 할애했다. 학생회는 이 사건을 보도했던 서울방송의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상영하고 중필씨의 억울한 사연을 담은 연극을 신입생들에게 상연했다. 학생들 중에는 『즐겁게 놀러 왔는데 뭐 이런 걸 하느냐』는 측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연극을 지켜봤다. 기자는 3월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중필씨 집을 방문했다. 79년에 지어진 24평짜리 허름한 빌라에는 중필씨 할아버지 조명득씨(85), 아버지 송전씨(60) 부부, 막내 누나가 살고 있다. 중필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곳에 살았다. 거실 벽에는 중필씨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 걸려 있다. 대학 시절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는 중필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집에서 좀 쉬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사진속의 중필이가 계속 말을 하는 거 같아요. 엄마 왜 그러고 앉아 있냐고. 밖으로 나가서 내 억울함을 빨리 풀어 달라고요…』라며 이씨는 눈물을 흘렸다.

『리와 패터슨에 대한 모든 재판에 참석했지만 솔직히 아직도 누가 범인인지 모르겠어요. 누가 범인이든 상관 없습니다. 다만 중필이가 죽게 된 진상이 밝혀지기만을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생각이고요』

잘못된 만남

가족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진실, 그리고 꼭 밝혀져야 할 진실. 과연 그날밤 이태원 햄버거가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중필군은 사망하기 전 여자친구인 여대생 김모(23)양과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2001년에 결혼을 하기로 약속한 사이였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3시경 강남역 근처에 있는 시티극장 앞에서 만나 국기원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저녁이 되자 중필씨는 김양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고, 둘은 강남역주변 소주집에서 생맥주를 마셨다. 중필씨는 취한 상태였다. 밤 10시경 버스를 타고 김양의 집이 있는 이태원에 온 중필씨는 소변이 마렵다고 했고 두 사람은 문제의 햄버거가게에 들어갔다. 김양이 카운터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주문하고 있는 사이 중필씨는 가방을 멘 채로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음식을 받아 탁자에 놓고 곧바로 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아 1분 정도 통화를 하고 자리에 돌아와 감자튀김을 몇 개 먹어도 중필이가 나오지 않아 화장실쪽을 보고 있는데 손님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갔다가 바로 나오며 두 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습니다. 누가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보니…』

김양이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중필씨는 목과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중필군은 오른쪽 목부위 3곳, 가슴부위 2곳, 왼쪽 목부위 4곳 등 무려 아홉 군데나 칼에 찔린 상태로 화장실 왼쪽 소변기옆 귀퉁이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었다. 그는 이미 숨을 쉬지 않았다.

이날 오후 7시경부터 햄버거가게 건물 4층의 한 술집에서는 한국인과 미국인 혼혈인 등 미국국적의 10대 남녀 20여명이 술과 콜라 등을 마시며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군이나 군속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와 미국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

밤 10시경, 배가 고파진 리가 친구 랜디와 함께 1층 햄버거가게에 내려와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이어 패터슨과 그의 여자친구 미셀, 데니, 제이슨 등이 내려와 옆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패터슨이 가지고 있던 휴대용 칼(일명 재크나이프)을 꺼내 햄버거를 반으로 잘랐다. 이윽고 칼이 화제가 됐고 리를 포함한 친구들이 칼을 만지며 구경했다. 그 와중에 랜디의 팔에 상처가 났다.

이들이 무언가 대화를 하는 사이, 중필씨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리나 패터슨 중 누군가가 보았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가거나 4층으로 돌아가는 순간 리와 패터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가 중필군을 칼로 찔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장실을 나온 이들은 4층 술집 화장실에서 피를 닦았다. 리는 상의 오른쪽 가슴과 어깨 및 등 뒤, 신발 등에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핏자국이 있었고, 패터슨은 비교적 많은 양의 피가 머리와 상의 및 바지, 양손 등에 묻어 있었다.

사건발생 직후 패터슨은 랜디 등과 함께 미8군내에 있는 52번 게이트 출입문으로 들어가 친구 존을 만나 바지를 바꿔입고 둘 중 하나가 범행에 사용했던 칼을 하수구에 버렸다. 또 피묻은 셔츠를 불태웠다. 그리고 드래곤 호텔 뒤편 벤치에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눈 다음 집으로 가서 피묻은 신발을 바꿔 신고, 다음날에는 드래곤 호텔 보관함에 피묻은 바지, 양말, 셔츠 2벌 등을 넣었다. 그는 4월4일 익명의 제보를 받고 수사중이던 미 육군범죄수사대(CID) 수사요원에게 다음날 붙잡혔다. 그는 호텔 로비에서 미군속이던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던 중이었다.

『나는 범인이 아니다』

리는 택시를 타고 여자친구 신디아의 집에 가 그 집 옥상에서 잠깐 눈을 붙인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피묻은 옷을 빨래통에 벗어놓고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날인 4일부터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다가 6일 새벽 6시경에 들어와 잠을 자던중 미국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아들 친구인 패터슨이 살해사건으로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아들을 깨워서 묻자, 사정을 털어놓았고 다음날 아버지와 함께 변호사를 만나고 8일 검찰에 자수했다. 이것이 리나 패터슨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건을 전후한 대강의 사실이다.

4월8일 용산서 신문실. 리와 패터슨이 사건현장에서 본 이후 처음으로 대질신문을 받기 위해 마주 앉았다. 패터슨은 이미 CID에서 한번, 그리고 경찰에서 두 번 조사를 받는 상태였고, 리는 수사기관에서 처음 조사를 받은 상황이었다. 다음은 당시 경찰 진술조서 일부.

