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반쪽의 이야기.
1.
한국소설계의 누가 거장으로 쳐주는 것인지 모를 거장 복거일씨께서
당시 세태에 유행하던 드래곤 라자를 비판하며 이런 얘기를 합니다.
글 중에 모닝스타가 나왔으면 나중에 그걸로 누구 대가리라도 뽀개야지 이게 뭐야라고
그 병신같은 개소리 때문에 이영도씨의 팬들은 이영도씨의 작품 여기 저기 숨겨진 복선들을 모닝스타라고 부릅니다.
2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유명한, 아 물론 나무를 맨손으로 뽀개서 가루로 만들어버릴 듯한 산적스러운 룩으로도 유명한 쉘 실버스타인이 한 얘기로 기억하는 '완벽한 반쪽(?)/나머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팩맨처럼 생긴 동그라미가 자신의 빈곳을 찾아 온세상을 헤매다 드디어 그 완벽한 나머지를 찾았는데 너무 데굴데굴 굴러버리길래 결국은 그 완벽한 쪼가리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요.
3
네, 넷플릭스의 영화 '반쪽의 이야기'는 영화 시작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그런 완벽한 반쪽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 모닝스타의 오랜 팬으로서는, 정말이지 착실하게 복선을 제시하고 그 복선들을 회수해나갑니다. 아주 꼼꼼하게요. 단 한 번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습니다. 클리셰를 비꼬는 클리셰를 비꼬기까지 ㅋㅋㅋㅋ
영화의 기본적인 틀은 시라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카사블랑카를 섞습니다.
혹자들은 그냥그런 SJW 또는 PC물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할 법 합니다만...
글쎄요. 하지만 카사블랑카라구요. 정신차리세요.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3대째 소시지집 네째 아들에게 그 집 어머니가 '아들아 네가 게이여도 난 널 사랑한다.'라고 하니까
그 넷째가 '고마워요 엄마 그런데 저 게이 아니거든요.'라고 말하니까 어머니가 '다행이다. 그래도 널 사랑해.'라고 말하니까
넷째가 '엄마 그런데 소시지 맛 좀 바꾸면 안되요?'라고 말했다가 두들겨 맞는 장면. ㅋㅋㅋㅋ
저 장면도 여러 복선의 회수인데 정말 재기발랄합니다.
사르트르와 까뮈를 인용하다가 갑자기 스타트렉을 인용하다니 ㅋㅋㅋ
영화에는 무조건 피와 섹스가 나와야지!하시는 게 아니라면 한 번은 볼 법한 영화입니다.
정말 즐거운 영화이니까요. 마을 간판부터 웃겨요. ㅋㅋㅋㅋ
익스트랙션, 언더그라운드6, 사냥의 시간, 버드 박스 이런 것들 따위에 치이다가 정말 반짝반짝 거리는 보석을 찾은 느낌입니다.
보고나서 '아 재밌었다.', '아, 이 영화 보기를 잘했어.'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복거일씨가 봤다면 대가리가 모닝스타 난무에 곤죽이 되어버렸을 영화. 한 번 보세요. 재밌습니다.
반쪽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