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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핏 월드 [1-1]
게시물ID : readers_127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배는나주배
추천 : 2
조회수 : 28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4/20 15:34:22
안녕하세요. 저번에 책 게시판에 작가가 꿈이라던 고3이과생이라며 피드백 바란다는 글을 올렸던 잉여입니다. 피드백을 읽어보니 확실히 글의 묘사가 떨어진다거나 책의 전개가 너무 스피드하다는 면이 있어서 과감하게 다시 글을 쓰게 됬습니다.
http://todayhumor.com/?readers_12654
앞으로 글 쓰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로핏 월드
 
1장
 
조금 과하다 싶은 초여름의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넘어와서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샤프를 쥐고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정오가 조금 지난 5월의 교정 풍경은 너무나도 싱그러웠고, 평화로웠다.
 
교내 화단가에 피어난 이름모를 꽃들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새하얗게 빛나는 나비가 앙증맞은 날개를 열심히 펄럭이며 나의
 
눈 앞으로 날아왔었다.
 
삭막한 교실의 풍경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그 모습에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생기 넘치는 조그만 존재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교실과 바깥세계의 중간 지점에서 아무데도 가려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에서 방황하듯 떠 있는 그것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나의 왼손이 창문을 향해 뻗어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거기 창가의 맨 뒷사람. 방금 설명한 that의 용법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부자연스럽게 떠 있는 왼손을 책상위로 올리며 시선을 칠판 앞으로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왼손에 영어 교과서를 들고 서서 내 쪽을 향해 무서운
 
눈빛을 쏘아보내고 있던 깐깐하게 생긴 남자 선생이 있었다.
 
교실안에 있던 스물 여섯명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잘...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불과 1분전에 설명한 내용을 잘 모르겠다니, 혹시 내 수업중에 딴청을 피운 것인가?"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얼굴이 붉게 물드는 것을 느끼며 그저 적당히 넘어가 주기를 바라는 것 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자네는 전 시간에도 졸다가 지적받은 걸로 아는데... 그 전 시간에는 노트필기 대신 책에 낙서를 하다가 걸렸었고. 뭐, 오늘도
 
보아하니 제대로 수업을 들은 것 같지도 않구만."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을 느낀다. 주변에서 몇몇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더욱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름이... 김현웅?"
 
"네 그렇습니다."
 
미간을 찌푸리고 교탁위에 놓인 좌석표를 손으로 짚어보며 물어보는 선생에게 앞자리의 누군가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묵직한 중저음으로 보아 부회장
 
정민철의 목소리였다.
 
"김현웅은 수업을 충실히 따라오지 못한 벌로 다음 시간까지 교과서를 제출하도록. 필기가 빠져있을 경우에는 내가 직접 부모님과 면담하도록 하겠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반장!"
 
"옛. 차렷! 선생님께 인사!"
 
몽롱한 기분으로 고개를 숙인다. 주변은 월요일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책가방을 정리하는 소리, 수업을 마친 후 각자의 일정을 떠들어대는 소리 등으로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초점없는 눈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애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얘 또 멍때리는 것 봐. 야, 김현웅!"
 
"이상진한테 3연속 지적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는것 같은데?"
 
"그런데 걔는 왜 자꾸 현웅이만 건드리는거야."
 
"걔한테 뭐 특별한 이유가 있겠냐. 저번에는 12반애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녔다고 붙잡아서는 반성문 쓰게 했다는데."
 
"하여튼 성격 이상하다니깐."
 
위로라도 하듯이 자리옆에 와서 두런두런 영어선생의 호박씨를 까는 애들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혜민, 장승철, 고은진,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네 명은 모두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그 전부터도 그럭저럭 친했지만 올해 같은 고등학교, 그것도 같은
 
반에 배정받은 이후로는 마치 자석처럼 항상 붙어다니는 죽마고우가 되었다.
 
"기운내라 임마. 형이 오늘 노래방 쏜다."
 
"와아!"
 
"장승철이 웬일이야?"
 
호기롭게 외치는 승철의 말에 혜민과 은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호성을 지른다.
 
"너희들끼리 가. 난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에...?"
 
"에이, 뭐야. 주인공이 빠지면 섭하지."
 
"맞아 니 빼고 어떻게 우리끼리 가."
 
김 빠지게 하는 나의 대꾸에 녀석들은 당황하며 한 마디씩 한다. 가만히 있다간 억지로라도 가야 할 분위기로 몰아갈 것 같아서 확실하게 못 박았다.
 
"진짜 미안하다. 오늘은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래."
 
그러자 셋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정문까지는 같이 가자."
 