―피의자는 조중필을 살해한 사실이 있는가요?

패터슨 『저는 살해한 사실이 없습니다. 리가 죽였습니다』

―한국인 조중필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리 『아더 패터슨입니다』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시오.

패터슨 『…제가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햄버거를 잘라 먹고 그곳에 있는 친구들 모두 돌아가면서 칼을 만져 보았습니다. 리도 만져보고는 오른쪽 바지주머니에 아무 말없이 집어 넣었습니다. 잠시 후 피해자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리가 저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겠다. 따라오라」고 하여 리가 먼저 의자에서 일어서 나갔고 뒤따라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습니다. 피해자는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리는 대변기 문을 열어보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오른손 시지와 중지사이로 칼날이 나오게 잡고 피해자 뒤에서 목부위 등을 몇 차례 찌르고 다시 뒤돌아서는 피해자 가슴부위를 3, 4회 정도 찌른 다음 팔을 휘두르는 피해자의 반대편 목부위를 여러 차례 찔렀습니다(패터슨은 전날 경찰 2회 신문에서 이때 피해자가 쓰러지면서 자신의 양팔뚝을 잡으려 하자 피해자를 소변기 쪽으로 힘차게 밀어버렸고 그때 온몸에 피를 뒤집어 썼다고 진술했다). 리는 칼을 화장실 한가운데 쪽에 버리고는 밖으로 도망갔으며 저는 친구 리를 도와주기 위해,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버리고 간 칼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와 4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리 (패터슨을 바라보며)『대부분 거짓말입니다. …그 칼을 여러 친구들이 번갈아가며 만져보았습니다. 저도 칼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화장실로 손을 씻으러 갔었으며 피해자가 소변을 보고 있었는데 (세면기) 앞에 설치되어 있는 거울로 보니 패터슨이 대변기 문을 살짝 열어보고 난후 곧바로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피해자 오른쪽 옆에 서서 정면으로 보면서 찔렀습니다. 저는 거울로 패터슨이 피해자 오른쪽 목부위를 2번 정도 찌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제가 (그들을 향해) 돌아서자 피해자가 패터슨을 향해 돌아섰습니다. 패터슨의 뒤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찌르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패터슨이 밖으로 도망갔으며 저도 곧바로 뒤따라 나와…』

―화장실에 가기 전까지 칼의 최종 소지자는 누구였나요? 누가 들고 있었나요?

패터슨 『친구가 옆에 있어서 마음이 아파 더 이상 진술하지 못하겠습니다』

리 (한참을 머뭇거리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패터슨이 들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먼저 나온 사람은 누구입니까?(패터슨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아래로 향해 한숨만 길게 내쉬고 있다. 리는 패터슨을 쳐다 보며 빨리 대답하라고 영어로 말했다. 약 3분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패터슨은 말하지 않고 머리를 책상에 대고 숙였다).

리 『패터슨입니다』

패터슨 『리가 화장실에 갈 때 칼을 가져갔으며 현장에서 먼저 나온 사람도 리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찔렀다, 재미로 그랬다』

사건에 대해 먼저 방향을 잡은 것은 CID였다. 한국 경찰이 범인은 김양을 둘러싼 치정관계 때문에 살인을 했다는 등 혼돈을 겪고 있던 4일, CID에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 왔다. 사건 당일 4층 술집에 함께 있었던 미국인 학생의 전화였다. 이에 따라 CID는 당시 술집에 있었던 미국인 학생 10여명을 5일부터 불러 진술을 받았다.

미군측은 사건 전후 패터슨과 함께 있던 랜디 등을 조사한 뒤 패터슨이 버린 칼과 숨겨놓은 옷 등을 찾아냈고, 6일 이태원의 한 호텔 로비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패터슨을 검거했다. 이 과정에 미군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렇게 판단하게 된 결정적인 근거는 당시 햄버거가게에 함께 있다가 사건 후 함께 옷을 태우고 칼을 버린 랜디의 진술이었다. 다음은 5일 미군에서 진술한 랜디의 조서 일부.

―패터슨이 왜 한국인을 칼로 찔렀는지 이야기 했나요?

『예』

―그날 이후 패터슨이 칼로 찌른 건에 대해 이야기 했나요?

『다음날인 4일 그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한국인이 자기를 쳐다보고 손을 휘둘러서 칼로 찔렀다고 했으며 랜디 등 모두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안할 줄 안다고 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미 육군 특별수사관 반스 티 피는 97년 9월8일 1심 6회공판에 증인으로 나와서 『랜디에게 「정말 패터슨이 피해자를 찔렀다고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패터슨이 두 번이나 이야기 했다고 했다』라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당시 현장에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는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더라』는 전문(傳聞)이 돌았다.

