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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그녀는 100년 멀리에 있다 (BGM)
게시물ID : panic_781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숏다리코뿔소
추천 : 16
조회수 : 3640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3/08 00:24:02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8ErAW






“그녀를 다리로 좇는 건 불가능해. 잘 생각해봐. 우린 그녀를 시간으로 좇아야해.
하지만 우리가 1초를 좇는 동안 그녀는 1초간 멀어지고 있을 거야. 알 수 있겠어?”

삼촌의 담배연기가 잘 모르겠는 내 마음처럼 하늘, 하늘 어지러운 곡선을 그렸다.
불 꺼진 방에 앉아 삼촌의 막간 강좌를 듣고 있노라면 항상 머릿속이 멍해지곤 했다.

모니터 불빛에만 의존하는 시야가 원인일 수도,
창문 꼭꼭 봉해놓은 방에서 줄창 피운 삼촌의 담배 냄새가 원인일 수도 있었다.

삼촌 본인이 가장 큰 원인이란 생각도 없진 않았다.

발에 치일만큼의 전자기기들을 비추는 빛이란
나를 이해시키려는 삼촌의 반짝이는 눈과
삼촌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모니터 속 ‘그녀’ 뿐이었다.

아직 7살이던 내가

‘1초를 좇는 동안 1초간 멀어지는 그녀’

라는 현상을 알 길이 없다는 걸
삼촌이야 말로 이해했었을까.

5살에 미적분을 마스터했었다는 삼촌이니
7살 먹은 나에게도 충분히 통할만한 이야기라고,
삼촌은 멋대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언젠가 삼촌의 발자취를 캐던 누군가가 내게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을 때
‘시간 좌표는 완성에 가까웠을지 모르겠다.’ 는 말을 흘리듯 뱉었던 걸 기억한다.

시간 좌표란 말을 듣고서야 난 삼촌이 했던 많은 말 중에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모니터에 연결 된 주먹만 한 크기의 이상한 박스를
나는 ‘소형 컴퓨터’ 라 간단히 여겼었다.

삼촌은 그 것에 대해

“지금 이 소.형.컴.퓨.터.는 이 시간에 있는 걸까 모니터 속 시간에 있는 걸까.” 라며
돌연 질문 같은 혼잣말을 했었다. “모니터는 몇 신데?” 라는 내 물음에

삼촌은 “지금이란 순간부터 100년” 이라 답했다.

지금이란 순간부터 100년을 담고 있는 모니터에는 집요하게도 그녀가 나왔다.
사람의 시선처럼 그녀를 따라다녔던 모니터 속 화면은 삼촌이 사라진 그 날부터

‘No Signal’ 이란 문자만 둥둥 떠다녔다.

삼촌이 사라지고 며칠, 많은 사람들이 “삼촌이 갔을 만한데, 떠오른 곳 없어?” 란
질문을 했다. 눈이 험상궂었던 그들은 하나같이 미간을 좁히며 물어왔다.
이마에 잔뜩 힘들어간 주름을 보며 나는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하지 못했다.

삼촌이 어딘가로 떠났다면 그 건 뻔히 한 곳 뿐이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삼촌이 한 결 같이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이란 순간부터 100년.

그곳 외에는 별달리 삼촌이 동경하는 장소가 있었을까.

모니터 속 그녀를 꾸준히 바라보던 삼촌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리 어딘가 들떠보였던 기억.
언젠가 한번은 “왜 이 여자만 나와? 누구야?” 라고 물었을 것이다.

묘한 느낌의 여자였다.

은근히 평범하다는 것이 그녀의 인상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눈이 조금 날카로워 보인다는 느낌 외엔 딱히 그녀가 남다르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모니터 가득 그녀의 얼굴만이 비출 때 자주 짓던 작은 미소.

그 미소를 볼 때면 삼촌 또한 깊게 웃음을 짓곤 했다.

여자의 정체를 물어봤는데, 삼촌은 “아마, 삼촌은 저 여자가 좋은가보다.” 라고 했다.

아마라는 말과 좋은가보다 란 말은 나로 하여금
삼촌을 한층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각인시켰다.

삼촌이 발견 된 것이 사라진 당일부터 2주정도 였을 것이다.
삼촌은 지금이란 순간부터 100년이 아닌 인근의 모텔에 있었다.

당시에 엄마에겐 삼촌이 죽었다, 라고만 전해 들었다.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기론 단순한 죽음이 아닌 자살이었다고 한다.

삼촌이 자살이었단 사실을 들을 수 있었던 건, 삼촌이 남기고간 작은 박스의 덕이다.

작은 박스에는 전원 버튼이 없었다.

전원을 연결하는 코드 또한 없고 단순히 모니터에 연결하는 선만 달랑 하나 있었는데,
삼촌의 그 작은 박스와 모니터를 연결해 보아도 다른 사람들은 ‘No signal’ 외엔
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미간에 주름을 잔뜩 달고 다니는 그들은 엄마에게 말했다.

“아드님 말고는 이걸 돌아가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까요? 한 번만,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삼촌의 보조금이 갑자기 사라진 엄마가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긴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를 탓할 마음은 없다.
학업을 뒤로 한 채 삼촌이 소속해 있던 연구소에 들어간 것은
나에게 오히려 경제적인 여유를 준 고마운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연구소에 들어가서 알게 된 사실 하나.
나를 포함해 삼촌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구소가 수재들이 모인 곳인지 의아할 만큼 그 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설프기만 했다.

