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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it] 딸아이의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게시물ID : panic_761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얼렁뚱땅이
추천 : 17
조회수 : 6552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15/01/12 08:46:49
우연이겠지만 제 딸이 죽은지 정확히 11개월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제 딸의 이름은 젬마. 17살이었죠. 이 글을 쓰면서 울고 있는 지금도요.
 
제 아내와 저는 아내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외식하러 나갔었어요.
딸아이가 차고 문 서까래에 목을 맨 모습을... 평생 못잊을겁니다.
행복하고 생기가 넘치던 딸아이의 눈은 차갑게 비어 있었어요.
 
딸아이에게 달려가 아이를 내렸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창백한 피부를 만지는 순간
제가 딸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단걸 알아차렸습니다.
우리 삶은 거기서 멈춰버린것만 같았어요.
우리 세상에서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주 처음으로 딸 아이 방에 들어가봤어요.
몇시간 상담을 했는데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서랍장이랑 벽에 달려있던 것들을 아내가 꺼내
방 바닥에 늘어둔 딸아이 소지품들을 보는게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뭔가를 주워 냄새를 맡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저를 흐트러뜨릴 그 아픔에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저는 한때는 제 집이었던 곳에서 혼자 울며 침대에 앉아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젬마의 침대 옆에 놓인 서랍장을 열어봤어요.
뭘 찾으려고 한건 아니었지만요.
화장품, CD, 당시 모른척 했었던 절반은 비어있는 담배며,
더이상 제겐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가공물들로 가득차있었죠.
 
서랍안을 들여다봤어요.
위안이 되고 행복한 기억이나.. 고통스러운 감정이 오겠구나 하면서..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무 의미도 없이 가게 선반에 있는 것 같았어요.
한가지만은 달랐습니다. 제일 마지막 서랍장에 잡지들 밑에서 일기장 하나를 찾았어요.
 
딸아이가 뭘 썼는지 구구절절 읊어서 재미없게 만들진 않을게요.
십대 여자아이였잖아요. 제 딸아이요.
제게 거슬렸던 부분은 글이 적힌 방식이었어요.
마치 인격이 나뉜거처럼 썼더라구요. 두명이 서로 대화하듯이 말입니다.
딸아이가 그날 친구들과 뭘했는지 따위를 쓰면 딸아이가 또 스스로에게 대답을 적었어요.
제 딸이 정신분열이나 인격장애가 있을거라고는 생각해본적 없었는데 죄책감이 폭풍처럼 몰려왔어요.
만약 우리가 알았다면 딸아이는 살아있을까요?
만약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딸아이가 정말로 필요로할때 우리가 도울수 있었다면..
 
일기를 좀더 뒤적거렸어요.
결국 글이 멈췄고 그게 무슨 뜻인질 아니까 내려놓으려고 했죠.
그러다 손가락에 걸린 페이지 덕에 뒤에 몇 페이지가 더 적혀있는걸 봤어요,
일기장에 아내가 쓴 글을 보고 놀랐어요.
아내 특유의 섬세한 글씨체를 알아봤습니다.
제가 놀랐던건 일기장에 질문하듯 썼단거에요.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 제가 당황하고 놀라긴 했어도 잘못 본건 아니에요.
아내가 뭔가를 썼고 답변은 젬마의 글씨체로 되어있었죠.
 
젬마 보고싶어
저도 보고싶어요
내 말이 들리니?
엄마가 보여요
어디에 있어?
전 집안에 있어요
젬마 너무나도 보고싶어. 잠깐이라도 널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알아요. 계속 보고 있었는걸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어디에 있니?
전 집안에 있어요.
내가 크게 말하면 들을 수 있어?
전 집안에 있어요
전 집안에 있어요
전 집안에 있어요
나 외톨이가 된거같아. 젬마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해
전 집안에 있어요
네가 보고싶어. 내가 보이니?
따라오세요.
 
이것이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저는 감정적으로도 지쳐있었고 불면증으로 피곤했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읽은게 뭔지 이해하기에 제 머리가 따라잡지 못하는것 같았죠.
어쩌면 제 아내가 어떤 정신이상 증세같은게 있었고 젬마를 다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자살까지 이르게 된건 아닐까 생각했죠.
글씨체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봤어요.
분명 젬마의 글씨체와 너무나도 닮아있었습니다.
만약 제 아내가 이걸 다 쓴거라면요?
제 딸이랑 관련있는게 아니라 제 아내의 정신이상의 결과물이라면요?
저는 눈을 감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어요.
감당하기가 힘들었고 더이상 견딜수도 없다 생각했어요..
눈을 뜨고 침대에 앉아 일기장을 떨어뜨린 곳을 다시 쳐다봤습니다.
 
아빠, 보고싶어요.
 
저는 갑자기 겁이 나고 정신이 또렷해져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거기 없었어요.
제가 쓴것도 아니구요.
제가 안썼잖아요 그쵸? 제가 쓴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서 나온거죠?
 
저는 소름끼치게 둘로 나뉘었어요.
제 일부는 젬마랑 다시한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제 일부는 도망가서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어요.
몇초인지 몇시간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이 지난 뒤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젬마, 보고싶다. 너도 너희 엄마도 너무너무 보고싶어.
엄마랑 같이 있니?
 
전 일어나서 좀 걸었어요. 머리를 잡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걸 멈추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건지 알고 있었어요. 제가 하려는 짓에 대한 위험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줄기 희망없이 도깨비불을 쫓는 산사람처럼
제 앞에 놓인 이 피할 수 없는 길을 비틀거리며 걸었어요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와선 일기를 봤죠.
이미 뭐라고 적혀있을지는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집안에 있어요.
 
저는 제 아내와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거에요.
그것에 사로잡히진 않을거에요
토끼굴로 이끌고 가서 절 자살하도록 만들게 하진 않을겁니다.
그게 제가 그 다이어리를 불태운 이유에요.
그 둘에게 등을 돌리는건 제가 한 일 중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불태워버리기전에 일기장에 한 문장을 더 쓰고는
답장을 기다리지않고 일기장을 덮어버렸습니다.
 
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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