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사라... 사라 로건이다.
지금부터 나는 갑작스레 나에게 부여된 놀라운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의 시작은 바로 오늘 아침! 내가 눈을 뜬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믿을진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머리 위에 알 수 없는 숫자가 떠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난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당신 머리 위에 숫자가 있어요 그건 뭐죠?"라고 물어봤지만,
사람들은 그저 날 미친 년 취급할 뿐, 아무도 그 숫자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자신의 머리위에 떠다니는 그 숫자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 했다.
숫자는 오직 내 눈에만 보이는 듯 했고, 나 역시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머리위에 있는 숫자도...]
[횡단보도 앞을 지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머리위 숫자도...]
모두 지루한 0의 행진으로만 보일 뿐 그 존재 이유나 의미는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다.
종종 1, 또는 2~3 정도의 숫자를 지닌 사람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그들은 극히 일부였고,
그나마 나타날때처럼 금새 인파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와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았고, 내가 찾아낼 수 있는 단서 역시 거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낯선이가 찾아와 당신 머리위에 숫자가 있어요 그게 무슨뜻이죠?
라고 물었을때의 당신 심정이 어떨지?)
결국 나는 숫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해 거의 포기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렀다.
(뭐 이거 그런 뜻 아냐? 싶은 부분이 전혀 없는건 아니지만, 나는 좀 더 확실한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머리위에 떠있는 숫자의 정체에 대한 나의 고민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결국 해답을 찾고야 말았다.
이 능력을 얻고 난 뒤 알게된 재미있는 사실은 TV속 사람들에게서도 숫자를 볼 수 있다는 거였다.
비록 영화나 드라마는 불가능하고, 오직 생중계된 화면에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나처럼 여자인 대통령에게도...,
유명한 국회의원들 중에도 0이 아닌 숫자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아니 더 유명하고, 더 대단한 사람들일 수록 더 큰 수의 숫자를 머리위에 가지고 있었다.
[권력의 정도? 아니면 명예욕? 도대체 뭐지?]
하지만 결국 내가 그 정체를 알게된 결정적인 부분은 우연히 TV에서 흘러나온 뉴스속 연쇄 살인범의 화면이었다.
나는 생중계된 화면을 통해 그의 머리위에 있는 숫자 7과 검거 당시 밝혀진 희생자의 숫자가 일치함을 알게 됐다.
굉장한 발견이 아닌가?
나는 이로써 누가 얼마만큼의 사람을 죽였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경의로운 능력의 비밀을 알게 된 순간 난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나는 아주 엉뚱한 곳에서 0이 아닌 숫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얼굴로 그 대상을 응시했다.
나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맥컬리 팀장...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32란 숫자
나는 친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 그에게서 놀라운 살의를 읽는다.
"왜 그래 수잔? 무슨 일 있어? 바짝 긴장해서 뭘 보는거야? 아... 여기 내 와이셔츠 끝에 묻은
얼룩 때문에 그러는구나? 빨간게 꼭 피라도 묻은것 같지? 흐흐흐 토마토 주스를 흘려서 말야"
"네... 네..."
나는 빨리 내 꽁꽁 얼어버린 표정을 지워야 했다.
그의 와이셔츠 소매에 묻은 붉은 얼룩도 쳐다보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소위 연쇄 살인마를... 그것도 일반인들 사이에서 숨어 지내는 그런 사이코패스 부류의 인간을
실제로 눈 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쉽사리 숨기지 못했다.
"수잔... 표정이 약간 어색하네? 뭐 나한테 하고싶은 말이라도 있어?"
"아...아니요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돌아 섰다. 그에게 내 표정을 들키면 안되겠다 싶어서였다.
그 동안은 몰랐지만 그의 표정이 이제 완전히 다른 의미로 느껴진다.
그는 토마토 주스라고 둘러댔지만, 아마도 그것은 토마토 주스의 흔적은 아닐것이다.
보다 더 진득하고, 더 뜨거운... 살아 있는 무언가가 흘렸을 법한 그것이다.
하지만 표정관리가 너무 조약했던 걸까?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나는 어두운 골목 모퉁이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그를 발견했다.
"흐흐흐 수잔... 아까 할 말이 있었는데, 미처 못하고 가서 말이야!"
당혹스러움에 크게 치켜 떠진 내 두 눈은 그 순간에도 그의 손에 들린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다.
날카롭고 단단하면서도, 족히 30센티는 넘어 나의 심장조차 관통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맥컬리 팀장의 입가가 기이할 정도로 벌어지고, 그의 두 다리가 재빨리 나에게로 돌진해 왔다.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이 외진 골목에는 나와 맥컬리 팀장 단 두 사람뿐이다.
그리고 강력 범죄로 흉흉한 요즈음은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모른척 지나가겠지
오늘따라 할렘가에 가까운 이곳 다운타운이 적막하게만 느껴진다.
"하아...하아..."
나는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그리고 골목 모퉁이의 어두운 쇼윈도 위로 나를 비춰본다.
얼굴과 목, 그리고 가슴팍이 모두 붉은 피로 흠뻑 젖어 버렸다.
나는 내 어깨죽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 처럼 특별한 날은 없을 거라고,
사람들 머리 위에 떠다니는 숫자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고,
특별한 날을 특별한 경험으로 마무리했다.
나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서 일어서 말했다.
.
.
.
"이 구역의 미친년(bitch)은 나야"
순간 어두운 쇼윈도 위에 비친 내 머리 위 숫자가 99에서 100으로 바뀐다.
99번째 이후로 늘 바랬던 특별한 경험... '100번째는 좀 특별한 사람으로...'
바닥에 쓰러진 맥컬리 팀장의 머리 위 숫자가 희미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