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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 펌) 故조오련님의 차남 조성모님이 쓴 글 입니다.
게시물ID : gomin_10636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afe_Boba
추천 : 7
조회수 : 142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4/04/15 16:22:01
 
오늘 새벽 글을 올렸었는데
실수로 글을 지우는 바람에 다시 올립니다.
전에도 글을 썼다 시피 조성모님의 고민이 많을거 같아 
고민게로 정하여 글을 씁니다.
문제 있을시 자삭하겠습니다.
글 전문을 그대로 퍼온거라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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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평소에 미운짓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셔도 저의 아버지를 봐서라도 이글을 널리 널리 퍼트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5년 간의 저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더 이상 참다가는 정말 돌아 버릴거 같아 이렇게 고민의 글을 올립니다
저의 아버지 4월 19일에 지금의 새어머니 라는 분과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8월 4일 에 돌아 가셨습니다
사체 가 발견 된건 8월 4일 이지만 병원에서 
당시 사망 시간을 8월 2일 저녁에서 8월 3일 아침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119 차가 집에 도착 하셨을 때는 아버지의 심장은 이미 멈쳐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상주로서 제 역활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충격에 울기로 많이 울었고 술도 많이 마셔서 제정신이 아니였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 하니 친지분들과 아버지 친구 분들 께서 두가지의
의견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어차피 가신분은 가신분이고 아버지 이름이 있으시니 부검을 하지 말고
편안히 보내 드리자.
두번째 의견은 그래도 부검을 해보 자는 거 였죠
저와 형은 아버지 시신에 칼을 대고 한다는 것이 정말 싫어서 부검을 하지 않는 걸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첫째날 장례식 장 앞이 굉장히 소란 스러웠습니다.
가족의 동의가 없이 국가수에서 나와서 아버지의 시신을 가지고 가겠다고 옴겁니다
그거로 인하여 신랑이 가 있었고 연안실 앞에서 사람이 지키고 자물쇠로 열쇠를 잠가 못가져 가게 했을 정도로 조금 어수선 했습니다
그렇게 연안실을 지키고 있었는데 다시 국과수 차가 오더니
검사가 의뢰한 부검의뢰서 같은 걸 가지고 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잠깐 기달려 달라하고 해남 지방 검찰청으로 갔습니다
검찰청에 도착해 바로 검사님 방으로 가서 가족들이 이렇게 싫어 하는데
꼭 부검을 실시 하였야 겠냐고 말하자

지날 3일간 아버지의 집에 인적이 없었으면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을 트럭으로 막아놨는데 이거의 의심을 안할수 가 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 저의 아버지 께서는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등지시고
가서 부터 약 8년과 우울증 약을 장기간 복용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술도 많이 드셔서
혹이나 다음날 뉴스나 신문기사에 조오련 우울증약 과다 복용 혹 과음으로 인하여 사망 같은 기사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릎꿇고 제발 부검 하지 말아 주세요 라고 하니
이미 판사님의 도장이 찍혔기 때문에 무조건 적으로 법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검사님이 귓뜸으로 말해주시는게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3일간 그집에 출입한 사람이 없었고 집으로 향하는 유일하 길은 트럭으로 막아 놨고 새어머니라는 사람은 남편이 술을 먹는 다며 2~3일 전부터 집에를 안들어 갔다고 하네요, 그러므로 이거는 의심을 안할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눈물을 버금고 장례식장으로 돌아 와서 국가수에 시신을 인계 했습니다.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였습니다
그리고 몇개월이 흘렸습니다
제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 됩니다
몇개월 후 저역시 우울증 약에 중독이 되어서 매일 20알에서 30알 정도씩
먹지 않으면 일상에서 눈뜨고 있는 것이 힘들 정도로 판단력도 부족해지고 살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개월을 살다가
형과 해남을 찾아가 아버지 유품과 저의 친어머니 와의 가족 사진 앨범을 가지러 아버지 집에 갔었는데 새어머니라는 사람이 그걸 너네 들이 왜 가져 가냐고 하더라고 당시 내가 지금 해남을 지키고 아버지 집을 지키고 있는데 너네가 그걸 왜 가져가냐 하더라고요

물론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제 정신도 정상이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형하고 했던 말이 그래 어떻게 보면 저렇게 생각 하실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왜 우리 어머니 유품과 사진도 왜 저렇게 민감하게 굴지? 하는 생각을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개월이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땅에 관한 애기 가 나왔고
법적으로 7분에 2형 2저 3을 새어머니 라는 분앞으로 가는데 우리 나라 법이라네요... 100일도 같이 안살았는데 말이죠
언젠가 부터 무슨 귀신이 들어 왔나 뭘했나 땅에 욕심을 부리 시며
땅을 한사람이름으로 바꾸는 게 세금도 적게 나오신다면서
너네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신용도 안좋으니 자기 이름으로 바꿔놓자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역시 빛에 땅이 묶여있었습니다

