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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대 (혜정이는 봅니다.)
게시물ID : gomin_10521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앤은빨강머리
추천 : 11/4
조회수 : 404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4/04/02 17:43:01
재수끝에 서울로 대학을 온 저는 대학생활에 대한 낭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학부 전체개강파티를 한다길래 OT때 알게 된 친구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게임하며 놀 무렵, 근처 테이블의 여학생들과 합석을 하게 됬습니다. 그 자리에서 여학생A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하얀피부에 큰 키,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친구였죠. A도, 저도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그날 이후로 거의 매일 아침을 같이 먹었습니다. 물론 둘이서가 아닌 룸메이트들도 함께요.
 
여러면에서 저와 A는 호흡이 잘 맞는, 속칭 쿵짝이 잘 맞는 사이였습니다. 동아리도 같은 동아리에 들었고(전혀 의도치 않았습니다) 교양과목도 상당부분 같은 과목을 수강했더군요. 잘 맞다보니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보니 어느세 점점 친구가 아닌 이성으로 바라보게 됬습니다. 4월 성년의 날에 맞춰서 점점 커져가는 제 마음을 고백하기로 마음먹고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오전수업만 듣고 오후엔 놀이공원가서 놀다가 밥 먹고 돌아오는 길에 준비했던 향수와 키스를 선물해야지....대충 이런 계획이었습니다.
 
성년의 날 당일.
오전 교양과목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남학생이 들어오더니 자기 여자친구가 이 반에서 수업중인데 데리고 나가야겠다고 하더군요. 교수님은 웃으시면서 데려가는 대신에 노래 한곡 하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노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학생은 노래를 불렀고,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네, A였습니다.
 
아....남자친구가 있었구나...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조차 기억이 안나던 그날밤 11시쯤에 A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너도 성년의 날 축하한다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내일 수업 못나가니까 나중에 노트필기한거 빌려달라고 하더군요. 느낌이 남자친구와 밤을 보낼려는 것 같았습니다. 당시 남자 기숙사 휴게실에서 여자기숙사 입구가 보이는 구조였는데 그곳에서 전 밤세 뜬눈으로 지샜습니다. A는 그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허탈감과 슬픔이 교차하던 아침이었습니다.
 
그 뒤로 A와 전 친구사이를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전 갈수록 더 아파갔습니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가슴 속에 담아두고 지낸다는게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 일인지를 배워나갔죠. 그렇게 1학기가 끝났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말고 내가 쓸 용돈은 내가 벌어쓰자는게 이유였지만 진짜 이유는 그렇게해서라도 가급적 A와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비록 다른 반이긴 하지만 같은 과, 같은 동아리에 속해있다보니 마주치는 시간이 많았고 그럴수록 가슴이 아파와서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만나는 기회 자체를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10월 어느날, A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요즘 얼굴보기 힘들다고 술 한잔 하잡니다.
대학로에서 만나 술을 마시던 중 A는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남자친구가 바람이 났다고 하더군요.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힘들어했고 전 그저 위로만 해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기뻤습니다. 다시한번 나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뒤늦게 A가 남자친구를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연애를 했는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전 다시 A와 자주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A도 같은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끝나는 시간이 비슷해서 같이 기숙사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12월 초에 영장이 나왔습니다. 입대일은 1월 초.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날 A와 함께 보냈습니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같이 이곳저곳 돌아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신여대 근처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제가 지나가는 말로 그동안 많이 좋아했었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했습니다. A는 제 손을 잡아주면서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그날 밤 아무 말 없이 손 잡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1월 초, 군대를 갔습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A를 통해 이런저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남친이 다시 연락하더라, 새로 들어온 여자후배랑 동기남자애랑 사귄다더라 등등. 그러다가 상병이 됬을 무렵, A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상대는 3살 위 선배였습니다. 저도 잘 아는 선배였는데...너무나 착한 남자였습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A의 연애소식에 또 한번 아파했습니다. 그 이후 A도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 후 동아리 모임에서 다시 한번 A를 만났습니다.
하얀피부는 여전했지만 짧게 자른 머리가 조금은 어색해보였던 A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모임에서 아직도 A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그 기분에 술만 마셔댔고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필름이 끊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후 A와의 만남이 있을 법한 자리는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어쩌다 모임에서 만나게 되도,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가급적 빨리 자리를 피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실천한 것이지만 오히려 그리움만 커지더군요. 그러다가 기회가 되어서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습니다. 완전히 멀어지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신청한건데 운이 좋게 가게되었습니다. 2년을 있었는데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놀고 열심히 여행다녔습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더군요.
 
