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환사들과 영웅들의 정신이 성공적으로 융합되자, 고요한 침묵을 깨고 안내음성이 개전을 알렸다.
“인베디드는 피할 수 없다. 어떻게 하겠느냐?”
장비를 구입하면서 그레이브즈의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영웅들의 전장에 참전할 때마다 수도없이 겪어야 했던 아무무의 시련의 시간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잘못하면 전멸이다, 아무무.”
“네……. 하지만 블루를 포기할 수도 없어요, 신지드 아저씨.”
“역 인베디드군. 결정됐다.”
신지드의 확인을 요구하는 말에 특유의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아무무는 그레이브즈의 역 인베디드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스를 빠르게 벗어난 아무무들은 용 아래쪽 부쉬를 일차 집결지로 정하고 아군 도마뱀 장로쪽 정글로 진입했다. 고대 골렘의 첫 젠 타임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었다. 부쉬에 도착한 일행이 잠깐 숨을 고르며 때를 기다릴 때, 작지만 분명히 전해지는 온기가 아무무의 어깨를 데웠다.
“떨지 마, 아무무. 할 수 있어.”
“고마워, 애니야.”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애니를 바라보고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아무무는 빙긋 마주 웃었다.
“연애질은 거기까지. 이동하자.”
신지드가 앞장섰다. 봇라인 삼거리의 작은 부쉬까지 단번에 내달린 아무무들은 거기서 또 잠시 대기했다. 넥서스에선 첫 번째 미니언 떼가 생성되어 각자의 목표를 향해 종종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대 골렘이 젠되자 신지드가 앞장서 아무무들을 이끌었다. 개울에서 고대 골렘까지는 지척이었다. 그 언덕을 오르는 순간 눈앞에 시비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비르!!”
신지드가 득달같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제 막 개전해 경험을 쌓지 못한 시비르를 잡아 넘기는 데 성공하면 퍼스트 블러드는 우리 것이다. 앞뒤 생각해 볼 여력도 없이 달려드는 신지드의 뒷모습의 위태로워 보였다.
시비르가 신지드를 향해 부메랑검을 내던지곤 재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시비르의 그것은 날카로운 날을 곤두세우며 신지드의 옆구리와 아무무들 사이를 정확하게 가르며 첫 교전의 시작을 알렸다. 애초에 1:5 싸움이 될 리 없었기에 시비르의 도망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아무무는 그녀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스펠실드가 아니라 부메랑검이지?’
시비르가 고대 골렘 앞 부쉬로 몸을 숨겼고 신지드는 필사적으로 그 뒤를 쫓았다. 시비르에게 들킨 이상 적들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고대 골렘조차 처치하지 못하고 위협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빌어먹을.”
시비르의 모습을 시야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곳이었기에 부쉬를 이탈한 시비르를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빠르게.”
일행이 빠르게 고대 골렘을 처치하고 아무무의 블루 버프 획득을 도왔다. 신지드, 아무무, 애니가 포탈을 여는 동안 봇듀오가 라인으로 복귀하기 위해 나서는 찰나 용 쪽에서 느닷없이 아리의 현혹의 구슬이 그레이브즈와 소라카를 훑고 지나갔다. 가슴을 관통하는 그 서늘한 느낌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이었다. 포탈을 열던 아무무와 애니가 귀환을 취소하고 다급하게 그레이브즈에게 합류했지만 신지드는 이미 넥서스 안전지역으로 소환돼 버렸다.
신지드가 놓쳤던 시비르가 아리와 조우했고 그레이브즈는 섬뜩한 느낌에 가까운 봇 타워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퇴각하는 봇듀오의 뒤를 아무무와 애니도 서둘러 쫓았고, 아리와 시비르가 일행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 공격적인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미드라인 미니언 시야에 자르반과 블리츠크랭크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다리우스는 어디 있나!”
신지드가 다리우스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외치는 순간 그레이브즈와 소라카의 허리에 차가운 것이 휘감겼다. 아무무들이 1차 집결지로 삼았던 용 아래 부쉬였다.
