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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기 대칸 계승 1
게시물ID : history_146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겨울왕궁
추천 : 5
조회수 : 111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03/12 19:19:27
동북아 역사재단의 [위태로운 변경]을 주로 참고했고, .....
일단 제가 잘 모르는 걸 알아보려고 정리한 거라 .. 내공 깊으신 분들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수준이 일천해서 배끼는 것도 틀렸을지 모릅니다. ㄷㄷㄷ


유목 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왕위 계승 원칙이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차기 왕위 후보자들은 각각 자신에게 유리한 원칙을 내세우며 싸움을 시작하고, 이것이 유목 국가의 심각한 분열을 불러오고 심지어 멸망으로 치닫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그 원칙의 하나는 직계(장자) 계승입니다.
전 왕이 자신의 아들(일반적으로 장자)에게 권력을 승계하는 형태입니다. 이건 뭐 설명이 필요 없겠고, 직계 계승 원칙은 전 왕의 형제들이 어린 조카의 왕권을 노리는 (수양대군?) 형태로 왕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아들이 아직 어리거나 하여 권력 기반이 튼튼하지 않을 때 특히 심해집니다.

유목 사회에는 직계계승만큼이나 강력한 다른 원칙으로 형제상속이 있습니다. 
가장 맏형부터 시작하여 동생 -> 동생으로 넘어가는 형태이죠. 과거에는 피임법이 없었기 때문에 왕족들은 꽤 나이를 먹어서도 늦둥이를 낳았고, 그 결과 형제 상속에 의해 수십년에 걸쳐 (실은 혼자서 90년 넘게 재위한 왕도 있는데) 긴 정치적 안정을 가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호한야 선우의 아들인 조도막고 - 저미서 - 지막거 - 낭지아사(오주류) - 함 - 여 로 이어지는 형제 상속이 있었습니다.
형왕이  차기 왕위 계승자(=다음 동생)을 좌현왕이라는 2인자 자리에 앉히고 사후 자연스럽게 권력을 승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아무래도 거의 같은 경험, 수준, 비전을 공유하는 형제에게 권력이 승계되기 때문에 한 세대의 차이가 있는 아들에게 이양할 때보다 정치적 연속성과 안정성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특히 전쟁기에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보입니다.

그러나 형제 상속에는 몇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일단 형제가 너무 많을 경우 순서가 돌아오기 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라는 것의 범위 자체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위의 호한야 같은 경우도 왕위를 계승한 것은 자매지간이었던 유력 연지(선우의 아내) 둘이 합의한 결과이고, 두 연지 외에 다른 아들들이 10여 명 있었으나 모두 쌩깝니다. 즉, 형제 상속의 대상이 전대 선우가 씨를 부린 모든 후손이 아니라 특정 모계로 다시 좁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직계 상속에서도 직계와 방계의 갈등이 있는 것을 보면 왕위계승에 따르는 일반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형제 상속의 진정한 문제는, 한 세대의 왕위 계승권자가 모두 죽었을 때 나타납니다. 
큰형 - 중간형 - 작은형 - 막내 .. 가 순서대로 왕위를 계승하고 마침내 막내가 죽었을 때, 다음 왕위를 결정할 마땅한 근거가 없게 됩니다. 방계계승원칙은 횡적인 왕위 계승만 보장할 뿐 세대 간 계승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랫세대 계승권자들이 모두 왕위를 노릴 수 있게 되고 내전으로 치닫습니다. 
또다른 원칙인 직계계승 원칙을 응용하면 큰형의 맏아들로 돌아가서 막내의 막내아들까지 왕위를 이어받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좀더 현실적으로는 선왕의 사망 시점에 가장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진 자가 자연스럽게 권력을 이양받는 형식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선왕(=막내)이 자기 아들을 밀어주고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체로 전임 왕의 아들이 왕위 계승권자가 됩니다. (물론 막내가 일찍 죽을 수도 있고, 마지막 왕은 아니지만 장기간 재위한 왕의 아들로서 튼튼한 권력을 확보해놓은 아무 왕자도 해당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돌궐과 몽골에는 말자상속이라는 계승 원칙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이것은 순수 유목민의 생활 형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초원에서 가축을 길러야하는 유목 생활의 특성상, 특정 집단의 가축의 밀도가 초원의 부양력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즉,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무리를 나누어 밀도를 낮춰야 합니다. 따라서 유목민의 경우 아들들이 장성하면 가축을 주어서 분가를 시키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장성한 아들들이 모두 분가한 후에 마지막까지 부모와 함께 있게 되는 막내가 부모의 유산(=가축과 파오)를 물려받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권력계승의 명분으로는 앞의 원칙들보다 조금 약하지만 엄연한 상속 원칙인 만큼 막내아들도 (일단은) 왕위의 상속을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됩니다.

