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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장지명형 왕호
게시물ID : history_77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댓글매니아
추천 : 10
조회수 : 1108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2/20 18:40:49

 고구려는 이웃의 백제나 신라와는 달리 왕호와 관련해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장지명에서 유래한 장지명형 왕호를 사용했다는 점인데 이는 백제나 신라와는 달리 고구려만이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만의 독특한 문화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장지명에 유래하여 장지명형 왕호를 사용한 예 외에도 이룩한 업적을 특징으로 삼아 왕호로 사용한 경우나 후대에 추존하여 사용한 형태의 왕호도 있었습니다만 제 1대 동명왕에서부터 마지막 28대 보장왕에 이르기까지 총 28대 왕 중 가장 많은 12~15명의 왕들이 이러한 예를 따랐다는 점은 다른 경우와 비교해 장지명형 왕호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쓰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장지의 선정과 관련해서는 모른 왕들이 공통되었다고는 볼 수 었으나 현재의 추측으로는 살아 생전 미리 정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는데 이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실린 민중왕과 모본왕의 경우 살아 생전 장지를 정했다는 기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다른 왕의 경우도 그리 다르지 않았으리라 추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4년 여름 4월. 왕이 민중원에서 사냥을 하였다. 가을 7월에 또 사냥을 하다가 석굴을 보고 측근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거든 반드시여기에 장사지낼 것이며 따로 능묘를 만들지 말라.'하였다. *** 5년. 왕이 죽었다. 왕후와 여러 신하들이 왕의 유언을 어기기 어려워 석굴에 장사를 지내고 호를 민중왕이라 하였다." (삼국사기 권14 고구려본기 2 민중왕조) 


 장지명형 왕호를 사용한 왕들은 보통 고구려의 평양 천도 시기를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이는 기록의 유무, 그리고 왕호를 정하는 방식에 있어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선 첫번 째로 기록의 유무의 경우 평양 천도 이전의 왕들(4대 민중왕, 5대 모본왕, 9대 고국원왕 ~ 18대 고국양왕)의 경우 장지가 기록이 되어 있으나 천도 이후의 왕들(23대 안원왕, 24대 양원왕, 25대 평원왕)의 경우 '본기'에 장지와 관련된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학자들 간에도 장지명형 왕호를 사용한 왕을 12명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 천도 이후의 왕들의 경우 장지와 관련된 기록이 되어 있지는 않지만 완호에 '原(언덕 원)'이란 지역 명이 붙어 있고 분주 왕호가 고국원왕과 동일한 유형을 취하고 있어 그 왕호가 장지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여 이들까지도 포함한 15명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는 상황입니다. 

 

 다음 두번 째의 왕호를 정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변화란 말그대로 왕호를 정하는 방식에 있어 변화가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장지명 이외에도 왕의 훈적이나 특성을 드러내는 왕호가 부가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물론 이 또한 논란이 조금 있는데 광개토왕 때부터 바뀌었다고 보는 시각과 그 이후인 장수왕 때부터 바뀌었다는 시각으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안장왕대까지 이어졌으며 이후 귀족연립정권의 등장과 왕권의 약화가 시작된 안원왕 이후에는 다시 장지명형 왕호로 돌아오게 되며 왕권을 재강화하려고 시도하였던 영양왕대 이전까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고구려의 장지명 왕호가 주목 받는 이유는 이러한 왕호 사용이 삼국 중 고구려만이 사용했다는 점에서의 독특성을 지녔다는 점 이외에도 이러한 장지명 왕호를 통해 능묘의 소재지를 가늠해 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동천왕, 중천왕, 서천왕의 경우 가운데의 '천'이 어떤 '천'인지만 알면 그 '천'을 중심으로 위치한 동천왕과 중천왕, 서천왕의 능묘를 유추해 볼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지명 왕호와 관련되어 더욱 심도있는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물론 북한과 중국에 위치한다는 지역적 제약이 따르기는 합니다만 이러한 연구가 이후의 북한과 중국에 위치한 고총들의 주인, 그리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왕들의 무덤을 더 바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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