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 역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국제스포츠의 탄생 자체가 국가사이의 경쟁을 전쟁이 아닌 스포츠로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구 소련이 건재하던 냉전시대에 여러 강국들이 올림픽에 목을 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국력을 뽐내고 나아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서로의 이념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스포츠에 역사를 끌어들이지 마라? 아니 스포츠, 특히 국제 경기는 양국간의 역사가 가장 중요하다.
축구 전문가들은 항상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국가대표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지만 국내 리그에는 무관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힘들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어찌보면 잘못된 표현인 것 같다. 사람들은 국내 리그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항전이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축구팀에 대한 지역민들의 애착이 야구만큼 강하지 않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큰 경기가 없는 야구와는 다르게 축구에는 월드컵이라는 전세계적인 축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가대표 축구에 열광하는 것이다. 같은 국가에 속한 공동체로서 응원하고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며 재미있는 것이다. 올림픽을 치룰 때마다 항상 비인기 종목으로 치부되던 운동경기에서 금메달을 하나 따면 메달리스트는 스포츠 스타로 부상하게 된다. 그 이유도 역시 다름아닌 나라를 대신해서 출전한 국가대표이기 때문이다. 같은 역사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응원하고 그 결과에 감동하기 때문에 스포츠가 흥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포츠에 역사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스포츠가 역사와 국민의 정체성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 스포츠는 도태될 것이다.
해외의 유명 스포츠리그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언제 이기고 졌기 때문이 아니라 구단의 연고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다. 그 유명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런던의 여러 라이벌들... 그런 지역적 문화적인 역사가 결집하여 하나의 스토리가 될 때 스포츠는 감동이 되고 반전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어느 누가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브라질이나 스페인에 패하였다고 분노하고 자존심상해할까? 하지만 일본이라면 언론부터 시작하여 국민들의 관심은 남다르다. 그리고 그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 역시 다르지 않다. 바로 그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과거에 부당하게 일본으로부터 지배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과 그 치욕에 대한 복수심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축구협회의 조치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는 것이다.
최근 이 나라에 대한 나의 애정이 줄어드는 만큼 국가대표 경기도 크게 관심이 떨어졌었다. 하지만 최근 3개월 사이의 축협의 행보는 그야말로 나로하여금 축구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었다, 나도 이제 그냥 축구라면 국대든 머든 관심 끊고 어느 친구처럼 유명하고 잘하는 팀 경기나 골라서 보고 말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