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꼼꼼히 체크한 것은 아니지만, 손학규 옹이 사실상 정계 복귀 선언만 한 열 번, 사실상 대권 도전 선언만 한 대여섯 번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추호 선생'에 이어 '사실상 선생'이 탄생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야 고백합니다만, 저는 특이하게도 손학규 옹의 정식 정계 복귀하는 날이 이제일까 저제일까 학수고대하는 네티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놀라시거나 의아해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한다든지 도탄에 빠진 이 나라에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든지 하는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고, 손학규 옹에 대해 어쩌면 아주 소박한 저 나름의 꿈을 품고 있어서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정치 뉴스에서 산처럼 쌓여 있는 '손학규 전 고문, 사실상 정계 복귀 선언!'의 기사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좋은 노래도 여러 번 들으면 질리는 법인데, 이렇게 물에 술 탄 듯한 모호한 처신이 지난 4월 총선 끝나고 나서 6개월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계속되는 것이 여간 짜증나지 않습니다. 잊힐 만하면 손 옹께서 언론에 나타나셔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시고는, 기자들이 “이를 사실상 대권 도전 선언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묵묵부답 강진의 스레트 집(토굴이 절대 아님)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최근만 해도, 추석 전후로 정계 복귀한다고 했다가 10월 중순에 그럴 거라고 바뀌었습니다. 오늘 10월 중순도 반이 지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보니 여전히 감감무소식입니다.
곰곰히 헤아려보니, 슬프지만, 손 옹의 정계 복귀 선언이 한 달포 늦어질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분의 사고 방식 내지 행동 패턴을 감안하면 말이죠.
요사이 문재인 전 대표가 송민순 회고록 파동으로 곤욕을 치르는데, 나름 정면으로 강력히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긴 합니다. 박지원 위원장이 집권 세력의 공세에 편드는 듯한 멘트- 엄밀히 말하면 빠져나갈 구멍은 다 파둔 노련한 언급 –를 얄궂게 날리고, 박원순 시장이 뚝심 있게 문 전 대표를 엄호 사격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의 대선 지지율이 낮아 맘 고생하고, 또 행정부시장을 역임하였던 인사가 문재인 캠프로 가서 마음이 즐겁지 않을 법도 한데, 불의를 보고서는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심지가 굳은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들과 달리 손 옹께서는 이런 계산을 하시는 듯합니다.
“이번 송민순 회고록 파문으로 문재인이 대선 후보군에서 나가떨어졌을 때 햇볕정책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쨍하고 나타나면, 더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차게 되는 것 아니야? 요즘 박근혜가 죽 쑤고 있어서 대통령 감투도 써볼 수 있겠구... 혹시 모르니까 좀더 간 봐야 쓰것다. 리얼미터 문재인 지지율이 14%쯤 떨어졌을 때 복귀하는 게 유리할까, 아니면 한 9% 될 때 움직이는 게 나을까? 아니, 이왕 기다린 것, 멘붕에 빠진 더민주 지도부가 단체로 찾아와 대선 경선에 나와 달라고 읍소할 때까지 기다려봐?”
마치 겁 많은 쥐가 마당의 음식물을 물어가려고 쥐구멍에서 망 보는데, 사람들 때문에 이도저도 못하고 계속 지켜보는 모습이랄까. 정치판에는 이런 저런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손학규 지지자님들께서는 제 글에 너무 노여워 마시고, 하루빨리 정계 복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국민도 있다고 말씀 전해 주셔서 그런 기사를 조만간 꼭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