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힘든 출산은 아니었다. 남 들과 비교하면 말이다. 하루 종일 걸렸다는 사람도 있고 12 시간 걸렸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출산 도중 몇가지 가슴 철렁할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나는 병원에서 돌아와 아이와 함께 집에 둘이 앉아 있다. 신랑은 일을 하러 갔고 몸조리를 해준다는 친정 엄마와는 전부터 데면데면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난지 3일이 조금 지난 딸과 함께 적막한 집에 있다.
신랑을 따라 지방으로 이사 왔다. 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임신을 하고도 출산 이틀 전까지 일을 하느라 집 안을 유심히 볼 여유가 없었다. 거의 모조리 새로 산 가구는 내 취향 보다는 신랑의 마음에 들었다. 심플한 디자인의 검은 소파도 거실 한 켠을 차지한 책장도. 마치 남의 집에 사는 것 같다. 주인이 없는 집에 잠시 주말만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불편하고 껄끄러웠다. 범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책장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야옹거린다. 어린 아이와 동물은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했던가...
아기는 하루 종일 안겨있다. 품에 안겨서는 잘 자다가도 눕히기만 하면 금새 깨서 울어 버린다. 마치 나에게서 떨어지기가 두려운 것처럼... 세상이 낯설은 걸까. 차갑고 새로운 소리가 나는 이 곳이 무서운 걸까. 아니면 검사 때문에 어제 종일 병원에 남겨져 있는 동안 나를 잊은 걸까. 부서질 듯 작은 사람이 나를 올려다 본다.
아이는 나를 닮았다. 신랑에겐 말 안 했지만 나만 닮은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내 아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내 품에 안겨 나를 올려다 보는 작은 얼굴. 갑자기 아이의 얼굴이 한없이 낯설어 보인다. 작고 앙증맞은 코도 크고 아름다운 눈도. 모조리 처음보는 듯하다.
새카만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 본다. 아니. 나를 지나서. 아이의 시선은 내 눈도 얼굴도 아닌 소파 뒤의 어딘가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 책장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괜히 등뒤가 서늘해져 뒤를 돌아볼 수가 없다. 대신 아이의 검고 깊은 눈동자를 본다. 사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던, 거부하고 싶은 진실이 나를 마주 본다. 내 등 뒤에서 아이와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구부정한 새카만 그림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