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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게시물ID : lovestory_653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최선입니까
추천 : 14
조회수 : 1780회
댓글수 : 37개
등록시간 : 2014/04/09 23: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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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에 / 신달자
 
내가 울 때 왜 너는 없을까
배고픈 늦은 밤
울음을 참아내면서 너를 찾지만
이미 너는 내 어두운 표정 밖으로
사라져버린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나는 풀이 죽어
마음으로 너의 웃음을 불러들여
길을 밝히지만
너는 너무 멀리 있구나.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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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만한 지나침 /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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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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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나는 /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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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바람 / 구영주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 없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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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 이 상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잊어 버리고 재차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로 나는 꽃을 깜빡 잊어 버리고 들어간다.
나는 정말 눕는다.
아아. 꽃이 또 향기롭다. 보이지도 않는 꽃이 - 보이지도 않는 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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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노르湖를 찾아서 / 조유리
 
죽은 호수가 사막을 쏘다녀요, 바짝 탄 숨구멍에서
조곡 같은 모래바람이 태어나요
짜고 슬픈, 유적인 나의 호숫가
 
흐르고 있는 것들은 이승에 잠시 풀어놓은, 계절풍이지.
 
당신이 훅, 앞가슴을 들춰보였을 때
까닭없이 매운 고독에 마음을 눌러놓지
말아야했어요 갈라터진 기억들을 뱉어내는 일기장
한 번도 따스한 피를 수혈 받지 못한 손가락들이 수북하게 찢겨져
새벽녘마다 길 없는 곳으로 쏟아져요
 
생의 한 복판으로 흘러가지 못한 것들이
광막한 지평 끝에서 늙어갈 때
 
검은 砂丘에 매몰된 당신, 밤이면 잠속으로 흘러와
밤새 모래알들을 컥컥 뱉어내요
스무 살 통증이 몰려와 등을 쓸어주려 하면
검은 모래폭풍이
바닥 채 쓸어가 버려요 얕아진 바닥이
바닥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만신창이 된
꿈에서 필사적으로 깨어나면
타고 온 막배가 엎지른 호수
 
당신이, 내 몸 속에 흥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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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버릴 수 있다면 / 류시화
 
누가 말했었다.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강에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면 고통도 그리움도 추억도
더 이상 없을것이라고.
 
꽃들은 왜 빨리 피었다 지는가.
흰 구름은 왜 빨리 모였다가 빨리 흩어져 가는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가 너무도 빨리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것들.
 
들꽃들은 왜 한적한 곳에서
그리도 빨리 피었다 지는것인가.
강물은 왜 작은 돌들 위로 물살져 흘러 내리고
마음은 왜 나자신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가. 
 
 
2014.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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