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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서 써보는 유학 에피소드
게시물ID : humorbest_7744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난좀그렇다
추천 : 60
조회수 : 4204회
댓글수 : 1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10/31 14:31:23
원본글 작성시간 : 2013/10/31 10:24:16

위 안에 음식물이 없으므로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유럽에서 대학을 다녔음. 아마 다른 유럽의 나라들도 그럴거라 생각하지만,
'대학교'에 '캠퍼스'랄게 따로 없음. 마치.. 심리학과 건물은 관악구에 있고, 물리학과 건물은 도봉구에 있고, 역사학과 건물은 마포구에,
이런 식으로, 따로 떨어져 있음. 물론 학식이나 교무처 등등이 있는 '중심건물'은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캠퍼스'는 따로 없었음.

게다가 우리학교랑 이름은 비슷해도 공대는 아예 다른 학교라서, 왠만하면 공대생은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날 벽보에 붙은 벽지를 보니, 컴공과 건물이 공사를 해서 부득이하게 우리과 건물을 나눠쓰게 됐다고 하는 거임.
과도 다르거니와 대학 자체가 다른데 이게 뭐지;; 싶었지만 평소에도 공대와 별에 별 교류를 했기에(자선바자회, 콘테스트 등등..)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음. 참고로 우리 과는 인원은 적은데(처음 입학정원은 120명 정도 되는데 학년 올라가면서 60% 이상이 포기함..)
2,3학년 정도 되면 50명~60명 정도 되는 데다가 건물이 또 쓸데없이 커서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음.

2011년 때였음. 

그 때까지 공대 애들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어색함'과 '수줍음'이었음.
공대 애들은.. 뭔가.. '유순하고 수줍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못하며 어색하다'는 이미지가 강했음.

근데... 아침에 학교에 갔는데, 몇몇 애들이 울고 있는 거임;; 우리과 애들인가 싶어 가봤더니 컴공과 애들이었음.
순간 당황. 왜 우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안 친해서 물어볼 수가 없었음. 그냥 멍하니 지켜보다가 수업 시작해서 들어갔는데..
우리과 애들도 한창 그 얘기 중.. 들어보니, '데니스 리치'라는 사람이 죽어서 울고 있는 거라고 함.
나는 그 때까지도 데니스 리치가 누구인지 몰랐음. 친구가 알려줌. 'C언어의 창시자'라고..

솔직히 무식해서.. 그 때까지도 C언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 줄 몰랐는데.. 
내가 넷북을 켜고 구글링을 하고 있었음. 그 때 내 뒤에 있던 친구 왈, "C언어가 없었다면 넌 구글도 못했을 거야"
헐.. ㄷㄷㄷ그 때 알았음. 컴공과 애들이 왜 울고 있었는지..

누군가는 좀 오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만나봤던 공대 애들은 자기가 공부하고 있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고
내가 유학생활을 했던 그 나라에서 만났던 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듯, 공대 애들 또한,
다른 생각보다는, 그냥 이 공부가 정말 너무나 하고 싶어서 어렵다는 공대로 향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얼굴이 빨개질 만큼 울고 있던 그 아이들의 감정이 한 편으로는 조금 이해가 갔음.

데니스 리치가 타계한 뒤, 정말 과장 하나도 안 보태고, 컴공과의 모든 아이들과 교수님들이
일주일 내내 검정색 옷이나 짙은 색상 옷만 입고 다녔고, 벽보에는 'X나 위대한 우리의 데니스 리치'라고 써있었음.
깐깐한 학과장이 태클을 걸 만도 했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음. 

그래서, 나는 컴퓨터 지식에 대해선 젬병인데도, '데니스 리치'라는 이름은 똑똑히 기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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