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하루 일과가 또 지나갔다.
이제 세 살 된 우리 아기. 아침에 일어나 먹여주고, 입혀주고, 놀아주고, 재워주고...
그렇게 하루종일 아이랑 부대끼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있다.
벌써 깜깜한 밤. 아이도 고된 하루였는지 꿈나라로 떨어졌다.
이불을 덮어주고 나도 옆으로 돌아누워 몸을 쉬었다.
우리 아기.. 이제 세 돌..
기차 장난감을 너무나 좋아한다.
철도 박물관이 의왕시에 있다던데 언제 우리 아기 데리고 한번 놀러나 가볼까.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할것 같은데 멀어서 아이가 잘 버틸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아기가 조금 더 어렸을 무렵, 유모차에 태워 지하철을 탄 일이 있었다.
장애인 휠체어 두는 자리에 유모차를 두었다. 아기는 유모차 안에 잠들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일반좌석을 보니 빈 자리가 있길래 유모차에 브레이크를 걸어두고 유모차 차양을 덮은 뒤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유모차와 대각선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였지만 멀지 않은 자리였다.
한 두 정거장 지났을까,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내게로 다가오셨다.
"애기엄마, 그러지 말지.."
"네?"
깜짝 놀라 아주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기 혼자 저렇게 두면 어떻게 해. 누가 나쁜맘먹고 아기만 쏙 빼가면..."
쓸데없는 오지랍이라고 여겨졌지만 무슨 상황일지 상상이 미치니
가슴이 서늘하고 섬뜩해서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왜 그랬지. 낯선 사람 가득한 지하철에 아기를 혼자 두다니.'
유모차로 다가가는 동안에도 아주머니는 혼자 나즈막히 중얼거리고 계셨다.
"쯔쯔쯔..너무 위험해, 너무 위험해."
나는 유모차 손잡이를 손아귀에 힘을 주어 천천히 꽈악 쥐었다.
그제서야 얼음칼로 벤 듯한 가슴의 서늘함이 스르르 없어지고
무겁게 내려앉는 안도감이 몸을 감쌌다.
'미안해. 미안해, 아가."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 때 내가 왜 그랬지? 너무 강심장이었어. 뭘 몰랐어.
다음에 철도박물관 갈 때는 유모차를 가져갈까 말까?
이제 아기가 손 잡고 멀리까지도 잘 걸어다니니까 유모차 쓸 일이 없어졌어.
차 트렁크에 실어놓고 안쓴지 꽤 됐지.
그 동안 우리 아기 많이 컸어.
그렇지? 걷기도 잘 걷고.
그렇지? 그 때 지하철에서 우리 아기 잃어버렸던거 아니지?
유모차 잘 끌고 집에까지 돌아왔었지?
왜 무서운 글 보면 그런 이야기 많잖아.
알고보니 엄마가 아기 잃어버린 뒤 정신이 나가서 아기가 없어진지도 모르고
아기가 항상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사는 글 말이야.
나도 사실은 그 때 지하철에서 아기를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렸던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고 사는 거... 아니지?
유모차를 이제 안 쓰는건 우리 아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이제 커서 유모차를 잘 안 타기 때문이야.
유모차는 차 트렁크에 있어.
우리 아기는 내 옆에 누워있어. 따뜻한 온기도 느껴지고.
나는 오늘 아기랑 된장국에 밥도 먹고, 공놀이도 해주고, 같이 티비도 보고,
샤워하기 싫어해서 혼도 좀 내고, 토닥여서 재웠잖아.
.......
이렇게 행복한데.
지금 이렇게 행복하고 따뜻한데..
이 따뜻함이 내 상상이라면?
이렇게 생생한데 그래도 혹시 상상이라면?
깜깜한 밤에 상상의 나래는 끝도 없이 펼쳐졌다.
왠지 모를 서늘함에 나는 어두운 방 안을 더듬거리며 아기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