승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자리에 앉자! 선생님 오셨다."
 
누군가가 소리치는 말에 세 명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 있던 아이들이 빠르게 자신들의 자리로 흩어졌다. 담임 선생님의 일상적인 청소당번 발표 등의
 
종례 안내를 들으며 나는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필통을 집어 넣은 후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창가 쪽으로 돌렸다. 바쁘게 창문 이곳 저곳을 눈으로 뒤지며.
 
방금 전까지 창문 주위를 맴돌던 하얀 나비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현웅, 정말로 안 갈꺼야?"
 
"안 간다니까."
 
"진짜로?"
 
"그래. 진짜로."
 
"진짜, 진짜로?"
 
"진짜, 진짜로."
 
학교 정문을 나서며 은진과 승철이 양 옆에서 나를 열심히 꼬드겼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는 못 했다.
 
"하여간, 저 녀석 고집은 알아줘야 해."
 
승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고있던 나의 오른팔을 놓아 주었다. 어찌나 세게 붙잡았던지 팔이 지릿하며 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팔 좀 놔줄래?"
 
아직도 노래방에 미련이 남은 듯 나의 왼팔을 붙잡고 있던 은진에게 말했다. 은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쳇- 하며 내 팔을 집어던지듯이 과격하게
 
팽개쳤다. 그 충격 때문에 나는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러나 은진은 그런것에는 눈도 깜짝 안하며 자신의 집 쪽인 왼쪽 갈림길로 걸음을
 
옮겼다.
 
"은진아 내일봐!"
 
혜민이 은진의 뒷모습을 보며 재빨리 소리치자 은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그저 오른손을 높이 들어서 흔들 뿐이었다.
 
"뭐, 그럼 나도 이만 여기서 헤어져야 겠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승철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하였다.
 
"마침 저기 버스도 오는 중이니 말이야."
 
멋쩍게 웃어보이며 그는 대로변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 쪽으로 달려나갔다.
 
"에휴, 결국은 오늘도 너랑 가야 되는구만."
 
혜민이 이제 막 버스에 올라타려는 승철의 모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녀석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왜, 내가 지겹냐?"
 
멈칫.
 
그러자 혜민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그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아니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입 밖에
 
낸 것일까. 나와 혜민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제법 가까운 친구이지만 결코 친구 그 이상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없는 흔히 말하는
 
'소꿉친구'였다. 물론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이다보니 종종 주변의 오해를 사기도 했었지만, 우리 둘은 서로가 '결코 상대와 연애 할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암묵적으로 못박아둔 일종의 조약이 있었다.
 
그런 혜민에게 아무리 둔한 사람이어도 이상하게 여길 말을 해 버렸으니,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이다. 혜민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역시 혜민은 제법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어쩔줄 몰라하며 조심스럽게 말하는 혜민의 모습에 오히려 더욱 당황한 것은 나였다.
 
"아니 내, 내가 미안해. 그냥 갑자기 무의식적으로 속마음이 튀어나와서... 가 아니라!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체로 횡설수설하며 열심히 상황을 수습해본다. 손사레까지 쳐 가며 쫀쫀하게 굴려고 한 것이 아님을 설명하는 것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지켜보던 혜민이 갑자기 풋- 하고 웃었다. 그 모습에 나까지 덩달아 부자연스럽게 입꼬리를 따라 올리며 웃어본다.
 
"너는 평소에는 과묵하다가 당황하면 갑자기 말이 많아지더라."
 
오해가 풀렸는지 혜민이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건다. 크흠- 하며 헛기침을 하자 그녀는 재밌는지 까르르 웃는다. 그런 그녀를 큰 오해가 안 생긴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찬찬히 살펴본다. 그녀의 양 볼에 파인 보조개와 오똑한 콧날, 갸름한 턱선 그리고 교복 상의 틈 사이로 보이는 뚜렷한 쇄골과
 
그 아래의...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시선을 황급히 돌려버린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왜 이러지... 친구사이에 이런 더러운 상상을 해 버리다니...'
 
마음을 가다듬으며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는 혜민의 시선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긴다. 곧바로 그녀도 뒤따라와서 나란히 걷기 시작했지만, 둘 사이는
 
어색한 침묵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되나... 아니 그냥 평소처럼 같이 하교하는 것 뿐이잖아. 친구사이에 뭐이리 긴장하는거야 바보같이. 아무 말 없어도 전혀 어색한
 
사이가 아니잖아? 그래. 부담갖지 말자. 3년지기 친구한테 긴장할게 뭐있어. 그냥 평소처럼 하자. 평소처럼.'
 
혼자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중간에 힐끗 혜민의 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입을 연 순간,
 
"저기..."
 
