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서 드는 생각 : 아, 한니발이 진짜로 윌을 엄청 아끼고 있기는 하구나.
한니발은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고, 한니발의 디자인도 그의 취향만큼 확고하죠. 그런데 203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은 그 디자인도 윌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정펜을 꺼내들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네요. 저는 아마 한니발이 처음 윌을 덫을에 빠트릴 때에만 해도 한니발은 언젠가 윌이 저를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누구도 그의 편이 되주지 않고, 고로 누구도 한니발을 의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자 했다고 보거든요. 또 한니발의 상담사 말에 따르면 그 일을 윌을 위한 거라고 포장하기도 했고요. 한니발의 입장에선 타당한 일이었겠죠. 정말로 윌이 자신을 위협하게 된다면 한니발은 윌을 처리해야 할테고, 한니발의 개인적인 신념에 따르자면 인간은 고난을 겪으면서 강해진다고 해야하나, 진화하니까요. 아마 한니발은 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더 나은 윌'을 꿈꾸지 않았나 싶어요. 그가 이제껏 봤던 단순히 "Will"이라는 부름으로도 조종되는 연약하고 섬세하기 짝이 없는 윌이 아닌, 좀 더 한니발에 가까운 윌이요. 감옥에서 윌이 한니발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더 좋았겠죠. 한니발이 윌의 정신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서 정말로 윌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믿게끔 했다면, 그래서 윌이 자신을 살인마로 인정하고 살인마의 방식으로 한니발을 대했다면? 한니발 입장에선 그것만큼 매혹적인 일이 없었을 것 같은데요. 그 자신의 정의를 선이 아닌 악의 입장에 두고, 좀 더 살인마의 시각으로 상대방과 공감하고, 한니발에 대한 의심을 덮고 그를 의혹으로 위협하지 않는 윌. 윌이 한니발에게 대한 의심을 접으면 한니발은 윌에게 친구로써 다가갈 수 있겠죠. 언제나 그랬듯이 윌의 입장과 저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교묘한 발언으로 윌을 조종하고 그에게 가까운 사람이 되려고 할 거에요. 그런데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한니발이 생각했던 것보다 윌이 물러설 줄을 몰랐던 까닭에, 또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소중했던 까닭에 한니발은 사형으로 내몰리는 윌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하게 생겼어요.
한니발이 계속해서 윌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으려 시도하곤 있지만 윌은 오히려 한니발의 모습에 웬디고를 겹쳐보고,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던 그 거대한 짐승이 한니발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뿐이에요. 그리고 한니발은, 이런 표현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겠지만 절박하네요. 지난 시즌에서도 윌이 상담시간에 오지 않자 윌이 문밖에 서 있을까 확인해보고 시계도 보고, 윌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번 시즌엔 그게 훨씬 더한 느낌. 매즈 미켈슨이 말했듯이 한니발은 윌을 정말정말 사랑하는 모양이에요.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윌에게 거듭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부정하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자신을 포장하기 바쁘죠. 원래 윌이 앉아있어야 하는 상담 의자 맞은편에 앉아 윌을 생각하고... 한니발은 잃어버린 뒤에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타입인 것 같아요. 시즌1의 친구선언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던 거니까요. 잭이 증언대에 서서 윌을 옹호하니 흐뭇하게 웃는 것 좀 봐요. 잭을 칭찬하는 건 또 어떻고요. 윌을 위해서 이렇게 해주다니 고마워! 하는 생각이 오오라로 뿜어져 나오는 줄.
전 그래도 아직까진 한니발의 디자인이 견고하다고 생각해요. 한니발은 언제나 경우의 수를 여러개 상정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타입인 것 같거든요. 그의 살인 방식처럼 매우 철저하고, 일견 대담한 구석도 있지만 그게 자신을 위협할 정도까진 대담해지지 못하고요. 그리고 또 이왕 뭘 하려면 챙기는 것도 있었음 하는 것 같고. 한니발은 여전히 저를 향한 윌의 의혹을 지우려고 애써요. 저는 여기서 아직까지 한니발의 디자인이 견고하다고 느꼈답니다. 윌이 시신을 통해 범죄자를 읽는 걸 알고 있는 한니발이, 그런 윌의 능력을 역이용해서 다시금 주도권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요. 윌이 그 이전 사건의 범인과 이 사건의 범인은 일치하지 않는다고 믿게끔 하고, 저도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윌을 위해 아니기를 바랐다고 말하는 한니발의 가증스러운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ㅠ 한니발은 윌을 향해 자유를 향한 문을 열어주려고 애쓰는 동시에 저역시 벗어나고자 하죠. Dear Will 에게 Ear을 보냈다고 팬들이 말하더군요. 윌이 그것을 저에게 바치는 시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죠. 시라니, 딱 한니발다운 선물이에요. 한니발은 윌에게 그 사람의 사랑을 외면할 거냐고 물어보고, 더는 갈 곳이 없었던 윌은 한니발의 제안을 수락해요.
