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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언어의 배반’ 김준형·윤상헌 한동대 교수
게시물ID : readers_77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릴케
추천 : 1
조회수 : 3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6/15 17:48:46
“뒤틀린 권력이 교묘하게 만든 단어들, 잘 알고 써야”

“살색, 검둥이, 처녀작, 환향녀, 여류작가, 바른손 등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적 언어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례들이지만,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위장하고 있는 언어배반의 사례들을 고발하고 싶었습니다.” 

<언어의 배반>(뜨인돌) 공저자인 김준형 한동대 교수(왼쪽)는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사회에는 뒤틀린 권력이 판을 치고 있고, 그 뒤틀린 권력이 언어를 배반시키고, 우리는 또 무의식적으로 그런 언어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언어’ 즉 언어의 배반 사례는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들 중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것들인데, 권력의 작동 방식이 반영된 말들이다. 책은 공정사회, 국가, 시장, 여론, 국격, 권리, 긍정성, 경험, 성실, 평범, 순수, 진정성, 착함 같은 일상 언어에 담긴 속내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김 교수가 보기에, ‘국가’를 절대화하는 이면에는 위장된 소수의 권력이 국가의 모습을 가장한 경우가 많다. ‘긍정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이들은 초대형교회 목사,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작가들, 대기업들, 일부 의사들이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인 것이다. 

미국에 출장 중인 김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인간사회에 권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모든 권력관계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어떤 식으로든 담겨 있다”고 했다. ‘식의주’가 아니라 ‘의식주’라고 표현하는 것도 “먹을 것이 절실한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말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학자인 김 교수와 함께 언어의 배반 문제를 고찰한 언어학자 윤상헌 한동대 교수(오른쪽)는 미국 위튼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다. 윤 교수는 e메일 인터뷰에서 “말을 뒤틀어 놓으면 그 왜곡된 단면을 통한 역사와 사회의 인식 역시 왜곡되게 마련”이라며 “언어를 뒤트는 힘이 바로 욕망에 중독된 권력이며 그 뒤틀린 언어가 바로 ‘권력에 중독된 언어’ ”라고 했다. 윤 교수는 최근 뉴스타파 보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조세피난처’에도 뒤틀림이 있다고 했다. 

“ ‘피난’이란 것이 재난을 피하여 가는 것인데, 정당한 세금이 왜 재난입니까? 당연히 ‘조세회피처’나 ‘조세도피처’가 맞지요.” 그는 “우리는 지금 말문이 막히는 ‘언어도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언어를 통해서 개인의 의식이 형성되고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말문’이 막힌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불법적인 쿠데타로 나라의 헌정질서를 흔들고 무고한 국민을 살상한 범법행위를 한 자들이 버젓이 국가원로 대접을 받고 불의한 권력으로 모은 수천억원을 추징하려는 시도를 법리적 해석 운운하며 ‘위헌’의 소지가 있느니 하는 것이 언어도단의 좋은 예입니다.” 윤 교수는 ‘착한 햄’ ‘착한 몸매’에 나온 ‘착함’은 타자성을 부정하는, 자기 중심의 언어 표현이라고 말한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성실성은 성실성으로 포장된 무사유성일 뿐이다. 

윤상헌 교수

두 저자는 “지배 권력이 정교하게 위장한 언어”를 발굴해 편지를 주고받았다. 김 교수가 언어의 역사적 배경·정치학적 의미로 운을 떼면, 윤 교수가 이어받아 언어학적 설명으로 화답한다. 

“세계적으로 좌파는 퇴조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 이념 논쟁이 거센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말 한국에서는 좌파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니지요. 언어에 숨은 권력이 만든 가짜 이념 논쟁 때문입니다.”(김준형) “좌빨이라는 표현이 실체적 진실을 떠난 무의미한 기표(말소리, 철자로 표현되는 기호의 겉모습)임에도 그 이미지 속에 자신의 왜곡된 욕망의 기의(기호 안에 담긴 의미)를 끊임없이 삽입하고 타자에게 그 왜곡을 강요한다는 데 있습니다.”(윤상헌) 


왜 편지 대화의 형식을 빌려 성찰을 나누었을까. 김 교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쓰자는 의도”라고 했다.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피하기 위한 형식인 셈이다. “같은 학부에서 십여 년 동안 가까이 지내며 자주 대화했던 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윤 교수는 “학문과 신앙을 공유하는 벗과 동행하는 것이 평소에도 기쁜 일이었는데 그런 소통과 나눔의 한 컷의 사진 같은 것, 질박한 의미의 집단 지성적 실천의 일환, 알게 모르게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책 출간을 두고 이런 말을 독자에게 남겼다. “말을 빼앗기지 않으면 얼은 죽지 않습니다. 정신이 오롯하게 살아있으면, 언어가 배반의 기호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집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존재의 무게를 제대로 담으려면, 레비나스의 표현대로, 존재의 얼굴을 들여다보아야 하지요. 얼굴은 ‘얼’의 ‘꼴’(모양)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불합리한 편견이 담긴 용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저항 없이 지나칠 때 그 단어를 태생시킨 거대한 권력의 차별구조에 편입되고, 차별행위를 조장할 수도 있다”면서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권력에 중독된 배반의 언어들을 쓰면서 편견을 확산하는 공범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6151314432&code=9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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