정리하면 
원칙1  직계(장자)계승 
원칙2  방계계승
          철저한 방계 = 직계에 관한 무원칙 = 모든 3세대 왕자가 계승권을 주장
          직계+방계 = 큰형의 맏아들(또는 아들들)이 계승권을 주장       
          현실적 = 마지막 왕(막내)의 맏아들(또는 아들들)이 계승권을 주장
원칙3  막내 계승
원칙4 추가적으로 선왕의 지명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역학관계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은 마지막 왕의 치세 동안 아빠를 배경으로 급격히 권력을 확보한 막내의 아들들과 원칙적인 왕위 계승자인 첫째의 아들들이 싸우는 형태, 그 와중에 마지막 왕은 아니지만 치세 기간이 길었던 왕의 아들들이 확보한 권력을 가지고 끼어드는 형태로 내전이 전개됩니다. 방계계승에 따르는 이런 장단점들은 예로 든 흉노를 비롯해 모용선비, 돌궐, 거란 , 여진(아구다 역시 형으로부터 추장을 물려받음), 몽골에 이르기까지 유목 국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칭기즈칸 
칭기즈 칸 라이즈 이후 몽골 제국에는 왕위 계승에 관한 또하나의 절대적인 원칙이 세워집니다.
모든 왕위 계승자는 칭기즈칸의 혈통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뜬금없는 부족의 찬탈을 막는 효과는 있겠지만 원래 그정도 되면 망할 때가 된 거고, 
보통은 왕위 다툼이 왕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만큼 몽골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조치는 제외)
다만 칭기즈칸이 유목 세계에 가지는 의미가 큰 만큼, 중앙아시아쪽에서 유목 국가가 생겨날 때 자신이 칭기스칸의 후손이라고 칭하거나(티무르), 칭기즈칸 후손을 명목상의 왕위에 올리면서 국가를 세우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아무튼 칭기즈칸에게는 순서대로 조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톨루이 네 아들이 있었습니다. 애초에 칭기즈칸은 (팔팔할 때는 친족들에게 거의 권력을 나눠주지 않았지만 늙은 뒤에) 맏아들인 조치를 지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2남인 차가타이가 극렬하게 반발했고, 그 이유는 조치가 칭기즈칸의 아들이 아니며, 메르키드 부족의 씨라는 것이었습니다.
(칭기즈칸이 젊어서 세력이 없을 때 메르키드 부족에게 급습을 당해 아내 보르테가 납치된 적이 있습니다. 조치가 이때쯤 태어났는데, 칭기즈칸은 조치를 항상 아들로 대했지만 차가타이는 어린 시절부터 이를 물고늘어졌고 둘의 감정은 굉장히 안좋았음. 참고로 조치는 어릴 때부터 들은 그런 얘기 때문인지 성격이 비뚤어져 칭기즈칸과도 사이가 안좋음)
칭기즈칸은 타협책으로 형제들과 두루두루 사이가 나쁘지 않던 (아마 술주정뱅이라서)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지명합니다. 칭기즈칸의 사망(1227) 이후 우구데이가 1229년 몽골의 2대 칸에 등극합니다.

** 칭기즈칸 사후 2년의 공백기 동안 막내인 톨루이가 '아버지의 유산을 받은 입장에서' 섭정이 됩니다. 임시 대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공식 직위는 섭정입니다. **


우구데이 칸은 "칭기즈 칸의 칙령이 그러했던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형들과 백숙들이 있고, 특히 막내 동생인 톨루이 칸은 ~~ 더 합당하다. 왜냐하면 몽골의 규범과 관습에 따르면 큰집의 막내아들이 부친의 후계자가 되고 그의 목지와 천막을 관할하기 때문이다. ~~~ 어떻게 내가 카간의 자리에 앉겠느냐?" 라고 합니다.(실은 훼이크) 이에 다른 왕자들이 "칭기즈칸이 맡긴 일이니 그대로 갑시다. (내숭떨지 말고)"라면서 우구데이를 승인합니다.

즉 우구데이는 선왕의 지명 (위에도 말했듯이 '원칙'이라고까지 보긴 어렵지만, 다름아닌 칭기즈칸의 지명이므로 이 시점에서는 절대적인) 원칙에 따라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구데이의 말에서 형들(=장자상속), 백숙부(=방계상속), 톨루이(=말자상속)의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구데이가 칸이 되었지만 이후에도 그의 혈통이 왕위를 상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1241년 우구데이가 죽었을 때 왕위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칭기즈칸의 후손들은 내분을 겪게 됩니다. 
** 이 시점에서 조치, 톨루이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차가타이는 우구데이 바로 뒤에 사망합니다. 따라서 칭기즈칸의 손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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