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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시는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거친 숨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와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카페에서 다시 학교로 돌아온 그녀는 학교 마당에 있는 한 구조물 앞에 섰다.
“진짜 여기가...”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선셋이 알려준 대로라면 이 장소가 맞았다.
선셋이 트릭시에게 이퀘스트라이에 대해 알려준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핑키를 데려올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핑키는 선셋의 설명을 듣다 멋대로 가버렸기 때문에 3일안에 돌아와야 한다는 경고를 듣지 못한 채 가버렸다. 선셋 자신은 이퀘스트리아에 가서는 안되는 신분 이었기에 난감해 하던차 선셋은 트릭시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선셋은 트릭시에게 반드시 내일 날이 지나기 전에 핑키와 함께 다시 와야한다고 당부했다. 두 번째 이유는 스닙스 스네일스의 소유권 탈환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학교를 지배한다는 야욕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부하들을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녀석한테 뺏길수는 없었다.
정당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트릭시에게 귀찮은 일을 떠맡고 부하들 까지 빼앗은 셈이었다.
“과연 어떤 곳일까.”
하지만 트릭시는 그런 것 따윈 생각조차 못한 듯 했다. 트릭시의 미소는 기대감과 불안감으로 엷게 떨고 있었다. 트릭시는 선셋에게 내일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와 어떻게 가는가에 대한 얘기만 듣고 곧바로 이곳을 뛰쳐 나왔다. 마술에 쓰는 복장을 그대로 입은 채 이곳까지 쉬지 않고 뛰어왔다. 옷을 갈아입고 챙겨 가져가야 할 물건같은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엔 이퀘스트리아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했다.
트릭시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트릭시는 망설임없이 곧바로 포탈로 뛰어들었다.
포탈로 들어서자 엄청난 빛에 트릭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놀이 기구를 탄 것처럼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빛이 줄어드는 걸 감지한 트릭시는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떤 곳일까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쉼호흡을 했다.
하지만 트릭시가 처음 맞닥뜨린 광경은 그녀의 상상과 달랐다. 어두운 실내에 먼지 쌓인 잡동사니들 밖에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트릭시는 영문을 몰라 주위를 살피다 거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트릭시는 거기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핑키 파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막 들어온 참이었다. 산책을 먼저 제안한 것은 토파즈였다. 어제 저녁에는 제대로 된 안내를 못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낮에는 핑키가 일을 도와줘야하니 지금밖에 시간이 없다고 설득을 했었다. 토파즈는 어제 크리스탈 왕국에 대한 책을 살피고 유명한 관광지를 밤새워 전부 외워두었다. 덕분에 잠도 제대로 못자 비몽사몽 했지만 핑키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에 피로가 날아가는 듯 했다. 크리스탈 하트가 있는 성의 중심부터 오랜 전통의 도서관, 어제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시장가와 솜브라왕의 파편이 전시된 박물관까지, 토파즈는 스스로가 이제는 관광 안내원으로 이직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고마워, 토파즈. 나중에도 또 부탁해도 되지?”
둘은 성 내부의 긴 복도를 걷고 있었다. 핑키는 시장가에서 사온 크리스탈 막대사탕을 혀로 햝다 입속에 넣고 으적으적 씹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부탁하세요. 아직 안 가본데가 많으니까요. 크리스탈 왕국은 구경거리나 축제가 굉장히 많아서 다 구경하려면 며칠은 걸릴거에요.”
사실 토파즈 자신도 크리스탈 왕국에 이렇게 관광지가 많은 곳 이었다는걸 바로 어제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그 사실이 오히려 고마웠다. 적어도 핑키를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게 할 이유가 생긴 셈이니. 토파즈는 핑키를 쳐다봤다. 핑키는 이빨에 사탕파편이 잔뜩 킨 채로 복도에 서있는 가드들에게 인사를 건내고 있었다. 가드들은 인사는커녕 눈길 한번 핑키에게 주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핑키가 없었더라면 아마 자신도 지하실 창고 앞에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핑키는 다른 세계에서 온 다른 생물이지만 토파즈의 눈에는 영락없는 포니로 보일 뿐이었다. 어쩌면 어제 핑키가 한 얘기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을까 그는 내심 기대했다. 사실은 이퀘스트리아 어디 지역 출신인데 잠깐 놀러온 것이다, 라고 장난스럽게 고백을 해줬으면 했다. 사실상 그녀가 포니가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으므로. 하지만 토파즈 스스로도 그것은 궤변이란걸 알고 있었다. 단지 희망을 놓지 않고 싶었을 뿐이었다. 시선을 눈치챈 핑키가 고개를 올리더니 토파즈를 향해 활짝 웃었다. 토파즈도 싱긋 입꼬리를 올려 되받아 웃어주었다.
