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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여우와 토끼
게시물ID : panic_764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배욳
추천 : 23
조회수 : 2372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01/20 02:15:18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dxUhq




"닥터 캐럿. 정신차려"

제이슨이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다른 3명의 동료들도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캐럿. 캐럿. 정신을 잃어선 안돼. 우린 반드시 살아 나갈꺼야.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몫이 있어."


그렇지.

나의 몫이 있지.

"캐럿. 미트 스프가 있어. 좀 먹도록 해."

나는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겨우 한팔을 들어 미트 스프를 한 손으로 쳐냈다.

이내 접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제이슨은 날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이슨은 이내 단념한 듯,

내 옆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듯 하다.



여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가 없다. 동굴 밖은 눈보라가 너무나 거세고

우리의 비행기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다 불시착 했으니까.

애초에 여행의 목적은 의료봉사였다. 다들 실력이 뛰어난 의사들로

3년에 1번 정도 있는 해외 의료봉사에 지원한 사람들이었다. 

친절하고 명석하며 집도에 있어선 전문가들.

나 역시 외과의로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


"캐럿."

제이슨이 입을 열었다.

"여우와 토끼 이야기를 아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토끼는 말이야 초식동물이고 여우는 육식 동물이지. 토끼는 결코 여우를 이기지 못해."

"알아."

"그래서 토끼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생존전략을 세우지. 바로 함께 뭉쳐 다니는거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전략은 장점과 단점이 있어.

대규모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면 여우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여우가 작정하고 무리를 공격하면 스스로에게 불리해질 수 있어.

왜냐면 도망가려면 넓은 평지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데 토끼가 같이 뭉쳐있으면 말이야. 도망가기가 쉽지 않거든."

"..."

"그래서 결국은 그 무리에서 가장 약한 토끼 녀석이 여우에게 먹히는거야. 10마리의 토끼가 있다면 1마리씩 1마리씩 가장 약한 녀석들이

단계적으로.."

"...."

"그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지만 재밌는 얘기도 있어. 토끼들은 자신의 무리에서 누가 가장 약한지를 안다는거지. 그리고 여우가 그들의

무리에 다가오면 가장 약한 토끼를 무리 밖으로 밀어 내는거야. 여우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여우의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야. 잡기 쉬운 목표물이 드러나는 셈이니까."


"그..그렇지..쿠..쿨럭."  

자꾸 기침이 나왔다. 한손으로 입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토끼라면 그러지 않을꺼야."

"..."

"내가 토끼라면 난 가장 약한 토끼 3마리 정도는 항상 남겨 둘거란 얘기지. 토끼의 번식력 알지? 

난 그 3마리의 가장 약한 토끼들을 적당히 보호하면서 계속해서 자식을 낳게 할꺼야. 그리고 약한 토끼가 일정 비율 무리안에

존재하게 하는거지. 먹이로 내줄 토끼 말이야."


"..." 난 아무말 없이 제이슨을 바라봤다. 

제이슨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무리 안의 약한 토끼 입장에서도 그렇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않을까?

어쨌든 자기 유전자를 이어나갈수는 있잖아."


제이슨은 거기까지 얘기를 하고 반쯤 남은 미트 스프 접시에서 스프를 

한 스푼떠서 내 입으로 내밀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캐럿, 벌써 3주째야. 통상 구조대는 한달 안에는 도착한다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


음식을 어느정도 먹고 난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제이슨.. 넌 어느쪽이야?"

"난.. 토끼지. 그리고 너도.."

"....."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린 또 여우이기도 해."

"......."
난 눈을 질끈 감은채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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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장님! 반장님!"

"어 피터! 왔어?"

"네. 사건 경위서는... 보셨습니까?"

"뭐.. 읽어 봤네."

"전 뭐가 뭔지 모르겠던데요.."

"그러니까 아직 초보 티를 못 벗는거 아니냐. 사건 개요 브리핑 해봐."



"아, 네! 실종자는 5명 구출까지 걸린 시간은 28일입니다. 마지막에 구조된 인원은 4명인데...."

"4명인데.."

"현장에서 들은 바로는 구조대가 5일만 빨리 도착했어도 사망한 한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하던데요."

"맞아."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들이 비행기에 가지고 있던 구호물자와 눈을 녹인 물을 이용했다고 해도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생존 할 수 있었죠?"

"시체 사진은 보지 않았나?"

"네.. 아직."

"피터, 여긴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야. 그리고 한 겨울이지. 동물은 절대 보이지 않아. 식물도 뭐.. 마찬가지지."

"그..그렇죠."

"뭘 먹을수 있겠어."

"....."

말이 없는 피터에게 나는 사망자의 사진을 보여줬다.



"우..웁"

피터는 헛구역질을 했고, 나는 무심하게 등을 두드려 줬다.


"그...그럼 생존자들이 먹은건..."

"그래.. 자신의 동료를 먹었지."

"하..하지만..."


"그래 피해자도 무려 3주나 살아있었지."


"아.."


"피터, 그들은 유능한 의사고 팔과 다리에 심한 동상을 입은 환자의 외과적 수술은 어렵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식량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야. 사람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 같은게 정말 필요하다고.

그런게 없으면 사람의 몸은 유지되지도 구성되지도 않아.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하면 사람의 몸은 그런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지."


"하지만 사망자는.."


"그게 나를 좀 더 놀라게 만든 부분이야. 그저 고깃덩어리로 피해자를 대했다면 굳이 치료를 하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그들은 뛰어난 의사답게 그녀를 치료했어. 물론 몸에서 다리 하나, 팔 하나 깨끗하게 절단하는건 일도 아니었겠지.

그리고 그들은 생각했을꺼야. 그녀를 죽게 놔둘것인가. 살려 둘 것인가."


"....."


"그들의 최종 결정은 그 중간 즈음이었던거 같아. 그녀를 천천히 죽게 만들자."

"왜...."



"피터, 고기를 가장 신선하게 유지 할려면 어떻게 해야되지?"

"그야, 추운 산 속이니... 냉동을 시킨다거나..."

"피터.. 여긴 정말 정말 추운 곳이야. 가능하다면 따뜻한 고기를 먹는 편이 낫다고."

"...그럼.."






"맞어. 가장 신선하게 고기를 유지하는 방법은 고기를 키우는거야. 필요한 순간까지 말이야.

설령 자기 스스로를 먹게 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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