“다리우스!”
아군 봇듀오가 끌려간 부쉬에서 다리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퍼스트 블러드는 내꺼다, 애송이들.”
다리우스의 거대한 도끼가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의 호를 그리며 그레이브즈를 난자(亂刺)했다. 소라카가 다급하게 원딜러를 구명키 위해 2단 힐을 퍼부었지만 당황한 그레이브즈는 뒤의 애니와 아무무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쳐.”
아무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급하게 부쉬를 향해 점착식 붕대를 던져 다리우스를 명중시킨 아무무는 그대로 그것을 당기면서 녹서스의 실력자에게 달려들었다. 다리우스에게 달려든 아무무는 정확하게 목표의 머리를 헤딩해 상대를 기절시켰다. 지척에서 달려드는 아리와 시비르를 피해 애니가 아무무를 지나치려는 순간 현혹의 구슬과 부메랑검이 동시에 부쉬를 향해 날라들어왔다.
다소 위급한 상황을 벗어난 그레이브즈가 부쉬 아래에서 산탄사격으로 아무무를 지원했지만 블루버프를 가진 그는 좋은 타겟이었다. 아리와 시비르, 다리우스가 서로 버프를 가져가겠다는 듯 쟁탈전을 벌였다. 이제 자르반과 블리츠크랭크까지 합류를 마친 상황. 소환사와의 연결이 끊기며 느껴지는 고통이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끼면서 아무무는 사력을 다해 애니에게 말했다.
“도망쳐.”
‘퍼스트 블러드.’
팀의 사기가 땅바닥으로 처박혔다. 곧장 라인전을 벌일 수 없었던 애니와 봇듀오는 그대로 자군 타워 근처에서 포탈을 열었다. 첫 번째 귀환 후 바로 탑라인에서 파밍을 개시한 신지드는 흥분한 듯 했다. 라인을 무한정 밀어대는 모습이 불안해보였지만 아무무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네 친구의 블루 버프, 고맙구나.”
“고마우면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아무무를 죽이고 블루 버프를 빼앗아 온 아리를 맞아 미드라인에 선 애니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장난기 가득했지만 날이 매섭게 선 말투였다.
“곤란하네, 사례할 것도 없고…….”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후우……. 가슴, 뛰게 해줄까? 아니면 멈추게…….”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느닷없이 애니의 손에서 작은 불꽃이 아리에게 날아들었다. 아리가 다급하게 몸을 비틀었지만 날아오는 불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정확하게 가슴을 노리고 들어온 불꽃에 아리는 불같이 화를 냈다.
“붕괴? 이 건방진 꼬맹이가!”
“응. 붕괴. 지금부터 언니의 멘탈을 붕괴시킬 테니까. 재밌겠다.”
달려드는 아리를 피해 애니가 종종걸음을 옮겼지만 그 경로를 예상한 매혹이 날아와 꽂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끌려가는 애니였지만 그 얼굴을 평온해 보였다. 잇따라 현혹의 구슬을 던져 애니를 명중시킨 아리의 허리에 기분 나쁜 붕대가 날아와 감긴 것은 순간이었다.
“제길.”
아무무의 머리가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몸을 비틀어 등으로 받아낸 아리에게 재차 멘탈붕괴 애니의 불꽃이 날아들었고 탈진과 점화가 동시에 걸렸다. 맞점화로 응수하며 점멸로 아무무들에게서 벗어난 아리가 이빨을 가는 소리가 애니에게 까지 들렸다. 미드라인에서의 첫 교전이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했지만 다리우스는 달랐다.
던져 넘기기와 맹독의 자취를 비웃듯 흥분해 라인을 밀던 신지드를 홀로 맞아 솔킬을 낸 것이었다. 10분이 되기 전에 2킬이 난 상황이었지만 아무무는 조용히 정글로 돌아가 사냥을 재개했다.