"저..."
 
혜민도 덩달아서 입을 열었고, 둘은 앗- 하는 표정이 된다.
 
"아... 너 먼저 말해."
 
"어...음? 아, 아냐. 난 괜찮으니까 너부터 말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양보하는 혜민에게 차마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덮어놓고 불러봤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말을 더듬으며 사양했다.
 
"...뭐 정 그렇다면. 근데 너 오늘따라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혹시 뭐 숨기는거라도 있냐?"
 
"내, 내가 뭘. 난 평소랑 똑같은데."
 
그러자 혜민이 다 안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말하였다.
 
"혹시, 여자친구?"
 
그러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고함을 쳤다.
 
"마, 말도안돼!"
 
그러자 혜민이 움찔하며 뒤로 조금 물러선다.
 
"어우, 야 귀청 떨어지겠다. 아무튼 그것보다도. 너 요즘 뭐 하고 지내는 거야?"
 
"으응...?"
 
난데없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너 요즘보면 학교에서도 정신이 딴데 팔린 것 같고, 또 수업 끝나면 쏜살같이 집에 가서는 문자나 전화는 다 씹잖아. 무슨 일 있는거야?"
 
그제서야 혜민의 눈가에 어려있는 걱정의 눈길을 볼 수 있었다. 요즘들어서 삼인방이 계속 내 주위를 맴돌며 성가실 정도로 친한척을 해대서 그저
 
기분탓으로 여겼더니, 역시 녀석들은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하아, 그런 걱정이라면 안 해도 좋아. 그냥 일찍 가서 쉬고싶을 뿐이니까."
 
"정말로?"
 
"그렇다니까. 너희들 걱정시킨건 미안하지만 그렇게 심각한건 아니야."
 
"그럼 부모님이 이혼한다거나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아닌거지?"
 
"...뭐?"
 
얼굴에 황당함이 잠시 떠오르다가 사라진다.
 
"아니, 애들이랑 내기를 했거든. 나는 네가 우리몰래 여자친구를 사귀는 쪽으로, 승철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쪽으로, 은진이는... 부모님이 이혼이나
 
별거를 하는 쪽으로 돈을 걸었거든. 빨리 말해줘. 어느쪽인거야?"
 
정말이지 이놈들은 죽고나서 뇌를 꺼내 의학용으로 연구한다면 인류의 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 어느쪽도 아닌데."
 
"아, 어쩜! 그러면 15000원은 아무도 못 얻는구나..."
 
혜민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탄식하는 것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왔지만 나를 반기는 것은 익숙한 고요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무렇지않게 여기며 책가방을 방 한켠에 팽개친다. 교복을
 
벗어서 대충 개어놓은 후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구형 휴대폰 단말을 꺼낸다.
 
-오후 4시 16분
 
휴대폰 액정에 표시된 시간을 확인하며 책상 위의 선반으로 손을 옮긴다. 불 꺼진 방안을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대신 비추고 있었기에 나는
 
선반에 올려진 직육면체모양의 검은색 기기와 그 위의 헤드기어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선반 뒤켠에 숨겨져 있는 콘센트를
 
찾아내어 기기와 연결된 코드를 그것에 꽂는다. 그리고는 기기에 조그맣게 돌출된 네모난 버튼을 누르자, 기기가 밝은 파란색의 LED등을 빛내며
 
조그맣게 웅웅-거리는 소음을 내었다.
 
그것을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헤드기어를 집어든다. 헤드기어를 머리에 잘 착용하고 난 후, 오른쪽 귀가 위치한 부분을 손으로
 
더듬거리자, 역시나 돌출된 접속버튼의 질감이 느껴져서 망설임없이 그 버튼을 눌렀다.
 
-접속을 실행합니다. 접속실행도중 헤드기어를 강제로 해제할 경우 접속이 강제해제됩니다. 또한 접속도중 본체의 전원을 강제로 종료할 경우 적지않은
 
 불쾌감을 줄 수 있으니 이 점 유의해 주십시오. 접속까지 5초 남았습니다.
 
나는 헤드기어를 머리에 쓴 상태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시야가 흐릿해지며 정신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사용자 정보 조회중. 사용자 확인. 김현웅회원님, VSP에 접속하신것을 환영합니다. 현재 접속지역은 대한민국입니다.
 
이제는 자다가도 외울 정도로 많이 들어서 익숙한 안내멘트가 들리며 시야가 서서히 밝아지는 것을 느낀다.
 
