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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6.25 주요 행적 정리
게시물ID : sisa_4941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듣보
추천 : 15
조회수 : 1127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4/03/21 21:05:47



1. 이승만은 일찍부터 진지하게 북진통일을 주장해서 미국에서도 경계하고 있었음.(미국이 처음에는 이승만이 영어 되고 해서 좋아했는데,
컨트롤도 안되는 꼴통이란 사실을 안 후로 이승만을 매우 싫어했음) 얘한테 무기주면 진짜 전쟁내겠다 싶어서
미국은 최대한 이승만에게 무기를 안 주려고 했고, 실제로 적게 줬음.

2. 일본군 시절 계급은 좀 높았으나, 기술장교 출신이었던 채병덕을 참모총장으로 기용. 
(전쟁경험이 있던 장교들이 없지 않았는데,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서 뽑긴 한거지만 결국은 최악의 수로 돌아옴)

3. 전쟁이 나자 채병덕에게 서울을 절대 사수하라고 지시, 실전경험도 거의 없던(채병덕 참모총장 될때 나이 34세... 실전경험도 없다시피...)
채병덕은 군사에 있어 절대 하면 안되는 '축차투입'을 시전하고(북한군은 전차부대가 포함된 공격부대였는데, 제대로된 대전차무기도 없이
보병사단들을 모아서 반격한것도 아니라, 모이는대로 '차례차례' 밀어넣음. )
이 결과로, 총 9만명을 축차투입하였는데 이후 한강 남쪽에서 인원을 점검해본 바 3만명으로 줄어 있었음. 
총 6개의 사단을(그당시 국군 총 사단수 8개) 3일만에 날려먹음.

채병덕의 유명한 일화로, 맥아더가 급히 시찰을 와서 채병덕에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방어를 할거냐? 하자 채병덕 왈
'200만 의병을 모아서 막을 것입니다' 라는 개드립을 침. 맥아더는 바로 이승만에게 가서 채병덕 저새끼 짤라버리라고 함.


4. 전황이 급격히 밀리자 녹음한 방송을(국군은 서울을 사수할거란 내용) 방송하면서 자기는 기차를 타고 부리나케 대구까지 내뺌.
대구에 도착해서 측근들이 '가카, 그래도 너무 남쪽으로 오신거같습니다..'라고 하자 다시 대전까지 갔다가, 계속 밀리니 대구까지 도로 도망감.(이후엔 부산까지...)
이 와중에 한강다리를 폭파했고, 축차투입해서 박살난 병력들과 장비들이 미처 내려오기도 전이어서 사단들은 와해되고 장비들은 거의 전부가 유기...


5. 도망가기 전에 주요 기밀문서 소각이나 금괴반출 등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고, 조봉암 등이 북한군에게 잡힐 위험을 무릅쓰면서
일부 수습해서 겨우 후퇴함


6. 도망가는 과정에서, 김창룡에게 '인민군 점령 수중에 들어가지 않은 지역'에서 보도연맹원들을 처형하라 지시함.
이로써 일어난 사건이 그 유명한 보도연맹 학살사건.


7. 부산까지 간 상황에서, 자신의 재선이 어려워지자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시도했으나 국회에서 거부되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해산을 시도했으나 여론으로 인해 국회해산은 보류하고, 장택상을 중심으로 해서 결국 대통령직선제를 포함한 개헌안을 통과시킴.
소위 부산정치파동.(발췌개헌)


8. 인천상륙작전 이후 중공군이 참전하여 서울을 다시 내주게 되자 국민방위군을 편성했는데, 엄동설한에 일단 동원하고 보자 식의
인원동원이었으나 보급계획도 없었고, 보급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음(얼마되지 않은 보급조차 태반이 중간에서 횡령.). 이런 상황에서
장거리 행군을 시켜서 몇만명 이상의 장정들을 떼죽음을 시킴. 이것이 그 유명한 국민방위군 사건.


...



이런 미친놈을 국부라고 하는 인물들은 정신나간거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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