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이다.
글을 쓰러 나왔는데, 옆테이블에 앉은 연인이 마구 싸운다.
아니, 싸운다기보다 여자가 일방적으로 퍼붓는다는 게 맞는 말이다.
아니, 여자 혼자 화가 나있다.
남자는 계속 한숨을 쉰다.
여자는 지금 한시간째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엿듣는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말았다.
싸움구경만큼 재밌는게 없는 것 같다.
여자 : 내 인생의 황금기를 너같은 쓰레기를 만나서 이제 뭔 꼴이야. 아 아까워. 내 인생.
남자 : 에휴, 알았어. 그래.
여자 : 지금 니가 내 앞에서 그게 취할 태도야?
남자 : 피곤해서 그래. 집에 가야겠다.
여자 : 갈꺼면 내가 사준 신발 벗고가.
남자가 조용히 신발을 벗는다.
여자 : 벗으란다고 벗냐? 그렇게 말잘듣는 분이 왜 다른말은 안들어?
또 다시 시작한다.
남자 : 알아. 미안해. 잘못했다고 하잖아.
여자 : 그게 잘못한 태도야? 무릎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너같은 애는 평생 나같은 여자 못만나.
남자 : 그래. 그러니까 과분하다고. 놔준다고.
여자 : 헤어지자고? 야 니 주제에 무슨 헤어지자 말자야. 그건 내가 결정해. 어이가 없네.
남자 : 에휴.
여자 : 지금 한숨쉬는거야? 니 못난 자신한테 한숨쉬어. 아 정떨어져.
남자 : 그러니까 놔준다고.
여자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남자는 지쳐보인다.
여자 : 내가 어쩌구 저쩌구 넌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저꺼구저거저거꾸저ㅓ거구했잖아. 안잘못했어?
남자 : 잘못했다고.
여자 : 잘못한거 알긴 알아?
남자 : 알지. 미안해.
여자 : 미안한게 아닌거 같은데?
남자 : 아니야.
여자 : 뭐가 아닌데? 미안한게 아니라고?
남자 : 아니, 잘못했다고.
여자 : 잘못한거 알면서 그래?
남자 : ....에휴
여자는 무슨 말을 듣고싶은걸까.
여자 : 잘못했으면 빌면서 다시 잘해보자고 해야지.
남자 : 니가 후회된다며. 나같은 쓰레기 만나서
여자 : 그게 내 잘못이야? 니가 잘못한거잖아. 잘못했지? 어? 잘못했어? 어?
남자 : 안잘못했다. 됐냐?
여자 : 거봐. 럴줄 알았어. 잘못했다는 생각 한적도 없네.
남자의 한숨이 계속된다. 폐까지 나올 기세다.
여자 : 니 주제에 나 같은 여자를 어디서 만나겠어? 그래? 안그래?!!!!!!!!
남자 : 맞아. 너처럼 예쁜 여자를 내가 어디가서 만나겠니. 내 인생에서...
여자가 갑자기 풋 하고 웃는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다시 화해할 분위기다.
여자 : 그러니까. 알긴아네? 그래서 어떡할거야? 나랑 헤어질거야?
남자 : 놓아줘야지. 아까 놓아달라고 했잖아.
여자 : 뭘 놓아줘. 니가 잘못했으면 빌어야지. 만나달라고 사정사정해야지. 그럼 내가 만날지 안만날지 결정할테니까 빨리 다시 만나자고 말해.
남자 : 말 못해.
여자 : 왜???? 아~ 넌 잘못한게 없으니까?
남자 : 아니. 잘못이야 했지.
여자 : 잘못은 했는데, 다시 만날정도는 아니라고?
남자 : 휴.. 모르겠다. 가야겠다.
여자 : 가긴 어딜가? 재수없어. 지랄이야.
여자가 또 한번 폭발했다. 악을 쓴다.
남자 : 지랄이 뭐야. 지랄이. 그렇게 예쁜 얼굴에서.
여자 : 지금 훈계하는거야? 상황파악이 안돼? 그리고 너도 지랄이란 말 하잖아. 나만 해?
남자 : 내가 언제. 난 욕 한번도 해본적 없어.
여자 : 웃기시네. 너도 지랄이라는 말 쓰잖아.
남자 : 그건 진짜 아니지. 왜 억지를 부려. 내가 언제?
여자 : 지금
남자 : 내가 언제 그랬어? 왜그래 진짜.
여자 : 지금 니 얼굴이 지랄하네 라는 표정이잖아. 그것도 욕이지. 난 굉장히 불쾌해.
