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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긍정적이고 싶다.
게시물ID : freeboard_772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도망쳐라
추천 : 1
조회수 : 28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07/02 0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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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것 없고 무식하고 노력은 안 하구 자꾸 환경탓을 하게 되는 못난이가 된다.
매일 매일 지친다

가부장적인 아빠와 사사건건 부딪히던 어린시절.
아빠는 얼굴마주칠때마다 '여자가~'라는 말을 추임새로 넣으며 걸음걸이. 밥먹는 모습. 숨쉬는것 하나하나 여자는 그러면 안 된단다. 나는 요즘 시대엔 여자 남자가 어디있나? 다같은 사람이라구....싸우는 발단은 항상이런식.
고딩때 가슴나오자 집에 둘이 있으면 가슴만지작걸고 길거리에서도 만지고 역겨웠다. 
짐승도 아니고 자기 자식을...
계속 가슴만져서 죽고 싶다고 편지썼다. 편지주니까 기대하면서 좋아하다가 편지읽고 표정굳어지다니...
아빠가 내 가슴 만져서 내가 좋다고 썼을 줄 알았나?
그때부터 아빠를 인간이하로 봤다.
그 편지 이후 아빠는 가슴을 만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랑 같은 방을 썼는데 이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있는게 싫다는 이유였다. 딱히 내방이 있었던것도 아니기에 싫어도 같은 방을 썼다.
내가 자면 할머니는 내 위로 올라와서 오줌을 쌌다.
처음엔 잠에 깊이들어서 몰라서 초2에 이불에 오줌쌌다고 엄마아빠께 혼났는데 초3쯤 잠귀가 밝아지자 이상해서 눈을 뜨니 할머니가 내 위에서 오줌을 싸고 있었다. 
내가 눈을 뜨자 당황한 할머니... 옷도 안 벗고 오줌싸서 치마속 팬티가 젖어서 오줌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자긴 내가 자나 안자나 본것이란다.
난 끝까지 그냥 오줌싸개였다. 내가 눈을 뜬이후로 할머니는 방바닥에 오줌을 싸셨다.
할머니는 치매가 아니다. 부자집막내딸로 태어났는데 앉은뱅이로 태어났다. 정식병명은 모르겠다. 그냥 동네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부자집막내딸이 장애가 있으니 무조건 오냐오냐 자란것같다. 자기만 알고 나머지는 미개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그리고 집에서 나가는 날이 없고 하루종일 심심하니 만만한것이 가족이고 그 가족 중에 제일 만만했던것은 나였다.
할머니는 내가 밥을 한수저뜨면 아빠와 남동생, 엄마것을 남겨야한다며 먹지 못 하게했다.
난 못 되먹어서 2인분이든ㅈ10인분이든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전부 먹어치웠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중학교때부터 장염을 달고 살았다. 먹고 토하고 설사하고...
배를 바늘로 찌르는듯 아팠지만 할머니는 날 보면서 즐기는듯 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고 가게일까지 모두 맡아 일하셨다.
아빠와 같이하는 가게인데  음식을 해서 주로 배달주문을 받아 배달을 하는게 주업무였다.
무거운 재료나르고 음식하는것 청소 설거지 집안일 모두 엄마차지였다. 아빠는 다른집에서 카드나 고스돕을 지거나 이야기를 하다가 배달이 들어오면 억지로 오셔서 배달을 나가셨다.
배달주문이 들어오고 음식이 식을때까지도 안 올때가 많았다. 당연히 손님들은 떨어져갔다.
돈계산도 못 해서 주문받고 거스름돈을 잘 못 주는 일이 허다했다.
아빤 한방을 좋아하셨는지 엄마가 가게일로 돈을 모으면 사업을 하시고는 항상  망해서 접곤 했다.

그러던중 나는 취직을 해서 회사기숙사에 들어가 살았고 힘들었지만 참았다. 매일 울고 힘들었지만 더는 배가 아프거나 토하거나 설사를 하진 않았다.
회사생활 하면서 딱한번 토한적있는데 술을 진창마시고 토한게 전부였다.

공장교대근무를 하다가 사무실근무를 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에 따라 마음에 여유가 있었는지 남자를 사귀었다. 24살에 사귀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 남친이었다. 지금의 남편이다.

남친은 자상했으나 다혈질이라 가끔 무서웠다. 그래도 그것빼면 다 괜찮았다. 결혼전에 싸우다 남친이 핸드폰을 던졌는데 충격이었다. 결혼을 무를 자신이 없어서 결혼했다. 이미 배속에 아이도 있었다.
남편은 아이낳으면 나가서 취미생활을 못한다고 아이낳기전에 하겠다고 날 혼자두고 취미활동을 하러다녔다.집에 와서는 게임을 했다.
임신해서 몸은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
집에서 집도 안친운다고 라디오를 던졌다. 난 울고 남편은 사과를 했다. 그다음엔 후라이팬을 던지고 그다음에는 가구를 주먹으로 치다 손뼈가 부러졌었다.