VSP. Virtual Space Plaza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전세계 가상현실 콘텐츠에 접속하기위한 중간지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획기적인 개념은 미국
 
의 어느 벤처기업에서 만든 것으로, 그 이전까지는 대형 기업들에 의해서만 판매할 수 있었던 가상현실 콘텐츠들을 온라인환경에서 소비자가 개발자로
 
부터 직접 구입가능하게 만들어서 중소 개발자들이 대형 기업들과 공평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처음 VSP를 선보였을 당시에는 각종 방해공작이 끊이지 않았지만 일일 거래량이 수십만 달러를 가뿐히 넘어가는 지금은 대형 기업들조차도 VSP에
 
자신들의 새로운 신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푸른색의 처음 계정을 만들 때 주어지는 20제곱미터 정도의 밋밋한 나의 개인 공간의 정경이 눈에 들어오자 무언가 아늑한 느낌과 함께 기대감으로
 
가슴이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앞쪽을 향해 무언가를 뿌리듯이 손을 쫙 펴는 메뉴 불러오기의 단축커맨드를 실행했다.
 
곧이어 눈 앞에 커다란 반투명 메뉴창이 나타났다. 메뉴 창의 왼쪽에는 나의 모습과 간단한 신상정보가 명시되 있었고, 그 오른쪽에는 현재 이용중인
 
가상현실 게임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뭐, 나열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가상전투시뮬레이션 게임인 '슈터즈'하나만이 게임 목록 위쪽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손으로 '슈터즈'를 선택하고 접속실행 버튼을 누르자 푸른색의 개인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반투명한 벽들이 사라지며 주변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고 겁도 났었지만 수도없이 경험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을 뿐이었다.
 
오른손을 앞으로 편 상태에서 얼굴쪽으로 팔을 오므리며 주먹을 쥐는 메뉴창 해제 단축 커맨드를 실행하자 유일한 광원이었던 밝은 빛의 메뉴창이
 
사라진다. 그렇게 빛 한점 없는 칠흑속에 잠시 머무는 순간은 잠시 하루를 돌아보며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주변이 환해지며 캐릭터 선택 공간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캐릭터를 선택해 주십시오.
 
나는 망설임없이 듬직한 체격의 각종 보호장비와 전투장비 등으로 중무장한 유일한 캐릭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확실합니까?
 
"그렇다."
 
그러자 눈 앞의 캐릭터가 사라지며 대신 신체체형이 조금 커진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고개를 돌려 벽면에 붙어있는 전신거울을 들여다보자 내가
 
애지중지하며 지난 몇개월동안 열심히 키워놓은 나의 분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늠름한 모습을 잠시 감상한 후, 나는 스테이지 내부에 위치한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하며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내 귀에 익숙한 음성이 속삭이는 것이 느껴졌다.
 
-슈터즈에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
 
 
슈터즈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야마모토 켓타이가 설립한 가상현실게임 기업인 켓타이에서 출시된 가상전투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인간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궁극의 공간이라고 불리는 가상현실세계에서 게이머들이 정밀한 고증을 거쳐 실제와 아주 조금의 위화감도
 
없는 총기를 들고 상대 게이머들과 생생한 총격전을 벌이며 성장해나가는 방식의 게임이다. 이 게임을 처음 출시했을 당시 야마모토 켓타이 본인은
 
'자신이 꿈꿔왔던 게임을 개발하는 그 첫걸음'이라는 발언을 하여 현존하는 최고의 총기액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은 슈터즈 이외에 또 다른 숨겨둔
 
히든카드가 있을 것이라는 많은 게이머들의 기대어린 추측을 낳았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전, 켓타이사에서는 극한의 구현력을 자랑하는  '슈터즈'
 
엔진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가상현실게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어마어마한 게임을 출시함으로써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었다. 그 이름은 '프로핏월드'.
 
물론 나도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등에서 이것저것 알아보았지만, 유료서비스 게임임을 알고 실망하였었다. 남들은 월 10만원의 게임 이용료를 지불할
 
만한 값어치가 충분하다고는 하지만, 처음 가상현실 단말기를 구입하는것도 탑탁히 여기지 않았던 부모님이 게임 이용에 10만원이라는 거금을 정기적
 
으로 지불 해 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용돈을 쪼개기에는 너무 큰 돈이고 말이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모님 동의서를
 
떠올리고는 일찌감치 접었다. 대체 귀한 주말시간을 쪼개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부모님의 얼굴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무료서비스 게임인 슈터즈를 플레이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대다수의 유저들이 프로핏월드로 빠져나가버린 지금, 전투 전 유저들이
 
휴식을 취하며 무기 등을 개조하는 마을 스테이지 내부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오른손 엄지를 중지와 약지에 붙인 다음 허공을 가볍게 두드리는 메신저 불러오기 단축 커멘드를 실행하고 접속중인 길드원 목록을 살펴보았다.
 
