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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시대의 유행이 되었나
게시물ID : readers_124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tmflrns
추천 : 11
조회수 : 578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4/03/29 16:13:01
"인문고전을 읽으면 두뇌가 혁명적으로 변한다. 두뇌가 혁명적으로 변하면 천재가 될 수 있다. 천재가 되면 자본주의의 승리자가 되 0.1%의 부자가 될 수 있다." 뜯어보면 간단한 삼단논법이다. 2011년을 평정한 베스트셀러의 논지다. 1만부만 나가도 대박이라는 요즘 출판시장에서 14만부가 팔렸다. 이지성 작가는 단행본 한권으로 이후 이어진 인문고전 읽기 열풍을 '리드'했다. 이 책의 흥행을 두고 여러가지 평이 쏟아졌다. 어떤 이들은 한국사회가 경제사회에서 문화사회에서 넘어가는 징후라며 칭송했다. 다른 이들은 자기계발서, 처세울이 겉포장만 바꾼 것이라고 폄하했다. 둘 다 맞는 소리일 수 있다. 둘 다 틀린 얘기일 수도 있다. 어떠한 사물과 사건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점점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책이 유행한지 햇수로 4년이다.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리딩 권하는 사회로 만들었나.


해방이후 00년도 까지 우리사회는 계속해서 고속성장했다. 60년대와 70년대에는 청년 신화가 숱했다. 정주영과 이병철은 전설이 되었다. '하면 된다'가 한국의 국시였다. 정주영회장은 말했다. 해봤냐고. 80년대로 가면서 기회는 점점 닫혔다. 고도성장으로 일자리는 많았지만 월급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는 점점 보수화 되었고 청년들은 이에 저항했다. 정치권은 386세대를 받아들였다. 90년대에는 IT산업이 젊은이들을 빨아들였다. 00년대로 들어오면서 사회의 문은 거의 닫혔다. 한때는 게임이나 패션산업이 중공업과 IT와 영화라는 과거의 영광을 대신할 새로운 산업동력 후보생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청년경제가 되어주지 못했다. 패션산업은 기성세대를 위한 명품브랜드 위주로 재편됬다. 게임산업은 저변을 넓히는 데 실패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부가 기성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전되지 않았다. 이제 젊은이들에게 남은 건 기성세대가 지배하는 경제구조에 편입되는 것 뿐이다. 이른바 스펙사회의 시작이다. 지원자는 넘쳐나는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사회는 높은 토익점수, 자격증, 학점, 학벌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이 잣대가 효율적인 잣대인지는 상관없다. 사람을 계량하고 평가하고 구별하는데 편리하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자유시장의 논리는 사회의 전방위로 스며들었다. 스펙사회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질서가 되었다. 스펙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 경쟁에서 실패하는 것은 개인의 탓이다. 개인이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고, 자격증과 학점, 학벌을 갖추는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실패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사회탓을 하는 것은 징징거리는 것일 뿐이다. 아무도 귀담아주지 않는다. 신문지면과 잡지에 나오는 무수한 성공신화들이 이들의 죄책감을 부추긴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상고출신이지만 주경야독해서 고시에 합격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월급쟁이었지만 회사를 직접 창업해서 금융권을 제패했다. 사람들은 이 무수한 영웅담을 보며 이 열린 '기회'의 사회에서 노력과 의지가 부족한 자신의 남루한 모습을 보며 자신을 더욱 채찍질한다. 


그렇다고 스펙을 쌓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스펙은 이미 표준화 되었다. 표준화 된것을 이루려면 돈이 든다. 우리 사회는 꿈만 변호사, 의사, CEO로 표준화된 것이 아니다. 꿈을 이루는 방법 또한 표준화되고 정형화되었다. 아나운서가 되려면 아나운서아카데미를 다녀야 한다. 회계사가 되고 싶으면 나무경영아카데미에 다녀야한다. 로스쿨에 가고싶으면 한림법학원의 수업을 들어야한다. 행정고시에 붙고 싶으면 학원의 정해진 PSAT기본강의와 경제학, 정치학 1,2,3순환을 수강해야 한다. 토익점수를 올리고 싶으면 스타강사의 현강을 수강해야한다. MBA에 가고싶은 회사원이라면 GMAT학원을 다니면 된다. 하물며 사기업에 가려해도 SSAT강의를 들어야 한다. 외국인들은 아연실색한다. 흡사 꿈의 제조업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비용을 지불하고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탄다. 그러면 학원들이 몸에 여러가지 부품들을 박아준다. 제조업과 다른점도 있다. 제조업에서는 공정을 마치면 왠만하면 완성품이 된다. 하지만 꿈의 제조업에서는 불량품이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수백만원을 들여도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원하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다. 수많은 아나운서 학원의 학생중 실제 TV에 나오는 영광을 누리는 승리자는 극소수다. 사람들은 불안하다. 스펙 권하는 사회에서 스펙을 높이려 노력한다. 스펙을 높이는 데에는 돈이 세게 든다. 하지만 돈을 세게 들여도 결과가 만족스러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패에 불안해하고 떠는 사람들은 의지할 곳을 찾는다. 그들은 멘토를 찾았다. 


