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웹디자이너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새벽시간을 즐기면서 일하기 때문에 낮에는 자고 밤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은 약간 경사진 곳에 위쪽에 위치하여 창문을 열어놓으면 앞동 옥상이 딱 보이는 꼭대기 층입니다.
그날 새벽도 어김없이 방불을 켜놓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에는 굉장히 고요하기 때문에 누가 밖에서 라이터만 딸깍딸깍대도 그 소리가 바로 앞에서 나는것마냥 아주 선명합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자꾸 집 뒷베란다 쪽에서 스슥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저희집은 앞베란다 뒷베란다가 있는데 뒷베란다는 제방 바로 창문 앞에 있습니다. 신경 안쓰고 일하려고 해도 바로 앞에서 들리는것만 같은 소리가 들려 전 베란다에 고양이 같은게 들어온줄 알았죠.
근데 생각해보니 아파트 꼭대기층에 고양이가 들어올리는 없고 쥐가 들어왔나 해서 방불 켜둔채로 뒷베란다를 보았는데 아무 문제가 없길래 방에 다시 들어와 일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소리가 계속 들리길래 앞동 옥상쪽을 봤더니 누군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아파트 주민분들이 옥상으로 가끔 올라와 고기를 구워먹거나 고추를 말리거나 하기 때문에 그냥 새벽에 누군 가 올라왔구나, 그 소리였구나 하고 개의치 않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옥상에 있는 누군가와 잘 보이진 않았지만 눈이 마주친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후로 계속 제쪽으로 바라보면서 자세를 바꾸지 않고 절 계속 바라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드는 겁니다. 설마 하면서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데 너무 무서워서 고개는 돌리지 않고 눈동자만 돌려 그쪽을 바라보니 계속 저 있는쪽을 보 면서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제 방에서 옥상쪽은 컴컴해서 잘 안보이는데 옥상에서 방불 키고 있는 절 보면 제가 너무나 잘 보일것 같아 일방적으로 감시되 는 듯한 찝찝한 기분에 방불을 꺼버렸는데 방불을 끄고 다시 옥상쪽을 보니 그 남자는 유유히 사라지더군요.
자고 일어났더니 저희집 가족들부터 시작해서 아파트 분위기가 웅성거리더군요. 무슨일이냐고 묻자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어느동이냐고 묻자 바로 앞동이더군요. 청주 사시는 분들 이번에 일어난 살 인사건 아시죠. 그쪽 상X구에 제가 살고 있습니다.
제방 창문쪽으로 옥상을 보니 경찰들 왔다갔다 거리고 경계선 쳐놓고 어수선한 분위기더군요.
살인범이 계단에서 앞동에 살고있는 40대 아주머니를 죽이고 옥상에 시체를 갖고와 자루에 싸서 놓고 갔다고 하더군요. 새벽일을 생각해보니 제가 봤던 그 키가 큰 남자는 살인범이었고 계속 스슥거리는 소리를 냈던것은 자루였던것 같았습니다.
앞동 아주머니께서 돌아가신건 애도를 표할 일이었지만 제 신변의 위협이 느껴져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살인사건 당시에 분명 살인범을 보고 있었지만 살인하는줄 모르는 상태로 봤던 것이었고, 그 살인범에게는 본의 아니게 제가 살인사건의 증인이 되버린 셈이었던거죠.
새벽에 왜 제쪽을 그렇게 한참동안 보다 나갔는지 그제서야 이해가 될법한 일이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날 저녁, 집에는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아파트가 구식 아파트라 엘레베이터가 없어 누군가 집으로 올라오면 발 자국 소리가 굉장히 선명히 들립니다. 꼭대기 5층인지라 꼭대기까지 사뿐사뿐 올라오는 사람은 아주 몸이 가벼운 어린 아이들 뿐이죠. 발자국 소리도 없이 누군가가 저희집 초인종을 누르더군요.
가족이라면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열쇠로 따고 들어오는데 초인종을 누를 사람이라면 택배 아저씨나 통장 아주머니, 가스점검 해주시는 분들 뿐인데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게 올라와 초인종만 누르고 있는다면 열지 않는게 좋을것 같단 생각에 문 앞에 서 가만히 숨만 죽이고 갈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초인종을 한참동안 누르고 반응이 없으면 내려가야 할텐데 내려가는 기척이 들리지 않아 맨발로 살금살금 문쪽으로 다가가 문 에 아주 조그만한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는데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한참을 뚫어지게 보니 그 사람도 제 집쪽을 그 구멍을 통해 보는지 까만 눈알이 구멍을 덮고 있더군요.
순간 다리에 기운이 빠져 옆벽을 있는 힘껏 꼭 붙잡고 현관문에서 떨어졌습니다. 아래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니 그 사람이 급하게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힘빠진 다리로 기어가 앞베란다 창문에 몸을 숙여 아래를 보니 그때 옥상에서 봤던 키 정 도의 남자가 모자를 쓰고 저희집 창문을 계속 힐끔힐끔 보다가 놀이터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주저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 증인진술서 모두 쓰고 신변보호 요청을 해둔 상태인데 지금 살아도 사는게 아니네요.
경찰들도 살인사건 당시상황만 되풀이해서 물어볼뿐 그 후에 저한테 그 남자가 찾아왔던건 듣고 싶지도 않아하고 들어보지도 않는 분위기구요. 경찰차가 와서 저 데려가고 데려다 주지 않는 이상 무서워서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벽타고 범인이 올라오지 않는 이상 집문 꼭 잠궈놓으면 범인이 들어오진 못할거라고 하는데 그렇게 발자국 소리 안내고 돌아 다니는 음흉한 범인이 언제 올라와서 집열쇠 맞춰놓고 문따고 들어올지..
과대망상증같은 거에 사로잡혀 돌아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일도 손에 안잡히고 되도 않는 유서 써서 티비 아래 놓고 있고 돈이라도 있으면 훌쩍 이사나 가버릴텐데 그럴 형편도 안되고..
경찰서에 증인으로 진술하러 간 이후로 앞동 유족분들이 찾아오셔서 계속 제 어깨를 흔들며 뭘 물어보시는데 대답을 해주고 싶어도 머릿속은 공황상태고 제 어깨를 잠깐 흔들어도 온몸이 부서질것만 같고 피부끼리만 스쳐도 칼로 베이는것처럼 쓰라리 고 그 살인범이 와서 죽이기 전에 지금 상태라서 제가 먼저 죽을것 같네요.
평소에 제 스스로가 삶에 의욕도 없고 태어나서 살아가는것 자체에 즐거움 없이 그저 숙명이라 여기며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 게 살아가는 사람중 한명이라 생각했는데요. 죽음이 얼마되지 않을 시간 앞에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우습게도 참 세상에 미련 많아집니다.
제 꼴이 무슨 사형선고날짜 받아놓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형수 같기도 하고.. 너무 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