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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전쟁 영화 매니아를 열광시킨 할리웃 영화가 있었다. 이완 맥그리거 주연에 소말리아를 배경으로 미군의 화끈한 전투씬을 그려낸 영화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작전중 적진 한가운데 추락한 두대의 Black Hawk 헬기와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된 미군 부대의 활약상을 줄거리로 하고있다.
당시 투입됬던 군인들의 고증을 통해 사실감 넘치는 전투 묘사로 인기를 끈 이 영화는 1993년 10월 3일 오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Mohamed Farah Aidid)를 체포하기 위해 투입된 미국의 델타포스, 레인저, 160 특수 항공 작전대등이 소말리아 민병대와 벌인 18시간의 실제 교전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배경은 이렇다. 기근에 시달리는 소말리아를 위해 세계 각국에서 지원한 식량 배급이 번번히 군벌 아이디드 조직에 의해 독점되자, 미군은 식량의 원활한 배급을 위해 최대 걸림돌인 아이디드와 그의 핵심 측근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아이디드가 은신해 있다고 첩보가 입수된 건물로 특수 부대를 출동시킨다. 보도 자료상 명분은 그랬다.
애초 30분으로 예정되 있던 아이디드 납치 계획은 헬기 추락과 더불어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헬기 승무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된 미군 병사들이 사살되고, 살아남은 조종사 Mike Durant는 민병대에 사로잡힌다. 작전에 투입된 미군도 압도적인 숫자의 민병대에 가로막혀 도심 한가운데 고립되고, 자력으로 탈출할 수 없음을 파악한 지휘관 Garrison 장군은 인근 파키스탄 PKO 부대와 말레이시아 PKO 부대에 긴급 지원을 요청한다. (PKO = Peace Keeping Operation = UN 평화 유지군)
주변 PKO 부대들의 지원하에 가까스로 도심을 탈출하면서 마무리 된 이 날 작전으로 미군은 19명이 사망하고, 소말리아인은 1,00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수로는 미군의 압도적인 승리지만 애초 계획과 달리 교전이 확대되고 미군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작전은 실패한 것으로 간주됬다. 이 작전의 실패 책임을 지고 미 국방장관 Les Aspin이 사임했으며, 총 지휘자 Garrison 장군은 이후 퇴역시까지 머리박고 지내야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할리웃 전쟁 영화와 비슷하다. 다른점이 있다면 승전이라고 하기엔 약간 애매한 결론정도 ? 사실적이고 웅장한 총격전, 영웅적인 병사들의 분전, 누구도 뒤에 남겨두고 후퇴하지 않는 다는 미군의 Leave no man behind 정신,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가족의 사진을 꺼내보는 미군의 휴머니즘, 그리고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압도적인 숫자의 적군들...영화는 흥행을 위한 기본 요소를 다 갖춘 셈이다.
헌데, 영화를 다 보고도 석연치가 않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는다.
부족한 식량을 공급해주는 미군과 UN의 PKO 부대에 대해 소말리아 인들은 왜 그토록 적대적인걸까 ? 기아 해결을 위한 그들의 숭고한 헌신이 소말리아인들의 RPG(로켓 추진형 폭탄-대 기갑용 화기)와 AK 소총 세례를 받는 이유가 뭘 까 ? 밥그릇에 밥 채워주겠다는 사람에게 총부리를 들이대는 비 상식적인 상황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그것도 어느 특정 집단 정도가 아닌 거의 전 모가디슈 주민들이 다 UN PKO 병력에 적대적인 모습이다.
의문이 하나 더 있다. 미군은 왜 군벌 아이디드 체포에 집중한 걸까 ? 아이디드는 어떤 사람이었고, 미국과 아이디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영화가 알려주지 않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위해 먼저 소말리아라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를 살펴 보자.