그때도 그런것만 빼면 좋다하고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아이가 운다고 아이를 안고 달래다가 계속  우니까 아이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임신전 아이낳으면 못한다는 취미생활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하러갔고 난 남편이 없으면 외롭고 슬프면서도 자상한 남편이 언제 소리칠지 걱정 안 해서 좋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한시간 거리의 시댁은 못 해도 한주에 한번이상은 갔었다. 
시아버지는 처음엔 100만원을 빌려가시더니 나중엔 200을 빌려가시고 100을 갚으셨다. 둘째돌잔치하려고 모은 500은 돌잔치전에 주신다더니 돌잔치때도 못 받았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2000을 꿔달라 하셨고 남편은 그 사실은 숨기고 나에겐 카드쓰는것보단 마이너스통장이자가 적다고 카드대신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다.
남편의 취미, 마이너스통장 모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찬성할때까지 설득도 하고 화를 내서 나도 지치거나 설득을 당하거나 결국 남편 뜻대로 되었다.
둘째임신당시엔 아이낳으면 둘이니 못나가니 낳기전에 취미생활 한다고 나가고 아이를 낳으니 미안하다고 나갔다.
빚이 감당 못 하게 불어서 일을 결심했다. 돈도 돈이지만 주부가 집안일 못 한다고 남편은 불만이었다.
너네집가라던지 맞벌이를 하면 이해가 된다라던지 자존심상하는 말들이다.
아이둘키우는 것이 나에겐 힘들어서 집안일은 못 했다.
비염이 있어 맛도 잘 못보지만 원래부터 요리는 해보지도 할생각도 없었다. 노력은했지만 맛은 요상했다
평소엔 육아와 집안일을 이해하는 자상한 남편인데 싸울때면 집안일을 걸고 넘어졌다.
결국일을 다녔다. 여긴 빵집도 5정거장을 버스타고 가야했기때문에 회사는 구하기 어려웠다.
한시간거리의 회사이고 10시까지 출근, 4시 퇴근 시간제 알바로 일하였다.
4살아들은 8시20분에 어린이집보내고 6살 딸은 8시 55분에 유치원버스가 있었다.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으로 전력질주하였다.
4시에 끝나면 5시 반쯤 끝났고 그때 아이들을 또 집으로 데려와서 밥먹이고 간단한집정리 빨래를 하였다.
집에 사람이 없으니 일다닐때가 더 깨끗했다.
그러던중 내 생일이 되었고 시부모님은 매년 그러셨던것처럼 음식을 가져오셔서 그 음식으로 내 생일잔치를 해주셨고 로또와 감동적인 편지와 선물과 10만원을 주셨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생일이  지나고 한달이내 아버님은 남편에게 그에 상응하는 돈을 꾸어가신다.
이번엔 30을 꾸셨다고 하셨나?
아이들이 번갈아 아파서 자주빠져서 시급7000~8000원하는 월급이 50만원대에서 그쳤어 속상하던 차였다.
나는 바로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손 못 타서 수시로아프고 월급은 시급이라 자주 결근하게되어 조금 받는데 한방에 가져가신다.
아! 그전에 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남편은 가정생활보다 취미생활이 우선이 었고 나는 집안일, 육아, 회사, 금전적으로 지쳐있었다.
내가 번돈으로 법무사사무실을 가서 이혼서류작성해서 남편에게 주었다.
남편은 매일 다 괜찮다고 하다가 갑자기 이러면 어쩌냐고 했고 나는 처음엔 다 싫다고 했는데 괜찮다는 말 나올때까지 닥달한게 누구냐? 고생 안 시킨다고 결혼하더니 이제까지 겪은 고생보다 더큰 고생이라고 이혼하겠다고 하고 나는 이미 회사근처에 원룸을 계약하고 짐을 조금씩 옴기고 있었다.
결국 남편이 한달정도 설득하고 취미생활보다 가족에게 충실하겠다는 말을 믿고 원룸은 처분하였다. 월세라 보증금받고 끝냈다.
그리고 이후 남편은 가정적으로 변하고 행복했다.
이번에 시부모님이 사정이 생기셔서 살던집에서 쫒겨나게 생겼다. 그래서 시부모님가지고 있는 빌라18평와 우리사는 아파트24평을 팔고 34평으로 가서 우리 4식구와 시부모님 같이 사시자고 내가 나가  일하고 애들어리니 봐주시면 먹고는 살 수 있으니 같이 살자고 했다.
시부모님은 말은 고맙지만 더 늙기전에는 자신들 힘으로 사시겠다고 하신다.
젊으신분들이라 역시 다르구나. 멋지다. 나도 저렇게 나이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시부모님은 어찌어찌 다른곳에 터를 잡아 생활하셨고 멋지셨다.
우리아파트는 시어머니 명의이다. 결혼전 시부모님 빌라가 남편이름이었는데 그래서 시어머니명의로 아파트를 계약했단다.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리했다. 난 혼수로 3000조금 넘게 해왔고 남편은 4500을 집값으로 해왔다.
그 이후로 아파트 대출금은 아직도 갚고 있다.
