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 역시도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트럼프의 막말, 기행을 접해왔고. 서민, 중산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지만 '금수저'인 그의 말이 과연 먹힐까? 하는 의심 때문에요.
하지만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힐러리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이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어제 결과를 보고 냉정하게 따졌을 때 유권자들에게는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더 나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트럼프의 막말, 미친 발언, 기행들은 미국 및 세계 언론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언론들은 트럼프를 비판하게 됐죠.(물론 트럼프의 말처럼 미국의 대형, 기업형 언론들이 힐러리를 밀어준 게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빌미를 준 것은 트럼프의 막말이니.)
미국 언론이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자 이 정보를 받아온 한국 언론도 '나쁜 사람'이라고 따라 말합니다. 사실 내부적 검증을 하기는 했을 겁니다. 트럼프라는 인간에 대해, 정책에 대해. 심정적으로 공감을 하는 언론도 많았겠지만, 트럼프는 막말을 쏟아내는 '비도덕한 인간'이기에 실드 치기가 어려웠을 테고, 그 결과물이 '트럼프는 악인'이라는 프레임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생각, 관점의 차이였다고 봅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였고, 미국인들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책임을 지녔습니다. 그의 막말 중에는 '진짜로 막말'이 있었지만, 미국인의 이익을 위한 발언들이 많았습니다.
분쟁지역이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이민 정책을 축소, 폐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슬람을 추방해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도 했었죠. 하지만 이 말이 나온 '배경'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다문화, 분명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민 정책으로 기존 미국인들이 가지던 일자리가 줄어든(혹은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지역 구석진 공업지대의 공장을 가 보면,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씁니다. 외국인 노동자로 인해 한국인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미국은 대한민국보다도 훨씬 더 오래, 많이 이런 감정을 가져왔을 테고요.
힐러리는 오바마가 한, 현재의 '이민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일자리 축소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경제적 어려움을 느낀 미국인이라면 힐러리가 아니라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결국 '러스트 벨트'라고 불리는, 미국 제조업이 잘 나갈 때 번창했던 지역의 사람들이 힐러리가 아니라 트럼프를 찍었다는 게 그 증명이고, 이게 대선의 결과를 가른 결정적 요인이겠죠.
보호부역, 고립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수출보다 수입량이 많은 나라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미국 기업, 미국 제품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내수 시장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니고 있는 위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봅니다.
보호무역을 할 경우 관세를 늘려 해외 제품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자국 내 기업들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수출 기업들은, 높아진 관세에도 미국으로의 수출을 계속 할 테니 관세로 얻는 수입도 증가할 겁니다. 물론 이건 거대 시장을 가진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이고, 이렇게 고립주의를 하다가는 세계 정세의 주도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분석도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국제 경제 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겠지요.
고립주의 정책을 진행할 경우, '외교'적인 측면에서의 손해는 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외교적 손해를 '미국의 경제'라는 이익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감수할만한 손해라고 봅니다. 일본의 양적완화(아베노믹스) 정책이 그랬던 것처럼요.
트럼프가 '비도덕적 인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힐러리 역시 힐러리가 도덕적 인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트럼프의 막말 등을 '개인의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힐러리는 정치활동을 이어오며 '기성 부패한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대선 얼마 전 이메일 논란이 큰 역할을 했죠. 단순히 '이것뿐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지 않았을까요.
더군다나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진 이유, 이라크 전쟁 찬성도 결정적입니다. 힐러리는 이후로도 과격한 군 운용을 주장했다는 언론 보도가 많은데,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은 온갖 욕은 다 들어먹었죠. 미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고. '힐러리가 정치 경력이 있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측면들을 보면 그녀의 정치 경력은 오히려 '힐러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이에 반해 트럼프는 공화당에서조차 '이단아'였습니다. 미 대선 결과가 나오면서 '아웃사이더'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에서 그 의외성을 느낄 수 있는데요. 정치와는 연관이 없었던 인물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신드롬'과 유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감이 있었다는 거겠죠.
트럼프가 금수저다, 서민들의 삶을 모를 거다는 비판도 많았습니다만. 자산을 물려받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힐러리도 '어마어마한' 부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둘 다 부자라는 겁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개인 사업을 통해 돈을 불렸다면. 힐러리가 막대한 자산을 얻은 것, '클린턴 재단'에 대해선 의아한 게 많습니다. 실제 위키리크스에서는 클린턴 재단을 수익 사업 용도로 활용한다는 비판 제보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내역을 공개하는 한도 내에서는 '로비'가 합법이라 들었습니다. 힐러리는 국무 장관 등을 지내면서 여러 청탁을 들어줬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미국에서 '합법적인 로비'였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에 대해 유권자들이 긍정적이게 볼 것이냐 와는 별개의 이야기겠죠. 대선에서도 월가의 금융가에서 막대한 선거 자금을 지원 받았고요.
