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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당시 일본군이 완전히 맛이 갔다는 사례 2가지.
게시물ID : history_146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터제길슨
추천 : 12
조회수 : 1590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03/13 11:02:11
1. 우방국 시민 학살 및 외교관저 파괴.
 
1945년 1월 미군은 필리핀에 상륙, 수도 마닐라까지 진격해 일본군과 마닐라 시내에서 공방전을 벌입니다.
이때 코너에 몰린 일본군은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마닐라에서 일본군이 학살한 대상 중에는 필리핀인이나 미국인 등 연합국 시민들만 있던게 아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미친 짓이지만)
 
당시 일본군은, 마닐라 주재 스페인 영사관 쳐들어가 영사관에 있던 민간인 50 여명을 총검으로 학살하고, 영사관 건물에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명목상 중립국이었지만 친 독일-친 일본 성향이 굉장히 강한 나라였습니다. 스페인의 독재자였던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어 내전에서 승리했고, 이미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히틀러는 스페인을 추축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공식적으론 스페인은 추축국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의용군이란 명목으로 1개 사단 병력을 독소전쟁에 파견할 정도로 추축국들과 매우 친했습니다. 당연히 일본과도 외교 관계가 매우 좋았던 우방국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페인은 결국 1945년 4월, 일본과 외교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립니다.
 
 
2. 동맹국 시민 학살.
1943년 3월 18일 파푸아 뉴기니의 웨아크에서 라바울로 향하던 일본군 구축함 아키카제에서는, 연합국과 내통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독일인 목사들, 그들의 부인, 독일인 수녀 등을 학살했습니다.
 
한편 1943년 3월 17일 비스마르크 제도 카비앵에서는 민간인 억류자 30여명을 학살했는데, 여기에는 독일인 목사 9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과 독일의 관계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함께 전쟁을 치루던 동맹국의 시민들을 학살하고, 몇 안되는 우방국의 외교관저를 파괴하는 군대가 정상적일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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