그때 당시도 저는 제정신이 아니였고 형의 마음은 그래도 아버지와 혼인을 하셨었고 어차피 아버지 집과 유품 아버지 묘소(아버지 묘소는 집에서 1분 거리 도 안됩니다)를 지키시니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해서 형한테 서류를 받고 저역시 싸인을 해서
팩스로 붙이 려는데 그때 저를 데리고 계셨던 분이 읽어 보시더니
성모야 이거는 아닌거 같다 이거는 좀더 지켜보고 해야될 일이라며
저를 타이르시길래 저역시 그 선생님의 의견을 따르고 서류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는 그때 제 행동과 판단력으 정상 범위 사람이 아니 였습니다. 몸무게는 150을 넘고 우울증 약때문인가 뭣때문인가 식욕 하나로 하루를 버티고 하루를 버티는 상황이였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게 되니 그때 그 선생님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집에 경매에 넘어 갔다며 어쩔수 없이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그렇게 하세요 하며 넘어 갔습니다
그때 집입찰이 1억 이 조금 안되는 돈으로 팔렸으며 그 새어머니라는 분 말로는 이것저것 다 갚고서 1800만원인가 1900만원이 남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와 형한테 50만원을 붙치시더라고요
장례식때 부주 역시 형과 저한테 50만원씩을 주시고 그분이 다 취하셨고요 100일도 같이 안살고.....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그 남어지 땅에 농사도 짓고 집도 짓어서 살아야하니 그렇게 알라는 식으로 말하시길래 원래 형과 저는 아버지 재산에 관심도 없었고 손붙잡고 아버지 빛을 빨리 갚아서 아버지 명성이라도 덜 떨어 트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있어서 흔쾌히 그러 시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수시로 저는 아버지 훈장과 메달을 도청 박물관에 기증을 하자고 제의 하고 저의 원래 가족 앨범을 가지고 가겠다고 했으나
수시로 그것들은 다 내껀데 왜 느네가 가져가려고 하냐?
그리고 수시로 아버지 훈장과 메달 같은거 도청 박물 관에 기증 하자고
했으나 계속 거부를 하셨고요

