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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속의 천진난만
게시물ID : readers_770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1
조회수 : 33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14 19:28:42
발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쿵, 쿵, 쿵, 쿵! 땅아 꺼져라, 건물 바닥아 내려앉아라, 속으로 주문이라도 외우는지 온몸의 힘을 실어 쿵쿵대는 건 통로 옆자리 편집자다. 타달, 타달, 타달. 곧이어 휴 하고 한숨 소리가 새어나올 듯 지친 발소리는 보나마나 창가 자리 디자이너. 

자박자박 가벼운 발걸음은 이쪽, 기름 안 친 경첩 소리 같은 찌그덕찌그덕은 저쪽. 딱, 따각, 딱, 딱 성마른 발소리는 오늘도 신발장 앞에서 단화를 10초쯤 노려보다가 하이힐을 집어 들었을 구석 자리 편집자다. 발소리를 들으면 누가 오고 가는지, 기분은 어떤지 대충 짐작이 간다. 

‘따삐르’라는 동물이 있다. 얼굴은 코가 좀 짧은 코끼리 같고, 눈은 코뿔소를 닮았으며, 몸통은 돼지랑 비슷하단다. 새끼 때는 몸에 줄무늬가 있다가 크면 없어지는 것도 멧돼지와 같다. 

그런데 이 묵직한 녀석들, 걷는 모양새가 뜻밖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사뿐사뿐, 발소리도 내지 않고 살금살금 다닌다니 말이다. 

  <사뿐사뿐 따삐르> 김한민 글·그림, 비룡소 펴냄  
<사뿐사뿐 따삐르> 김한민 글·그림, 비룡소 펴냄
그림책 <사뿐사뿐 따삐르>는 바로 이 따삐르가 주인공이다. 흔치 않게 말레이시아 정글이 배경이다. 게다가 수묵으로 표현한 정글이라니, 신선하다. 눈이 시원하다. 

수묵으로 표현한 정글, 신선하다


코끼리가, 코뿔소가, 긴팔원숭이가 발을 구르고 날개를 퍼덕이며 저마다 시끌벅적 떠들어대는 정글을 가로지르며 엄마 따삐르와 아기 따삐르가 걷는다. 잠든 악어가 깰세라 살금살금, 꽃 한 송이, 개미 한 마리라도 밟을세라 사뿐사뿐. 투실투실한 녀석들이 어깨를 옹송그리고 발끝으로 걷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난다. 불룩 튀어나온 배가 꼭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주머니 같다.

그런데 이 녀석들 봐라. 발 빠른 표범이 쫓아와도 사뿐사뿐, 총 든 사냥꾼이 나타나도 사뿐사뿐. 그저 제 식으로 제 갈길 간다. 게다가 아기 따삐르는 총소리에 겁먹은 표범에게 조언도 한다. 자기처럼 해보라고. 어떻게? 들키지 않게 살금살금, 바스락 소리도 안 나게 사뿐사뿐!

재기 발랄, 천진난만,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시점을 바꾸어서 사냥꾼의 시점으로 따삐르와 표범이 도망치는 장면을 그렸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저 나뭇잎만 살랑거릴 뿐 시치미를 뚝 떼고 입 다문 정글, 온갖 풀이 뒤엉킨 풀숲과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모두가 꽁꽁 숨어버린, 제 품에 안은 식구들을 쉽게 내놓지 않을 녹록지 않은 정글 말이다.

얼마 전에 이사를 했다. 이사 오기가 무섭게 위층 아기 엄마가 갓 구운 파이며 싱싱한 감귤 봉지를 안길 때 짐작해야 했다. 볼이 발그레하니 귀여운 위층 오누이는 온종일 탁구공처럼 통통 뛰어다닌다. 높이뛰기를 하는지 멀리뛰기를 하는지 천장이 울릴 때마다 내 두개골도 깡깡 울린다. 요 꼬맹이들아, 제발 따삐르처럼!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6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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