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차.
얼마전 결혼기념일에 대차게 싸우고
왜 이 남자랑 결혼했을까
내 가슴을 치며 후회하다가
거실에 멍하니 30분을 생각하다보니
불현듯 아까 그 남자의 헤진 옷깃이 생각나서
원래 하려던 일정 다 취소하고
택시 타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옷 고르는데 카톡이 온다.
어디야-
화 나고 뿔나서 홧김에 집을 나서버린 남편이다.
결혼기념일이 평일이라
둘다 직장에 연차까지 쓰고 어디 놀러가려 했었다.
놀러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결혼할 때는 안 했던 반지도 맞추려 했었는데
그만 나서던 길에 대판 싸워서 다 취소했고
그 바람에 홧김에 가출했던 남편이
마누라 어디냐고 한 시간이 지나 카톡을 했다.
당신 옷 고르러 백화점이야
라고 하니 ㅇㅇ 이라는 두 글자 뒤로
바람처럼 택시를 타고 남편이 달려왔다.
가출이라봤자 고작 집 앞 공원이었을게다.
옷 서너벌 골라주니 남편 표정이 슬쩍 밝아진다.
가끔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대더니
나를 슬깃슬깃 보더니
대뜸 목이 마르다며 카페에 가자고 잡아끈다.
달달한 아이스라떼 한 잔 쥐어주니
그제서야 표정이 밝아졌다.
왜 갑자기 옷을 사냐고 묻기에 이유를 말했더니
그는 말없이 자기 옷깃을 쳐다보았다.
사진관에 전화 걸어 아까 취소했던 촬영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괜찮으니 오라는 답변이 왔다.
옷 한보따리 들고 전철을 타고 사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언제 싸웠냐는 듯 뽀뽀를 하고 손을 잡은 채 기념촬영을 했다.
그게 몇 주 전의 일이다.
지금 내 남편은 외국에 출장 나가 있다.
어젯밤, 영상통화가 걸려왔는데
남편이 불쑥 그런다.
나 아까 샤워하고 나와서 침대 위에 내 옷 찾았잖아
맨날 당신이 알아서 꺼내놔서 습관 됐나봐
침대가 너무 크다
그리고 그때 당신이 사준 옷, 본사 직원들이 다 예쁘대
한국 옷들은 다 예쁘다고 갖고 싶다더라고
와이프가 골라준거라고 했지
뜬금없는 말에 약간 놀랐지만
그 침대 며칠 안 쓸거고
당신 곧 집으로 돌아올거니까
너무 어리광 부리지 말고 얼른 쉬어,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실 조금 쑥스러웠다.
나는 해가 지날수록 애교 같은 건 던져버린지 오래지만
그런 것 없이도 서로의 맘을 알아챌 수 있다는 건
사회생활의 짬과는 또 다른 류의 짬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5년이란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가끔은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고
둘이 쓰던 침대를 혼자 다리 뻗고 쓰는 것도 좋다.
그런 여유가 좋다.
그리고 슬쩍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내 남편은
마누라 뿐인가보다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