4월5일 미군에서 모겐 지미 레이몬드나 마이클 엔 캐필, 멕큐 테리 리 등이 진술했는데, 4층에 있던 멕큐는 『리가 피묻은 셔츠를 입고 테이블로 와서 「우리가 어떤 친구의 목을 칼로 찔렀다」라고 말했다. 웃으며 「그저 재미로 그랬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 현장을 확인한 뒤 다시 올라와 리에게 화를 내며 「네가 사람을 죽였지」하고 소리를 쳤더니 리는 「내가 아니야」라고 계속 말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패터슨의 여자친구인 미셀은 『햄버거가게 테이블에서 리가 마약하는 내용과 싸움을 하는 내용, 그리고 누구를 충동질해서 무엇을 하자는 말을 했다. 그는 「나가서 아무나 찔러봐라, 빨리 나가서 누군가 쑤셔버려」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랜디는 4월23일 검찰에서는 『다음날 패터슨에게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기 싫다고 했고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처음 진술을 번복했다. 그 뒤 그는 미국으로 가 한국 법원에 나오지 않았다.

CID는 패터슨의 친구들을 조사한 결과 패터슨이 미국내 갱단인 「노르테14」의 단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 경찰에 통보했다. 반스는 4월14일 경찰에 넘긴 수사복명서에 『패터슨이 소지한 사진을 검토한 결과 전형적인 갱들의 표시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또 그의 오른 손에는 갱단의 슬로건인 「나의 미친 인생」을 의미하는 3개의 점이 각인돼 있다』고 적었다.

거짓말 탐지기와 법의학

CID와 경찰에서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패터슨을 9일과 21일 사이 다섯 차례 신문하고, 리는 14일과 24일 사이 네 차례 신문했다. 이 사이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와 중필씨에 대한 부검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사건 바로 직전 햄버거가게에 함께 있었던 랜디와 제이슨 데니 미셀, 그리고 4층에 있었던 멕큐 등 친구 7명을 소환조사했다.

서울지검 박재오 검사는 『사건 초기에는 아무런 심증이 없었다. 그러나 검찰 신문과정과 법의학 소견, 거짓말 탐지기 결과로 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우선 칼의 행방에 관해서 제이슨은 『마지막으로 칼을 리가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또 랜디도 『리가 칼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만진 뒤 패터슨에게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이슨은 또 『어떤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리가 패터슨에게 「화장실에서 뭔가 보여주겠다 따라 와라」고 말하면서 둘이서 화장실로 가는 것을 보았다』며 『I am going to show you somthing cool, come in the bathroom with me』라는 리의 말을 기록에 썼다. 그러나 같은날 리와의 대질신문에서는 『분명히 그 말을 들었으나 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랜디와 데니는 『리가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고 리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한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사건 다음날인 4일 현장을 방문하고 중필씨의 사체를 부검했다. 그의 소견에 따르면, 칼에 찔린 목의 상처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고, 피해자가 방어흔(가격을 당한 피해자가 이를 막다가 생기는 상처)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상대는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아주 짧은 시간에 공격이 이루어져 범인은 정신이상자거나 환각상태에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내용이다. 리는 키가 180cm 몸무게가 105kg가량이고, 패터슨은 키가 172cm에 몸무게 63kg. 중필씨의 키는 176㎝였다.

검찰은 4월23일 리와 패터슨에 대한 거짓말탐지기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리에게 『화장실에서 조중필을 칼로 찌른 사람이 당신입니까?』라고 묻고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패터슨에게는 같은 질문을 영어로 했다. 둘다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24일 결과가 나왔다. 리는 질문에 대답하는 부분에서 심장과 호흡 등에 현저한 반응을 나타내 「거짓」이며, 패터슨은 모두 「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한편 검찰은 리를 상대로 도핑테스트를 했지만 음성반응이 나왔다. 패터슨은 CID에 자수한 후 역시 테스트를 받았으나 음성반응이 나왔다.

서울고법 VS 대법원

검찰은 4월26일 리를 범인으로 판단, 살인혐의로 구속기소하고 패터슨은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이때부터 리는 살인혐의 피고인이 됐고, 패터슨은 피고인이자 리에 대한 증인이 됐다. 법정에서는 검사와 리측 김동섭(金東燮) 변호사 간에 치열한 공방이 전개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가 맡은 1심 공판은 97년 6월4일 시작해 10월2일 판결이 내려졌다. 6회에 걸친 공판에서 현장검증이 한번 실시됐고 둘의 친구인 제이슨, 멕큐, CID 특별수사관 반스 티 피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2심은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김재진·金在晉 부장판사) 심리로 97년 12월16일 첫공판이 시작돼 데이비드 젤립 미 육군특별수사관, 이윤성 교수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역시 한 번의 현장검증이 있었다. 판결은 98년 1월26일 내려졌다. 리는 상고를 했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용훈·李容勳 대법관)는 리에 대해 무죄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파기환송심인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宋基弘·송기홍 부장판사)는 9월30일 그에게 무죄를 선고, 석방했다.

리의 무죄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검찰의 재상고에 따라 사건은 다시 대법원에 올라갔다. 둘 중 하나는 범인인 이 사건에서 리가 무죄라는 판결은 그러면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심증의 표현인가? 만일 리에게 무죄가 확정되고 검찰이 새로운 증거없이 패터슨을 살인죄로 기소한다면, 법원은 유죄를 인정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가? 뒤에서 보는 것처럼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독자들은 지금부터 이 사건의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드러난 사실들과 이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3부와 대법원의 상반된 판단을 보게 된다. 그런데 두 법원 판사들의 취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한편 법원은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할 때는 「증거능력」이 있고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에 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인 「증거재판주의」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법관에게는 수많은 증거들이 제시된다. 특히 사람이 한 말의 경우에 피의자나 피고인, 피해자, 증인 들이 경찰이나 검찰에서 한 신문조서나 진술조서, 이들이 법정에 나와서 한 진술조서 등이 있다. 그 내용 중에는 『내가 그렇게 했다』 『내가 보았다 혹은 들었다』는 진술과 『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전문증거도 있다.