역시 'Flame Korea'길드의 길드원 7명이 전원 접속해 있었다. 길드 대화채널을 선택하고는 참여하기 버튼을 누르자 마을 내부에서 들리던 배경음악
 
소리가 갑자기 줄어들며 익숙한 목소리의 길드원들이 숨가쁘게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오두막 내부에 적 둘, 아니 셋! 이러다가 죽겠어.
 
-조금만 기다리세요 레온님. 지금 저격하러 가고 있어요.
 
-강가! 강가야! 강에서 갑자기 총알이 날아오고 있어요! 저 다리만 건너면 목표물을 탈취할 수 있는데...
 
-무리하지 말죠. 우리가 저쪽보다 수가 적으니 급한 마음에 목표물을 탈취하려고 덤빌 거라고 저쪽이 충분히 예측할 테니까요.
 
-저격수는 아직인가?
 
-갑니다!
 
-...오우 좋아 나이스샷!
 
-두 놈 놓친것 같은데요.
 
-상관없어. 계속 엄호사격 해줘! 내가 오두막 안에 들어가서 처리할께.
 
-조심하세요.
 
-사과님, 아직 다리쪽이세요?
 
-아뇨 지금 강 하류쪽으로 가고 있어요.
 
-잘됐네요. 저도 강 위쪽이거든요. 아까 강가에 몇 명 있었는지 보셨나요?
 
-최소 두 명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 두명만 처리하면 4:3이 되네요. 조심하세요. 먼저 들키는 순간 끝입니다.
 
-저기... 아무래도 이상한데?
 
-왜그러시죠 레온님?
 
-아까 오두막에서... 분명 3명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한명이었어...  코제트 오두막 쪽에서 누가 나가는거 봤어?
 
-...아뇨 못 봤는데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나도 강가쪽으로 합류할께.
 
-조심하세요.
 
-저도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크아악, 젠장. 놈이 오두막 아래에 숨어있었어!
 
-어디쪽이었죠?
 
-늦었어 코제트. 나무에 가려서 그쪽에서 안 보여.
 
-레온님, 그 놈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이시나요?
 
-아무래도 강가쪽인거 같은데... 어 이런, 사망위치 시점 시간이 끝나버렷네.
 
-사과님,테이몬님 건투를 빕니다. 저도 죽었네요.
 
-그게 무슨...?
 
-제 뒤쪽으로 상대편 한 명이 몰래 다가왔었나봐요.
 
-크학! 저도 죽었습니다.
 
-...저쪽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했던 모양이네요.
 
-하아... 어쩔수 없죠. 다음 게임때 잘 해 봅니다.
 
-휴, 그래도 한 명은 죽였네요.
 
-어라, 우리가 게임하는 동안 트위스터도 접속한 모양인데요.
 
-오오, 트위스터!
 
-랭커다 랭커!
 
-그럼 이제부터 연승하는건가?
 
상황을 보아하니 이제 인사할 순간 인듯 해서 반갑게 맞이하는 길드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모두들 안녕하세요. 보아하니 방금은 진 모양인데요."
 
-말도마. 게임시작 2분만에 3명이나 죽어버렸으니.
 
-그래도 우리길드 슈퍼루키가 왔으니 이제는 쉽게 이길 수 있겠죠.
 
"그럼 제가 길드 전투스테이지로 갈까요?"
 
-아냐, 코제트가 상점에 들러야 한다니까, 상점가로 다같이 갈께. 너도 그 쪽으로 와.
 
"알겠습니다."
 
Flame Korea 길드는 슈터즈 안에서 내가 가입해 있는 길드원 전체의 수가 나까지 포함해서 8명이지만, 이들 모두는 매일마다 접속해서 같이 길드전투
 
를 즐길 만큼 엄청나게 열심히 게임하는 열혈게이머들이다. 그리고 매일같이 보다보니 길드원끼리도 마치 형제자매처럼 친했다.
 
어느덧 주위 배경이 높다란 고층빌딩들이 즐비한 도심지역임을 깨닫고는 상점 스테이지에 진입한 것을 알아차렸다. 길드원 찾기 기능을 실행시키자
 
나의 시야 한쪽에 노란빛의 화살표가 나타나며 건물 한 구석을 가리켰다. 스테이지 맵을 통해서 살펴보고는 저격장비 상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 트위스터!"
 
"이쪽이야!"
 
멀리서 나를 알아본 길드원들이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그들에게 반갑게 다가갔다.
 

 
1장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2장을 쓰는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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