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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게시물ID : sisa_748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막
추천 : 3
조회수 : 81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09/09/13 13:17:23
7~80년대에 자주 보던 광경 하나 떠올려 본다.

행인1: "아, 이렇게 질서를 안 지키다니, 역시 한국은 아직 멀었어"
행인2: "이 사람이.. 당신은 한국사람 아닌가? 어디서 남의 나라 욕하듯 하고 있어?"

이런 장면은 실생활에서는 물론, 이기동, 배삼룡, 남철&남성남 등이 출연하는 코메디 프로나 영화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차츰 '한국'이라는 호칭 대신, '우리나라'라는 말을 쓰는 일이 압도적으로 많아 졌다. 특히 한국 사회의 문제점 및 고쳐야 할 점을 언급하는 경우에 '한국'이라고 말하면 반드시 뭔가 반발이 있다. 지금도.

여태 살면서, 자국민들끼리 얘기하면서 자기 나라를 '미국', '일본', '중국' 등으로 칭하지 않고 '우리나라' 식으로 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경우는 한국 외에는 접해 본 적이 없다. 굳이 '우리'를 넣어야 하는 경우는 보통 타국민과 대화하면서 비교를 위해 '너희'와 '우리'를 언급할 때이거나, 자국민에게 동질감이나 소속감을 고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리'를 강조할 때이다. 그렇게 보자면, 한국인들은 뭔가 동질감이나 소속감을 고취해야 할 필사적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멸공, 반공과 함께 "국위선양"이 거의 국시이던 시절도 있었다. 아무개 선수가 무슨무슨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국위를 선양했다 라든지, 비디오 카세트 테이프를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개발하여 외국에서 놀라움에 찬 눈빛으로 한국을 바라보고있다... 또는 재미교포 누구누구가 현지에서 자수성가하여 어엿한 지위를 획득하였는데, 그를 바라보는 주변 현지인들의 인터뷰가 꼭 나오고, '한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라는 암시도 빠지지 않는다. 매체는, 한국에 대한 서구세계의 평가에 병적으로 집착해 왔다. 누구누구가 한국 제품 또는 한국 사람 아무개, 한국 경치 호평을 했다고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일이 많았다. 서구세계 영화에 등장한 한국인, 한국 상품, 한국에 대한 언급을 몽땅 모아서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렇게 서구세계가 한국을 알아 주는 것이 마냥 고맙고, 외국도 한국을 안다는 게 그저 신기하던 시절이 지나자, 이제 한국에 대해 뭔가 조금이라도 나쁜 말을 하면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 영화배우 멕 라이언이 '섹시 마일드'라는 샴푸 광고를 찍으러 한국에 왔다 간 일이 있다. 미국에서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한 그는 "최근에 아시아에 좀 갔다 왔었지요?"라는 질문에 인도에서의 지저분한 경험과, 한국에서 '요염한 부드러운'이라는 형용사가 연달아 붙어 우스운 이름의 상품 광고 촬영시 감독의 우스꽝스로운 표정 주문을 언급했다가, PC 통신에서 맹비난이 쏟아지고 손해를 예감한 한국 광고주의 잔여 계약 취소 및 소송 준비가 이어지자 사과문과 사과 장면 비디오를 보내 와 수습하게 된 일도 있었다. 

시시껄렁한 만담이나 나누고 신변잡기 얘기하는 외국 프로그램에서 조롱하듯 몇마디 했다고 그렇게 온국민이 들끓는 이유는 왜일까?

... 열등감이다. 자신이 없는 거다. 그래서 '국위선양'에 조금이라도 역행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스포츠 국제 경기 끝나면 또는 외국에서 히트 친 한국 영화가 있으면 인터넷에 항상 올라오는 게 중국 반응 일본 반응 미국의 평가...
그렇게 남들의 평가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사람들이, 예전 보다는 적지만, 아직도 있다. 많다.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를 대신해서 벌떼처럼 미국 인터넷 사이트들에 몰려가 사과문을 올린 무수한 한국인들에 대해 미국인들은 참 이상하다 했었다. "미국 사회의 병폐가 만들어 낸 정신병자가 저지른 일에 대해 왜 한국인이 사과하지?" 가령 이탈리아 계열 폭력배들이 주민들에 해를 입혔다고 이탈리아 국민들이 사과하는 일 같은 건 여태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노심초사 외국에 좋은 인식 심어주려 노력하고, 행여 한국을 나쁘게 볼까봐 얼마나 초조해 하고 있는지를. 그렇게 사과라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안한지를...

요새 2PM 재범 사건을 보면서도 비슷한 걸 느꼈다. 철 없던 시절에 남긴 사적인 대화건 뭐건 얄짤 없다. "너는 한국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면 안돼. 대중의 주목을 받는 자라면 더더욱 그래." 어째서 광대(연예인)를 公人 취급하며 엄중한 도덕성을 강조하고 타의 모범이 되기를 강요하는지는 여기서 다룰 주제가 아니지만, 여태 언급한 열등감, 초조함으로 인해 공식적으로 용인된 생각 이외에는 용납할 마음의 여유 역시 없는 것 같다.

애국이 강요되고, 사상은 통일되어야 한다. 열등감의 팽배로 인해 결국, 너무나 파시스틱한 것이다.

이제 좀 느긋해 졌으면 좋겠다. 너도 나도, 눈치 좀 그만 보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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