진술들이 증거 자격을 갖추었을 때 「증거능력」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검찰에서의 피의자 진술은 법원이 법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임을 확인했을 때, 경찰에서 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 증거가 된다. 제3자의 경우 검찰조서와 경찰조서를 막론하고 피고인이나 변호사가 그 내용을 인정하거나, 제3자가 법정에 나와 자신의 진술임을 인정해야 한다. 전문증거는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다.

법관은 자격이 있든 없든 제시된 모든 증거를 검토한다. 그리고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로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확신(belief beyond a reasonable doubt)」이 설 때에만 비로소 검찰의 주장대로 유죄를 인정한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비록 피고인에게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라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태도다. 법관은 증거 자격이 없는 진술 등을 통해서도 검찰의 주장에 의심을 가질 수 있고, 이 의심이 일반인에게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라면,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 또 법관은 의심의 과정에 피고인이 유죄라고 말하는 증인의 진술을 뒤집는 전문(傳聞)증거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탄핵증거」라고 한다.

이 사건에 형식적으로 대입시켜 보면, 서울고법은 CID 진술서와 경찰조서, 검찰조서 등의 증거능력이 있는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을 모두 판단한 결과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를 사용해 충분히 리가 유죄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대법원은 유일한 증인인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이 높다고 보기 어려워 리를 범인으로 단정할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고법은 증거능력이 있는, 특히 법정에서 이루어진 증거들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대법원은 증거능력이 있는 진술뿐 아니라 미국인 10대들이 CID에서 한 진술과 전문증거 등 증거능력이 없는 진술과 패터슨 진술에 대한 탄핵증거 등을 상세히 나열하고 있다. 화장실에 가기 전의 정황 중필씨는 칼날 길이가 9.5㎝, 손잡이 길이가 12.2㎝인 접히는 휴대용 칼로 살해당했다. 당연히 칼을 가장 마지막에 가지고 있던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 또 먼저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크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수사 초기부터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이 쟁점에서 가장 중요한 증인은 제이슨이었다. ▲서울고법은 칼을 누가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제이슨의 진술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진술이 피고인들의 진위를 가릴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것은 못 되지만 어쨌든 제3자가 볼 때까지는 리가 마지막으로 칼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는 있다』고 판시. 재판부는 또 누가 먼저 화장실에 가자고 했는가에 대해서는 『증인이 나중에는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을 바꾸고 있으나 그가 들었다는 「뭔가를 보여주겠다」라는 말은 패터슨이 리에게서 들었다는 말과 문장배열순서가 다소 바뀌었을 뿐이지 내용은 거의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리는 이 부분에 관하여 진술 내용이 일관되지 않는 반면 패터슨은 수차례에 걸쳐 비교적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고 또 제이슨의 진술이 이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패터슨 역시 최초의 진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부인하기도 했고 제이슨도 나중에는 누가 이야기한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어서 패터슨의 진술이 리에 비해 한층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화장실에서 무엇을 보았나 ▲서울고법은 화장실에서 서로 상대방이 범행하는 것을 보았다는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서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은 리와 패터슨의 수사 초기부터의 진술을 <표 2>와 같이 인용한 뒤 역시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다음은 판시내용. 『리와 패터슨의 진술을 대비하면, 리는 진술이 비교적 일관된 가운데 패터슨의 범행 당시 가격횟수와 가격부위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지 못하는데 반해 패터슨의 진술은 다소 일관되지 않은 가운데 리가 범행 당시 칼을 어떻게 잡고 있었는지, 피해자의 어느 부위를 몇 회씩 가격했는지에 관하여 비교적 소상하게 진술하고 있는 점에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예상 밖의 범행을 갑자기 목격하게 된 자로서 다소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부분에 대해서도 패터슨의 진술이 리의 진술보다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옷과 화장실 내의 핏자국 사건 현장인 햄버거가게의 모형도다. 이 화장실은 가로 2.6m, 세로 1.45m의 직사각형 공간에 세로 벽면에는 2개의 소변기가 설치돼 있고 가로 벽면에는 세면대가 설치된 좁은 공간이다. 화장실 입구에는 이보다 좁은 규모로 좌변기가 설치된 대변용 화장실이 있다. 기자는 3월13일 이 화장실에 가 보았는데, 건강한 남자 다섯명 정도가 들어서면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다. 또 리가 세면기 앞에서 현장을 목격했건, 패터슨이 세면기와 벽사이에 기대서 있었건, 피해자와의 거리는 매우 근접했던 것으로 보였다. 사건 직후 소변기 주위 및 세면기 오른쪽에는 피가 많이 흘러 있었다. 소변기 전면 벽에는 피가 퍼부은 듯이 묻어 있고, 그 우측 가로벽면에는 약간의 피가 뿌린 듯이 묻어 있다. 좌측 소변기로부터 세면기에 이르기까지 가로 벽면 아랫부분에는 다량의 피가 스프레이로 뿌린 듯이 또는 부은 듯이 묻어 있고 바닥에는 피가 많이 흘러 있다(검찰 상고이유서). 리의 경우 핏자국이 묻은 부위는 상의 오른쪽 가슴과 어깨 및 등 뒤, 그리고 신발이라고 할 수 있고 묻은 형상은 스프레이로 뿌린 듯이 묻어 있으며, 패터슨은 머리와 상의 및 바지, 양손 등에 많은 피가 묻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판결문 및 검찰 상고이유서). 리는 자신이 패터슨의 범행장면을 거울을 통해 그리고 뒤돌아서서 목격하는 과정에서 피가 튀었다는 것이고 패터슨은 리에게 찔린 피해자가 세면기와 벽면 사이에 기대 서있던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밀어버리는 과정에서 피를 뒤집어 썼다고 주장한다. 