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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스압) 아간조와 록시의 이야기.
게시물ID : dungeon_3279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겨울바다♡
추천 : 5
조회수 : 2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25 17:09:07
- 한 낮의 강도 -



'대체 언제까지 따라올 생각이지......'

 

일주일 전부터 나를 따라오는 존재가 있다.

낡아서 색이 바랜 천을 입가까지 올려쓴 그 체격은,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균형잡혀있었고,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왼손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비정상적으로 긴 장갑과

날카롭게 빛나는 눈, 그리고 검은 빛이 감도는 길고 뾰족한 귀였다.

그렇다. 이 속을 알 수 없는 흑요정이 일주일간 나의 곁을 떠나지않고 맴돌고 있다.

 

사실 흑요정이란 그리 쉽게 접할 수 있는 종족이 아니다.

특히 활이 아닌 검을 사용하는 흑요정 검사란 더욱 희소하다.

하지만 그대, 흑요정 검사를 마주했을 때 긴장의 끈을 놓치말아라.

호기심과 같잖은 기사도에 취해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다시는 검을 쥘 수 없게 될지도 모르니.

<보이는가. 저 보이지않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이라는 아라드의 격언은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아라드의 검사들이 접하게 되는 흑요정이란 대부분 거칠고 사나운 뒷세계의 암살자들이었으니,

이렇게 그들을 경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의 검은 항시 상대의 등 뒤와 약점을 노린다.

 

그, 아니 그녀라고 해야겠군. 그녀와의 첫 만남도 그리 유쾌하지는않았다.

 

"그.. 그.. 지갑을 여기 두고 가라!"

 

백주대낮에 길을 걷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난 그녀가 내게 던진 첫마디였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이 강도는 내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있었다.

상대의 정면에서 나타난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여긴 마을의 한복판이었다.

게다가 한낮의 강도라니...

 

"......"

 

"......"

 

그때 옆의 분수에서 힘차게 물줄기가 뿜어져 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더듬더듬 말을 뱉는 모양새라니...

 

"훗.. 이거 원"

 

내가 할 수 있는 건 콧방귀를 끼며 길을 재촉하는 것뿐,

그리고 실소를 흘리며 몸을 돌리려는 찰나, 뒤에서 매서운 검풍이 나를 덥쳐왔다.





- 붉은 눈 -



< 체쳉! >

검을 굳게 쥔 손이 살짝 아려왔다. 이유도 없이 나를 공격한 상대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주위에는 아직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이 공포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군. 따라와라."

 

사람들을 피해 숲 속으로 장소를 옮긴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다시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법 괜찮은 검술이었지만 평정심을 잃은 듯, 그녀의 검 끝은 흔들리고 있었다.

굳이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힘을 조절해 상대를 제압하는데 주력했다.

오래 지나지않아 주인 잃은 검 한 자루가 땅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고작 그런 실력으로 강도질인가... 한심하군. 흑요정 검사란."

 

나의 이 말이 아니었다면 시뻘겋게 변해버린 그녀의 눈을 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땅을 짚은 손은 떨리고 있었다. 꽤나 자존심이 상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실력 차라면 어렵지않게 패배를 인정하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그녀를 뒤에 남겨둔 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길을 재촉하기로 했따.

 

그때였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며, 등 뒤에서 거대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그것은 야수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살기였다.

아까와는 너무나도 다른 기세에 나는 그녀의 패거리가 마각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무인의 긍지조차 상실한 쓰레기였군. 뒤에서 기습한다고 그게 통할 것 같나!"

 

하지만 고개를 돌린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패거리 따위가 아니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순수한 분노로 이글거리는 야차의 피를 눈에 담은 체,

심장의 바닥을 긁는 듯한 괴성과함께 뿜어내는 거친 숨.

 

'저 눈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그녀는 풀을 잔뜩 먹인 활시위에서 막 해방된 활과 같이 튕겨져 왔다.

세상의 강한 적은 충분히 만나보았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것은 정녕 처음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피와 분노의 뜨거운 열기만이 느껴질 뿐, 한가닥 이성조차 느껴지지않았다.






- 카잔 증후군 - 



'카잔 증후군! 흑요정에게도 카잔 증후군이?'

