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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역시 마누라 뿐이지?
게시물ID : wedlock_768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언젠가그날
추천 : 32
조회수 : 124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7/04/03 17: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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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스트금지



 결혼 5년차.
 얼마전 결혼기념일에 대차게 싸우고
 왜 이 남자랑 결혼했을까
 내 가슴을 치며 후회하다가
 거실에 멍하니 30분을 생각하다보니
 불현듯 아까 그 남자의 헤진 옷깃이 생각나서
 원래 하려던 일정 다 취소하고
 택시 타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옷 고르는데 카톡이 온다.
 어디야-
 화 나고 뿔나서 홧김에 집을 나서버린 남편이다.
 결혼기념일이 평일이라
 둘다 직장에 연차까지 쓰고 어디 놀러가려 했었다.
 놀러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결혼할 때는 안 했던 반지도 맞추려 했었는데
 그만 나서던 길에 대판 싸워서 다 취소했고
 그 바람에 홧김에 가출했던 남편이
 마누라 어디냐고 한 시간이 지나 카톡을 했다.

 당신 옷 고르러 백화점이야
 라고 하니 ㅇㅇ 이라는 두 글자 뒤로
 바람처럼 택시를 타고 남편이 달려왔다.
 가출이라봤자 고작 집 앞 공원이었을게다.
 옷 서너벌 골라주니 남편 표정이 슬쩍 밝아진다.
 가끔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더니
 나를 슬깃슬깃 보더니
 대뜸 목이 마르다며 카페에 가자고 잡아끈다.

 달달한 아이스라떼 한 잔 쥐어주니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졌다.
 왜 갑자기 옷을 사냐고 묻기에 이유를 말했더니
 그는 말없이 자기 옷깃을 쳐다보았다.
 사진관에 전화 걸어 아까 취소했던 촬영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괜찮으니 오라는 답변이 왔다.
 옷 한보따리 들고 전철을 타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 싸웠냐는 듯 뽀뽀를 하고 손을 잡은 채 기념촬영을 했다.

 그게 몇 주 전의 일이다.
 지금 내 남편은 외국에 출장 나가 있다.
 어젯밤, 영상통화가 걸려왔는데
 남편이 불쑥 그런다.

 나 아까 샤워하고 나와서 침대 위에 내 옷 찾았잖아
 맨날 당신이 알아서 꺼내놔서 습관 됐나봐
 침대가 너무 크다
 그리고 그때 당신이 사준 옷, 본사 직원들이 다 예쁘대
 한국 옷들은 다 예쁘다고 갖고 싶다더라고
 와이프가 골라준거라고 했지

 뜬금없는 말에 약간 놀랐지만
 그 침대 며칠 안 쓸거고
 당신 곧 집으로 돌아올거니까
 너무 어리광 부리지 말고 얼른 쉬어,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조금 쑥스러웠다.
 나는 해가 지날수록 애교 같은 건 던져버린지 오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서로의 맘을 알아챌 수 있다는 건
 사회생활의 짬과는 또 다른 류의 짬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5년이란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끔은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고
 둘이 쓰던 침대를 혼자 다리 뻗고 쓰는 것도 좋다.
 그런 여유가 좋다.
 그리고 슬쩍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내 남편은
 마누라 뿐인가보다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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