이윤성 교수의 증언에 의하면, 피해자의 오른쪽 목의 상처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오고 왼쪽 목의 상처에서는 피가 울컥 나온다. 범행 현장과 옷에 묻은 핏자국. 이것은 피해자의 부검과 함께 법의학적 관점에서 이 사건의 중요한 쟁점이 됐다. 그러나 두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판단을 달리했다. 내용은 <표 3>과 같다. 누가 먼저 화장실에서 나왔나 ▲서울고법은 리가 먼저 화장실을 나오고 패터슨이 뒤따라 나왔다는 데니와 랜디의 진술을 모두 인정해 패터슨의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판단을 인정하면서도 범행 후 화장실에서 먼저 나왔는지는 범행 자체에 관한 한 누구의 범행인지를 단정할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패터슨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해서 막바로 사건이 리의 단독범행이라고 단정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것. 두 사람의 사후 행적 ▲서울고법은 기록상 현장 4층에 있던 두 사람의 친구들이 『「패터슨이 한국 남자를 칼로 찔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문으로 진술한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추측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사건 후 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고 사건 다음날 한강변에서 열린 바비큐 파티에 참석했던 미국인 10대들 사이에 아마도 「리가 패터슨을 충동질하여 패터슨이 피해자를 찔렀다」는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패터슨이 피에 흠뻑 젖은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렇게 믿었을 충분한 조건이 있었으므로 결국 소문을 들은 것에 불과한 그들의 진술내용에 증거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판결문은 또 『패터슨이 피를 뒤집어 쓰고 범행 후 칼을 가지고 있었으며 피묻은 옷을 태우고 칼을 하수구에 버리는 등 범인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정황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다소 거칠거나 범죄성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17세의 소년에 불과한 그가 당황한 나머지 그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점이 어느 정도 수긍된다』며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CID수사기록과 경찰조사기록 등을 탄핵증거로 인정해 「리의 단독범행이라는 패터슨의 진술이 크게 의심된다」고 결론내렸다. 특히 「누가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한국남자의 몸을 칼로 찔렀다」는 랜디의 CID 및 경찰진술을 인용했다. 또 그 다음날 패터슨이 데니의 집으로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는 랜디의 물음에 「한국인이 쳐다보고 손을 휘둘러 그를 찔렀다. 그 다음은 다 아는 것 아니냐」고 했다는 데니와 랜디의 증언도 인용했다. 다음은 판단내용. 『리는 범행 직후 자신의 실행을 적극 부인하면서도 범행 자체를 숨기려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않는 가운데 별도의 특이한 행태를 뚜렷이 보이지 않은데 비해, 패터슨은 모두들 자신의 범행이라고 믿고 있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범행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자신의 범행을 자책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서 칼이나 피묻은 옷 등의 증거물을 인멸하거나 은닉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대조된다』 사건 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나 리는 경찰과 검찰 1회 신문 때까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을 때 손으로 먹어서 기름기를 닦으러 화장실에 갔으며…누가 먼저 화장실에 갔는지 기억이 없고 특별하게 무슨 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는 검찰 2회 신문 때 새로운 진술을 시작한다. 다음은 신문조서 일부. 『패터슨과 이야기를 하면서 옛날에 추방됐던 형들이 아리랑치기를 하던 이야기도 하고 패터슨과 아리랑치기를 해 보려고 시도를 했는데 한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 겁이 나서 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패터슨이 접혀진 칼을 펴면서 「가자」고 해서 나는 장난으로 생각하고 같이 화장실로 갔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가요? 『장난으로 버거킹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웃기겠지라고 말을 하니까 (패터슨이) 눈을 똑바로 뜨고 칼을 오른손에 쥐고 「가자」라고 해서 「그럴 용기가 있느냐」라고 하면서 장난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패터슨을 보호해 주려고 그런 것인데 계속해서 제가 했다고 하니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패터슨은 검찰 5회 신문에서 『리와 이야기를 하면서 술에 취한 사람을 털자는 등의 이야기를 하였다는데 사실인가?』라는 검사 질문에 『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리는 평소에는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날은 별로 그러한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서울고법은 이에 『피고인들과 일행들이 화장실로 가기 전까지 주로 나눈 대화 내용은 아리랑치기를 했던 것을 서로 자랑하거나 전에 싸웠던 것을 자랑하는 등 주로 폭력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며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리가 「나가서 아무나 칼로 찔러 봐라. 빨리 나가서 누군가 쑤셔버려라」는 말을 했는데 패터슨에게 직접 한 것이 아니나, 그런 말은 리와 패터슨이 많이 했다』고 한 패터슨의 여자친구 미셸의 경찰 진술, 데니가 CID조사에서 『햄버거 가게 출입구쪽에 있는데 제이슨과 미셸이 와서 위층으로 가자고 하면서 「패터슨이 누군가를 패주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는 「전문증거」가 있음을 들어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법의학적 소견 ▲서울고법은 이윤성 교수의 부검소견을 인정했다. 피해자 목의 상처가 수평이거나 위에서 아래쪽으로 있으므로 범인은 키가 176㎝인 피해자보다 키가 컸을 가능성이 많고 또 마주보고 있는 상태에서 배를 찔리기까지 했는데도 방어흔이 없었으므로 범인이 피해자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매우 센 사람이었을 것이다. ▲대법원은 『증인 스스로도 키에 관해서는 피해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건에 다 들어맞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그런 것이고 소변을 보는 자세에 따라 가변적이라고 진술했고, 방어창이 없다는 점도 피해자의 당시 상태에 따라 상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둘 다 무죄될 수도 판결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법원은 패터슨 진술의 신빙성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다. 