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링크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readers&no=12317&s_no=12317&page=1
“알바요?”
“네. 부업같은 거요.”
강사에게 부업을 제안하는 학생은 없다. 오히려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일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말이다. 이 학생은 일반적인 대학생들과는 다른 타입이다. 아니, 솔직히 학생인지도 의문이다. 첫 만남부터 이 여자는 보통 대학생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으니까. 그러고보니 옷을 입은 것도 대학생이라기에는 약간 과장된 듯 싶었다. 일부러 ‘나 학생이요.’하고 다니는 듯한 화사한 옷차림이었다. 처음 신는 듯한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부업이라.. 돈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괜한 일이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겠지.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보통 부업같은 건 안 하지만.. 경우에 따라 다르겠죠. 어떤 일인지 들어봐도 될까요?”
“네. 사실 제가 모레 소개팅을 하는데요. 행동심리학이면 다른 사람한테 호감을 주는 것도 가능하죠? 그런 거 배우고 싶어서요. 그리고 상대도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도와달라는 건지, 아니면 나를 고용해서 쓰겠다는 건지 헷갈렸다. 보통 소개팅을 이렇게까지 하나 싶기도 했다. 대체 상대가 누구길래? 재벌집 아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페이도 낮을 것 같고, 어디에 유민호강사가 학생들 소개팅이나 돕고 다닌다는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내가 얼굴을 못 들고 다닐 듯 싶었다. 그때 갑자기 여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상체를 붙이며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감쌌다.
“부탁해요. 교수님. 딱 한 번만요. 일단 가르쳐주시고 상대 행동을 읽어주시면 100만원, 결과가 좋으면 100만원 더 드릴게요. 불쌍한 학생 돕는다 치고, 한 번만 도와주세요. 네?”
100만원이라는 말에 눈이 확 뜨였다. 하자. 하기로 했다. 뭐가 됐든지 간에, 소개팅 한 번 도와주고 200만원이면 그냥 용돈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의 정체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좋다! 진짜로 2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명분만 그럴 듯하게 세우면 소문이 나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상대인가보네요. 알겠어요. 도와드릴게요. 모레라고 했죠? 그럼 오늘하고 내일에 걸쳐서 몇 가지만 배우면 될 거예요.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시작해도 좋아요.”
“그럼 점심도 먹을 겸, 근처 식당으로 가요. 예행 연습하는 셈 치고, 파스타 먹으러 갈까요?”
적당한 외모에 아담한 키, 배운 대로만 하면 무성욕자를 빼고는 누구든지 넘어오게 만들 수 있다. 아니, 무성욕자도 넘어오게 할 수 있다. 돈을 받는다는 것에 신나서 냉정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나을 터였다.
“여기 좋은 자리가 있네요.”
내가 고른 자리는 햇볕이 잘 드는 창가였다. 이곳이라면 후광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어떤 사람 주위로 빛이 감싸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일종의 위대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정도 햇볕이라면 먼저 소개팅 자리에 앉아있을 때 상대가 이 여자를 발견하면서 후광효과를 온 몸으로 체험할 것이었다.
“어두운 자리는 안 좋아요. 피부에 자신이 있다면 빛을 정면으로 받는 자리도 좋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다면 그 빛이 계속 자신의 눈을 따갑게 찌를 테니까 그것도 별로 좋지 않아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호기심을 자극하려면 이런 창가가 가장 좋아요. 아, 그리고 여자가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데, 그렇게 되면 남자의 시야에는 여자밖에 안 보이거든요. 주의가 분산되지도 않고, 여자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러면 메뉴를 시켜볼까요?”
내가 손을 들고 있자 웨이터가 다가왔다.
“이성간에 가장 중요한 건 동질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어필하는 거예요. 메뉴를 시킬 때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정도면 충분해요.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소개팅할 때 남자가 먼저 주문하거든요. 그러면 학생도 그 메뉴를 주문해요. 그러면서 그게 먹고 싶었다고 말하는 거죠.”
