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제목: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는 함구하는게 최선이겠지만 한 말씀만 올릴게요.
방금 오전에 일 끝내고 스랖에 접속했더니, 교감선생님의 비보가 제일 처음 보이네요.
멀리 타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만무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뉴스를 보면 마음이 저려오는데, 그렇다고 귀 닫고, 눈 감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계속 계속 이곳에 접속하게 되네요.
아는 게 없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구호품을 보내는 것 말곤 무능한 제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기도 죄스러워서 아픈 마음만 부여잡고,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겪고 있을 참담한 사건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감히 언급할 수도 없지만 ... 그래도 유사한 고통을 아주 오래 전에 그들 나이에 제가 겪었고, 차후 몇 년, 몇 십 년 동안 어쩌면 살아 숨 쉬는 평생이라는 기간 동안 그들이 견뎌야 할 고통의 무게를 제가 약소하나마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만 올립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돌보아 주세요.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생존자가 살아 남았기 때문에 견뎌야 하는 처벌이 죄책감입니다. 내가 보내지 않았다면,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았더라면, ... 이 지긋지긋한 "만약에"라는 가정이 평생을 따라 다니면서 가슴팍을 짓누르며 숨도 쉴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오래 전- 저도 단발을 하고, 교복을 입던 그 날에 ..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의 사망 소식 뒤에 살아 남은 부모님들이 견뎌야 했던 처벌은 우울증과 이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고, 배우자를 책망하다, 결국 사망자 부모님 대부분이 이혼을 했고, 조부모님들은 손자, 손녀 사고 후 3년 사이로 많이들 돌아가셨습니다.
분노의 방향이 아직 외부일 때 전문가의 도움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화를 내는 건 그 지속기간이 매우 짧습니다. 이땐 가족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 상처되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짧은 기간이 지나고, 외부에 분노하고 항의해도 어쩔 수 없음을 인식할 때 화의 방향이 내부로 향하게 됩니다. 분노할 땐 소리라도 치고,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스스로 책망하기 시작할 때부터는 입을 열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스스로를 괴롭히다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단원고로 진학하게 하지 말었어야 했는데, 안산으로 이사하지 말었어야 했는데...) 살아도 당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게 됩니다.
목숨을 부지한 친구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피해가족이 받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기나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많이 울 거예요. 저처럼 술을 많이 마셔 위천공이 생길지도, 간헐적으로 생기는 행복감에도 혼자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에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지도 못합니다. 죄책감이 가져다 주는 잔인하고 고통스런 여정이 친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를 보고도 공포를 떠올려야 하고, 안내방송이 나오면 건물 밖으로 뛰어 나갈지 모릅니다. 제주도 땅은 평생 밟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요. 살아 남은 급우들끼리도 서로를 피할 겁니다. 만나면 생각나거든요. 많은 단원고 학생들이 자퇴를 할 겁니다. 살아 남은 제가 그랬듯 제 친구들이 그랬듯 말입니다. 거대한 자연에 대항할 수 없는 본인의 무능력함을 앞으로 그들이 진출해야할 사회 모든 전반에 적용할지 모릅니다. 매년 4월 16일이 되면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과 가족들이 있을 겁니다. 한국이 만들어낸 인재입니다. 모른 채 하지 말아주세요.
사회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사건 사고가 잊혀졌다고, 당사자도 괜찮을 거라 어림짐작하지 말아주세요. 지금껏 안부를 여쭙는 제 친구부모님들은 여전히 아파하십니다. 세월호 사건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도 꼭 사회가 알아주세요. 오래 전에 발생한 제 사고가 있던 시절은 사람들이 무지해서 어느 누구도 정신치료가 필요할 거라고 얘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곽금주 교수님, 언론에 많이 나오시잖아요. 꼭 피해자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터뷰하실 때 언질해주세요. 사회가 지원해주지 않아도 당사자 스스로라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식시켜주세요. 저는 아픈 게 당연하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괜찮아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치솟는 불길의 잔상이 망막에 맺히고, 검은 연기가 친구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여전히 어제 일처럼 식은 땀이 납니다. 아스팔트 위에 누워 구급차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나는 내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도 그 누구 하나 지켜줄 수가 없네요.
바다에 뛰어 들지 못한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나고, 진짜 뛰어들지 않았음에 괴로워하고 자책할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살아 남은 아이들은 친구들을 데려 나오지 않았음에 "자신은 평생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고 확정지어 버릴거예요. 내가 무언 가를 이루고, 칭찬 받을 일을, 축하 받을 일을 이루어도, 나는 나만 도망친 비겁자라는 전제를 떨쳐버릴 수 없을 겁니다. 그러지 않게 해주세요. 내가 7월이 되면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많은 아이들이 4월이 되면 봄을 즐길 수가 없을 겁니다.
곽금주 교수님께서 심리화의 대중화를 위해 자주 인터뷰하신다고 하셨으니, 이번 참사에도 심리학 치료가 여러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꼭 필요하다고 인터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께도 이메일 드릴 예정입니다.)
구호품을 보내는 것은 제가 수입이 생겼기에 가능하고, 교수님께 부탁드려 보는 건 제가 서울대를 졸업했기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아 지길 바라봅니다.
유투브를 통해 학부모님들과 생전 제 할머니를 연상시키는 한 할머님의 울음 소리를 들었고, 일 하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가 아주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 소리치듯 우는 소리의 진동은 제게 있어 가장 잔혹했던 여름 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합니다. 진동은 제 온 피부를 덮고, 가시처럼 파고들어 가슴에 꽂힙니다. 왜 나를 살려주지 않았고, 왜 나를 데려 나가주지 않았냐고. 왜 너만 살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