읽기에 따라서는 패터슨에 대한 유죄 심증이 담겨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리에 대한 무죄 판결이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살인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증인의 진술이 흔들리는만큼 피고인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둘 중 하나는 범인일 수밖에 없는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 판단을 좀더 쉽게 해석하면 「패터슨이 범인일 수도 있기 때문에 리가 범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앞으로 사건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으로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을 검찰이 재상고할 경우 검찰주장에 특별히 새로운 사실이 없는 이상 대법원은 종전의 판결에 따라 판단을 확정한다. 그러나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이 사건의 경우 리에게 무죄를 확정하는 것은 패터슨과 곧바로 연관되는 것이어서 대법원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의 아버지 이경수씨는 『리가 억울한 누명을 썼으니만큼 빨리 무죄를 확정하고 패터슨 재판의 증인석에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실을 밝혀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패터슨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 그러나 담당인 서울지검 형사3부 김경태 검사는 『검찰이 상고를 한 이상 리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 본격적인 재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새 증거나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가 밝혀지면 문제는 간단하다. 이에 대해 패터슨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설령 다시 법정에 선다 해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된다. 걱정하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혹 이 과정에 리가 유죄라는 새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무죄가 확정된 뒤라면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의 원칙에 따라 처벌은 불가능하다. 리측 김동섭변호사는 『지금 기록만으로 검찰이 패터슨을 기소해도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 중 하나는 범인이므로 한 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 당연히 나머지 하나에게는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 그러나 서울지법 한 부장판사는 『진술의 신빙성이 흔들리기는 리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설령 검찰이 패터슨을 기소한다고 해도 1심과 2심에서 리에 대한 유죄증거로 쓰였던 진술들이 이번에는 증인 리의 진술을 탄핵하는 증거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죄에 대한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증거재판주의원칙을 지킨다면 모순된 진술이 얽혀 있는 이번 사건에서는 결국 둘다 무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수사, 재판의 몇 가지 문제점 살인 피해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가 바로 현장이다. 이 사건의 경우 현장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사건발생 직후 인근 소방서에서 119구급대가 도착해 중필씨를 후송했고, 파출소와 용산서 경찰관들이 사건현장에 출동했다. 용산서 경찰관들과 서울시경 감식반은 사진촬영과 지문채취를 하고 현장에서 담배꽁초 등 증거물을 수거했다. 사건 다음날인 4월4일 지휘를 맡은 박검사는 경찰에 『현장을 보존하고 대기하고 있을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이 날 그와 이윤성 교수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현장은 말끔히 청소돼 있었다. 당시 햄버거가게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찰관 등 20여명이 현장에 나와 감식 등을 하다가 새벽이 되면서 2, 3명만이 남아 현장을 지켰다. 그런데 새벽 5시경 한 경찰관이 어디에선가 전화를 받더니 「현장을 치워도 된다」고 해서 청소를 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에게 이 부분을 질문했으나 『정확히 어디에서 그런 지시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검사는 『현장이 보존됐더라면 사진에 나오지 않은 미세한 핏자국이나 바닥의 혈흔, 족적 등에 대해 전문가의 좀더 정밀한 의견을 받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이 사건은 두 명의 피의자와 주요 증인들이 모두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수사 초기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대표적인 것은 통역문제. 박검사는 『수사를 처음 진행한 경찰에서는 전문통역인이 없어 의경에게 통역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뒤 통역문제로 수사에 애로가 많았다』고 말했다. 리의 아버지 이씨는 『1심 재판과정에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러 차례 항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사관측에 통역문제와 관련해 『검찰이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면서 리에게는 한국말을, 패터슨에게는 영어를 사용해 공정성을 잃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 대사관이 1심 재판부 사무실에 그 사실을 지적하는 팩스를 보내 재판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라 우리 법원이 미국인 증인들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다는 문제점도 발생했다. 서울지법과 서울고법은 랜디를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그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사건 직후부터 패터슨이 검거될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던 핵심증인으로, 수사과정에서 여러번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꼭 불러야 했던 인물이었다. 