블루를 탈취한 데 성공한 아리였지만 영웅들 간의 상성은 녹록치 않았다. 대인전 최강의 누커 애니의 명성은 그냥 쌓아진 것이 아니었다. 아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애니가 아무리 잘 큰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무렵 봇라인에선 블리츠크랭크가 맹활약하면서 그레이브즈와 소라카를 위협했지만 시비르는 마나 관리의 허점을 보이며 상황을 보다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하는 대치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직도 슬픈 미라의 저주가 활성화되지 못한 아무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봇라인으로 향하고 있었다. 좋지 못한 기억이 있는 용 아래 부쉬에서 잠깐 대기하면서 상황을 살피던 아무무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블리츠크랭크가 순간 가속을 붙이면서 그레이브즈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가며 부메랑 이연타를 시전하는 시비르는 자신과 블리츠크랭크를 향해 산탄 사격하는 그레이브즈의 공격을 스펠실드로 캔슬하고 아군 봇듀오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비르의 명을 재촉하는 결과가 됐다. 스펠실드가 시전 되자마자 아무무가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비르의 뒤쪽으로 우회해 정확하게 붕대를 던진 아무무의 기습에 적이 기절했고 그레이브즈와 소라카의 집중 공격이 쏟아졌다.
“데마시아!”
그 순간 적 부쉬 쪽으로 내려와 잠복 중이었던 자르반4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마시아의 깃발이 전장에 꽃이고 용의 일격으로 돌진하는 자르반 4세의 공격은 매서웠다. 그대로 대격변이 일어나 그레이브즈와 소라카, 아무무가 그 안에 갇혔다. 그레이브즈가 빨리 뽑기와 점멸을 연이어 사용하면서 대격변을 벗어났지만 블리츠크랭크의 그랩이 그를 다시 함정 속으로 잡아끌었다. 혼전 속에서 그레이브즈의 무고한 희생자가 작렬했고, 그 후폭풍에 휩쓸려 시비르가 사망했다. 그때였다. 어느새 혼령 질주를 써가며 적에게 합류한 아리의 구슬이 아무무들을 모두 휩쓸었다.
‘더블킬.’
그 일격으로 아군 봇듀오의 목숨을 취한 아리는 곧장 아무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자르반과 아리의 공격 속에서 블리츠크랭크가 체력이 바닥난 채 퇴각하는 것과 애니가 서둘러 내려오는 것을 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오지 마. 오면 죽어.”
애니가 잠깐 멈칫거렸다가 돌아서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무무는 도망치는 블리츠크랭크의 등 뒤로 붕대를 던졌다. 블리츠크랭크와 아무무는 거의 동시에 사망하면서 다소 지루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던 봇라인에 선혈이 낭자(狼藉)했다. 아무무는 그저 아리와 자르반이 아군 봇라인 타워를 파괴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사이 탑라인에서 또 교전이 벌어졌다. 봇으로 내려오던 애니는 아무무의 만류로 돌아갔지만 곧장 미드라인으로 복귀한 것은 아니었다. 신지드와 다리우스의 격렬한 싸움의 승자는 누가 봐도 불 보듯 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우스의 체력이 절반을 남기고 승부가 결정났다. 다소 늦게 도착한 애니는 티버 소환으로 패시브를 발동시킨 뒤 점화를 비롯한 모든 공격을 다리우스에게 퍼부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었다.
“빨리도 오는 군.”
신지드의 냉소에 애니는 화가 났다. 다리우스를 넥서스 우물로 돌려보낸 애니는 포탑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라인을 정리하고 귀환했다.
“아저씨는 무모해.”
“아리를 대책 없이 키우지 말고 미아콜이나 제대로 해라.”