그렇게 한니발은 나름대로 윌을 위한다고 법정에 섰지만 윌이 자유가 되지는 못하고, 심기가 불편해진 한니발은 판사를 ★전★격★해★체★ 진짜 이제껏 한니발이 보여준 시체 '작품' 중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시체는 처음 본 것 같아영. 한니발은 무례한 사람에게, 그가 가질 자격이 없는 장기를 꺼내 가는데 심장이랑 뇌를 꺼내서 천칭 위에 올려놓다뇨ㅋㅋ 그 시체가 취하고 있는 모습도 무려 '정의의 여신상' 아닙니깤ㅋㅋㅋㅋ 네 판결 진짜 무례하고 불쾌하다 + 내가 윌을 위해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심장도 뇌도 쓸모 없는 놈. 딱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듯 했어요. 그로 인해 윌은 다시 기회를 얻고 새로운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곤 하지만, 법정에서 정의의 여신상 꼴로 자신의 심장과 뇌를 천칭에 올리고 판결하는, 총상으로도 모자라서 마음껏 난자당한 판사의 시체를 보노라면 확실히 한니발이 화났던 것 같아요 ㅇㅇ 또 이번엔 실패하지 않겠다는 한니발의 의지가 엿보이기도 했고요. 총알을 쏘고 + 난자했잖아요. "난자한 흔적이 없어서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그럼 이건 어때? 이 시체를 걸어둔 사람이 윌이 의심받는 모든 사건의 범인일 것 같지는 않고?" 하고 소리치고 과시하는 듯이.한니발이 감옥에 있는 윌에게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걸 바라지 않아요." 하고 말한 게 확실히 진심이었던거죠. 윌은 한니발에게 있어 유일한 '이해자로써의 가능성'인 동시에, 한니발로 하여금 태어나 처음으로 우정의 가치를 갈구하게 만든 대상이고, 잃으면 서글픔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죠. 윌은 한니발에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라 한니발은 윌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한니발은 어떤 의미에선 여전하네요. 사라진 총알을 '범인의 트로피' 라고 말했던 장면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한니발은 여전히 사냥꾼으로써의 대비를 잊지 않고 있는 듯해요. 모두가 알다시피 한니발의 트로피 위장에 들어가기 마련이니까요. 이번 사건에서 그가 거둔 트로피는 없어요. 그러니 저건 아마도 함정이겠죠. 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은 의혹에서 벗어난다는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어요. 너무 한니발답지 않나요? 정말 너무 좋아서ㅠㅠ
지금의 윌은 한니발의 호감에 매달려서 생을 연명하는 입장이고, 완전히 자유가 되려면 오히려 그 자신이 한니발을 역으로 조종해야 되는 입장이죠. 한니발은 날이 갈수록 절박해지는 듯하고, 윌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듯하니 가능할 것도 같은데 이번 화를 보면서 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네요. 윌이 한니발에 대한 명확함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문제라기 보단, 이번 화에서 윌은 한니발의 제안을 한 차례긴 하지만 수락했잖아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범인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썼다는 말이죠. 한니발을 의심하고 저의 무죄를 확신할수록 자신을 무의식적인 범죄자 따위로 몰아가는 지금의 변호 전략을 수긍할 수 없었을 윌도 이해는 가지만ㅠㅠ 딜레마네요. 한니발이 보여주는 호의를 무시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살인마로 낙인찍는 꼴을 봐야하고, 그의 호의를 수락하면 조금씩 수렁에 빠지게 되니까요. 하지만 한니발을 역으로 조종하기 위해선 한니발의 호의를 일정부분 받아들일 필요가 있기도 하고요. 으, 생각해보니 한니발의 덫에 걸린 이후의 윌은 어떤 식으로든 전과 같은 마냥 선한 Good Will로는 남기 어렵겠죠. 한니발은 변하고 있는데, 윌은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까요? 이런 상황속에서도 계속 의심을 키워가고, 한니발을 향한 반격을 준비하려는 예고편 속의 윌을 보니까 두근두근하네요. 저번에 윌 표정 싹 변하는 거 봤던 이후론 확실히 윌이 무언가 저지를 것 같기는 한데요, 한니발의 조종방식이 워낙에 교묘해서… 진짜 짐작도 안 되네요. 어서 다음편ㅠㅠ
아, 그리고 이 글은 전부 제 개인적인 캐해석에 불과하니 저와 다른 캐해석을 갖고 계신 분은 이 글은 가뿐하게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한니발은 모두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다른 캐해석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한니발이 우정이란 감정에 어느정도 휘둘리곤 있지만 여전히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기엔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방어적인 악마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또 박사님이 다른 사람의 무례를 기민하게 느끼는 건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는 아니라 봐요. 사람 조종하고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양있는 악마. 아 악마가 사람 꼬시는 게 저런 거구나 하고 보고 있는데, 사실 판사 죽인 사람이 한니발인지 아닌진 나오지도 않았고 여기 이 글에 추측 엄청 많아요ㅠㅠ 그러니 그냥 아 이래 생각하는 애도 있구나 ㅇㅇ 하고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그런데 시청률ㅠㅠ
시청률을 물어죽인다ㅠㅠ
이렇게 재밌는데 왜 안 한니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