“선생님, 그런데 제 이름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차.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면서 여지껏 이름을 안 물어봤다니. 돈 때문에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아. 그걸 안 물어봤네요. 너무 의욕만 앞섰나봐요. 음.. 이름이 뭐예요?”
여자는 뭐 이런 사람이 있냐는 듯이 쳐다봤다. 하지만 약간 미소를 짓는 걸 보니 만회할 시간은 있었다. 아니, 만회할 게 뭐가 있나. 난 어차피 단기 알바생이었다. 내 일만 잘 하면 됐지 뭐.
“제 이름은 이지영이에요. 이지영. 쉽죠?”
웃어야 하나? 분명 자기 이름으로 농담을 한 것 같은데, 솔직히 내가 아무리 행동심리를 공부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 내 양심을 따를 것인가, 상대에게 맞춰줄 것인가. 아.. 그냥 맞춰주자. 미소를 짓자. 미소를 짓자.
“아, 정말 쉬운 이름이네요.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지영 씨가 소개팅 동안 할 일은, 최대한 남자가 말하게 해놓고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이 들어주는 거예요. 흔히들 수다는 여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남자들도 털어놓고 싶은 얘기들이 있거든요. 다만 그게 주로 일에 관련된 것이다 보니 어디 가서 쉽게 말을 못 꺼내는 것이죠. 그리고 그.. 지금 무릎 위에 쿠션을 올려놓고 있죠?”
“이 쿠션이요? 네. 왜요?”
“그건 일종의 방어막이거든요. 사람들은 어떤 존재에 불편함을 느낄 때 그 존재와 자신 사이에 장애물을 놔요. 그게 쿠션이 될 수도 있고, 가방이 될 수도 있고요. 원래 테이블이 그런 역할을 하는데, 거기에 덧붙여 쿠션까지 놨으면 꽤 불안한 심리를 나타내요. 제가 지금 불편하게 하고 있나요?”
“아뇨? 전 괜찮아요. 그러니까 쿠션을 안고 있으면.. 그냥 편해서요. 부드럽기도 하고요. 전 원래 쿠션 좋아해요.”
“강의시간에도 말했지만, 행동심리학에서 ‘원래’라는 건 없어요. 어떤 심리가 습관이 돼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건 있지만요. 모든 행동은 그 사람의 무의식을 반영해요.”
“알겠어요.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되는 거죠?”
이지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일어나더니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향기가.. 좋았다. 이지영의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페로몬 때문인지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래서 내가 아직 솔로인가. 하지만 이런 기분은 익숙해지기 아까운 점이 있었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학생이고, 난.. 무엇보다 소개팅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역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일단 떼어놓자. 아쉽지만.
“이, 이건 부담스럽네요. 아무래도 소개팅에서는 마주보고 앉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이제 곧 음식도 나올 듯 싶으니 저쪽으로 가서 앉아요.”
“선생님 지금 흥분하셨어요? 귀가 빨개졌는데요. 말도 빨라지고..”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 이지영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어떻게 이 분위기를 수습해야 하나 싶어 고민하는 때에 음식이 나왔다. 만세.
“이제부터 궁극의 비기를 알려드릴게요. 이렇게만 하면 웬만해선 남자들이 다 넘어올 거예요.”
비기라는 말에 그녀는 눈빛이 변했다. 대체 어떤 남자이길래 이렇게 해가면서까지 넘어오게 만들고 싶은 걸까. 궁금하긴 했지만 이틀짜리 알바생이 물어볼 문제는 아닌 듯 싶었다.
-------------------------------------------------------------------------------------------
분량 조절이 역시 문제.. 계속 수정하면 나아질 것 같지만, 인내심이 역시 문제!!
작가가 연애 경험이 없으니 주인공도 모쏠로 가는 구나.. 민호에 미안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