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친구
지금으로부터 15년 정도 전, 내가 초등학생일 때의 일이다.
내가 살던 마을은 넓긴 했지만 주민이 적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가 마을 중심에 있었고, 많은 지역의 애들이 다니고 있었다.
변태니 방범벨이니 그런 게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에
친구 두세 명이 모여서 함께 하교하곤 했다.
멀리 다니는 애 중에는 1시간 걸려서 걸어서 다녔던가..
겨울엔 해가 짧으니까 먼동네 사는 애는 부활동 안 하고 그냥 돌아갔다.
산길로 다니기도 했고, 포장된 도로도 아니고 애당초 길 같은 것도 없었으니까.
집단촌의 빛만 보고 두 세 명이서 걸어 돌아간 거야.
요즘은 통학반 같은 걸 정해서 다니던가?
그런데 개중에는 같이 돌아갈 친구도 없는 애가 있었어.
나랑 같은 반에도 그런 애가 있었어. 대충 K라고 할게.
그 애는 좀 지능이 떨어지는 애였는데, 특수학교 같은 곳에 안 가고 일반 학교로 진학을 했어.
하지만 지역에서 같이 노는 애들끼리 뭉친 그룹엔 못 들어갔지.
그래서 하교 길엔 혼자서 30분을 걸어가는 거야.
시골이라 애가 장애가 있다고해서 부모님이 차로 등하교 시키는 일도 없었어.
나는 동쪽 교문에서 나가면서 서쪽 교문으로 가는 K를 가끔 보았지만, 대부분 혼자 있었어.
어느 날 도덕 시간에 선생님이 말하셨어.
"요즘 집에 바로 안 가고 딴 길로 새는 애가 있다고 하던데"라고 말이야.
다들 철렁 내려앉았지. 다들 뭐 게임기 많은 친구 집에 잠깐 들러서 놀고 뭐.. 그랬지.
그래도 평소엔 그런 걸 묵인했었거든.
선생님이 계속 말하셨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엔 친구 집에 놀러가도 좋아요.
하지만 위험한 곳에 놀러가는 학생이 있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
위험한 곳? 친구에게서 떠도는 소문을 듣고서야 무슨 말인지 알았다.
"있잖아, 저거 K더러 말하는 거야. 걔 돌아가는 길에 보면 다리 밑에서 놀거든"
K 집으로 가는 길엔 커다란 강이 있고 최근에 생긴 새 다리와 그 옆에 오래된 다리가 놓여져 있다.
새 다리에는 걸을 길이 있지만 오래된 다리는 그런 게 없다. 돌로 만든 오래된 다리이다.
다리 아래에는 넓은 하천 부지가 있는데, 계단이 있어서 거기로 갈 수는 있게 되어 있다.
하천 부지는 어린이 키만한 풀이 무성한데, 다리 바로 아래엔 빛이 닿질 않아서인지 풀이 자라지 않아 작은 공간이 있다.
낮 동안에는 비밀 놀이터 같은 느낌도 들곤 해서 마루이에서 발매된 에어건으로 물을 쏘며 놀곤 했다.
그렇게 놀 땐 K는 온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내가 말한 건 새로 생긴 다리이고, K는 낡은 다리 아래에서 논다고 한다.
듣자하니 같은 지역 아이들은 새로운 다리로 돌아가는 길에
K같아 보이는 애가 항상 낡은 다리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애들은 멍청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며 그냥 뒀지만,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걱정하며 학교로 연락을 한 것 같았다.
K는 낮에 교무실로 불려갔다.
하지만 K는 거기 그만 들르겠다고 하질 않았다.
K가 돌아가려고 했을 때 선생님이 말하시는 걸 들었다.
"친구와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곳에서 노는 건 안 된단다"
그렇게 못을 박고 계셨다. 나는 웃음이 났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걔는 항상 혼자 놀고 있단 말이다. 게다가 다른 친구 말로는 다리 아래에는 K 혼자 있다고 했는데?
물론 아무리 혼을 내봤자 K는 계속 다리 아래에 들렀다.
축제 날 밤. 나는 친구와 함께 친구 집으로 갔다.
축제의 풍물패들 소리가 들리는 해질 녘, 다 같이 불꽃놀이를 하며 밤에 실컷 놀았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우리는 그 집에서 하룻 밤 자기로 했다.
"나, K의 친구를 봤어"
갑작스레 한 명이 말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보았다는 말투였다.
아마도 너무 께름칙해서 계속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걔는 맨날 다리에 낙서된 걸 보면서 즐겁게 말하더라고"
다들 순간적으로 조용해졌다.
해질 녘 맴맴하고 매미가 울 쯤에 K는 항상 "친구"와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해 겨울, 결국 최악의 사건이 벌어졌다.
마을 방범대 무선으로 아이를 찾고 있었다.
K가 사라졌다.
너무 늦어져서 부모님이 학교로 연락했더니 "진작에 하교했다"고 했다.
마침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무원이신 우리 아버지에게 계속 전화가 와서, 코트를 입고 장화를 신고 나가셨다.
"걔 얼굴 기억하니?"라고 물으시더니 날 차에 태우셨다. 물론 강쪽으로 향해 갔다.
이미 선생님이나 인근에 사는 친구, 경찰... 사람이 많이 모였다.
하지만 결국 K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천 부지에도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다리 기둥에 붉은 페인트로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그 안에 사람 얼굴 같은 낙서가 되어 있었던 게 기억난다.
"행방불명" 벽보도 색이 바랠 쯤.
그 낙서도 사라졌는지 흔적도 없었다.
이야기는 그 뿐이다.
친구. 어쩌면 K는 지금 그 친구와 같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