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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항쟁
게시물ID : history_78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낙네임뭐하지
추천 : 4
조회수 : 5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2/26 23:49:15
1980년 광주에서는 민주적인 기운이 감돌고
17일 계엄령이 퍼짐과 동시에 대학교엔 휴교령이 내린다.
학생들은 소규모 투석기를 던졌다.

18일.
공수부대가 투입되고 무자비한 탄압에 학생시위는 민주항쟁으로 퍼지게 된다.

10월, 유신정권으로 국민의 원성을 사던 그는 총 몇.방에 죽는다.
유신정권에 의해 민주주의는 퍼지기 시작했고
김대중같은 이들은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계엄령 폐지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하지만 시위가 잠잠하던 5월
계엄령은 선포되었고 본보기로 민주주의를 탄압한 곳이 광주였다.

항쟁이 4일째 되던날 시위는 조직적이 되었다.

곧 광주는 시민들로 가득찼다.
계엄령은 전국에서 광주를 조여오고
오후 1시. 그들은 사격을 받았다.

죽은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었고,
그 들이 죽인 시민에 대한 자세한 이유는 아직도 납득될만한 발표가 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사방에서 총을 들었다.
자기 나라의 군대를 노리고 말이다.
 나라에선 그들을 불순세력이라 했고,
시민들은 자신을, 광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었다.

몇 일 뒤 광주의 통신과 교통이 모두 끊기고 그들을 고립시켰다.
약 일주일간 그들은 민주자치를 하며 서로를 도왔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그들의 사정을 몰랐다.

5/22일.
시민 학생 수습 위원회 결성.
계엄부와 협상실패(무기반납거부)
하지만 '무기반환'으로 협상.
결국 무장 하루만에 해산.

26일 오전.
계엄부의 도청진압. 총과 수류탄으로 새벽 다섯시까지
약 1500명의 시민을 학살함.

계엄부는 항쟁이 끝났음에도 불구
시민을 마구잡이로 대하며 초등학생들도 폭도로 몰아감.
5.18항쟁은 실패했지만 노태우등에겐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았다.

새로 취임한 전두환은 살인독재정권으로 민주운동을 탄압했고
아직 광주항쟁에 대한 사망자는 정확하지 않다.
광주항쟁당시 미국 정부가 군이동을 허락해
전두환 정권을 도왔다는 사실 외에 미국의 개입여부또한 중요하다.

민주에 대한 5.18민주항쟁은 우리 민주주의의 시작이였다.



여기까지가 초등학교?중학교때 쓰던 공책에
뜬금없이 적혀 있더군요.
글씨 상태를 봐선 중학교때 같습니다.
일부러 어색한 문장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광주.
오히려 저때가 더 똑똑했던것 같다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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