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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결혼소식을 들었다.
게시물ID : lovestory_781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청파동
추천 : 3
조회수 : 1478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3/28 15: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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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커서가 깜박인다. 5분째다. 나는 내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걸까를 고민한다. 무언가를 쓰고싶은데 어디서부터 써야할 지 모르는 이 기분이, 나는 정말 싫다.
내가 처음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했던 건 네 덕분이었다. 그냥 언젠가 이런 익명의 공간에서 '내 이야기다' 싶은 글이 보일 때면, 네가 내 생각 한 번 해주지 않을까 싶어서. 돌아올꺼라는 생각은 솔직히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지게 될 줄도 몰랐다.
 
너만 만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네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것은 만나던 기간의 문제도 아니었고 미련이 가진 크기의 문제도 아니었다. 다만 너는 특수했을 뿐이었다. 왠지 평생을 안고가야할 것 같았다. 그게 너에 대한, 그리고 우리 사랑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불륜과 남미>라는 소설 맨 첫번째의 이야기엔, 이런 여자가 등장한다. 타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일을 하다가, 인적이 드문 성당에서 그의 죽음을 위해 기도하는 여자. 얼마나 최선을 다해 기도했는지 그녀는 눈물 뿐 아니라 코피를 쏟는다. 시뻘건 코피를, 엉엉 울며 흘린다. 하지만 나는 오늘 코피는 커녕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었고 커피를 평소처럼 두 잔 정도 마시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한 후 이렇게 글을 쓴다.
 
쓰기 전에 그 동안 내가 너에 대해 쓴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러다보니 나, 네게 참 많은 것들을 배웠더라.
 
 
 
2.
 
사랑. 사랑. 사랑. 글쎄... 이 말 말고 너를 표현할 단어들이 내게 또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너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건 새롭게 내 옆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예의이기도하고, 네 옆에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너를 위해 쓰는 마지막 글인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시큰하다. 이 와중에도 눈물은 나지 않아서, 나는 이마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두통을 동반한 여러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 차라리 울고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가 제일 잘 하는 방법으로 울기로 했다.
쓸 것이다. 울고싶은 만큼 쓸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써야만 한다. 그래야 내일부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산다.
 
 
 
3.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무슨 말을 써야할 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감히 행복하라고 웃으며 너를 보내줄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엉엉 울며 네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장가를 가?하고 땡깡을 부릴 수도 없다. 하지만 사진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던 너를 보면 후자보다는 전자가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젠 잊기로 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면 내가 제일 먼저 사랑했던 건 너의 이름이었다. 숲에서 바라본 하늘의 별. 듣고있으면 한 폭의 이미지처럼 펼쳐지는 네 이름을, 나는 사랑했다. 가지런한 치아와 팔목 위에 동그랗게 솟아난 손목의 뼈. 쓸쓸했던 뒷모습. 하루 저녁을 탈탈털어 이야기해도 모자를 너의 모든 면면들을 나는 사랑했다.
 
 다만 그때의 나는 철이 없었고, 어렸다. 꽃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시시한 나이었고 그래서 나를 꽃처럼 대해준 네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는 지를 알지 못했다.
 
너와 헤어지고 난 후에는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차피 이렇게 헤어질 거 왜 만났을까? 라고 슬퍼했다. 그래도 언젠가가 되니, 우리 그 시절에, 그 순간에 서로에게 반짝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는 행복하더라.
 
헤어지고 수 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내 맞은편에 앉은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남자 때문에 울었다. 엄마는 내게 괜찮을거야라고 말했다.
 
 
아니, 엄마. 하나도 괜찮지 않아. 그럴 수 있었으면 그 사람이 아닐거야.
 
 
 
4.
 
 하지만 나는 내일부터는 괜찮아져야 한다. 이제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다만, 당분간 내가 글을 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새 너에 대해 쓰는 것 또한 습관이 되어서 나는 모든 단어들을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아마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계절에, 벚꽃이 피는 계절에, 다른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문득 고등학교 때 배운 이형기의 낙화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10년 전에는 그 시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인생이란 그런 것 같다. 영원히 '내일'을 모르는 것.
나는 이제 돌아서야 할 때가 왔음을 안다. 그 뒷모습이 찬란할 수 있기만을 바란다.
 
그래도 사랑했다. 과거형인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했으니까. 네가 진정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두서가 없는 이 글이,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마음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래도 문맥을 알 수 없는 거친 문장들이, 유난히 자주 등장했던 쉼표들이 오늘의 내 마음을 대신해 주리라 믿는다.
많이 망설였고 많이 슬펐음을.
 
 
 
5.
 
사랑했던 나의 그대. 진심으로 그대의 행복을 빈다. 네가 내게 준 마음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서 내 인생을 비춰줄 것이다. 나는 이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좋은 사람 만났으니, 이제 꾸준히 변함없이 사랑만 하고 살기를. 그대의 인생에, 그대 옆의 그 사람에게,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 어느 날 문득 사람 없는 성당에서 우연히 생각이 나, 눈물 대신 코피를 펑펑 쏟을 지언정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그대의 행복을 빌겠다. 
 
 
 
 
 
FINE.
 
 안녕, 아름다웠던 나의 그대.
 두번은 못 할 것 같았던 내 사랑.
 
 지금 이 순간부터 정말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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