1960년에 탄생한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은 9년만에 바레 장군(Mohamed Siad Barre)이 일으킨 쿠데타로 전복되고 이후 1991년까지 22년간 1인 독재체제로 유지되왔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인접국 에티오피아를 견제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수에즈 운하에 대한 군사적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은 독재자 바레를 지지한다. 미국은 바레정부의 군사력 강화를 위해 1970년대 후반부터 매년 5천만불(600억)씩 지원했고, 1980년대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총 579백만불(6,500억)에 달하는 무기 원조를 했다. 덕분에 바레 정권이 강력한 독재력을 발휘할 수 있었음은 당연한 결과다.
이 돈들이 무기 구입에 쓰이지 않고 경제 재건이나 식량 문제 해결에 쓰였다면 아마 오늘날 청해부대가 해적을 상대로 총격전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소말리아 재앙의 씨는 이렇게 독재정권의 무력 강화를 집중적으로 지원한 미국에 의해 뿌려졌다. 부패한 바레 정부는 정권 유지를 위해 소말리아 전역의 군벌을 육성했고, 미국에서 받은 자금을 배경삼아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해나갔다. 미군의 블랙호크 헬기를 격추시킨 민병대의 RPG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 사준 셈이다.
한수 더떠 바레가 불러들인 미국의 꼭두각시 IMF, IBRD는 소말리아 경제를 절단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우리나라에도 IMF가 요구했던 공공분야 요금인상, 민영화, 포괄적 복지 혜택 축소등을 바레 정부가 충실히 따른 결과 빈부 격차는 커졌고, 경제활동은 마비됬으며 최악의 기아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바레 정권의 지원하에 IMF는 소말리아를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식탁위에 먹음직스럽게 세팅해 준 셈이다.
국민이 죽어나가건 말건 바레 정부는 축재와 인권 탄압에 몰두했다. 부패로 얼룩진 바레의 독재 22년간 소말리아 국민들이 미국과 국제사회를 어떻게 인식했을 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무기지원의 댓가로 바레에게서 십억 배럴짜리 원유 채굴권을 얻어낸 미국과, 소말리아의 시장 경제를 절단낸 국제 사회에 대한 반감은 어느덧 높아져 있었다.
1991년 1월 무장 군벌중 하나였던 아이디드 장군(Mohamed Farrah Idid)이 반군 단체를 규합, 바레를 축출한다. 블랙 호크 다운에서 미군이 체포하려했던 아이디드가 처음 역사속에 등장한 게 이때다. 그와 미국과의 관계는 초기 좋았다. 보고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아이디드 역시 미국을 이용해 힘을 키우고 싶어했고, 미국 역시 아이디드를 제 2의 바레로 키우기위해 적극 지원했다. 군벌 아이디드 역시 과거 미국이 바레를 통해 간접 지원한 군벌중 하나였다 .
하지만 애초 순수하지 못했던 둘의 만남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과 아이디드는 틀어졌고 오사마 빈 라덴, 사담 후세인등과 함께 아이디드는 미국의 Most Wanted Top 10 (제거해야 할 적 Top 10)에 오르는 극적 반전을 연출한다. 적대적으로 돌변한 아이디드를 제거하고, 친미 성향의 군벌을 키우는 것이 미군의 지상 과제가 되었다.
그러던 차에, UN이 한국군 상록수 부대 252명을 포함 총 5,300명에 달하는 평화유지군(PKO)을 파병했다. 민간인을 보호하고, 식량 원조를 지원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미군은 작전권을 UN에 반환하고 나서도 철수 하지 않았다. 식량지원과는 무관하게 아이디드 제거 및 소말리아 친미 정권 수립이라는 목표 달성을 못한 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군은 아이디드 제거를 위해 독자적인 작전 및 민간인 거주지역 폭격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간인 700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미군 오폭사고가 있었다. 시체를 땅에 직접 묻은 소말리아측은 사망자를 700명으로 발표한 반면, 하늘에서 폭탄 떨어뜨린 미군은 끝까지 사망자수를 75명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군은 아이디드의 은신처로 오인, UN 사무소를 폭격하기도 했고, 국경없는 의사회 사무소를 오인 공격하기도 했다. 주 특기가 실수로 폭탄 투하하기 수준이다. 그러고도 사과나 반성 없이 "소말리아에서 무고한 사람은 없다" 는 쩌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소말리아인들의 분노가 용암처럼 부글 부글 끓어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번엔 실수없이 제대로 해보자고 지상군을 투입한 것이 Black Hawk Down의 소재가 된 그 작전이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미군은 그 때에도 블랙호크와 AC130 전폭기를 동원해 민간인 거주지역을 무차별 폭격했다. 도심에 갇힌 미군 부대에게 총탄 세례를 퍼붓고, 사살된 헬기 조종사의 시신을 개마냥 길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던 당시 소말리아인들의 가슴속에는 이렇게 키워진 미국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포위된 미군은 탈출과정에서 인질로 잡은 시민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 또 한번 소말리아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나라도 저 정도 당했다면 미군에게 총질했겠다.