어디까지나 삼촌에게 비견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들은 내게 ‘삼촌에 버금가는’ 이란 표현을 자주 썼지만
나는 삼촌에 비하면 무엇이든 5~6년 이상 꼭 늦게 이뤘다.

그들이 말하는 천재라는 것이 실존했다면 그건 오롯이 삼촌을 위한 칭호일 뿐,
나는 그저 단순히 삼촌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할 뿐인 꼭두각시였다.

삼촌이 했던 것처럼 작은 박스와 모니터를 연결하고
화면에 출력되는 그녀를 지금이란 순간부터 100년을 따라잡고 있을 뿐.

그녀는 알고 있을까.
100년을 따라잡은 영상에 보이는 것이라곤 왜 오롯이 당신뿐인지.

혹시나 알고 있다면 그 답을 묻기까지 대충 100년은 필요한 것 같았다.

100년간 과연 나는 안녕하실런지.

삼촌이 거의 완성했다는 시간 좌표와 별도로 연구소에선
사물을 복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삼촌이 기반을 다진 이 기술은 동전 한 닢부터 시작해
축구공, TV, 송충이, 나비, 메뚜기, 강아지, 돼지, 이제는 커다란 소까지 복제하고 있었다.

삼촌은 시공간을 이동하는 기술을 만들고 있었다.

헌데 동전이며 커다란 소 한마리가 공간을 이동하지 않고
또 하나의 공간에 하나의 복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연구진은 만족했다.

삼촌 또한 그것에 만족했었다니, 어쩌면 시공간의 여행이란 것은
실질적으론 불가능 한 노력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기술을 만든 삼촌의 말을 듣고 보면 과연 만족스러운 결과인 것은 확실하다.

"정말로 사물이 공간을 순식간에 이동한 것처럼 마술을 부리고 싶다면,
원본을 순식간에 증발 시킬 만큼의 고열을 원본에게 노출 시켜서 증발하게 하면 된다.
원본이 증발하면 마치 그것은 사물이 이동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복사본이 완전무결하다면 사람들은 쉽게 속을 것이다."

우리들의 문제는 좌표였다.
지금이란 시간의 공간을 좌표로 설정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지금부터 1분 뒤의 공간에 좌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복제품을 1분 동안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의 기술로썬.

100년을 이동하기 위해선 100년 동안 복제품을 만드는 수밖에 우리에겐 없었다.
하물며 무언가를 과거로 보내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는 가만히 앉아 미래로 떠내려가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 동안에도 모니터 속 그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날 기다렸다.

삼촌의 시간상 좌표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녀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그러나 유일한 단서로서 약 100년 뒤에 존재했다.

삼촌이 자살하며 남긴 유서를 나는 읽은 적이 없다.
엄마가 유서를 받았었지만 금방 불태웠다고 한다.

엄마는 “별 내용 아니었다니까.” 라고 했었지만
연구소의 임원 중 한 명은 유서 중 일부는 나에게 전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삼촌은 ‘나만 100년을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라는 말을 나에게 남겼다는 것 같다.
나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예나 그 당시나 나는 삼촌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복제라는 휘황찬란한 기술은 인류에게 얼마든 쓰였다.
비록 그것이 시공간을 왕래하기 위한 기술의 반쪽짜리 실패작이었지만.

내가 쉰일곱 즈음 당한 큰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것도
의학과 복제의 기술이 결합되어 이뤄낸 성과다.

인류는 비대해졌다.
인류의 양적으로도 실제 외형에 있어서도.

백 하고도 일곱 살이 되어도 아직 나는 살아있다.

모니터 속 그녀를 찾아오는 데 걸린 시간이 자그마치 100년 이었다.

실제로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삼촌의 시간 좌표는 이미 100년도 전에 완성되어 있었다는 걸 실감했다.

살짝 찢어진 눈매의 평범한 여자.
100년을 봐왔는데, 몰라보고 지나칠 리는 없다.

삼촌은 왜 그녀를 ‘아마도’ 좋아했었을까.
그녀는 100년 전 내가 살던 집과 상당히 겹치는 지점에 살고 있었다.

건물들은 모습을 바꿨지만 동네를 어우르는 산의 풍경을
옛 기억과 겹쳐보자면 아직도 그대로인 동네가 괜히 마음을
100년 전으로 이동시키는 기분이 든다.

그녀를 비춰 100년 전으로 영상을 보내온 장치는 어디에 있을까,
1초를 다가가는 동안 1초씩 멀어지는 그 것.

모니터에만 존재하던 그녀의 주변을 관찰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백 년이나 좇아 왔어?”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한 거야? 나 어떻게 알아봐? 삼촌이 박스로 영상 보낸 거야?
일곱 살 시절로 돌아가 묻고 싶었지만,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잠시 뒤돌아보길 주저했다.

100년이란 시간을 100년이란 시간을 통해 이동하여
도착한 사사로운 감회들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양 손의 검지와 엄지를 이어 사각형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프레임 속 가득 그녀를 담으니, 지금이란 순간부터 100년 전이 1초씩 멀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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