애니는 그를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그랬다. 신지드의 뒤를 쫓지 말라고. 상대를 던져 넘기고 그의 뒤에 놓으려는 습성은 피아(彼我) 구분 능력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 차례 격렬한 전투가 소환사의 협곡 전체를 휩쓴 뒤에 승부의 균형은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아무무의 성장은 더뎠고, 다리우스는 일방적으로 신지드를 학살하고 있었으며, 그레이브즈와 소라카는 자르반과 아리의 계속되는 로밍에 허덕이고 있었다. 두 번째 용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패배의 느낌은 더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7번이나 죽임을 당한 신지드가 두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용 앞에서 벌어진 팀파이트에서 대패하자 접속을 종료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용이 탈취당한 것을 소라카의 와드로 확인한 이후 젠이 되자마자 적들이 아군의 시야에서 모두 철수했고, 이미 불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조해진 팀이 반 강제적으로 팀파이트를 시작한 것이 패착이었다. 시비르도, 아리도 애니의 상대가 아니었다. 문제는 다리우스의 타켓팅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였다. 아무무가 봇듀오와 함께 아래쪽에서 진입해 용 사냥에 집중하던 적들 한복판에서 미라의 저주를 시전했고, 애니가 순식간에 시비르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한 템포 늦게 미드라인 쪽에서 전투에 참여한 신지드가 독구름을 뿌리면서 들이닥쳐 애니와 아무무를 끌어당기는 다리우스를 뒤로 잡아 넘겼다. 그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신지드가 다리우스를 잡아 넘기면서 아무무와 애니의 안전이 조금 더 보장된 반면, 적들 사이에 구멍이 뚫려버린 그 사이로 그레이브즈의 무고(無辜)한 희생자가 무고(無故)하게 작렬됐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자르반이 용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고, 곧장 조금 뒤쪽에 있던 소라카의 등 뒤에 깃발을 꽂았다. 평소보다 더 길게 뻗어지는 듯한 그의 창이 아군 봇듀오의 옆구리를 스치며 상흔을 남기는 동시에 더킹 모션으로 빠르게 돌진해왔다.
데마시아의 왕자가 강력한 돌진기를 성공시키면서 그레이브즈와 소라카를 공중으로 띄우자 그들에게서 일직선상에 포지션을 잡은 아리의 구슬이 망설임 없이 날아들었고 곧이어 여우불 세 개를 그레이브즈에 모두 퍼부으면서 빈사에 가까운 상태를 만들었다. 소라카가 땅에 착지하면서 정신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3단 힐을 시전하려는 찰나 첫 번째 혼령질주로 소라카에게 보다 가까이 접근한 아리의 매혹이 소라카를 적중했다. 힐 시전에 필요한 그 짧은 시간마저 허락하지 않은 아리는 결과적으로 그레이브즈의 퇴로까지 막아섰다.
다리우스는 신지드의 독구름이 우습기만 했다. 살의로 가득 찬 그의 잔혹한 눈빛이 희번덕거렸다. 도끼를 양손으로 잡고 크게 돌면서 아무무와 애니, 신지드를 타격했다. 그 한 차례 공격만으로 출혈이 일어나면서 끔찍한 고통이 아무무들을 정신을 산란(散亂)시켰다.
“죽어라.”
신지드에게 사정없이 휘둘러지는 도끼질에 자비는 없었다. 다리우스의 일격에 몸이 마비되는 듯 균형을 잡을 수 없어진 신지드는 그 순간 모든 희망을 접었다. 아무무는 돌아섰다. 그레이브즈는 봇라인쪽으로의 퇴각을 포기하고 빨리 뽑기로 미드라인 쪽으로 물러섰지만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소라카의 힐 범위를 넘어선 것이었다. 살릴 대상이 없어진 소라카가 스스로를 살리기 위한 선택을 했지만 자르반을 상대로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신지드와 소라카가 사망했다.
위에는 다리우스와 블리츠크랭크, 밑에는 아리와 자르반. 아무무들은 용의 보금자리 앞에서 꼼짝없이 갇혀버린 형국이었다. 시비르가 일찌감치 사망한 덕에 운신의 폭이 넓어진 블리츠크랭크는 도망칠 테면 도망쳐보라는 투로 위협적으로 돌진해왔고,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는 참새마냥 킬 나는 데를 지나칠 리 없는 다리우스가 지지 않겠다며 달려들었다. 쿨타임이 돌아온 애니와 그레이브즈가 아리라도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혼령질주로 그들의 사거리에서 벗어난 여우는 멀리에서 구슬을 날리면서 깔깔거렸다.