남자 : 그런 억지가 어디있어.
여자 : 아~ 니가 말하는 건 말이고. 내가 말하는 건 억지야? 억지부리는 여자랑 그동안 어떻게 만났어?
남자가 또 다시 한숨을 쉰다. 나도 한숨이 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끼어들어서 그만하라고 입을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다.
여자 : 그럼 헤어지는 마당에 마지막 이별 선물이나 사줘.
남자 : 그래. 뭐 사줄까?
여자 : 예쁜거.
남자 : 알았어.
다시 화해하는 분위기인가?
여자 : 나 옛날 남자친구는 이것도 사주고 저것도 사주고 다 사줬어.
남자 : 걔는 부자였나보네. 나는 가난해서 그래. 미안해.
여자 : 아니? 걔도 가난했어. 근데 날 좋아하니까 이것저것 사준거야. 넌 나한테 뭐해줬어? 화장품이랑 가방이랑 옷밖에 더사줬어?
남자 : 난 가난하니까 그렇지.
여자 : 가난해도 마음만 있으면 다 해줄수 있는거야. 안그래? 안그러냐고?
남자 : 그래...
여자 : 뭐야 마음이 없다는 소리네? 아 재수없어 진짜.
남자 : 에휴....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여자 : 나 갈래. 니 얼굴 보고있으니까 짜증나서 못있겠어.
남자 : 왜 또 그래. 갑자기
여자 : 왜 또? 왜 또??? 또???????????? 나 갈래.
남자 : 아니야. 미안해. 가지말고 앉아봐.
그말에 앉으려던 여자가 다시 퍼부었다.
여자 : 앉아봐? 어디서 명령질이야. 공손하게 말 안해?
남자 : 그래. 알았어. 미안해. 앉아주세요~
여자 : 비꼬냐?
남자 : 아니야....
여자는 결국 앉았고, 맥주 한병을 더 시켜달라고 했다.
남자 : 뭔 또 맥주야. 딴 데 가자. 사케집 갈까? 너 좋아하잖아. 가서 맛있는거 먹자.
여자 : 싫은데? 내가 니가 가자고 하면 가야돼? 맥주 얼마나 한다고. 아까워?
남자 : 그럼 니가 사 마셔
여자 : 내가 왜? 만나주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해야지. 돈까지 내가 내? 아깝냐?
남자 : 에휴....여기 맥주 한병만 더주세요.
여자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남자는 지쳐보인다. 말이 없다.
여자 : 왜 말이 없어? 말하기 싫은가봐?
남자 : 아니야. 말하면 니가 또 화내잖아.
여자 : 내가 왜 화를내는데? 화 안나게 하면 되잖아. 그게 어려워? 넌 정말 배려심이 없어.
남자 : 그만 풀면 안돼? 왜 자꾸 화를 내.
여자 : 여기서 무릎꿇고 빌면 화풀게. 그리고 다시 만나주세요 라고 말해.
남자 : 그건 못하겠다.
여자 : 뭐??? 못하겠다고? 거봐.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는 거네. 내가 이런 남자를 믿고 2년 동안이나 너한테 시간을 허비하다니.
남자 : 2년 동안 좋았잖아. 그래서 너도 만났던 거 아니야?
여자 : 아니? 그냥 만나준건데??? 븅신아. 그것도 몰랐냐?
남자 : 븅신이 뭐야. 왜 욕을 해.
여자 : 욕 안먹게 하면 되잖아. 그게 어려워? 아 어이없어.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많이 화가 난 것 같은데, 이제 자기도 왜 화를 내는지 모르는 것 같다. 그냥 화를 내고 있으니까 계속 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화를 내는 모양이다.
남자 : 다 마셨어? 딴 데 가자.
여자 : 됐어. 나 갈거야. 짜증나.
여자가 그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자는 계산대로 갔고, 그동안 여자는 밖에서 기다리고 서있다.
갈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할 수만 있다면 다가가서 귀에대고
“그냥 가 이년아.”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참기로 했다.
그리고 밖에서도 여자의 퍼붓기는 계속됐다.
상황이 종료된 모양이다. 둘이 어디론가 걸어간다.
분명 사케집에 가겠지. 가서도 남자는 욕을 먹을 것 같다.
나는 오늘 대통령보다 욕을 더 많이 먹는 사람을 처음봤다.
저 상태로라면 곧 대통령이 될 것 같다.
투표해야겠다.
출처 : www.liliro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