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행정병을 했습니다.
행정병 보직을 맡고 처음 한동안은 업무 파악으로 바빠서 정신없었는데, 일이란게 1년정도 돌다보니 어느덧 여유도 생기더군요.
하지만 그 다음 1년은 지겨움의 연속이었죠.
하지도 않은일을 부대일지에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경리업무처리, 간부들 업무 대신 처리, 별 바쁠 일이 없는경우에도 중대원들 보기에 좋지 않으
니 누가오면 일이 바쁜척 하라는 지시, 상급부대에서 정기적, 불규칙적으로 요구하는 형식적인 공문처리, 단순 반복업무인 진급자, 전역자 , 신병 전입
처리 등등...
게다가 짬밥이 차면서 모든 일들이 서류상으로만 완벽하게 처리되었다면 별 큰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실 일은 더더욱 쉬워졌습니다.
예를들어, 수요일 '전투체육의 날' 1시부터 3시까지라면, 실제 중대 업무는 '제초작업' 이었을 지라도 그냥 전투체육 실시 라고 기록만 하면 됩니다.
처음 신병때는 '제초작업'이라고 그대로 기록하였다고 간부한테 갈굼당하고 선임한테 당하고 그날 야근하면서 오류(?) 정정을 했었죠.
오류 정정도 화이트 이런것을 쓸수도 없고 칼로 살살 긁어서 최대한 표 안나게 해야 한다고 선임이 친절히(?) 가르쳐 주더군요.
현실과 동떨어진 서류상의 퍼즐 조각 맞추기 게임에 질리기 시작했고, 업무를 하면서도 어떠한 보람이나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군대에서 사실 미래의 진로에 대해서 야간 경계근무나 불침번을 서면서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현실도 이와 별반 다를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지는 못하였지만 제 개인적 생각이니 양해부탁)
그리고 사실 다른 중대 행정병들과 담배한대 피면서 이야기 해보니 (다들 취직에 관심도 많은 나이라) 한결같이 공무원은 정말 못하겠다 라는 것이었습
니다. (요즘 공무원 경쟁률과는 차원이 다른 시절이었습니다.)
당연히 저의 생각도 별 다를 바 없었구요.
간부 눈치만 잘보고 간부가 마음에 들어할만한 행동만 잘하면 어느정도 문제가 있어도 왠만하면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구요.
하지만 간부한테 찍히면 아무리 일을 제대로 하더라도 어떤것이든 꼬투리 잡아서 무조건 '빠꾸'가 되는 현실이 참담하더군요.
제가 이 이야기를 왜하냐면요.................
현재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 과정에서 목격하는 공무원들의 경직된 사고, 상명하복식 관습, 대통령이 오셨으니 유족들에게 박수를 쳐달라는 미친놈,
교육부 장관이 오셨다고 미리 알려주는 모습, 윗대가리의 지시가 없이는 책임질일 하기 싫어하고 서류상으로만 문제가 없으면 끝이다 라는 느낌...
물론 지극히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그 군시절의 제가 느꼈던 답답함이 고스란히 되살아 나면서 한번 주절 거려봤습니다.
성실히 묵묵히 일하시는 공무원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최윗선 공무원들이 과감하게 치고 나가주고 할말은 해야 하는데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하려는 모습이
애타는 유족들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너무 답답하여 한번 주절 거려봤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으면 합니다.