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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살해범 ‘이주회’의 정체
게시물ID : sisa_4978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사건추적자
추천 : 0
조회수 : 8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4/15 04:54:09
1895년 10월8일 새벽 5시쯤.
경복궁 광화문에서 어둠의 정적을 깨고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작전명 ‘여우 사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선공사 미우라와 일본 자객 48명은 총성과 함께 일제히 황후의 거처인 건천궁에 난입했다.
이어서 궁녀들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끔찍한 살육이 시작되었다.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는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된 후 시신은 불에 태워 버려졌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일본 자객들은 모두 본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열린 일본 법정은 ‘증거 불충분’을 들어 이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일국의 국모를 죽인 일본 자객들 중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서 ‘애국지사’로 칭송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일본 자객들은 어떻게 해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일까.
명성황후가 살해된 후 조선에서는 이와 관련해 세 명의 조선인이 대역 죄인으로 체포되었다.
일본인에 고용되었던 평민 박선(당시 26세)과 한성부 친위대 부위 윤석우(당시 40세)
그리고 한성부 군부협판 이주회(당시 52세)가 그들이었다.
 
http://jeongrakin.tistory.com/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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