어려서부터 경쟁과 시장의 논리에 단련된 젊은이들은 그렇다고 아무나 우러러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철저하게 시장을 이긴 경험이 있는 자만 따른다. 우리는 더 이상 현인을 상아탑이나 성당에서 찾지 않는다. 우리는 시장에서 현인을 찾는다. 시장의 시대다. 안철수와 박경철은 그래서 영웅이 되었다. 안철수는 기업인이다. IT시장의 승리자다. 박경철은 투자자다. 그는 개미투자자도 여의도 증권기관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회와 시장 구조의 모순도 승리자만이 지적할 수 있다. 안철수와 박경철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학자나 종교인이 사회모순을 지적하는 것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들은 무섭도록 냉혹한 시장에 맞서본적도 없고 이겨보지도 못한 사람들이다. 백면서생의 탁상공론, 공자님 말씀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안철수나 박경철이 얘기하면 다르다. 그들은 시장을 이겨본 사람이지만, 시장의 모순을 꼬집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함께 연대해서 구조를 바꾸어야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비극은 여기서 잉태된다. 대중은 사회를 바꾸는데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들은 단지 멘토들에게 시장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원할 뿐이다. 안철수나 박경철이 사회모순을 얘기하는 순간 그들에게는 단지 또 하나의 교수나 종교인이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시장을 이기는 방법은 가르쳐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 비결은 재능과 운 그리고 감각에 달렸다. 어느 것 하나 곱셈 가르쳐주듯 알려줄 순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한번 좌절한다. 의자빼앗기 같은 스펙경쟁은 만만치 않다. 시장에서 승리한 사람들에게 그 비결을 묻는데 시장의 영웅들은 시장구조를 바꾸라는 엉뚱한 소리나 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시 눈길을 돌린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그 시대의 조류가 읽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사람들은 스펙경쟁에 지친 심신에 위로를 원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도대체 나는 왜 힘겨운가 하버드대학 교수에게 물어도 보았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약해도 시장은 여전히 거대하고 건재했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내가 더 노력하고 나아져야했던 것이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스펙경쟁으로는 부족했다. 시장에서 이긴 멘토들에게 물어봐도 뾰족한 수는 안나왔다. 그 시점에서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나왔다. 이지성작가는 속삭였다. 니가 그모양 그꼬라지로 사는 이유는 남들이 다 하는 것만 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다른사람들은 읽기 싫어하는 고전 인문학 서적들을 읽어보라고. 어려운 책들을 읽으면 옛날 철학자, 경제학자들이 가진 통찰력을 내 걸로 만들 수 있다고. 그러면 자본주의를 이겨먹을 수 있다고. 0.1%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고. 사회모순은 이기고 나서 바꾸든지 하라고. 경쟁도 못이기는 주제에 어떻게 바꿀 생각만 하냐고. 건방지다고. 결코 책의 내용을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에 설득되었다. 책의 무수한 사례는, 이병철과 조지소로스가 독서광이었고 그래서 성공했다는 식의 어설픈 인과관계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대중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시장에서 이기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인문고전읽기는 이때까지 접해보지못한 신선한 처방이었다. 1년에 책 한권 안읽는 성인이 40%되는 나라에서 이 처방은 독서콤플렉스를 묘하게 자극하며 대중들을 더 흥분시켰다. 독서에는 정말 무언가 특별한 비급이 있을 수도 있었다. 책 말미의 독서추천목록에서 책의 본질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읽어야할 인문고전을 수십권씩 나열해놓았다. 토익학원에서 문제풀이 과제를 내주는 것과 하등 다를바가 없다. 주어진 커리큘럼대로 읽기만 하면된다. 고전의 쓰인역사와 맥락은 언급조차되지 않는다. 순서대로 읽기만하면 천재가 될 수 있다.


인문고전 읽기운동도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고등학생들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학원이 생겼다. 회사원들을 위한 쉬운 인문학, CEO들을 위한 인문학과정이 잇달아 개설되었다. 시장원리는 모든것을 소비재로 변모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시장원리와 가장 동떨어진 인문고전에도 그 마수를 펼쳤다. 현재 인문고전은 값싸게 소비되고 있다. 무참하게 읽히고 손쉽게 버려진다. 사회에 속한 개개인이 좀 더 노력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모순되고 왜곡된 사회구조속에서 살아남기위해 대중들이 스펙을 높이고 멘토의 말에 경청하고 인문고전을 읽는 것을 뭐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대중들이 그때그때마다 눈앞에 나타난 허상을 부여잡기 위해 급급하다면, 그래서 부여잡을 수 없는 허상에 집착하느라 우리가 속한 좀 더 큰 사회구조의 문제에 둔감해진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나온지 햇수로 4년이 되었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부지런한 독자 한두명은 실제로 이지성작가가 내어준 독서목록을 다 읽었을 수도 있다. 그 두뇌가 혁명적으로 변한 천재는 다 어디있을까. 왜 그들은 아직 천재가 되어서 자본주의를 모순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하고 있나. 그 많던 독서천재는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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