친구가 우리동네살다가 더 좋은 동네로 이사갔다.
그 동네는 버스타고 다섯정거장을 가지 않고 5분을 걸으면 빵을 살 수 있는 동네이다.
1억을 대출해서 갔는데 이자는 우리가 내는 이자보다 더 적었다. 그래서 대출을 바꿀까하고 근저당설정을 조회하니 9000만원이 설정되있었다.
시부모님은 5500만원 설정되있는 집을 담보로 추가로 우리부부몰래 대출을 받으셨다.
그리고 난 시댁에 2년간 가지 않았다.
이혼한다고 친정에 갔는데 엄마는 자식 떼고 못 사니 이혼하지말라신다. 남편은 돈이 죄란다.
시아버지는 나만 참으면 집이 조용한데 이런다고 한다.
시누이는 올케이해한다며 자기 부모도 이해하란다.
시어머니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단다.
말도 없이 자식집을  담보잡고 그게 들통 날까봐 아파트처분하게되면 근저당잡힌거 들통날까봐 가지고 있는집 팔아서 큰집가서 같이 살자고 해도 쿨한척 더 늙기전에는 자신들 힘으로 사신다더니 속으로는 같이 살고 싶으셨단다.
명절에  나는 친정가고 남편은 아이들과 시댁에 갔다.
눈치가 시어머니가 내가 안 온다고 뭐라하는 것같은데 시댁일은 묻지도 않았다.
어느날 시어머니가 이제 얼굴보고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했단다.
뻔뻔하다. 나라면 아들에게 미안하고 눈치보여서라도 며느리 없이 오는 아들눈치 볼터인데 우리시어머니는 참~~
난 싫다는데 아들이라고 부모눈치에 마누라눈치에 불쌍하다.
근데 나는 더 불쌍하다. 취미생활한다고 마누랑며 자식이며 무관심하다가 정신차리고 가정적으로 변한지 일년만에 시부모님은 자식집을 말도 없이 담보잡아 대출받으셨다.
내가 더 불쌍해서 남편이 시댁에서 눈치를 받던말던 난 안갔다.
그런데 내딸보고 시어머니가 떼쓰면 일찍 죽는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내가 딸을 보내지말까 하다가 드러워도 내가 간다. 갈때마다 불편해서 앞으로 어찌할지 두고 보는 중인데 이러는 내가 무식하다.
이러는 와중에 남동생이 분노에 차서 전화했다.
아빠가 어떤여자와 차타고 가는거 봤다고 동생은 분노에 어쩔 줄 몰라했고 나는 무덤덤했다.
그냥 그럴줄알았다.
엄마아빠 인생이니 넌 그냥 보고 있으라했다.
그런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여자가 있는것같다고 ... 빈털털이로 내보내고 싶다고..
난 그건 증거가 없어 불가능하니 반반하고 이혼하라고 했다. 
10년전 엄마는 아빠와 이혼한다고 했었다. 난 당장하라고 했고 고딩이던 동생은 이혼하면 엄마, 아빠 어느쪽도 안보고 살거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말로는 그때 아빠가 바람피웠었다고 한다.
대충 회사휴가때 집에 와서 느끼는 분위기가 그렇구나에서 그랬구나 들으니 화가 난다.
다시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기 넘어로 엄마는 그때는 증거가 확실히 있었지만 이번엔 심증만 있고 확실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엄마는 동생이 아빠와 다른 여자가 차타고 가는것을 본것을 모르신다.
어릴적 아빠가 내 가슴을 만진것도 모르신다.
엄마는 혼자 사는게 두렵다고 하신다. 
난 그냥 이런 상황들을 반항하지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는 내가 싫다.
나는 때때로 슬프다. 가끔 혼자 떠나고 싶고 죽어 없어지고 싶으면서도 살고도 싶다.
난 딸에게 애정이 없다. 겉으로 노력해도 안된다. 
내가 낳은 딸인데 가끔 얼굴만 봐도 기분이 상한다.
그런 나를 딸이 눈치챌까봐 무섭다.
분명 이쁘고 사랑스러울텐데 난 그렇지가 않다.
둘째인 아들은 너무 좋고 사랑스럽고 안아주고 싶다.
일부러라도 딸아이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는데 안을때마다 사랑스럽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난 그게 너무 슬프고 딸이 안쓰럽다.
사랑받아 마땅하다는것을 알며서도 마음이 안간다는것은 슬프고 미안하고 내가 밉다.
난 지금도 글쓰면서 울고 있다.
긍적적이고 밝은 내가 되고 싶은데 난 게으르고 무식해서 남탓하고 슬프고 어둡게 살고있다.
누군가는 내가 이랬다는것을 알고 날 알아주고 이해해줬으면해서 글쓴다.
고게에 비공개로 안 쓰는 이유는   욕을 들어도 앞에서 듣고 싶어서이다. 요즘 오유는 고게의 익명은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길고 횡설수설정신없지만 글쓰면서 울고 눈물흘렸지만 조금은  편해진다. 
대책없고 짜증나는 나지만 바보같지만 그래도 못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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