검찰은 서울지법이 그를 소환했을 당시 그가 미국에 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리의 아버지 이씨는 『서울고법이 그를 소환할 당시 그는 한국에 있었다. 그러나 법원도 검찰도 그를 소환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범죄근절을 위한 운동본부」의 김동심 간사는 『한국내 미국인들을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부르는 것은 미국측 협조없이는 힘들다』며 『이런 일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심 이부장판사도 『가능한 한 많은 미국인 학생들을 증인으로 부르고 싶었으나 법원이 이들에게 직접 소환장을 보낼 수 없고 외무부나 검찰을 통해 미국측의 협조를 얻어야 했다. 바로 지척에 있는 증인도 마음대로 소환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군 영내에는 한국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다. 미군영내는 출입 허가증(Pass)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다. 설사 법원에서 집달관이 가더라도 출입이 통제되고 또한 미군영내 관계자들이 송달 의무를 무시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중필이가 죽고 모든 희망도 끊어졌어요. 정말 하루하루가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에미 가슴에 평생 못을 박는 아픔이지만 지금 이대로는 중필이를 보낼 수 없어요』 이런 과정들을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 아무 죄없는 중필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와 한 줌 재로 뿌려진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너무도 원통하고 괴로워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어머니 이씨의 절규다. 피해자는 두 가족, 진실 꼭 밝혀져야 리가 살인범으로 기소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을 당시 가족들은 진실을 밝히려는 자신들의 고통이 이제야 끝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리가 지난해 9월 무죄로 풀려나오고 패터슨 역시 지난해 8월 사면돼 자유의 몸이 되면서 이들은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거리로 나선 가족들은 점점 「법조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씨는 『검사들이고 판사들이고 전부 무능한 사람 같아요. 아니면 무슨 비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라며 둘 중 하나인 범인도 밝혀내지 못하는 검찰과 법원을 원망했다. 중필씨 가족은 두 사람을 모두 공범으로 기소하지 않은 검찰을 원망하고 있으나 박검사는 『두 사람에게 윤리적으로 같은 비난을 할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의 범행이 분명한 이 사건에서 두 사람을 모두 기소하는 것은 검사로서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한다. 리와 패터슨이 모두 자유의 몸이 되자 가족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중필씨의 매형 서씨는 『지난해 11월 서울지검에 패터슨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직원들은 「고소장을 제출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며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필씨 가족은 또 국민고충처리위원회나 감사원 등에도 가서 호소해보았지만 허사였다. 가족들은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인 국회의원들에게도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입에 발린 말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 때 한나라당의 한 의원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보좌관들로부터 『이 사건을 더 이상 진척시킬 생각은 없다』는 말을 듣고 물러서야 했다. 결국 검찰은 지난해말 몇몇 방송과 신문이 이 사건을 보도하자 마지못해 재수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는 것. 기자는 취재 마지막인 3월11일과 12일 각각 패터슨과 그의 아버지, 리와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들은 서로 『우리도 이 사건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둘이 공범이 아니라면, 한 사람의 말은 진실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피해자는 두 가족이다. 이경수씨는 『검찰과 법원이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한 CID 초동 수사자료를 잘 검토하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믿지 않았으며, 박검사가 리가 범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패터슨의 변호인처럼 행동하는 등 편파적 수사를 했다』며 검찰과 1, 2심 법원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그는 『2년동안 아들의 누명을 벗기느라 사업이 망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마음아프다』는 말을 꼭 보도해달라고 했다. 반면 패터슨의 아버지는 『CID는 영장도 없이 우리 집과 사물함 등을 뒤졌으며 증거도 없이 패터슨을 「노르테14」갱단으로 몰고 범인인 것처럼 단정하는 등 고의적으로 패터슨을 범인으로 몰아세웠다』며 CID를 공격했다. 그는 「패터슨에게 갱 전력이 없다」는 내용으로 미국 경찰이 변호인을 통해 보내온 보고서를 꼭 인용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사건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지만 가족만이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이후 지금까지 PC통신의 게시판에는 「중필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글이 올라온다. 또 홍익대생들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진 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계획중이다. 둘 중 하나는 범인, 진범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아직 진행중이고 진실규명 여부는 검찰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다. ◆<표1>화장실에 가기 전 상황에 대한 관련자 진술(대법원 판결문 인용) <리> ● 칼을 가지고 놀다가 누구에게 주었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찰 1회) ● 제이슨에게 준 것 같다. (경찰 3회) ●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패터슨이 칼을 호주머니에 넣은 것 같다(검찰 1회) ● 칼을 만져보고 다른 친구에게 준 것 같은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패터슨이 칼을 호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지요」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예」라고 대답(1심공판) ● 패터슨이 접혀진 칼을 펴면서 가자고 해서 장난으로 생각하고 같이 갔다(별다른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가 검찰 2회부터 진술) <패터슨> ● 칼을 본 적이 없다. 