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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집 감나무
게시물ID : panic_772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뼈없는고자
추천 : 37
조회수 : 4277회
댓글수 : 30개
등록시간 : 2015/02/09 02:37:43
우리 외할매집은 고흥. 

 부산에서 명절선물과 차안에서 먹을 간식이랑 입을 옷가질 분홍보자기와 검은 여행가방에 구겨넣고 출발. 
  
 엄마는 마산을 지나갈때 쯤 마산아저씨 얘기를 하고 순천에선 순천할머니얘기를 하는데 어른들의 언어인가보다... 나는 어려서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지.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할땐 엄마의 말엔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중요한 포인트(...인듯한)지점에선 요란하게 섞여 특이한 강세. 

고흥에 가까워 질수록, 부산에서 10년을 넘게 산 엄마의 말은 전라도 사투리로 바뀐다. 할매를 보러 갈때마다 나보다 더 아이가 되는 엄마, 미안해요 진짜 아이한테는 6시간이나 계속되는 차여행은 너무 힘들어.

잠시 눈을 붙인다. 
 
머릿속으로 백개의 논밭이랑 백개의 기슭과 백개의 구름을 그려보다가 차가 좌로 우로 많이 움직인다 싶으면 과역에 도착.

아빠와 엄마는 항상 과역에서 술이랑 과일 고기 사간다. 

가끔 둘째삼촌이 마중을 나오기도 했었지.

그렇게 과역을 벗어나와서 구불길따라 여러번 굽이치면 할매친구할매가 하는 슈퍼가 보이고

버드나무가 냇가를 따라 늘어진 다리를 건너

논밭 열개쯤 지나

마을회관이 있는 중앙광장

차에서 내리고 다시 돌담길을 따라따라

소 울음소리 두번 듣고 나면

할매집 대문에 엄청나게 큰 감나무.

도착.


할매가 우릴 마중나온다. 엄마는 할매가 우리 짐을 들어줄까봐 재빨리 짐을 마루바닥에 놓고 와서 할매를 꼬옥 껴안는다.

짐을 풀고 할매 한상에 갈치랑 조기랑 꼬막이랑 게장이랑 닭장이랑 밥비벼먹고나면 드디어 나의 시간인가 하고 그 작은 시골마을을 쏘다녓었지.
사촌들과 같이.

근데 그날은 사촌들이 안온댄다.

한시간정도 시무룩해서 몇개없는 티비채널 돌려보다 작년에 사촌들과 피래미잡으러 가던 기억이 난다. 마침 탈곡기 레바에 통발도 걸려있네. 고기잡이 가기로.

"야야 해지는디 오델가"

할매 내 피래미잡꾸 오께요

"호랭이가 물어간다잉. 컴컴해지기 전에 드르와"

웅 할머니 통발 가꾸가께요

양동이에 통발담고
신나서 폴짝폴짝 마당먼지나게 뛰어나가
감나무아래에서 신발끈 묶고 
고갤 들었는데


  한 남자애가 서있다.

우리 하우스옆에 염소우리앞에
색이 좀 바랜 한복같은걸 입은 아이가
한참 전부터 내쪽을 보고있다.

옆집에서 온건가 싶었는데, 할매 옆집은 
돌벼락도 외양간도 대문도 주저앉은 아무도 없는집.

외할매집에와서 다른집의 내또랠 만난건 처음이었다.

피래미잡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아이는 대답한마디 없이 고개만 끄덕.

나보다 조금어린것 같기도 하고.

돌담길 따라 논밭길 따라 걸으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네걸음 정도 뒤에서 따라오는 꼬맹이.

니 어디서왔는데?

"..."

몇살이고?

"..."

말 못하나?

"..."

바보 아니제?


"..." 


 
 몰라 니알아서해라. 하던 찰나, 


 

 
" 이제 못가는디 "

아이가 열걸음 정도 뒤에서 첫마디를 뱉었다.

 참 이상한 음성이다.
   
모라꺼 ?

" 못가네 이제 "

몬간다고 ?

"..."

다시 물어본 이유는 내가 못들어서가 아니었다.
옆엔, 벼들이 많다. 목소리는 볏잎을 흔들며 지나온 바람속에서 들렸으니 꼬맹이가 말한건가 바람소리인가 했지.

그면 내 혼자 간다.

그러고 다시 다섯걸음을 타박타박
꼬맹인 그자리에 그대로....




 
 

 
"너 지금 천에 감 죽어."





 ?????



이게 뭔소린고 했지. 뒤를돌아보니 아이는 다시 온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마 니 방금 머라꼬 ???

 
"..."


아이는 말없이 온길을 돌아가고, 나도 처음보는 꼬맹이의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 그냥 물고기잡으러 산쪽으로 간다. 






 이상하다 비틀비틀.

차에서 너무 오래자서 그런가 약간 잠에서 덜깬 기분이. 몽롱하다. 노을에 눈이 따가워 잠시 밭에 있는 수로 쎄맨에 걸터 앉았다. 주머니에 아까 차에서 먹던 새콤달콤이 남아있어 한번에 세개 먹었다. 꼬맹이 하나 줄껄....