귀국하고보니 A는 그 선배와 헤어지고 취업준비 중이었으며 취업스터디에서 만난 사람과 사귀고 있었습니다. 가벼워졌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고 또한번 익숙한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복학 후 표정이 어두운 절 보고 힘내라며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개팅이었지만 그래도 소개팅 한번은 하고 졸업해야되지 않겠냐는 친구의 설득에 따라나섰습니다. 그곳에서 B를 만났습니다.
 
B는 저와는 정 반대되는 성격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던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마디로 불 같은 여자였습니다.  B와 만날수록 호감이 생겼지만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제가 문제였습니다. 더이상 만났다가는 서로에게 상처로 남을 것 같아서 솔직하게 모든 걸 말했습니다. B는 웃으면서 그럼 그냥 친구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B와는 친한 친구로 남게되었습니다.
 
A와 관련해서 많은 부분을 B에게 위로받았고 조금씩 마음을 비우던 와중에 친구에게서 A의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묘하더군요. 대학시절 대부분을 가슴에 품었던 여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종이를 보니 미친듯이 아려옴과 이제 다 끝났다는 홀가분함이 동시에 몰려왔습니다. 결혼식날 A를 만났습니다. 많이 놀래더군요. 와줄줄 몰랐다고.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행복하게 잘먹고 잘살라고 하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A와 친하게 지내던 여자동기에게서 그간의 일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A도 절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항상 제가 옆에 없었고, 없을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다가 사귀게되고....뭐 그렇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때 내가 입대를 미뤘다면, 교환학생을 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됬을까 하는 쓸데없는 가정도 해보면서 그렇게 첫사랑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저도 졸업을 하고 취직해서 살았습니다.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꺼져버린 첫사랑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고 있었고, 그 옆에는 항상 절 위로해주고 함께 웃어주던 B가 있었죠.
 
31살 봄, 간만에 B와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던 중 B가 얼마전에 선을 본 남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안도 괜찮고 남자 직업도 괜찮고 인물도 좋고....마음이 끌린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들어보니 남자가 괜찮은거 같아서 한번 진지하게 만남을 가져보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 뒤로 2주정도 지나서 B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좀 만나자고.
반포역에서 만난 B와 근처 카페로 들어가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B가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계속 주변 이야기만 하는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B는 얼마전 만난 선남이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을 했지만 마음에 걸리는게 있어서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걸리는 원인을 해결하러 나왔다고 하면서 제게 고백을 했습니다. 처음 소개팅으로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했었다, 첫사랑녀가 결혼하고나서도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있는 것 같은 절 보면서 본인도 아파했다, 이제 나 좀 그만 아프게 해라....울면서 말했습니다.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던 B가 지금까지 본 마음을 숨기고 계속 저와 친구로 만나왔었다는게....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랑에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해주는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인지 아는 저로선 B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오랜시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정했습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이라는 현실을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아픔도 예상하고 있지만 같이 걸어가볼까 합니다. 그 마음을 B에게 알리기전에 B가 자주보는 이곳에다가 글을 남깁니다.
 
 
 
 
혜정아, 나 현우야.
오늘 내 마음 너에게 전할께. 우리 같이 걸어가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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