피고인이 칼을 그의 주머니에서 꺼내기 전에 그 칼을 본 적이 없다, 만져본 적도 없다(CID 조사보고서) ● 리가 칼을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경찰 1회조사∼검찰 4회조사) ● 리가 화장실로 가자고 했다(CID 조사보고서) ● 리가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했다(경찰 2회조사때부터) <제이슨> ● 리가 칼을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리가 패터슨에게 뭔가 보여주겠다, 화장실로 따라 오라고 했다. 리가 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검찰 1회) ● 어떤 사람이 화장실 가는 것을 보고 조금 있다가 리와 패터슨이 화장실로 따라 가는 것을 보았고 그때 「뭔가 보여주겠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같은날 리와 패터슨과의 대질신문) ● 리가 칼을 오른쪽주머니에 넣는 것을 본 적은 없고, 마지막으로 리가 갖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 같이 가자, 내가 너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등 뒤에서 이야기해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1심법정) ◆<표2)화장실에서의 정황(대법원 판결문 인용) <리> ●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기에 물을 틀어놓고 손을 씻으며 거울로 보니 패터슨이 피해자가 서 있는 소변기의 우측에 있는 대변기 출입문을 열어 들어가려고 하더니 다시 나와서 갑자기 피해자의 목을 2~3회 칼로 찔렀다. 그때 피의자가 돌아서서 패터슨과 마주보게 되었는데 그 후부터는 패터슨에게 가려 패터슨이 피해자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패터슨에게 달려들려고 헛손질하는 것을 보았고 그러던 중 패터슨이 밖으로 나가 자신도 따라 나갔다.(경찰과 검찰에서) ● 패터슨이 피해자의 가슴과 목을 3~4번 찌르자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쳐 피해자 앞에 있는 패터슨의 머리 얼굴 온몸에 피가 덮였지요 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1심공판) <패터슨> ● 이 사건 범행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아는 바도 없다고 하다가 이 사건 범행에 관여하였는데 리가 칼을 꺼내서 피해자의 몸통 윗부분을 몇 차례 찔렀고 피해자가 피를 몹시 흘리고 자신을 때리려고 하여 피해자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으며 피해자의 목에서 피가 솟아나 피를 덮어썼다(CID조사보고서) ● 리가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시지손가락 위로 칼날이 나오도록 움켜잡고 피해자의 등 뒤에서 목부위 등을 6∼9회 찔렀다(경찰1회) ● 리가 대변기문을 열어보고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오른손 시지와 중지 사이로 칼날이 나오게 잡고 피해자 뒤에서 목부위 등을 몇 차례 찌른 다음 뒤돌아서는 피해자의 가슴부위를 3~4회 찌른 후 팔을 휘두르는 피해자의 반대편 목부위를 여러 차례 찌르고 칼을 화장실 한가운데 쪽에 버리고 밖으로 도망가버려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칼을 집어들고 나왔다.(경찰 3회) ● 피해자가 자신을 붙잡으려고 오른손으로 어깨 부분을 잡아 피해자를 밀었다.(검찰 1회) ● 피해자가 양손으로 목부위를 감싸쥐고 자신의 몸쪽으로 쏠리자 양손으로 피해자의 가슴을 밀었다.(1심공판) ● 화장실 안쪽의 피해자가 사용하지 않고 있던 나머지 소변기와 세면기 사이에 세면기 우측 모서리부분과 그 모서리 옆 벽면에 기대고 서서 범행을 목격했다.(1심 현장검증과 공판) ◆<표3>화장실과 두 사람의 옷에 묻은 핏자국에 대한 판단 <서울 고법> ● 옷에 묻은 핏자국에 대해 피해자를 밀치는 과정에 피를 뒤집어 썼다는 패터슨의 진술은 그가 리보다 많은 피를 뒤집어쓴 경위에 관해 설명이 가능하다. ● 좌측 목에서 나오는 피는 그 양이 너무 많아 먼 곳까지 분출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와 직접 접촉하거나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며, 리의 진술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패터슨이 피해자의 좌측 목에 치명상을 가한 후 피를 뒤집어 쓸 정도의 신체 접촉이 있었거나 매우 근접한 거리에 있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리가 세면기 거울을 통해 패터슨이 오른쪽 목을 찌르는 것을 보았고 그후 몸을 돌리고 뒤로 약간 물러나 패터슨의 뒤에 서서 이후 상황을 목격한 것이라면 피해자의 몸에서 분출된 피가 직접 리의 상의에 묻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세면기에 묻은 핏자국에 대해 좌측 목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다량의 피가 세면기 우측 모서리에 집중적으로 묻어 있는데 패터슨의 진술과 같이 피해자가 세면기 옆에 서 있던 패터슨 쪽으로 넘어와 좌측 목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울컥 나오면서 묻을 수 있고 이는 패터슨이 밀치자 피해자가 왼쪽으로 쏠리면서 소변기 좌측의 모서리에 쓰러졌다는 진술과도 부합하는 일인 반면, 리의 진술만으로는 세면기에 집중적으로 묻은 피와 피해자의 최종위치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이 부족하다. <대법원> ●옷에 묻은 핏자국에 대해 리의 상의 핏자국은 스프레이로 뿌린 듯 하다는 것이므로 피해자의 오른쪽 목 상처에서 나오면서 생긴 핏자국이라고 볼 수 있고 리나 패터슨이나 피해자가 오른쪽 목을 가격당한 뒤 몸을 180° 돌려 가격한 사람과 마주보게 되었다는 것이므로 리가 세면기 앞에 서있었을 경우도 그같은 핏자국이 생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면기에 묻은 핏자국에 대해 이 핏자국은 멀리서 뿜어져 생긴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쏟아져서 생긴 것이라 할 수 있고, 이윤성의 증언에 의하면 이는 피해자가 가격을 당한 후 나가다 넘어지면서 묻을 수도 있고…리가 세면기 앞에 있고 패터슨이 소변기 쪽에 서 있으면 피해자가 가격을 당하는 도중에 또는 후에 세면기 우측으로 가 핏자국을 묻히는 데 별다른 장애가 없다. 그러나 패터슨이 세면기 우측 모서리와 그 모서리 옆 벽에 기대 서서 범행을 목격했다면 피해자가 패터슨이 가리고 있는 세면기 우측 모서리에 접근해 많은 핏자국을 남길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고, 또 피해자는 9차례나 가격당해 매우 짧은 시간에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데 패터슨이 밀치고 나간 후 다시 세면기 쪽으로 접근해 핏자국을 남기고 다시 벽 모서리쪽으로 넘어졌을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 신석호·김동필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email protected]·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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