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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 죽겠죠? 죽기 전에 내 이야기 들어봐요 글쓴이 입니다.
게시물ID : gomin_10435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riple_C
추천 : 1
조회수 : 35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3/24 22:48:51
꽤 오래 된 글이였죠...?

많은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까지는 시흥에서 일하다가 아버지께서 많이 위독하셔서 인천으로 다시 올라와 조그마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있었지만

병원비가 감당이 힘들더군요...

그 와중에 아버지는 더 심해 지셔서 2014년 3월 18일 저녁 10시 22분경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아버지께 고모님들이 온다고 큰아버지가 오신다고 말씀만 안드렸어도

결국 아버지는 큰아버지께서 엘리베이터가 햇갈려 1층과2층을 왔다갔다 하시는 사이

큰아버지 도착 5분전에  8층에서 운명을 다 하셨습니다.

형제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도 채 감지 못하시고 마지막 숨을 내쉬지도 못하신체...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시려 혀를 깨물고 가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렇다할 연고지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유언대로 화장을 해드렸습니다.

아버지를 모시던 날 아버지가 원하시던 그 곳에는 가족들의 눈물을 가려주기 위해서인지 비와 바람이 그렇게 심했습니다.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혼하셨던 어머니는 하루에 잠을 2시간씩 주무시며 병원과 집을 왔다갔다 하셨지만

이혼이라는 이유로 고모에게 맞기까지 했었구요....

저도 말리다가 몇대 맞았네요

사람이 많던 인천 부평 화장터에서 고모를 데려오라며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 했는데 맞아야 하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었드랬습니다.

5시간을 운전하고 내려가 아버지를 모시고 차마 몸이 좋지 못하여 자고 가라고 하지 못하여 미안하다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뒤로하고

작은 외할아버지 댁에서 어머니와 부둥켜안고 울다 잠들었습니다.

집에 올라와 아버지가 다 드시지 못했던 처방약 들과 옷들을 정리하며 새벽부터 저희 모자는 또 그렇게 울었습니다.

오늘 아버지 친구분의 카드로 내었던 아버지 병원비 160만원을 산제 처리하기 위해 병원에 다시 갔었고

제대로 처리가 되지 않아 30분을 기다렸어도 화를 내지 못했습니다.

사망신고도 어찌어찌  다 끝냈구요

어머니께 힘이 되어드려야 하는데 아버지 병원비조차 다 낼 수 없어 아버지 친구분의 힘을 빌려 겨우겨우 해결했었던 아들이

무슨 힘이 되어드릴 수 있을까 지금도 고민합니다

아직도 철이 덜 든 탓이겠지요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 꿈에도 찾아오지 않으심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 곳에서는 숨도 편하게 쉬시고 디스크 수술 후유증으로 다리도 절지 않으시고

젊은시절 일하시다가 절단되어 끝내 찾지 못했던 손가락조차 평범하게 변하여 그 곳에서 우리 걱정말고 살라며 우리 지켜주고 계신 것이라고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비록 제가 어렸을적 언젠가 부터 집에 돈을 가져오지는 못하셨지만 남에게 피해는 주고싶지 않으시다며 계속 일하셨습니다.

이제는 제가 이어받아 가장이 되어 일을 해야 합니다.

저도 아픈 곳이 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 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내일부터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갑니다.

힘들어서 죽고 싶었고 아무도 몰래 사라지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저를 의지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힘을 내어야 합니다.

비록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도 여자친구 하나 없이 손주도 안겨주지 못한 못난 아들이지만 아버지 그곳에서 더이상 아들 걱정 하지 않으시도록

잠깐만 시간내셔서 기도 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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