다시 기상

 
한참 걷다보니 냇가에 도착.


냇물을 보자마자 신이난 이놈은 통발을 돌에 공가끼우고 양동이에 물채우고 몰아 넣을 피래미를 찾으러 다녔다.

처음엔 안보이다 한 삼십분정도 있다 하도 안보여 갈라다가 갑자기 상류에서 내려온건가 피래미들이 줄줄이 잘잡힌다.

양동이 반에반쯤 채운것같았다.

흙위에 앉아 피래미를 세다보니 너무 어두워서 안보이네.

조금만더 조금만더 하며 놀다보니 거의 밤이되버린거지.





.........





일어나야 하는데 다리가 안움직여진다.

쥐가난것도 아니고 발이 걸린것도 아닌데
양반다리가 꽁꽁. 풀어지지않는다. 일어날수가 없다.








사박사박





십분정도 고군분투하는데 맞은편 풀숲에 까만 수풀에서 풀소리가 난다. 소곤소곤소곤소곤대는 사람 목소리가 들린다.
요 근처사는 아저씨가 왔다.



저기요 !


"..."


아이씨 요쫌 도와주세요 !


"..." 






 
아닌가보다.


저기요! 하고 부르니 풀숲사이에서.

대답대신,
 
밤보다도 더 시꺼만 수풀사이에서

하얀 얼굴이 불쑥 튀어나온다.

눈과 입자리는 가면처럼 까맣고 몸은 어두워서 안보였지만 얼굴은 너무나 하얀 얼굴이

히죽거리며 궁시렁궁시렁 소리를 낸다.
계속 소곤댄다.


 소곤소곤소곤소곤소곤소곤소곤소곤댄다. 



 

 
멍하니 있다가,

미친듯이 뛰었다.

다리가 어떻게 풀렷는지 모르겠는데 느껴지지 않는 다릴 억지로 끌어 끌어 기다가 기다가 뛰었던가..... 어느순간 갑자기 팍 움직였나보다.

할매집에 도착했다.

온몸에 땀투성이 흙투성이.

통발도 양동이도, 냇가에 벗어둔 신발도 다 내팽개치고 밭에서 구른놈처럼 마룻바닥에 자빠졌다.

할매집에오니 그 충격적인 공포보다 일단 씻고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할매의 고무신과 할배의 양동이와 통발을 내다버리고 온건 죄송했지만 그런물건은 시골집엔 넘쳐나니까 딱히 신경쓰이지 않았다. 

친척들과 가족몰래 빤쓰랑 편한옷 챙겨들고 냉큼 샤워하고 나왔다.

그렇게 무서웠는데...

분명 그렇게 무서웠는데....


나 고기잡으러 간 사이에 온 친척들한테 인사하고 밥먹고 티비보고 파리잡고 하다보니 그날 냇가에서 있었던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티비를 보다 잠이들었다.



꿈을 꿧는데 낮에봤던 꼬맹이가 나왔다.
옷이 조금은 새옷같다. 

할매집 마당 한켠에 앉아 닭을 보고있길래 살며시 옆에 가서,

그거아나, 
닭은 깨구락지 잡아주면 억수 잘먹는다.

"난 닭 엄청 싫어. 별루 안좋아 기냥 봐"


꼬맹이는 아까보단 더 여리고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글나. 근데 니 어디사는데?

"나 요기"

? 요긴 우리 할매집인데. 





 "아니 요기" 


아이는 계속 닭을 보다 감나무를 가리킨다.


에이 거짓말!


"거짓말 아니여. 글구 너는 앞으로 천에 가지마"


왜?


" 가지말라믄 좀 가지마 말을 좀 들어야겄다 너는 잉?"




그리고 닭이 운다.



깍까아아아아오 !!
끅끄으으으으으으 !! 


힘도좋지 할매집 수탉은. 


아침을 먹으며 할매랑 할배한테 물아본다.

할매 할부지. 요 근처에 내 나이있어요 ??

"여 애가 어딕냐 읎지. 다~ 서울 가부렸다."

엄마한테 물어봐도 올해는 우리가 늦게 온거라 다른 가족차도 하나도 없는데다 근처엔 다 할머니할부지뿐이라고.



그날밤도 그 꼬맹이와 노는 꿈을 꿨다.
아주 재미나게 놀았다. 

닭이 새벽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요란하게 울어 달콤한 꿈을 방해했을땐 무척이나 화가났다.


삼일째날에 우린 부산으로 출발했다.

 항상 집에갈땐 피래미를 통에 채워갔는데 그러지 못해 서운하다고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해져 그냥 바로 잠들었다.

얼핏 꿈에 꼬맹이랑 작별인사 한것같은데 기억은 잘 나지않는다.


 

    
그 다음부턴 할매집에 와도 절대 냇가에 가지않았다.

 꼬맹이 역시 그 이후엔 한번도 보지못했지만 할매집 감나무는 볼때마다 더 커지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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