소말리아인들에게 미국은 경제를 파탄낸 IMF의 배후세력, 독재자 바레를 군사 지원한 민중의 탄압자, 일반인 주거지역에 폭탄을 투하해 떼죽음 시키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마치 한국전쟁후 굶어죽는 한국인들을 돕겠다는 명분아래 일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시내 여기 저기 폭격을 가해 민간인을 살상하고 있던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이해가 쉽겠다. 마침 악만 남은 사람들 앞에 그 주범 미군이 떡 나타났으니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레드 카펫 깔아주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성난 소말리아인들의 공격으로 이번 작전 역시 실패한 미군은 국제적 비난여론에 직면해 1994년 드디어 완전 철수했다. 총잡이 미군덕에 평화 유지 임무 자체가 엉망이 되버린 UN군도 1995년 3월 철수한 이후 소말리아는 현재 12개 군벌간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아수라장이 되어있다. 군벌 아이디드는 결국 반대파에 의해 살해되었다.
과거 바레 정권이 발굴하고, 미국이 군비 와 무기 지원으로 키워낸 소말리아 군벌들은 1,500명에 달하는 해적을 양성해 2010년 기준 년간 445건의 해상 납치를 자행하고 있다. 군벌 입장에 선 세계 콘테이너 물동량의 절반, 원유 수송의 70%가 지나가는 소말리아 앞 바다는 금고가 떠 다니는 노다지인 셈이다. 군벌의 비호아래 확대 추세인 소말리아 해적들의 1인당 년간 소득은 8만불(9천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매년 400명씩 그 수가 증가하고 있고 해적 활동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단일 군벌 조직이 최대 13만명에 이르는 대 부대라는 점과 상대해야 할 개별 군벌수가 워낙 많다보니 연합군도 해적들의 근거지, 본토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
2009년 4월 4일 인도양 해상에서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됬던 삼호 드림호가 2010년 11월 6일 950만불(100억)이라는 어마 어마한 몸값을 지불하고 근 1년 반만에 풀려났다. 당시 지불된 금액은 소말리아 해적들이 받아낸 몸값 중 최고가로 기록되며, 이후 한국 상선을 소말리아 해적들의 납치 대상 Wishlist 1위에 등극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소말리아 역사에 개입해 빚어낸 혼돈이 심지어 한국 회사와 한국인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개봉작 Black Hawk Down은 가해자가 마치 피해자인것처럼 가장해서 만든 영화다. 영화속 소말리아인들은 자기들을 돕겠다는 선량한 미군에게 총질을 해대고, 시체를 모욕하는 미개한 민족으로 비쳐지고 있고 미군은 동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들처럼 표현하고 있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소말리아인들이 이유없이 미군에 적대적일수는 없다. 위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판단컨데, 미군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을 키운 장본인은 바로 미국 자체였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은 이런 진실에 대한 접근은 완전히 외면한 채, 1993년 10월 3일 있었던 작전 내용 자체만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도 전쟁의 리얼리티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연 그 영화가 전투씬 리얼리티의 100분의 1만큼 이라도 역사의 진실을 담으려는 노력을 했는지 진지하게 따져묻고 싶다. 대답대신 "Shut the fuck up"을 외치며 M16 갈겨대지 않을까?
출처 | http://blog.naver.com/nicklim/501118070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