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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친구들과 인연을 끊었다
게시물ID : humorstory_4143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ohnBird
추천 : 35
조회수 : 10253회
댓글수 : 97개
등록시간 : 2014/03/25 04:46:24
 
그래 오늘이 그날이구나...
너희들과 내가 친구의 연을 끊은 날.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었지.
 
홍대였다.
아는 선배가 마침 근처에서 동창회 후
2:1로 남아 술먹고 있는데
분위기 심심하니 같이 놀자며 날 부른 것이다.
 
'아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2:2 미팅인가'
 
나는 뛰쳐나갔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은
1. 그 선배의 나이가 나보다 6살 많다는 것.
2. 그리고 동창회였다는 것.
3. 그러므로 여자들 역시 나보다 6살이 많다는 건
아이큐 50만 넘어도 할 수 있는
흔한 귀납적 추론이었으나
 
가끔 남자는 그런 때가 있다.
우뇌가 두개골을 가득 점령하는 때가...
일 더하기 일은 백만스물둘이라고 답하는 때가...
불행히도 그때 내가 그랬다.
 
망연자실한 마음으로 술자리에 참석하니
이미 다들 많이 취해있었다.

문제는..
선배는 내게 자꾸 웃겨보라며 개드립을 강요했고
누나들은 영계가 왔다며
쉴새없이 나를 볶아댔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웠다.
나도 집에선 귀하게 자란 자식인데...
 
그렇게 술이 나인지 내가 술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2시간 정도 시달렸을까...
갑자기 선배가 피곤하다며 간다고 했다.
아아... 드디어 끝이구나.
 
인간이 고통을 견뎌낼 수 있는 건
모든 고통에는 결국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련가.
 
나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선배의 지속적인 개드립 강요와
누님들의 짖궂은 섹드립 세례를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ㅋㅋㅋ 그럼 너만 가" 였다.
 
움찔했다.
나는 기지를 발휘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 그럼 저만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라며 시치미 + 능청 패시브 스킬로 작별 멘트를 날렸으나
누님들의 손 끝과 눈빛은 정확히 선배를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난 누님들에게 포획당했고
상황은 절망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선배가 자리를 뜨자 누님들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다.
한 번은 자기가 호신술을 배웠다며
나에게 치한 연기를 해보라는 거였다.
 
존나 어색하게
"아가씨.. 돈, 명예, 권력.. 그 중에 뭘 원해?"
라며 별 같잖은 멘트로 연기했는데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확 꺾는거다.
 
어찌나 세게 꺾었는지 난 비명을 질렀고
술집 내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술집은 50평도 넘었는데...
 
가끔 페이스북에 여자랑 싸우는 남자가
동영상으로 올라오는데 나도 그걸 보며
얼마나 못났으면 남자가 여자랑... ㅉㅉㅉ 했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는
그들도 나와 같았겠거니... 한다.
 
이어서 궁극에는
 
"오늘밤 누가 이 남자를 차지하느냐"
를 가지고 둘이 실랑이를 벌이다
 
"니가 보기엔 우리 둘 중에 누가 낫니?"
라는 이지선다형 문제로 출제되었다.
 
나는
"둘 다 별론데요"
라며 제 3의 길을 걷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차마 이성적으로 선택을 하기란 불가능한 경우라
마음속으로 유치원때나 하던
"어느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 보세요 딩동댕"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랜덤으로 K 누님을 찍었다.
 
정말 단 0.0001%의 사심도 없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이것은 운명이 정한 랜덤일 뿐이었다.
K 누님이 어떻게 생겼냐면...
이게 참 곤란한 문제인데...
그래.. 그냥 이외수다.
 
이외수...
출생 음력 1946년 8월 15일 (경상남도 함양)
가족 배우자 전영자, 아들 이한얼, 이진얼
학력 춘천교육대학교 (중퇴)
데뷔 1972년 소설 '견습 어린이들'
수상 2010년 제6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문화 예술 부문
 
역시나 J 누님의 표정이 싸늘히 얼어붙었다.
얼굴에 패배의식이 가득했다.
난 마음이 약하다.
어떻게든 풀어줘야만 했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K누님이 낳은거 같아요... 아이를..."
 
J 누님이 빵 터지며 의기양양해 했고
난 또 K 누님과 J 누님을 번갈아가며 들었다 놨다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해야만 했다.
 
