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은 아닌데, 나는 좀 씌이기 쉬운 타입입니다.
그녀 말에 의하면 저 자체가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해서, 쓸데 없는 것들을 잘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거의 영감이 없어서 자각도 못 하는지라 좀 그렇습니다.
안테나 말이 나와서 말인데, 게게게의 키타로라는 만화를 보면 머리카락이 '요괴 안테나'라고 하거든요.
옛부터 신체 일부 중에서 두발이 가장 영계와 가깝다고 하여 촉매제로 사용하기 안성맞춤이라고 합니다.
머리카락말이죠.
이 이야기는 바로 그겁니다.
여름 방학에 에어컨이 망가졌는지 미칠 듯이 찌는 연구실에 있었습니다.
거지 같은 선풍기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방학 동안 고향에 갔던 그녀가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선물이라고 들고 온 게 폰즈(초간장 같은 소스)와 가다랑어포였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도 덤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납작하고 길쭉한 상자였는데, 앞에 먹으로 뭔가 써있긴 한데
너무 달필이라 "타"와 "우"라는 글자 외엔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연다? 준비됐지?"
그녀가 엄청 뻐기면서 열었는데, 안에는 벼루가 있었고 붓통에는 작은 모필이 세 개 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거 있지, 아이 머리카락으로 만든 거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일본의 아랫 지방) 지방에서는 인모로 만든 붓은 흔한 거라 놀랍진 않았지만
그 붓은 새카맣고 짧아서 왠지 좀 꺼려졌습니다.
"우리 고향 풍습같은 건데,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5살, 만으로 4살이 될 때 머리카락으로 붓을 만들어."
"기념 같은 거야?"
"응, 그 왜 있잖아, 남자애들은 집안을 이어야하는데 나이 좀 들면 다들 도시로 나가버리잖아?
그럴 때 집안 어른이 그 아이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으로 뭔가를 써서 보내면
집 나간 애가 아무리 멀리 나가있어도 반드시 돌아온대."
"인질, 아니지 머리카락질 같은 거네?"
"뒷통수가 땡긴다라는 말이 있잖아? 문학 공부하기 전에는 이게 어원인줄 알았다니까 ㅎㅎ 전국적으로 하는 건 줄 알았어"
"아까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는데... 죽은 사람도?"
그녀는 빙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와 정말. 예전에 장난으로 붓을 써본 적이 있거든"
그녀는 붓을 하나 꺼내 장난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8살 때쯤이었나.
오후에 평상에서 놀고 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가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거야.
친척 아이인가 싶었는데, 우리 친척 중에는 여자애 밖에 없었거든.
나는 걔 이름을 모르는데, 이상하게 걔는 내 이름을 아는 거야...
그래서 여름 내도록 걔랑 놀았는데도 이름은 죽어도 안 가르쳐주는 거야.
여름 막바지 무렵 저녁에 걔가 나타나서는 갑자기 "잘 있어" 하더라고?
이름도 안 가르쳐주고 돌아가려고? 했더니, 마지막에 이름만 알려줬어.
"타로우"라고.
그날 밤, 부모님께 '타로우가 가버렸어'라고 했더니, 엄마가 흠찟하며 말해주더라.
"그거.. 느이 오빠다."
나는 계속 외동딸인 줄 알았는데,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대.
연못에 빠졌나 어쨌나 했는데 시체도 못 건졌대.
유품은 네 살 때 머리카락으로 만든 붓 뿐이라지.
원래는 붓 주인이 죽으면 그 붓도 없애야 하는데, 우리 부모님은 버릴 수 없었나봐.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파트너는 손에 쥔 붓을 상자로 돌려놓았습니다.
"완전 구라. 근처에 사는 친척 애 아냐?"
"..그럴 지도 모르지"
"그래서 그게 오빠 붓이라고?"
"응"
"왜 그래? 이거 써서 또 부르려고?"
"아니"
"...이미 와 있거든"
에어컨이 망가졌는데도 그 날은 한겨울처럼 싸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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