천지를 준동하는 대격변이 일어나 아무무와 애니, 그레이브즈를 가둔 자리는 마치 녹서스의 단두대와 같았다. 그레이브즈와 애니, 아무무가 차례대로 다리우스의 도끼에 두 동강 났다.
‘ACE.’
용 앞 팀파이트가 끝난 뒤 팀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신지드는 접속을 종료했고, 적들은 방해받을 염려 없이 내셔 남작을 공격하고 있을 것이 강 건너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무는 자신의 피로 범벅이 된 붕대를 고쳐 감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레이브즈가 말했다.
“전투지속시간이 끝났다.”
“네.”
“항복하자.”
아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애니도 그레이브즈를 거들었다.
“그만하자, 아무무.”
“애니. 나는 싸워야 해.”
전장 어디에서도 적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내셔 남작을 처치한 후 최후의 결전을 위해 정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몇 분 더 버틴다고 희망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냐. 우리는 미쳐 날뛰는 다리우스를 막을 재간이 없다.”
“아무무. 네 모습을 봐. 만신창이가 되어있어.”
“하지만 나는……. 싸우고 싶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걸. 나는 포기야, 친구들. 바빠서 이만.”
고집을 부리는 아무무와 일행을 두고 희망을 포기한 소라카가 신지드의 뒤를 이어 접속을 끊었다. 적들이 미드라인을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예상대로 바론 버프를 두른 모습이었다. 자르반과 다리우스를 필두로 포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항복하지 않을 생각인가? 큭큭큭. 뭐, 나야 고마운 일이다만.”
애니의 활약으로 버티고 있던 외곽타워가 파괴되었다.
“사람 죽이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미친개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낄낄. 뭐라고 해도 상관없다. 살인이야 말로 강함의 증거며 녹서스의 미덕이다.”
내곽타워까지 무너졌다. 최후의 보루인 억제기 앞 포탑만 남은 상황. 아무무의 도발은 다리우스를 더욱 즐겁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미니언들이야 말로 무고한 희생자로군.”
“그들은 언제나 그랬죠.”
그레이브즈의 혼잣말을 아무무가 받았다.
“정말로 싸울 작정이냐?”
아무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넥서스를 지나면서 그가 말했다.
“나는 애니가 좋아요. 이 명예로운 전장에 등록된 챔프만 해도 100명이 넘어요. 적으로 만나지 않고, 함께 싸우는 이 순간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요. 전 이 순간을, 조금 더 오래됐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내 살이 찢겨져 나가는 단 몇 초라 할지 라도요.”
“하지만……. 하지만 아프잖아! 아프잖아, 아무무!”
“그러니까 너는 거기에 있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아무무가 억제기 타워 옆에 섰다. 외로움이 묻어나 늘 나있는 얼굴의 눈물 자국이 피 얼룩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애니가 우물을 나섰다.
“너도 싸울 생각이냐?”
“응!”
“어째서?”
“그가 저기에 있으니까.”
그레이브즈는 실소했다. 처음엔 작게 큭큭 거리던 그가 결국 파안대소(破顔大笑)했고,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애니를 보면서 아무무가 희미하게 웃었다.
“나랑 같이 놀자.”
“너도 같이 놀래? 재밌겠다.”
억제기앞 타워의 공격을 무시하고 돌격해 들어온 다리우스에게 붕대를 던진 아무무를 따라 애니가 티버를 불러냈다. 적들의 귓가에 슬픈 미라의 저주가 들려왔지만, 무슨 일인지 그 목소리는 꽤 즐거워보였다.
“후우…….”
그레이브즈의 소환사는 그의 영웅을 컨트롤하던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그리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여전히 게임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소환사에게 말했다.
“애니 빙의 돋네. 잊고 있던 정체성을 다시 찾았냐?”
“애니쨔응은 아무무쨔응을 사랑한다능~ 하악하악.”
2012년 대한민국. 게임방에 무고한 희생자가 작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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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 번 올리기 무지 힘드네요..필터링에 걸리고, 글이 짤리고..
하이텔 시절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