다시 2시간이 흘렀을 무렵
이 상황을 타개할 묘수가 떠올랐다.
다른 남자들을 끌어들여 누님들의 노리개로 앉히고
나는 이 자릴 뜬다는 것.
다시말해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었다.
 
난 곧바로 누님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제가 영계라고 하시는데.. 그건 사회학적인 영계죠
생물학적으로.. 액면가로 보면 누나들보다 나이 많게 볼걸요?
제가 진짜 영계들 소개시켜드릴게요."
 
액면가는 자기들보다 많게 볼거란 말에
누나들이 간단히 수긍해버렸다.
노안이라서 기뻤던 적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ㅅㅂ...
 
나는 핸드폰 연락처를 뒤져
평소 가장 얄미웠던 두 놈을 추려내었다.
먼저 L군에게 전화했다.
 
"여자 소개시켜줄게 빨리나와!"
 
"이쁘냐?"
 
(그래도 질문까지 하는걸 보니 나보단 낫더라..)
 
"한명은 34-24-34고 또 한명은 글래머야!"
 
"야 택시타고 간다! 30분내로 도착!"
 
뚝...
뒤이어 Y군에게 연락했고
상황은 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훗... 남자들이란...
 
곧 놈들이 들어오는데
설레이던 표정들이 걸음이 가까워질수록
난처한 표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저런 표정... 딱 한번 본적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하다가 본진에 핵 맞았을 때...
 
녀석들이 앉자마자 나는
 
"후래자 석잔!"
 
이라며 세잔 연속 원샷을 시켰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내 마지막 배려였다.
맨정신으론 견디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누나들은 이미 많이 취해있었고
김흥국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친구들에게 들이댔다.
 
핑계를 대며 일어날 구실을 만드려는 친구들에게
누나들이 L 선배의 친구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무서운 L 선배...
놈들은 쉽게 체념하더라...
 
다행히 누나들은 뉴페이스의 등장 이후로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기회는 이 때였다.
 
"전 내일 오전에 일이 있어서.."
 
상투적인 구라였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일어나는 내 손목을 Y군이 잡았다.

아직도 잊을수 없다.
그 악력...
그리고 슈렉에 나온 장화신은 고양이의 눈망울...
 
난 거기다 대고
"하하 짝 없는 사람은 빠져줘야지"
라며 매정하게 돌아섰다.
 
거리를 나서니 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오고 있었다.
이것은...
쇼생크 탈출?
 
쇼생크 탈출을 보면 팀로빈스가 극적인 탈옥 후
팔을 벌려 온 몸으로 비를 맞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순간 비로소 왜 쇼생크 탈출이 명작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지나친 오버일까.
 
그런데 곧 두놈이 내 앞길을 막았다.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L군이 소리질렀다.
 
"야! 34-24-34라매!!! 34-24-34라매!!!"
 
단전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분노의 사자후였다.
 
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쿨하게 답했다.
"응. 머리-가슴-배 ㅋ"
.
.
.
(그리고 훗날 다른놈에게 같은 수법으로 당했다)
(삶은 인과응보다)
 
이어서 Y군이 항의했다.
 
"야! 글래머라매!!! 글래머라매!!!"
 
"응. 얼굴이.ㅋ"
 
벙찐 표정의 둘에게
어깨를 툭툭 쳐주곤 나는 황망히 달아났다.
 
이후로 녀석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가끔 한 다리 건너 생사만 듣고 있을 뿐이다.
 
센치한 밤이다.
이 자릴 빌어 사과하고 싶다.

계산이라도 내가 하고 왔어야 했는데...
이대로 나갔다간 벼락이라도 맞을까 싶어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비야...
그치거라...
 
 
 
##########################
 
가끔 맘 먹고 오유에다 글 쓰면
맨날 게시판 못 지킨다고 까여왔어여...
그래서 맨날 눈물을 머금고 자삭했어여...
나름 5년차 오유인인데 막상 글 올리려면 왜그랬나 모르겠어요.
 
근데 이번엔 유머글에다 올리면
100% 베오베 간다고 친구가 그래서 다시 올렸어요.
 
며칠전 페북에 썼던 글인데
후루룩 스크롤 내리고
"요약좀"
이러시면 울어버릴거에요.
 
저 실은 베오베에 페티쉬가 있어요.
보내주세요.
 
이따가 흥분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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