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상 공격위험만으론 타격 힘들어.. '심리전' 성격 강해 세계일보|김민서 입력 16.10.19. 10:22 (수정 16.10.19. 10:22) 카톡 카스 페북 트윗 더보기 기사에 달린 댓글 수120 글씨크기 작게글씨크기 크게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한·미 양국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겨냥한 선제타격 발언이 잇따라 나오면서 그 실현 가능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대북 발언 수위가 강경해진 만큼 한·미 양국의 군사적 조치가 실제로 이행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대북 선제타격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며, 국제법적 한계와 근거가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겨냥한 선제타격론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이달 초 공개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 입구의 모습. 연합뉴스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미국의 선제타격론
국제법상 선제공격은 ‘예방적 자위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적의 공격 위협이 임박하고 이를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며, 이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위협의 정도에 비례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미국이나 한국에 대한 공격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선제타격의 국제법적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을 다루는 정책 결정 과정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전·현직 미국 관료와 관련 전문가들의 대북 선제타격 발언은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미묘한 해석 차이가 존재한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지난 12일 “아마도 (북한이) 핵 공격을 수행할 향상된 능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러면 바로 죽는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러셀 차관보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주어로 콕 집어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죽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라 볼 수 있다. 북한 외무성도 러셀 차관보 발언 이후인 15일 성명을 내고 “백악관부터 없앤다”며 발끈했다. 하지만 러셀 차관보 발언은 북한의 핵 공격이 ‘플랜A’(모든 일이 예상대로 될 때 진행할 계획)는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른 외교·국방 부문 인사들의 선제타격 발언도 ‘북한 핵·미사일의 실질적 위협이 임박한다면’이라거나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근접한다면’이라는 식의 전제 조건이 붙어 있다. 북한이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선제타격이 가능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18일 “북한 동향을 실시간 밀착 감시할 정보정찰자산과 핵·미사일 시설을 일거에 제거하는 데 충분한 미국의 첨단 정밀자산을 즉각 타격할 수 있는 거리에 전진배치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공격 운운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지적했다. 천 이사장은 “미국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능력과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북한을) 선제공격할 경우 정당한 자위권의 범위를 벗어난 군사행동이라는 법적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이 향후 수년 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 본토까지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더라도 발사 수시간 전에는 탐지할 수 있으므로 선제공격 전에 한국과 협의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선제타격 발언 배경은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이 나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빌 클린턴 정부 시절인 1994년 제1차 북핵위기가 불거졌을 때 북한 영변 원자로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폭격 방안이 검토됐던 게 대표적이다. 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새누리당 간사를 지낸 심윤조 전 의원은 “역대 미국 정부는 단 한 번도 군사적 옵션을 배제한 적이 없다”며 “미국은 군사적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유사시 선제타격 가능성은 열어두되 실제 강행 여부는 별개인 셈이다.
미국 조야에서 확산하는 선제타격 발언이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심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차두현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북한 김정은 체제가 핵·미사일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긴장을 고조시키니 미국의 대북 발언도 강경해지는 것”이라며 “선제타격 발언이 실제 군사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추가 대북 제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 동참 요구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는 표면적으로 미국 내 선제타격론이 확산하는 강경 분위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협상 쪽으로 돌아설 개연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차 연구위원은 “지금은 아니지만 내년 상반기쯤이면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며 “북한도 중·러가 참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대북 제재 결의 수위를 봐가며 향후 도발 수위를 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국제 참여를 위한 리처드슨센터’ 대표단이 지난달 9일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백악관의 사전 허가를 받고 나흘간 북한을 방문해 인도주의적 문제를 협의하고 돌아온 것에 미국 정책 변화 가능성의 복선이 깔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같은 맥락에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의 강한 레토릭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며 “리처드슨센터의 방북은 미국이 당국 간 대화에는 나서지 않더라도 민간을 통한 대화 채널은 열어두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면서 “미국은 현재 국면이 바뀐 이후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상황 정도는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