토파즈는 다시 보초를 서야했기에 지하로 내려가야했다. 핑키가 따라간다고 말하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혹시라도 자기 다른 친구들이 포탈을 넘어왔을지 모른다고 했다.
“설마 또 넘어온 포니... 아니 인간이 있겠어요?”
토파즈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웃음은 지하창고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면서 묻혀버렸다. 토파즈는 설마 하는 마음에 서둘러 창고앞을 달려갔다. 핑키도 그의 뒤를 따랐다.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사라지고 문 너머에선 굉음이 울려퍼졌다. 토파즈가 문을 열자 어처구니 없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창고안의 물건들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창고에 갑자기 폭풍이 생긴 듯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엄청난 속도로 서로 부딪히며 박살이 나고 있었다. 토파즈는 핑키를 뒤로 물러나게 하고 상황을 살폈다. 폭풍의 원인은 위를 보자 알 수 있었다. 폭풍의 중심에는 한 마리의 유니콘이 공중에 떠 있었다. 파란 털색에 하늘색 갈기를 가진 유니콘의 눈에는 초점이 없이 하얀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마위의 뿔에는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 튀어 나오고 있었다. 마법 폭주였다. 때때로 감정이 격해진 유니콘들이 자신의 마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니콘의 마법이 폭주한다 해도 빛이 강렬하게 나고 주위 물건들이 들썩이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마법 폭주의 위력이 이 정도라면 유니콘의 마법 자체가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창고는 물론이고 성까지 난장판이 될 상황이었다. 당장은 가드들과 공주님을 불러오는 것이 우선이었다. 토파즈는 침착하고 신속하게 생각을 마친 뒤 신속하게 대처하려 했다.
“핑키, 여기서 물러나고 복도에 가만히 계세요. 서둘러 공주님과 가드들을...”
그의 말은 거기서 끊겨버렸다. 핑키의 돌발행동은 예측불허였지만 지금의 행동은 사고의 범주를 넘어섰다. 핑키는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공중에 떠 있는 포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돌풍속에서 그녀의 머리와 꼬리는 사정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리 저리 날고 있는 잡동사니들이 언제 그녀를 덮쳐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고개를 올려 포니를 빤히 쳐다봤다. 토파즈는 잠시 사고가 정지된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이내 정신이 들었다. 핑키를 당장 저 방에서 끌고 나와야 했다. 토파즈는 망설임 없이 방안으로 뛰어들어 핑키에게 다가섰다.
“핑키! 당장 나가야 해요! 어서 빨리!”
“트릭시?”
그것은 토파즈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핑키는 토파즈가 옆에 온 지도 모른채 공중에 있는 포니에게 말을 걸었다. 핑키가 아는 포니인가? 토파즈는 고개를 올렸다. 생각해보니 포니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자기가 창고 앞을 지키고 있지 않다 해도 성 입구를 들어오고 복도를 지나 이곳 지하 창고 안으로 가드들을 뚫고 들어오기란 불가능했다. 그런 경우가 가능한 건 단 한가지였다.
유니콘은 핑키의 말에 반응한 듯 핑키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트릭시 맞지? 나야!”
핑키는 활짝 웃더니 발굽을 흔들어 인사했다. 놀랍게도 트릭시의 눈에선 광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휘날리던 머리가 서서히 가라앉고 바람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트릭시는 점점 내려오더니 바닥에 주저 앉아 핑키를 쳐다봤다.
“핑키...?”
트릭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핑키!”
트릭시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하더니 핑키의 품에 와락 안겼다. 핑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트릭시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학교에 있는 동상에... 흑. 들어왔는데...”
트릭시는 자꾸만 숨을 내뱉어 말이 끊겼다. 핑키는 다정하게 웃으며 트릭시를 달랬다.
“천천히 말해도 돼, 괜찮아.”
“거울을 보니 이상한 말이 서 있었고... 사실 그 말이 나였어... 너무 놀라서 막 소리지르고... 선셋 쉬머 돌아가면 죽여버릴 거야...”
트릭시의 살기 돋힌 말에 토파즈는 소름이 돋았다. 일단은 트릭시가 핑키의 지인인건 확인이 되었지만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다. 토파즈는 가드들을 데리고 올까 망설였다. 트릭시는 한참이 지나서야 울음을 멈추고 진정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안고 있을거야! 저리 비켜!”
트릭시는 갑자기 핑키를 밀어내더니 소리치기 시작했다.
“트릭시, 이제 그만 우는거야?”