트럼프나 힐러리나 둘 다 금수저인 건 마찬가지지만, 개인 사업을 통해 부를 불린 것에 비해 클린턴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경로로 부를 불렸습니다. 둘 중 누가 더 친 기업 성향을 띄느냐, 고 묻는다면 저는 힐러리인 거 같다고 대답할 겁니다. 그러는 그녀가 부의 재분배, 대기업의 세금 인상 등을 통해 서민들의 경제를 살리겠다고 주장한다? 글쎄요. 저는 신뢰하기 어렵네요.
힐러리와 힐러리 지지측의 홍보 방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네거티브 전략으로, 대립을 '선-악' 구도로 그려나가려 했습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를 '악'으로 규정했고, 지지층에서도 '트럼프를 지지하다니, 제 정신이 아냐'라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트럼프와 트럼프의 지지층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민주당'이라는 정치 세력을 등에 업은 힐러리가 더 강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트럼프는 공화당에서도 썩 환영받지 못 하는 존재였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여성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힐러리와, 그녀를 지지하는 여성들의 '트럼프를 지지한다면 성관계 거부' 따위의 것들. 보고 빵 터졌었습니다만, 가볍게 넘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나 그녀의 지지층들은, 그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과 '적대관계'에 놓이려 했어요. 기존 정치에 민감한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 역시 당연하게도 '트럼프를 뽑으면 악'이라는 프레임을 형성시켰고요.
덕분에 표면에 드러나는 지지는 힐러리가 압도적이었을 겁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면 악'이라는 프레임 덕분에 정치에 소극적인 이들은 앞에서 말은 하지 않지만, "우리가 왜 나빠?",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 아냐?" 같은 생각을 하며 대선을 기다렸을 수 있을 테고요.
힐러리와 그 지지층은 '힐러리를 뽑아야 하는 이유'보다는, '트럼프를 뽑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집중했습니다. 트럼프는 네거티브를 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비전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고요. 이민 정책, 보호무역 등.
결국 이번 승부는 정치적인 요인을 떠나, 힐러리와 트럼프라는 인물의 대결이었다고 봅니다. 기성 정치 세력인 '민주당을 등에 업은 힐러리'와 '트럼프' 중, 유권자들에게 누가 더 매력적이었느냐를 나타낸 것이죠.
힐러리가 여성이라서, 원래 공화당이 유리해서 등등의 이유가 아니고. 그저 트럼프라는 인물과, 그의 발언들이 힐러리보다 매력적이었다.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것뿐인 이야기.
트럼프는 악이 아니고, 힐러리는 선이 아닙니다. 반대로 힐러리도 악이 아니고, 트럼프도 선이 아니고요. 선악, 흑백 같은 이분법적인 접근이 많은 것 같은데. 저는 트럼프가 충분히 이길만 했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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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oo, Vote!"
얼마 전 화제가 됐던, 힐러리 유세 현장에 연설을 하던 오바마 대통령의 명언이 있었습니다. 힐러리 유세 현장에 나타난 트럼프 지지자를 야유하는 힐러리 지지자들에게, "저분은 본인의 후보를 지지하고 계실 뿐이에요. 첫째,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둘째, 저분께서는 군에 복무하신 것 같은데 존중해드려야 합니다. 셋째, 그는 노인이고 우리 모두 노인을 공경해야 합니다. 넷째, 야유하지 말고 투표하세요"라고 말했죠. 인상적이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반대 정당을 찍는 사람들을 '악'으로 구분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맹목적인 믿음, 마치 종교의 신앙마냥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분들도 있겠지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정치 성향을 띄지 않고, '누가 더 매력적인가', '누가 덜 매력적인가'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정치를 하면서, 선거를 하면서 이기기 위해 정치공학적인 분석은 필수불가결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내편 아니면 적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의 표현을 존중하고 이해해야겠죠.
가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분과 얘기를 나눌 때면, 상대가 저와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가르침'을 주려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거기서 '저 스스로가 공부가 부족해서 그렇구나'고 인식하면 문제가 없지만, '네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옳지도 않다. 왜 일방적으로 네 말이 옳다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진행하냐?'는 반발심리가 생기는 경우가 많죠. 생각에 따라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는 사안의 문제를 '유일한 정답'마냥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자신의 의견이 정말로 옳다고 생각한다면, 근거에 기반해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요. 가르침은 상대가 가르침을 원했을 때 하는 것이지, 대화를 원했을 때 하는 게 아닙니다.
쓰잘데기 없는 잡설이 엄청 길어졌군요. 훌쩍 추운 겨울이 다가온 듯합니다. 모두 옷 따뜻하게 입으셔요들.
#박근혜_하야하라
#다크히어로_이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