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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판 ‘촛불’ 이끈 누리꾼 4인방
게시물ID : sisa_774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결
추천 : 4
조회수 : 61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9/12/20 11:54:09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38


이탈리아판 ‘촛불’ 이끈 누리꾼 4인방


올해 스물여덟 살 청년 프란코 라이 씨는 이탈리아의 휴대전화 제조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인터넷으로 정보를 모으며 시사를 따라잡고 있지만, 딱히 어느 정파나 정치인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중략>

지난 12월5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반대하는 로마 시민 10만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시위를 조직한 것은 유명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아니라 인터넷 블로거였다.

<중략>

시위대는 보라색 스카프와 셔츠를 입었다. 보라색은 특정 정당이 상징색으로 쓰지 않아, 중립을 뜻한다. 집회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다리오 포 등 유명 작가와 영화배우가 참가했다. 시위대는 로마역에서 성 요한 바실리카 성당까지 행진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총리 퇴진이었다.

<중략>

12월4일 전직 마피아 조직원 가스파레 스파투차가 재판정에서 증언을 하던 도중 “베를루스코니가 (마피아로부터) 후원을 받는 대가로 마피아 조직에 혜택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1994년 두목에게 들었다”라고 말했다. 가스파레 스파투차는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킬러였다.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인물의 증언이었기에 신빙성이 높았다. 

총리 반대 사이트에 37만명 가입

<중략>

지난 5월에는 72세인 그가 18세 모델 지망생에게 시가 6000유로(1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한 사실이 드러났고, 아내는 이혼을 선언했다. 부인 베로니카 라리오는 “자녀의 18세 생일 때는 오지 않던 양반이 그녀 생일 때는 직접 찾아갔다”라며 분노했다.

11월에는 파트리치아 다다리오(42)라는 모델(혹은 매춘부)이 자신과 베를루스코니 총리 사이의 염문을 담은 책 <총리님, 즐기세요>를 펴내면서 성 스캔들은 최고조에 올랐다. 이 책에서 그녀는 침대 위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가 하면, 그가 때때로 협박과 신변 위협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뇌물 수수와 탈세, 분식회계 혐의는 형사 소추로 이어질 수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1990년대  텔레비전 채널권을 사들일 때 탈세와 회계 조작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베를루스코니는 그 당시에도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그런데 실은 그가 영국인 변호사 데이비드 밀스에게 위증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60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이미 데이비드 밀스는 위증죄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총리를 형사 기소하지 못하게 한 ‘고위공직자 면책법’이 지난 10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베를루스코니는 조만간 법정에 불려갈지도 모른다.

‘유러피언 민주주의’를 기준 삼아 이탈리아를 비판하면 논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미디어 재벌로 이탈리아의 공영,민영 미디어 90%를 장악하고 있는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탈리아 지식인이 반대 시위에 동참한 이유다.

그동안 베를루스코니 반대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이번 시위는 양상이 ‘한국형 촛불 시위’와 닮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2002년과 2008년에 보여준 한국형 촛불 시위는 특정한 정당이나 시민단체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누리꾼이 자발적으로 뭉쳤다는 점이 주목받았다.
이번 이탈리아 시위 역시 그랬다. 12월5일 집회는 페이스북(Facebook)을 중심으로 기획됐다. 페이스북은 한국의 싸이월드와 비슷한 커뮤니티 사이트로, 마치 한국 촛불 시위 때 다음(daum.net)의 토론광장 ‘아고라’가 중심에 섰던 것과 비슷하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여전히 여유만만

<중략>

라이 씨와 동료 누리꾼들이 10월9일에 만든 반(反)베를루스코니 페이스북에는 12월11일 현재 37만3000명이 가입해 있다. 이것이 대규모 시위의 원동력이었다. “나는 그저 한 명의 누리꾼일 뿐이다. 우리 모임에는 회장도 없고 지도자도 없다. 처음에 친구 프란카 코라디니와 집회를 준비할 때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단지 특정 정당에 속하지 않는 행사(Non-party Event)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만 있을 뿐이었다. 블로그 몇 명만 모일 줄 알았는데 삽시간에 회원이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호응한 것일까? 라이 씨는 “이탈리아 인들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잠시 좌파 연합이 정권을 잡았지만 사회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야당이 베를루스코니 반대를 외치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우리처럼 무당파 누리꾼이 운동을 호소하자 그 순수함을 인정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라이 씨는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시작한 일이라도, 정당한 뜻만 있다면 수십만명이 동참하는 시위로 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잃어가던 ‘광장과 거리의 문화’를 재발견했다는 것도 의미 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라고 평했다.

한편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행보는 변함이 없다. 12월5일 시위 때 그는 축구 관람을 즐기며 여유를 보였다. 지지율은 60%에서 45%로 떨어졌지만 다음 총선에서 이기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 사회에서 권력자를 쫓아내는 방법은 선거뿐인데, 잇단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치색이 없는 운동은 대중이 환영하지만, 역설적으로 정치와 연결되지 않은 운동은 정권을 바꿀 수 없다. 한국과 이탈리아 시민사회가 모두 안고 있는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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