핑키가 웃으며 묻자 트릭시는 당황한 듯 움찔했지만 이내 표정을 숨겨버렸다.
“누가 울었다는거야! 난 운 적 없어! 그리고 딱히 널 봐서 반갑거나해서 안긴건 아니었어!”
“그래? 난 트릭시를 봐서 무지 반가웠는데.”
핑키가 웃으며 말하자 트릭시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마터면 상기된 얼굴을 핑키에게 보일 뻔 했다.
“그래서 여긴 왜 온거야? 나랑 같이 여행가려고?”
“아니, 트릭시는 여기가 마법의 땅이라고 해서 온거야. 선셋이랑 거래를 해서 이곳에 오는 방법을 알아낸거지. 아무래도 거짓말은 아닌거 같아. 내가 포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트릭시는 여전히 자기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지 자기 모습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여기는 포니들이 사는 곳이야. 포니들이 우리처럼 말도 하고 일도 하면서 생활해.”
“뭐, 그런거야 상관없어. 난 마법만 쓰면 되니까. 그리고 가장 위대한 마법사 트릭시가 이 이퀘스트리아를 지배할거란 말이지. 우하하하하!”
트릭시는 두 발로 선 채 발굽을 들어올리며 하늘을 향해 웃기 시작했다. 두발로 서는게 익숙치 않은지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마 핑키의 지인이라면 거울너머에서 온 인간일터, 토파즈는 진심으로 ‘인간 세계’란 곳에 저런 사람들이 사실 정상인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핑키의 지인이 아니었다면 방금 전의 마법폭주와 가드 앞에서의 발언에 이미 끌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무도 못 올줄 알았는데 친구가 한명이라도 같이 있어서 말이야.”
“누가 네 친구야! 나는 부하 아니면 안 받는다고!”
“그래도 같이 다니게 돼서 기뻐! 우리, 방학동안 절대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자고!”
핑키는 제자리에서 신이 난 듯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핑키의 말에 트릭시는 멈칫했다.
“방학동안? 무슨 소리야? 우린 내일 돌아가야 해.”
“뭐라고요?!”
트릭시의 말에 깜짝 놀라 끼어든 것은 토파즈였다. 토파즈는 트릭시에게 다가가며 따지듯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뭐야, 이 갑옷입고 번쩍번쩍 빛나는 놈은.”
트릭시는 밀리는 기세없이 날카로운 말투로 맞받아쳤다.
“얘는 내 친구 토파즈야! 토파즈, 얘는 내 친구 트릭시.”
자기 소개 따윈 토파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듣고 싶은건 트릭시가 했던 말의 의미였다.
“내일 돌아가야 한다니... 무슨 소리죠, 그게?”
“트릭시가 왜 너한테 그걸 말해줘야 하는거지?”
말하기 싫으시면 불법침입과 기물 파손으로 끌려가던가. 토파즈는 핑키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참아냈다. 실제로 핑키가 이곳에 없는 상태에 설명이 부족했다면 이 포니는 진작에 가드들에게 끌려갔을 것이다.
“그러게. 난 더 있고 싶은데 왜?”
핑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셋이 그러는데 내일까지만 포탈이 열리니까 닫히기 전에 와야한대. 안 그러면 몇 년은 여기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어? 선셋은 그런 말 안했는데.”
“그거야 네가 듣기도 전에 뛰쳐나갔거나 그래서 그렇겠지.”
“아. 그런가.”
핑키는 키득키득 웃었다.
둘의 대화가 오고가던 중 토파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치 보석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갑작스런 이별 통보는 방에 몰고왔던 폭풍보다 거세게 그의 마음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지 말라고 부탁할 자격도 없었다. 핑키가 내일 떠난다는건 이미 정해져 버렸다.
토파즈는 아직까지 핑키에게 보여줄 관광지들이 머릿속에 훤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족히 일주일은 걸려야 전부 구경이 가능할 정도로 무궁무진 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그저 그의 머릿속에 영원히 멤돌아야 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어쨌든 내일까진 우리가 나왔던 곳으로 다시 가야한다네. 아까 트릭시가 나왔던 곳은 거울 이었던 것 같은데...”
트릭시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거울을 찾기 시작했다. 핑키는 폴짝 뛰면서 구석을 가리켰다.
“오! 오! 저거 말이지?”
핑키가 가리킨 구석에는 난장판이 된 잡동사니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유리가 산산 조각이 난 포탈 거울이 어렴풋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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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파즈 급빵긋
음... 전개가 의외로 느리네요... 다음부턴 분량을 늘리던가 전개를 팍팍 나가던가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