참고로 아버지가 돌아 가시기전에 보험을 해약 하셨는데 해약을 하셨어도 500만원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근데 아들의 동의가 없으면 탈수가 없어서 제가 해남에 내려와 보험회사에 가서 같이 타러 갔었고요
물론 그 500만원도 혼자서 가지셨고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저역시 방탄한 생활을 했고 일도 생활도 수영도 모두 버렸었습니다
그러니 저 역시 돈 만원이 없어서 끼리는 거르는 일이 다반사 였고요 
그리고 저의 아버지의 연금 마저도 지금 까지 너무잘 잘 타면서 쓰고 있습니다
저와 형은 정말 아버지 재산과 탐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래도 아버지가 결혼한 분이시니깐 양보 하자 양보 하자 했었습니다
근데 어느날 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남자를 들이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그 새어머니 라는 분의 오빠 되시는 분께서 아버지의 친구 분이시고 제가 삼촌이 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말해준 말입니다
오련이 형이 지금 무덤에서 일어 나게 생겼다고 하면서 전화가 오셨었다는데 저한테는 말을 하지 않은 상태 였습니다
이것이 법적으로 갔을경우 증인 으로도 서주시겠다고 말해 주셨죠
물로 그 새어머니의 오빠라는 분은 지금와서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들이고 살았다는 그 남자도 신원을 어느정도 파악 할수 있었고요
제가 우울증이 너무 심해 헛것도 보이고 헛소리 도 들리고
특히 아버지 묘소가 아니고 아버지의 고향이자 제 고향이기도한 전라남도 해남을 지나가거나 생각만 해도 그후로 몇개월 간은 정말 힘이들 정도라 아버지와의 정을 끈어 놓고 가지 않는 한 저만 더 괴롭고 허상들이 저를 괴롭히던 시절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 묘소에 들려서 울기도 하고 몇번을 해남을 가도 묘소는 안올라 가는 정도로 제 정신이 피박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불씨에 해남을 한번 가봤는데 저의 아버지 묘소는 
이미 돌이 다 깨지고 무덤이 흘러내리고 잡풀들로 둘러 싸여 있고 
이거는 관리를 한 묘의 수준이 아니 였습니다
그리고 집을 판돈으로 집을 짓고 놓사도 짓고 한다고 했는데
컨테이너를 얻어 놓고 생활 하셨던거 같은데 이미 천장과 컨테이너 벽면이 태풍에 날아가 절대 사람이 살수 있는 집이 아니 였습니다.
자기는 거기서 거주를 한다고 했지만 부처의 보리수밑의 깨달음을 깨우치지 않는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거주를 하지 못 하는 집이 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유품이니 사진 들은 다 곰팡이가 앉아서 썩어가고심지어 새똥들 까지 집안에 수두룩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 저의 가족의 원수를 거기서 살라고 해도 그렇게 관리를 하지 않았을 것일정도로 개판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당시에 이렇게 사진과 유품이 썩어 가길래 우리 가 가져 가겠다고 했는데도 그건 내껀데 왜 느네들이 가져갈려고 하냐? 라는 식으로 하더라고요. 그때 역시도 가족 앨범도 못 가지고 가게 하고요 도대체 무슨 심보인줄 모르겠었습니다
그래놓고 땅에 대한거는 법무사를 찾아가 정말 부지런 하게도 서류를 잘 해서 수시로 저에게 동의를 구했고요
시간이 흘러서 제가 우울증약을 줄이고 이제 거의 끈어 갑니다
다시 정신을 차렸죠
어제 다시 형하고 이러면 안되겠다 하고 진짜 트럭 가지고 가서 모든걸 실어 오자며 트럭을 가지고 가서 짐을 실기로 합니다.
근데 돌아 오는 대답을 똑같았습니다. 왜 느네들이 저걸 가져갈려고 하냐의 대답이였죠 다 썩어 가고있었는데 그리고 어제 가서 알았는데 그곳에서 거주도 하지 않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언성이 높아 지고 제가 흥분을 해서 욕도 하며
우리 아버지 가 돌아 가실수는 있지만 왜 너 때문에 머리 두개골을 따야 겠고 복부를 가르로 했냐는 식으로 말했죠
그랬던니 너 지금 한말의 책임을 지라면 더 언성 높이면 법적으로 하라는 식으로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버지 돌아 가실때 곁을 지켰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솔직히 이땅 내가 운동 하면서 실업팀 뛰면서 벌고 제이름으로 대출 까지 받아서 산땅이로고 실제로도 그렇고요 내돈 주고 산거 내가 가지고 가겠다고 이땅도 다 내꺼고 저기 당신이 잠그로 열지 않는 콘테이너 도 내돈이고 그안에 물건도 다 내돈으로 샀다고 했죠 그러다가 더 싸움이 심해지고 정말 생각같아서 한대 패고 싶었지만 나중에 복잡해 질까봐 형이 말리고  형이 좋게 애기 해서  일단 저의 가족 앨범은 가지고 올수 있었습니다. 근데 제돈을 샀던 스피커 싯가 500만원 짜리 스피커는 2짝은 이미 팔았는지 없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 컨테이너 만은 절대 문을 열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금고에서 제가 땄었던 아시안게임 은메달은 가지고 가겠다고 하면서 금고를 열었는데 이미 저의 어머니 유품인 보석과 시계 이런게 다 없더라고요 저의 아버지의 한국 신기록 50회 갱신 오메가 시계도 없고요. 저의 코카콜라 대상 순금 메달도 없고요 현재 저의 어머니 유품이신 롤렉스 시계와 다이아 반지는 자기가 끼고 있고요 정말 넋살 좋은 분이시고 상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한테 해남 땅 다 팔고 서울 로 가겠다니 뭐하겠다네 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저와 통화 할때 역시 내가 여기 왜 있어야 하냐고 그냥 땅 다팔고 여기 뜰란다라고 토시 하나 안틀리고 말했고요
물론 부동산에 땅을 다 내놨고요 저는 미리 냄새맡고 인감을 바꿔논 상태 입니다
그리고 전화를 걸면 컬러링에
해남에 자랑 조오련이 아내 아무개가 운영하는 기운찬 농원입니다 절임 배추와 고추 ..... 뭐 이런 멘트 나오는데 피가 거꾸로 쏫습니다

해남에 자랑 조오련의 아내이성란이 운영하는 기운찬 농원 절임배추 고추...
뭐 이따위 컬러링 나옴  피가 거꾸로 쏫음
그리고 실제로 거기 거주 하지도 않고요
그리고 아버지 이름 팔면서 해남 군청이든 어디를 가서라도 조오련 아내 한테 이런식으로 대하냐는 식의 추태를 부린다고 하네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것이 제가 실업팀 생활하며 번돈 대출 받아 번돈
그돈으로 땅을 사고 물건들을 샀는데 100일도 같이 안살고 자기 땅 지분 운운하고 내돈으로 산 고가 물건들 자기 꺼라 큰소리 치면 100일도 안살고 아버지 연금 까지 타내며 살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결혼 반지 마저 자기가 끼고 다닙니다. 그리고 집을 팔아서 1900만원이 남았는지 1800만원이 남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아버지 부조금이 얼마가 들어 온줄도 모릅니다. 근데 형과 저에게 50만원을 붙치신거는 확실합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연을 5년을 끌고 끌다가 정신차려서
이렇게 말합니다. 꼭 공유 해주십죠 그리고 힘 주세요
제가 제가 어리숙합니다. 그리고 가진 재산도 없습니다.
법적 변호인들 구할경우 성과금으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제 전화느 지금 끈겨 있습니다.
많이들 공유하셔서  이글을 널리 널리 퍼트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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