(카잔 증후군 :오래 전 소멸의 신 카잔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정신붕괴상태.
증세는 눈동자의 색깔이 변하고 신체능력이 대단히 상승하지만
이성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일단 이 증세가 나타나면 현재까지는 치료 불가.
지나친 감정의 폭발을 피하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없다.
가끔 한쪽 손이 변태하기도 하는데 모든 환자에게서 발생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변해버린 눈과, 떨리던 손이 겹쳐지면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검을 잡은 자라면 능히 알 수 있을것이다.

 

더는 방심할 수 없었다. 방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광풍과도 같은 그녀의 공격은 쉴새없이 나의 빈틈을 노려왔다.

마치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폭발한 듯, 거침이 없어보였다.

 

그 순간, 태양을 등진 그녀가 하늘 높이 몸을 날려왔다.

무게를 실은 공격으로 일격에 나를 요절낼 심산이었던 듯하다.

아무리 힘이 강해도 이처럼 무게가 실린 공격을,

그냥 받아서 튕겨낸다는 것은 자살행위.

그리고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했다.

검을 횡으로 치켜올려 검을 막아냄과 동시에 나는 검의 끝을 살짝 땅으로 향하게 했다.

대륙을 종횡하면서 몸으로 익힌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이번 상대 역시 날을 따라 흘러가는 스스로의 검과 마찬가지로 균형을 잃고 허우적댔다.

 

'빈틈!'

 

온 힘을 다해 그녀에게 몸을 부딪혀갔다. 무언가 하얀 천이 뺨을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한 싸움이었다. 그녀의 공격은 빠르고 강력했지만, 절묘하지 못했고 빈틈이 많았다.

그리고 온 몸이 땀으로 젖어버렸을 즈음, 나는 간신히 상대의 목숨을 빼앗지않고

땅바닥을 바로 마주하게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호기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싸움의 와중에 장갑이 벗겨진 그녀의 왼손은

마치 수분을 모조리 흡수당한 나무줄기처럼 흉측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형이라 생각했지만 그 손에서 뿜어져나오는 극히 사악한 기운에

곧 눈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깨어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곁을 지키고 있다가 붉게 변한 태양이 긴 그림자를 만들어갈 때

그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까와는 다른 그 맑은 눈동자를 보는 순간 떨어지지않던 입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주머니의 돈을 몇 푼 던져주고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는 소리, 뒤를 따라오는 발자욱 소리까지.

일주일 째 계속되고 있는 소리. 하지만 대화는 없었다.





- 록시 - 



언제부턴가 주위의 풍경이 너무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지도에 이런 좁고 외진 길이 나올 리 만무하고... 아무래도 그녀에 대해 신경을 쓰다,

떠돌이 장사꾼이 알려준 길을 벗어난 것 같다. 한심하군......

 

"어디로 가는거지?"

"엘븐가드, 대삼림의 경계지역이지. 부탁 받은 것이 있어서."

 

그녀였다. 당황스러웠다. 너무 오랜 침묵에 입이 근질근질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기다렸다는 듯 바로.

 

"알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우리 흑요정의 고향과도 가깝다.

보아하니 길을 잃은 것 같은데... 길 안내가 필요하지않겠나?"

 

바람이 불어서일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워낙 자존심이 강한만큼 이런 말을 하기도 힘들었을테지.

아마 이 말을 꺼내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의 뒤에 펼쳐진 하늘에는 저녁 노을이 깔려있었다.

그녀의 피부색과 꽤 어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부탁을 거부하지않기로 마음 먹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긴 했지만,

확실히 나는 지금 길을 잃은 상태였다. 그리고 왠지 거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않았다.

 

"마음대로..."

"그렇다면...... 이쪽으로 계속 가면 헨돈마이어를 거쳐 엘븐가드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길을 좋아한다면..."

"그 길로 하지. 인적이 드문 길로."

 

그녀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조용히 내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그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는듯 싶더니 더이상 소리를 내지않았다.

 

"내 이름은 록시.

괜찮다면...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나, 방랑자?"

 

그녀의 목소리가 전과는 다르게 생기에 차 있다고 느낀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우리는 몇 번을 빙빙 돌아왔던 길을 이제 제대로 걸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귀신을 품은 그녀가 나의 이름을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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